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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탑스타-45화 (45/186)

< 5. SSS급 슈퍼스타 >

"대표님!"

걸려도 저런 월척이 걸릴지 몰랐기 때문에 수한은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간신히 절제하였다. 다른 건 몰라도 폭력을 쓰는 건 싫은 모양인지 남일은 눈 앞에 펼쳐진 폭력 현장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지금 당장 못 떨어지나?"

남일의 엄한 목소리에 명훈은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이미 수한의 입가에는 피가 난 상태였다. 맞을 때는 크게 아프지 않아 몰랐는데 맞고 나니 입술이 따끔따끔하였다. 수한이 입술을 쓸어내리기가 무섭게 명훈은 재빠르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였다.

"이것도 다 사정이 있습니다! 제가 그냥 때린 게 아닙······."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군."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한 남일의 얼굴은 명훈의 기를 쏙 빼놓았다. 명훈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누가 보면 가해자가 명훈이 아니라 수한으로 오해할 태도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일은 이미 명훈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남일은 품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수한에게 건네주었다.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완벽하게 동요한 명훈과 다르게 수한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완전히 상반된 태도였다. 남일은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은 수한이 마음에 들었는지 어서 가서 약을 바르라고 수한을 먼저 내려보냈다.

"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수한이 내려가고 나자 옥상에는 명훈과 남일, 두 사람만이 남았다. 싸늘한 공기가 도는 옥상에서 먼저 말을 꺼낸 건 명훈이었다.

"정말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저 자식이 먼저 저를······!"

"내가 사람을 잘못 봤지 뭐야."

"네?"

"자네를 보면 젊은 시절에 나를 보는 것만 같았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었더라고."

"지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명훈은 자신을 보는 남일의 냉혹한 눈빛에 가슴이 싸늘해졌다.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이런 눈빛을 보게 된다면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지 알 수밖에 없었다.

"절 버리실 생각입니까?"

"나는 여러 번 기회를 준 거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제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잘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건 아니지. 누구는 빼앗긴 기회마저도 제 것으로 잘 살려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는데 말이야."

남일은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듯이 명훈을 내려다봤다. 굳이 따지자면 이 모든 게 명훈의 탓은 아니었다. 그건 남일도 인정하는 부분이었지만, 감정 조절을 못 해 수한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꼴을 보고 있자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와 이런 식으로 단둘이 만날 일은 없었으면 하네."

남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옥상 문을 열었다. 혼자 남았음에도 옥상에서 도는 싸늘한 공기에 명훈은 그대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허탈하게 웃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딴 회사 내가 더 다닐까 봐? 애초에 나를 담아두기에는 너무 좁은 회사였어.'

명훈은 지훈의 일이 잘못되면서부터 이런 일이 생길까 늘 염려하였다. 그래서 사직서도 이미 써둔 상태였다. 어차피 대한민국에 연예 기획사는 가온 엔터테인먼트 말고도 널리고 널렸다. 어디든 매니저가 부족한 환경이니 명훈은 사직서를 내고 다른 기획사에 가기로 했다.

**

"진심이야?"

"네. 진심입니다. 짐은 다 싸놓은 상태이니 가보겠습니다."

수한은 멀리서 성민과 대화를 하는 명훈을 지켜봤다. 이미 수한과 명훈 사이의 일이 사무실 전체로 퍼졌기 때문에 명훈을 보는 눈은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이미지가 기어코 바닥을 찍었다. 수한의 입가에 난 상처를 모두가 봤기 때문에 어떠한 변명도 소용없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그래도 성민이 사람이 좋기는 했다. 마지막까지 좋은 이야기를 해주니 말이다. 그러나 명훈도 가식적인 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고개만 숙이고는 짐을 싸 들고 사무실에서 나가버렸다.

아무리 미운 놈이라고 해도 저런 식으로 나가버리니 남아있던 사람들의 마음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물론 그들과 별개로 수한은 속 시원했지만 말이다.

'드디어 나가네.'

괴롭히는 재미와 별개로 명훈이 수한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생생하게 기억이 났기 때문에 그동안 명훈을 보는 게 쭉 불편했었다. 수한은 명훈이 부디 이 업계와는 무관한 다른 직종을 구했으면 했다. 만약 또다시 이 업계에서 만난다면 또 짓밟고 싶을 테니까.

"김수한이."

"네. 부르셨습니까?"

어느새 수한의 자리 앞까지 다가온 성민에 수한은 귀찮다는 얼굴로 성민을 올려다봤다. 성민은 그런 수한을 보며 피식 웃고는 둘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했다.

"이제 속 시원해?"

"네."

수한의 솔직한 대답에 성민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걱정하는 얼굴을 하였다.

"너무 솔직한 거 아니야?"

"실장님 앞이니까 솔직하게 말한 겁니다."

"어쭈? 내가 편해지긴 했지?"

"실장님 성격이 좋아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아예 입술에 침을 바르고 말하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기분 좋아하는 게 다 보였다. 수한이 따라서 웃고 있자 성민이 고개를 쏙 빼내서 수한의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팬카페 관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늘어난 회원의 수에 성민이 더 만족감을 느꼈다.

"투표 독려는 잘 돼?"

"굳이 제가 나서지 않아도 서로 이벤트를 많이 걸어서 활발합니다."

"대단하네."

수한의 수완이 대단하기는 했다. SSS급 슈퍼스타가 흥행한 건 운이라고 쳐도 고주혁의 인기몰이의 90%는 수한이 했다. 이건 홍보팀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라 성민은 수한을 홍보팀으로 데려오면 안 되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홍보팀에서 너 되게 탐내더라."

"저는 그래도 매니저 일이 좋습니다."

"아주 인재일세."

"그렇죠. 저만한 인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수한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이미 수한의 이름은 가온 엔터테인먼트 직원들 내에서도 수없이 언급되었다. TV를 통해 얼굴도 세상에 내보였으니 수한은 가끔 친근하게 인사해오는 사람마다 이름과 얼굴을 외우느라 바빴다.

"그보다 대표님께서 널 보자고 하시는데?"

"절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십니까?"

"글쎄?"

수한은 싱글벙글 웃는 성민을 보고 나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한이 대표실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성민이 옆에 붙었다.

"실장님도 같이 가시게요?"

"나도 뭔 소리 하는지는 궁금해서."

수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도 성민은 즐거워 보였다. 성민이 먼저 대표실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성민이 대표실 문을 열자마자 남일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성민을 보았다.

"이 실장은 오라고 한 적이 없는데?"

"어차피 다 같은 식구 사이에 뭐 어떻습니까?"

기가 막힌다는 듯 웃는 남일의 모습에 수한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남일이 앉으라고 손짓을 하기가 무섭게 성민이 먼저 소파에 앉았다.

"이 친구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 실장은 빠지지?"

이번에는 장난스러운 말투가 아니었다. 대표 특유의 진지함과 위엄이 돋보였다. 그래서 성민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아쉬운 기색을 보이며 바깥으로 나갔다.

"차 마실 텐가?"

"괜찮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고."

남일은 책상 위에 남아있던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중앙 자리에 앉았다. 수한은 남일의 날카로워진 눈빛을 담담하게 받으며 남일을 똑바로 보았다. 그 태도가 재미있었는지 남일은 곧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동안 자네한테 좀 못했던 것 같아."

"아닙니다."

"아니길 뭘. 사실인데."

갑자기 편안하게 분위기를 푸는 남일에 수한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경계는 풀지 않았다. 남일이 어떤 식으로 수한의 공을 빼앗아갔는지 수한은 전부 다 기억하였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어."

"아닙니다. 제가 조금 더 대표님께 믿음을 드렸어야 했는데요."

"아니야. 그래서 말인데 내가 자네한테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서 불렀어."

수한은 이게 본론이라는 걸 깨닫고 총명하게 눈을 반짝이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명훈에게 줬던 기회가 이번에는 수한에게로 왔다. 수한은 당연히 그 기회를 잡을 생각이었다.

"고주혁이 슈퍼스타에서 우승한다면 내 자네에게 가수들을 온전히 맡기지."

"가수들이라면······."

"가수 분야에 소속된 연예인 전부 말이야. 자네가 원하는 대로 키우게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네."

이지훈, 한소원뿐만이 아니라 다른 가수도 포함한다는 뜻이었다. 수한은 그 의미를 깨닫고는 매우 놀랐다.

'전부 다라고?'

솔직히 말해 이런 식으로 확 밀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말에 순간적으로 크게 들떴지만, 수한은 금세 이성을 되찾았다. 남일이 건 조건 때문이었다.

'우승이라니······.'

고주혁의 인기와 실력이라면 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재성 PD가 우승자를 내정해두었느냐의 문제였다. 만약 내정해두었다면 고주혁이 우승하는 건 힘들었다. 아무리 시즌1이 조작이 없었다고 해도 끝까지 조작이 없을 거라 확신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섣부르게 대답할 수 없었다. 수한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복잡해졌다.

'준우승까지는 어떻게 해볼 수 있는데······.'

그런 수한의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남일은 단호하게 말했다.

"무조건 우승이네."

**

"안녕하십니까."

"네. 오늘 고주혁 씨 상태는 어때요?"

카메라 상태를 점검하던 이재성 PD의 물음에 수한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습니다."

SSS급 슈퍼스타의 인기 1위를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고주혁이었다.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뿐만이 아니라 참가자들끼리 인정하는 부분이라서 고주혁의 몸 상태가 매우 중요했다. 물론 고주혁은 자신의 인기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 음식 하나도 허투루 먹지 않았다.

"하긴 김수한 씨가 있는데 고주혁 씨 상태야 좋겠죠."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보다 시청률이 계속 상승 중이라서 기쁘네요."

"이게 다 고주혁 씨의 화제성 때문이 아니겠어요?"

수한은 그 말이 빈말이라는 걸 바로 알아채고는 입에 침을 열심히 발랐다.

"아닙니다. PD님의 뛰어난 연출 실력 때문이죠."

"그리 말해주니 저도 좋네요."

그 고주혁을 만든 사람이 따지고 보면 이재성 PD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재성 PD는 카메라 점검을 다 한 뒤 수한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럼 일 보세요."

시청률이 계속 상승 중이다 보니 이재성 PD의 콧대가 하늘을 찔렀다. 그 오만함에도 수한은 깍듯이 이재성 PD를 대했다. 대형 기획사면 몰라도 가온 엔터테인먼트가 중소 기획사이기 때문에 아직은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없었다.

수한은 살짝 뒤로 빠진 후에 조용히 이재성 PD를 살폈다. 따로 우승 내정자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이재성 PD 앞에 나타난 한 사람에 수한은 쓰게 웃었다. 안타깝게도 내정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 5. SSS급 슈퍼스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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