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46화 (46/186)

< 5. SSS급 슈퍼스타 >

이재성 PD와 대화하는 사람은 출연자라기보다는 정확히는 한 참가자와 관련된 사람이었다. 수한이 기억하는 SSS급 슈퍼스타 시즌1의 우승자 이현우의 곁에 늘 붙어있는 남자다. 두 사람이 사촌 관계라고 들었다. 솔직히 수한은 이현우의 능력치를 본 이후로 이현우에 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현우- 스타성: B, 연기력: B, 가창력: B, 춤: B, 인지도: C, 기타: B, 성장 가능성: 22%]

이현우는 시즌1의 우승자이면서도 스타성이 없어서 오래가지 못했다. 가끔 앨범을 내면 이런 애가 있었지 정도로만 언급되는 인사였다. 능력치도 애매해서 수한은 나중에 인연을 맺을 사람으로 그를 따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솔직히 준우승만 해도 고주혁 씨에게는 큰 이득이지.'

실제 SSS급 슈퍼스타 전 시즌을 통틀어보면 우승자보다는 자기 음악색을 잘 드러낸 참가자들이 더 오래갔고, 인기도 더 많았다. 어차피 고주혁의 능력치야 성장 중이니 준우승을 해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

무조건 고주혁을 우승자로 만들어야 한다. 수한은 내정자가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결국, 이런 경연조차도 권력이 있는 사람들의 손에서 우승자가 결정된다는 소리니까.

'물론 내가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수한이 그를 잘 이용해서 고주혁을 강력한 우승 후보로 키운 게 아닌가? 수한은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대기실로 갔다. 일단은 16강을 위해 준비하는 고주혁을 챙겨야 했다. 고주혁은 이제는 경연이 조금은 익숙해져서 침착한 상태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한소원의 곡을 받아서 그런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이런 곡을 가지고 이기지 못하면 바보죠."

어떻게 보면 오만한 말일 수도 있으나, 고주혁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수한은 그 자신감에 웃었다. 이 정도 자신감이면 충분했다. 게다가 수한이 들어도 이번 한소원의 곡은 능력치로 봐도 압승이었다. 수한은 목을 푸는 고주혁을 지켜보다가 바깥으로 나왔다.

이현우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경연 전에 대기실에 방문하는 수한을 경계하는 참가자가 많았다. 그전에 쌓았던 친분도 경연 직전에는 무용지물이었다. 경연 직전은 그 어느 때보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니까. 그러나 수한이 목에 좋은 사탕이라던가, 이것저것을 많이 챙겨줘서 그런지 이제는 경계를 어느 정도 내려놨다. 그렇다고 무슨 곡을 준비했다든가 이런 경연과 관련된 세세한 말들은 아니고 가벼운 잡담 정도는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수한은 이현우에게 들리기 전에 다른 참가자들에게 먼저 들렸다.

"정찰하러 오신 거예요?"

"와. 이렇게 대놓고 정찰하러 오셨네."

"네. 맞습니다. 정찰하러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떤 끝내주는 노래를 불러주실지 기대합니다."

"이런 거 보면 주혁 형 편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모두를 응원하는 시청자 중 한 사람이라서요."

입에 침 바른말이 아니라 이건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모두가 잘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인지 다들 호의적으로 수한의 말을 받아주었다.

"나중에 가온에 갈 일이 생긴다면 매니저님이 제 매니저 했으면 좋겠네요."

"저도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수한은 잘할 수 있다고 응원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이현우의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에 문을 여니 한창 메이크업 중인 이현우가 보였다. 그 곁에는 아까 이재성 PD와 대화를 나누던 사촌이 보이지 않았다.

"메이크업 중이시네요?"

"네. 제가 조금 늦게 도착해서요."

목소리가 살짝 갈라진 게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이래서야 오늘 경연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부터 걱정해야 하는 판이었다.

"제게 목에 좋은 차가 있는데 가져다드릴까요?"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수한은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보온병을 들고 왔다. 원래는 고주혁에게 줄 차였지만, 오늘 고주혁의 상태는 최상이라 차 정도 나눠주는 건 괜찮았다. 수한이 컵에 따라서 주자 이현우는 잘 받아마셨다. 이현우는 차를 마신 뒤 몇 번 목소리를 내다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야 응원하러 온 건데요."

이번에는 진심이 아니기에 살짝 양심이 찔렸지만, 이현우는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수한은 잠시 가볍게 대화를 하다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근데 사촌분이 안 보이시네요?"

"승태 형이요? 워낙 바빠서요."

사촌에 관해 말하는 것 치고는 이현우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수한은 두 사람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사촌분은 무슨 일 하시는 분이길래 어떻게 매번 현장에 오세요? 직장인이라면 짬 내기 힘들 텐데······."

그러나 이 질문은 안 하느니 못한 질문이었다. 이현우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날카로워지면서 흩어졌던 경계가 위로 솟았다. 수한은 싸늘해진 분위기에 어색하게 웃었다. 일어나야 할 때였다.

"그냥 프리랜서인가 하고 물어본 겁니다. 그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오늘 경연도 응원하겠습니다."

"네. 그럼 살펴 가세요. 차는 잘 마셨습니다."

문을 닫기가 무섭게 수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답지 않게 실수를 했다. 그러나 저 경계가 생각보다 수한에게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수한이 생각한 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미세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우선은 고주혁 씨에게 다시 돌아가야지.'

수한은 복도를 걸어가다가 마침 걸어오는 이현우의 사촌이라는 남자를 보고 환하게 인사를 건넸다. 자주 본 사이이기에 이런 인사가 어색하지 않았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피식 웃었다. 수한은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남자의 비웃음에 남자가 지나가고 나서 미소를 지웠다.

'저것 봐라?'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촌은 아니었다. 수한은 성민에게 연락하기로 했다. 이런 일에는 성민의 도움을 받는 게 최고였다.

**

[네가 알려준 이름이 맞는다면 너 같은 경우 같은데?]

"기획사에서 내보냈을 경우 말이죠?"

[그래. 다 밝히고 있는 너와 다르게 숨기는 것 같지만.]

성민은 수한이 생각한 것보다 빠르게 조사를 해서 보내주었다. 경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알아낸 걸 보면 물어보자마자 빠르게 조사한 게 틀림이 없었다. 이런 걸 보면 어쩌면 수한보다 성민이 더 수한이 남일에게 인정받길 바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너 괜찮겠어? 내정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일단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야죠."

[그래. 남자가 칼을 빼 들었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끝나고 사무실에 들르겠습니다."

수한은 전화를 끊고 난 후 미소를 지었다. 저쪽도 기획사이지만, 숨기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켕기는 게 있어서.'

수한은 이재성 PD가 어떤 방식으로 이현우를 밀어줄지 아직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재성 PD는 호의적으로 고주혁을 내보냈다. 그에 비해 이현우는 어떨 때는 악마의 편집도 당하고, 어떨 때는 호의적으로 방송이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스타로드한테 이길 거라고 생각 못 했으니까.'

그다음부터는 고주혁이 대놓고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밀어준 걸 수도 있다. 수한이 이재성 PD에게 잘 보인 것까지 포함해서. 그러나 지금부터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시청자 투표가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우선 이번 주 방송을 봐야 판단이 가능할 것 같은데.'

수한은 복잡해지는 머리에 열을 내다가 경연이 시작된다는 말을 듣고 바깥으로 나왔다. 수한은 수많은 방청객에 깜짝 놀랐다. 16강부터 방청객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생각한 것보다 더 꽉 찬 상태였다.

'저런 건 대형 아이돌 사전 녹화 때나 볼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스윗걸즈가 음악방송에 출연했을 때도 사전 녹화를 하기는 했다. 신인 걸그룹이기 때문에 당연히 팬은 없었다. 그러자 방송국 측에서 택한 건 다른 아이돌 팬들을 동원하는 거였다. 물론 분위기는 좋지 않았지만, 방송국이 갑질을 하면 팬들은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저러다가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니겠지?'

수한은 빽빽하게 세워둔 사람들을 보며 괜히 걱정하였다. 사람들끼리 껴있어서 벌써 땀을 뻘뻘 흘리는 게 보였다. 경연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지쳐있는 사람들에 수한은 살짝 걱정되었다. 저래도 되는 건가 하고 다른 스태프들을 보는데 그들도 지쳐있는 게 매한가지라 결국은 걱정을 떠안고 경연을 보게 되었다.

"와아-!"

"꺄아-!"

성별이 반반 섞여서 그런지 묵직한 소리와 날카로운 소리가 뒤섞였다. 나름 조화로운 비명이었다. 그보다 수한은 앞에서 무대를 하는 참가자에게 더 관심이 쏠렸다. 시청자 투표가 포함된다는 걸 알아서인지 이전과는 또 다른 실력을 내뿜었다.

'대단하네.'

보기만 해도 뜨거운 에너지가 쏟아져나왔다. 편곡을 기가 막히게 했다. 리허설을 하면서도 본 공연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하니 그 힘이 달라졌다. 지금 살아남은 참가자들은 완벽한 무대체질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만만치 않겠는데.'

수한은 몇몇 참가자들의 공연을 지켜보다가 마침내 나온 고주혁을 보고 활짝 웃었다. 방청객 중에 고주혁의 팬이 많았는지 압도적인 환호성에 고주혁은 씩 웃음을 보였다. 그와 함께 울리는 밴드 사운드에 사람들은 홀린 듯이 고주혁을 보았다.

'미쳤다.'

한소원과 고주혁의 합은 그야말로 미쳤다. 한소원은 고주혁의 경연을 다 보았기에 고주혁의 강점을 최대로 뽑아버렸다. 한소원의 가이드 음악을 들었을 때도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은 했지만, 밴드 사운드와 더불어 시원하게 뻗는 고주혁의 목소리를 들으니 넋이 완전히 나가버렸다.

고주혁의 노래가 끝났을 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느 때도 이런 반응이 나온 적 없었지만,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고주혁이 웃으면서 인사를 할 때가 되어서야 다들 정신을 차렸다.

"와아아-!"

공간을 찢을 것처럼 미친듯한 환호성이 들려오면서 고주혁은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한 게 무색할 정도로 완벽한 무대였다.

"앵콜! 앵콜!"

심지어 앵콜 소리까지 나와 고주혁이 어색하게 카메라를 봤다. 당연히 이재성 PD는 허락하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서도 묻어나오는 아쉬움은 어느 정도 있던 터라 다음 참가자 무대가 살짝 지체되었다. 그사이에 수한은 얼른 대기실로 가서 고주혁을 챙겼다.

"고생하셨습니다."

"콘서트를 하면 이런 기분이겠죠?"

"아니요. 그보다 더한 기분이 들 겁니다."

수한은 들뜬 고주혁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물을 건네주었다. 고주혁은 물을 시원하게 마신 후에 대기실에 설치되어있는 모니터를 보았다. 그러면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몇 번이나 꿈을 꾼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얼른 가수가 되고 싶어요."

이미 가수라 불리지만, 아직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라는 인식이 더 강했다. 수한은 그런 고주혁을 이해했다.

"그렇다고 너무 조급하게 마음먹어서는 안 됩니다."

"네. 네."

수한은 모니터를 통해 그다음으로 나오는 참가자를 봤다. 불행하게도 다음 참가자는 이현우였다.

< 5. SSS급 슈퍼스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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