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44화 (44/186)

< 5. SSS급 슈퍼스타 >

"이게 다 제 팬들이 보낸 거라고요?"

"네."

수한이 뿌듯하게 웃는 동안 고주혁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연신 비볐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바뀌지 않았다. 정말로 꿈이 아니었다. 고주혁은 선물도 선물이지만, 그 옆에 쌓여있는 편지들을 감동한 얼굴로 봤다.

"이게 진짜 저한테 보내진 거 맞죠?"

"맞다니까요. 절 믿으셔도 됩니다."

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수한은 편지 내용을 일일이 살폈다. 그중에는 고주혁의 안티팬이 보낸 편지도 있기에 그런 편지는 열심히 걸러야 했다. 팬들이 많아진 만큼 안티팬들도 늘었다. 수한은 편지를 읽는 고주혁을 보며 달라진 수치를 보았다.

[고주혁- 스타성: A, 연기력: S, 가창력: A, 춤: A, 인지도: B, 기타: S, 성장 가능성: 80%]

저 정도면 웬만한 사람들은 고주혁을 안다는 이야기였다. 수한은 SSS급 슈퍼스타 시청률이 10%가 넘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저 인지도를 이미 짐작한 상태였다. 만약 우승까지 한다면 인지도 등급이 한 단계 더 상승할지도 모른다.

"매니저님! 여기에 초등학생 팬도 있어요!"

"제가 인기 많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거랑은 다르니까요."

고주혁이 요청한 대로 일부러 시청자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고주혁은 팬들이 보낸 선물과 편지로 자신의 인기를 실감하게 되었다. 수한은 편지 하나로 울고, 웃는 고주혁을 지켜보다가 사진 한 장을 찍었다. 팬카페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저 되게 깔끔하지 못한 상태인데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신선한 모습이라고 좋아할 것 같습니다."

수한의 긍정적인 말에도 고주혁은 신경이 쓰였는지 잠시만 기다리라고 해놓고서는 거울을 다시 봤다. 전형적인 연예인의 모습이라 수한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고주혁을 기다려주었다. 고주혁은 어색하게 자세를 잡더니 다시 찍어달라고 하였다.

"찍었습니다. 보시죠."

수한이 사진을 보여주자 고주혁은 마음에 드는지 활짝 웃었다. 팬들이 보면 정말로 좋아할 것 같았다.

"그럼 전 잠시 사무실에 다녀오겠습니다. 편지 읽고 나서 연습하고 계세요."

"네. 네."

수한이 사무실로 올라가자 사무실 안은 축제 분위기였다. 스타로드의 시청률을 볼 때만 해도 초상집 분위기였는데 SSS급 슈퍼스타로 인하여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특히나 그중에 최고 기분이 좋은 건 성민이었다.

"자! 내기에서 내가 이겼으니 돈 달라고!"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죠?"

"김수한한테 정말 신기라도 있는 거 아니야?"

"신기가 있든 말든 내게 돈만 주면 된다네."

성민이 어서 내놓으라고 채근하자 다들 지갑 속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성민에게 주었다. 수한은 이럴 줄 알았으면 자신도 내기에 참여할 걸 그랬나 잠시 생각했다.

"근데 진짜 SSS급 슈퍼스타가 이길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어."

"김수한이 난 놈은 난 놈이야. 신입이 아니라 경험 직이라 해도 이러지 못하는데 말이야."

"치기만 하면 홈런이네요."

"이 실장님. 얼마 안 가 그 자리 빼앗기겠어요."

"뭐 능력 있는 놈한테 주면 좋지. 나는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면 되니까."

"와. 대표님과 친척 사이라고 아주 그냥."

누가 보면 낙하산으로 오해받을 성민이지만, 성민이 그만큼 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성민에 대해 큰 말은 없었다. 수한은 나타날 타이밍을 엿보다가 화제가 성민에게로 가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저 왔습니다."

"슈퍼스타 오셨네!"

"김수한! 로또 번호 불러줘!"

"우승은 당연히 고주혁이겠지?"

수한이 등장하자 사무실이 더 시끄러워졌다. 수한은 로또 번호 같은 건 모른다고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다른 일도 해야 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주혁의 사진을 팬카페에 올리는 거였다. 사진을 올리기가 무섭게 성민이 수한을 불러서 다른 일은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김수한이! 내가 커피 사줄까?"

얼마 안 되는 만 원짜리를 흔들어대는 게 이번에는 법인 카드가 아닌 자기 돈을 쓸 생각인가 보다. 수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자 성민이 어서 따라오라고 턱짓을 했다. 수한이 따라나서자마자 성민이 예뻐죽겠다는 듯이 수한을 봤다.

'남자에게 이런 눈빛 받는 건 정말 별로인데 말이야.'

"이쯤 되면 솔직히 털어놓지그래?"

"뭘 말입니까?"

"어떻게 알았어? 슈퍼스타가 이길 줄?"

지난번에는 S를 줄이더니 이제는 아예 떼어버렸다. 수한은 그 물음에 어깨만 들썩일 뿐 답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내가 친히 커피까지 사주는데?"

"그거 저 때문에 번 돈 아닙니까?"

"이런 걸 혜안이 있다고 하는 거야."

성민의 뻔뻔함에 수한은 웃음만 나왔다. 이러다가 이 사람과 정이 들어서 나중에 퇴사할 때 망설여질지도 모르겠다. 직장 생활의 최고 조건이 동료이니 말이다. 물론 그때가 되면 수한이 대표가 될 생각이므로 오히려 성민을 스카우트해서 데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오지는 않겠지?'

성민이 남일과 친척 관계라는 사실을 수한은 잊지 않았다.

"무슨 생각해?"

"그냥 무슨 커피를 마실까 생각했습니다."

"그래 봤자 가장 비싼 거 마실 거면서."

"맞습니다. 그런 의미로 잘 마시겠습니다."

"그래. 네 덕분에 공돈 생겼으니까 말이야."

수한은 커피를 받고 나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성민이 이런 식으로 밖으로 데리고 나올 때는 꼭 중요한 말을 했다. 수한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성민을 보자 성민은 어색한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또 무슨 일입니까?"

"이지훈 소식은 들었어?"

갑작스러운 지훈의 소식에 수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지훈의 상황을 알면서도 일부러 관심을 꺼둔 것도 있었다. 오롯이 고주혁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훈의 이야기를 갑자기 꺼내는 걸 보니 수한은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조금은 짐작하였다.

"이번에 스스로 하차했어."

"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일어날 줄 몰랐기에 수한도 살짝 당황했다. 수한이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상체를 앞으로 내밀자 성민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경연 때 실수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야. 참가자들뿐만이 아니라 시청자들 반응도 안 좋아서 정신이 많이 나간 모양이더라고."

안 그래도 심약한 성격인데 사람들이 소곤거림을 지훈이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수한의 응원 메시지 하나로 그게 해결될 리가 없었다. 수한은 울컥하는 마음에 언성을 살짝 높였다.

"최명훈은 옆에서 뭐 했는데요?"

"달래기는커녕 정신 차리라고 채근만 한 것 같더라고. 그래도 지난번 경연 때는 잘했는데 말이야. TV에서도 안색이 안 좋더니 결국 자진 하차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더라고."

수한은 가슴이 답답하였다. 고주혁의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크게 기쁘지 않다 했더니 지훈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불안한 마음 때문에 그런 거였다.

"그래서 지훈 씨는 어떻게 하고 있답니까?"

"잠수 중이야."

"네?"

"아무리 연락을 해도 전화를 받지 않아. 처음에는 최명훈의 연락만 안 받더니 이제는 내가 해도 안 받아."

수한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았다. 평소에 표정 관리를 잘했던 수한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표정 관리가 안 되었다.

"제가 직접 연락해보겠습니다."

"그래. 다른 사람 전화는 몰라도 네 전화는 받을 것 같아서 말한 거야."

조금 전까지 맛있게 마시던 커피가 순식간에 맛없어졌다. 수한은 커피를 단번에 들이켜고는 성민보다 먼저 사무실로 갔다. 화가 나는 감정을 일로라도 풀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수한은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민의 말대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의 전화는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신호음은 얼마 안 가 끊기더니 핸드폰 너머로 전화를 받는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수한의 전화는 받았다.

[매니저님.]

"지훈 씨. 실장님께 이야기 들었습니다. 지금 어딥니까?"

[집이에요.]

"지훈 씨가 괜찮다면 제가 직접 만나러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굳이 매니저님이 저 같은 거 때문에 집까지 올 필요 없어요.]

"저 같은 거라뇨. 아닙니다. 지훈 씨가 얼마나 훌륭한 가수인데요."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

"아닙니다. 이건 정확히 따지자면 회사의 잘못이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매니저님. 그 이야기하려고 전화 받은 거예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수한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지훈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훈이 이런 적은 처음이기에 수한은 머리가 새하얘졌다. 자신감을 잃다 못해 지훈의 자존감이 확 떨어졌다.

'최명훈 이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명훈과 예전에 일한 경험이 있기에 그래도 조금은 믿고 맡겼다. 자신을 배신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기 연예인에게는 최선을 다하던 게 명훈이었다. 그 순간, 명훈이 수한의 시야에 잡혔다.

"어? 수, 수한아. 오랜만이다."

수한은 하필 사무실 앞에서 마주친 명훈 때문에 감정 조절이 잘되지 않았다. 명훈도 양심은 있었는지 수한과 마주치자 급하게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선배님."

수한이 불러 세우지 않았더라면 바로 사무실 안으로 뛰쳐들어갔을 것이다. 명훈은 오랜만에 듣는 호칭에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수한이 진지한 얼굴로 명훈을 보고 있었다.

"저랑 잠시 이야기 가능한가요?"

명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단둘이서 이야기할 만한 장소를 찾았다. 그 이유로 건물 옥상을 찾게 되었다.

"실장님께 지훈 씨에 관해 듣고 왔습니다."

지훈의 이야기를 하기가 무섭게 명훈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지금 수한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명훈은 자연스레 자기방어 자세가 되었다.

"그래서 뭐?"

"네?"

"그래서 뭐 어쩌자고. 본인이 싫다고 숨은 걸 내가 어떻게 하겠어."

둘만 있다는 걸 인식해서 나온 반말이었다. 수한은 명훈의 뻔뻔한 태도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부터 나왔다. 자기반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았다.

"그게 지금 매니저로서 할 소리입니까?"

"못할 건 또 뭔데? 애초에 너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은 생기지도 않았어."

"뭐라고요?"

"처음부터 고주혁이 탐났으면 탐났다고 말하지 그랬어? 그러면 선배로서 기꺼이 양보했을 텐데. 이지훈 같은 쓰레기를 네가 미끼로 쓰는 바람에 내가 낚인 거잖아."

설마 이런 식으로 적반하장을 할 줄은 몰랐다. 최명훈은 수한이 생각한 것보다 더한 쓰레기였다. 그런 쓰레기가 지훈을 쓰레기라고 말하니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수한은 기세등등한 명훈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 장소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많이 오는 장소였다. 조금 전까지 화났던 감정까지 모두 가라앉힌 채 수한은 반대로 명훈을 비웃었다.

"그러게요. 누가 낚이랍니까? 선배님이 이렇게 순진한 분일 줄은 저도 몰랐네요."

"뭐라고?"

"고주혁. 정말 좋은 인재더라고요. 덕분에 좋은 인재 받아갑니다. 선배님."

수한이 정중하게 고개까지 숙이며 감사함을 표하자 명훈의 얼굴이 빨갛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명훈의 주먹이 바르르 떨리더니 결국 수한을 향해 날아갔다. 수한은 피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수한의 몸이 비틀거리는 그 순간 옥상 문이 열리면서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 지금 뭐 하는 거야!"

옥상 문을 연 장본인은 다른 사람도 아닌 명훈을 가장 아끼는 대표 남일이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화가 난 얼굴로 서 있었다.

< 5. SSS급 슈퍼스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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