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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탑스타-41화 (41/186)

< 5. SSS급 슈퍼스타 >

고주혁은 수한이 한 말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같은 팀이 된 사람들의 경계 어린 시선을 느끼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며 웃는 모습을 유지하였다. 그와 함께 멀리서 느껴지는 카메라의 시선에 고주혁은 앞에서 설명하는 사회자의 목소리에 최대한 집중했다.

"팀마다 노래가 결정될 거고, 그 노래를 함께 부르게 될 겁니다. 심사위원의 심사를 통해서 한 팀당 두 명만 합격할 예정이니 각자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고주혁은 자신을 제외한 네 명의 팀원을 보았다. 인제 보니 고주혁과 비슷한 스타일의 노래를 부른 사람들이었다. 고주혁은 다른 팀 상황도 비슷한지 살펴보았다. 프로그램적으로 본다면 똑똑한 배치였다.

'각 무대의 특색을 다르게 하겠다라.'

현재를 보지 않고, 후반부를 기약하며 만든 배치에 고주혁은 멀리서 지켜보는 수한을 향해 웃어주었다. 처음에 여유 있던 태도는 어디로 가고, 자신보다 더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 웃음에 수한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

"파트를 어떻게 나눠야 할까요?"

곡이 정해졌으니 그를 효과적으로 분배해야 한다. 아무리 비슷한 부분이라 해도 하이라이트로 치닫는 부분과 중간을 잇는 다리 부분은 달랐다. 원래라면 이런 부분을 제작진에서 신경 쓰고 나눠줘야 하지만,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서 참가자들이 알아서 분배하라고 준비한 게 틀림이 없었다.

'이런 부분에서 매니저님이 말한 악마의 편집이 나오는 거구나.'

"어떻게 할까요?"

참가자들의 시선이 고주혁을 향했다. 가장 돋보이는 부분을 고주혁이 욕심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얼굴들이라 고주혁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저는 여러분이 고른 후 남는 부분을 하겠습니다."

"네?"

"아, 알겠어요."

고주혁은 사람들의 양심을 믿는 편은 아니었다. 고주혁, 자신만 해도 수한이 아니었으면 다른 사람의 노래를 훔쳐서 데뷔할 뻔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수한은 카메라가 있다는 환경에서는 다를 거라 말했다.

'고주혁 씨가 이 자리에 카메라가 있다는 걸 계속해서 상기시켜야 해요.'

수한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만약 이 일을 지훈에게 시켰으면 어색하게 해서 반감을 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일을 하는 건 연기력 S에 달하는 고주혁이었다. 고주혁은 양심 없게 파트를 분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말했다.

"다들 이렇게 나누는 데 만족하세요?"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괜찮냐고 묻는 얼굴에 남은 참가자들끼리 시선을 주고받았다. 확실히 나눈 것을 보니 누구는 고음만 하고, 누구는 저음만 하는 이상한 분배였다.

"아무리 방송이라고 하지만, 저는 각자가 후회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이런 경험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는 모두가 즐겁게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방송'이라는 단어에 다들 이게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 파악했다. 그냥 오디션이었으면 충분히 욕심을 부리고도 남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그 과정이 카메라에 실린다는 것을 깨달은 참가자들은 서둘러 파트를 재분배하였다.

"제가 너무 욕심이 과했네요. 이왕 하는 거 다 같이 즐겁게 하죠."

"네. 그러면 각자의 가창력이 돋보일 수 있게 최대한 머리를 굴려 가면서 다시 해봐요."

고주혁의 제안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탈락하더라도 나쁜 말이 나오지 않게 처신을 잘하는 게 최선이었다. 파트는 골고루 분배되었다. 고주혁은 하이라이트 부분을 기꺼이 다른 참가자에게 양보하였다.

"즐기자고 하는 건데 누가 부르면 어떻나요. 다른 분들께 누가 안 되게 열심히 부르겠습니다."

고주혁의 여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면서 이재성 PD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프로그램의 본질을 잘 파악한 똑똑한 참가자를 그가 싫어할 리가 없었다. 물론 그가 여러 개의 시즌을 내면서 자만감에 차 있을 때 고주혁을 봤다면 건방지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공중파와의 경쟁에 압박감을 느끼기에 오히려 고주혁을 흥미롭게 보았다.

'일단 처음에는 저 친구를 써볼까.'

노래도 잘 부르고, 얼굴도 잘생겼으니 초반 화제성을 고주혁이 가져올 수도 있다. 물론 수한에 대한 호감도 그 생각에 힘을 주었다. 훈훈한 장면도 많이 나왔으니 편집하는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그와 별개로 다른 팀에는 자극적인 장면이 많이 나왔다.

'다들 욕심이 많단 말이야. 그게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지만.'

이재성 PD는 어떻게 연출하면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할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그려두었다. 누가 악마의 편집이라는 단어를 만든 악마가 아니랄까 봐 그의 입가에는 어느새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

수한은 길게 하품을 하다가 멀리서 웃는 성민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사무실이 편하다고 해도 너무 편하게 하품을 한 것 같다. 성민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김수한이!"

"네. 부르셨습니까?"

수한이 벌떡 일어나 성민에게 다가가자 성민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웃었다.

"현장 뛰고 왔다면서?"

"네. 그래서 죽겠습니다."

매니저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송국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은 더했다. 수한은 쉬는 시간도 주지 않는 현장을 보면서 기가 확 빠졌다. 드라마도 빡빡하지만, 예능 프로그램도 비슷했다. 수한은 스태프들이 받는 돈을 떠올릴 때마다 방송국은 스태프들을 갈아서 방송을 만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에 비해 연예인이 버는 돈을 떠올리면 기형적인 구조였다.

"그래서 현장 가보니까 어때? 잘될 것 같아? 일단 고주혁은 잘하고 있다고 들었어."

"네. 고주혁 씨야 늘 잘하니까요. 현장 분위기는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수한의 대답에 매니저 대부분이 좋아했다. 수한이 그들을 노려봐도 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기에서 이기게 생겼으니까.

"하긴 명훈이 얘기 들어보니까 거긴 현장 분위기가 좋다고 하더라."

"그렇겠죠."

수한의 느긋한 태도에 성민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누가 보면 남의 일 말하는 줄 알겠다.

"너 내 돈 잃게 하면 다음에는 카페 커피는 없어."

"그거 실장님 돈으로 산 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해도. 법인 카드를 쥔 사람은 나란 말이야."

남일이 들으면 당장에라도 법인 카드를 빼앗을 말이었다. 수한은 명훈의 자리를 살폈다. 명훈은 어디를 갔는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대표님한테 보고하러 갔어."

"실장님을 건너뛰고요?"

"그래."

성민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 일로 인해 명훈을 향해 남일의 편애가 알려졌다. 게다가 명훈이 데려간 지훈은 수한이 대놓고 밀어주려 했던 연예인이다 보니 남들이 보기에도 모양새가 좋지 않아 명훈의 평판이 갈수록 떨어졌다.

'이래서 명분이 중요한 거지.'

"근데 막상 현장 가서 할 거 없지 않아?"

"그렇긴 한데 제가 워낙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해서요."

수한과 친해진 스태프들이 상당히 많았다. 어느새 고주혁을 보는 것보다 함께 일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니 자연스레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 혜택은 다 고주혁이 받게 되어있었다.

"하긴 그쪽 인맥이야 쌓이면 쌓일수록 좋긴 하지."

언제 신입으로 들어온 막내 PD가 거물급 PD가 되어 프로그램을 맡게 될지 알 수 없는 세상이었다. 물론 수한이 노린 건 그것도 있긴 했지만, 눈에 들어오는 몇몇 참가자들에게 소소하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이득이기도 했다.

'나중에 이름 날릴 사람들이 소수라고 하지만, 있긴 하니까.'

수한은 다방면으로 인맥을 넓히는 데 집중하였다. 수한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자 성민은 힘내라며 등을 세게 쳐주었다.

**

"고주혁 씨. 긴장 많이 됩니까?"

"조금은요."

첫 방송은 합격한 참가자 전원이 함께 시청했다. 오디션이 끝나자마자 시청하는 거라 참가자들의 표정은 좋아 보였다.

수한은 눈에 띄게 안색이 하얘진 고주혁의 얼굴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아직 모든 게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보이는 반응이었다. 화면에서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그의 미래가 바뀔 수 있으니 긴장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부터 진짜 오디션 시작이네요."

"그 악마의 편집 말씀하시는 거죠?"

수한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고주혁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 호칭 자체가 예사롭지 않다는 건 고주혁도 느끼고 있었다.

"청심환 드릴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오디션 첫날에도 먹지 않았던 청심환이다. 고주혁은 고집이 센 편이었다.

"고주혁 씨. 제 말 잊지 않았죠?"

"이런 자유로운 시간에도 카메라는 돌아간다는 말이요?"

"네. 잘 기억하시네요."

"누구 말씀인데 제가 잊을까요. 안 그래도 매니저님을 볼 때마다 카메라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럼 이만 자리로 돌아갈게요."

"네. 가세요."

고주혁은 서둘러 참가자들 있는 자리로 갔다. 수한은 아직도 떨어져야 할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받느냐에 따라서 이재성 PD의 편집도 달라지겠지.'

아직 본방송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수한은 이미 이재성 PD에게 좋은 이야기를 들은 상태였다. 그래서 고주혁만큼이나 긴장하지는 않았다.

"시작한다."

대형 스크린을 두고 그 위에 빔을 쏘니 커다란 방송 화면이 보였다. 참가자들은 어느새 집중한 얼굴이 되었다. 물론 그 모습까지 이재성 PD는 카메라에 담았다. 탑스타라는 왕관을 쓰려면 그 정도는 감내해야 하는 게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오오오!]

화면 속에서 고주혁이 나타난 순간 호응하는 효과음이 입혀졌다. 누가 봐도 PD가 신경 썼다는 인상이 강했다. 화면으로 보는 고주혁은 수한이 미래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날 것 같으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있다.

고주혁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왜 이런 실력자가 이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생생하게 담겼다. 어느새 노래는 끝으로 치닫고 고주혁은 노래를 마치자 속 시원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 웃음이 누가 봐도 굉장히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됐다!'

이재성 픽으로 제대로 들어왔다. 수한이 이재성 PD가 있는 방향을 보자 이재성 PD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이게 연출의 힘이구나.'

고작 몇 분 만에 고주혁의 매력이 담겨 나왔다. 수한은 결과를 알기는 하지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방송을 끝까지 봤다. 방송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연출되었다. 첫 번째 오디션 현장은 1화에서 끝났다. 참가자들의 얼굴을 보자 대체로 만족하는 얼굴이었으나, 예고편이 시작되자 표정이 확 달라졌다.

'저게 바로 악마의 편집이구나.'

자극적인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정신이 나가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수한의 말대로 진정한 오디션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 5. SSS급 슈퍼스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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