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40화 (40/186)

< 5. SSS급 슈퍼스타 >

수한은 놀라지 않은 척하려고 열심히 표정 관리를 했지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력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중파로 갔다고 들었는데 그런데도 오디션장에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수한은 자신 못지않게 놀란 고주혁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청심환이요?"

"네. 혹시 몰라서 준비했습니다."

고주혁은 수한의 손에 있는 청심환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수한은 뜻밖에 행동에 살짝 놀랐다.

"이 정도로는 긴장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제가 먹겠습니다."

수한이 지체하지 않고 청심환을 입에 털어놓자 고주혁의 입이 벌어졌다. 물론 고주혁을 위해 준비한 청심환이 더 있기는 했지만, 고주혁의 원망하는 눈빛에 수한은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원하면 지금에라도 약국에 가서 당장······."

"아니요. 괜찮습니다."

장난기가 물씬 나는 수한을 외면하며 고주혁은 앞만 보았다. 수한은 그가 보는 광경이 이 오디션장에 모인 경쟁자인 것을 깨닫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자신은 또라이 기질이 있는 사람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오디션장으로 고주혁이 들어가고 수한은 방송국 측에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기 때문에 무사히 현장 안으로 들어갔다. 현장 분위기는 수한이 생각한 만큼 좋지는 않았다.

"스타로드 측에 참가자가 더 몰렸다지?"

"비열한 놈들. 시간도 비슷할 게 뭐래."

수한은 우울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스태프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수한의 목걸이에는 스태프 명찰이 있었기에 그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거니 우리는 우리 대로 하면 됩니다."

"아휴. 그래야지. 인제 와서 어떻게 하겠어."

수한이 힘내자고 으쌰으쌰 하자 분위기가 조금은 풀렸다. 수한은 이왕 스태프 명찰을 단김에 현장 일을 돕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상당히 지나갔지만, 아직 오디션은 반 이상도 보지 않은 상태였다. 수한은 물건을 옮겨달라는 말에 서둘러 움직이다가 옆에서 들어오는 질문에 씩 웃었다.

"그보다 신입이야? 일 되게 잘하는데."

"아니요. 저는 참가자 중 한 명의 매니저 자격으로 여기 왔습니다."

"뭐? 아니. 스태프도 아닌데 왜 여기서 일하세요?"

수한은 스태프의 떨떠름한 표정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웃었다. 스태프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물론 그래 봤자 매니저라서 딱히 그럴 것도 없지만 말이다.

"어차피 서로 돕고 돕는 사이 아닙니까?"

어차피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도 일을 많이 도왔으므로 별 어려운 건 없었다. 수한이 아무렇게 않게 말하며 다시 현장 일을 돕자 말이 조금은 나왔으나 금세 적응해서 어느새 함께 현장을 구경하게 되었다.

"매니저라면 소속사가 어디예요?"

"가온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거기 가수도 키워요?"

매번 듣는 말이라서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수한은 마침 심사위원 앞에 서는 고주혁을 발견하고는 고주혁을 가리켰다.

"저 친구가 제가 미는 친구입니다."

수한의 말에 구경하던 스태프들의 시선이 고주혁을 향했다. 한 사람이 하늘만 가리켜도 따라보는 게 사람인데 여러 명이 그러자 다른 스태프들도 고주혁을 봤다. 고주혁은 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신껏 제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남자들의 노래방 18번이었다.

"와. 잘하네."

사람들이 많이 아는 노래일수록 그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지 듣기만 해도 판단할 수 있다. 고주혁은 몇 번이나 치고 올라가는 고음에도 표정 변화 없이 오히려 여유 있다는 듯이 시원하게 불렀다.

"저거지."

수한은 기분 좋게 웃었다. 고주혁이 노래를 잘 불러도 너무 잘 불렀다. 고주혁과 여러 번의 연습을 했지만, 고주혁은 다양한 장르를 소화 낼 줄 아는 가수였다. 고주혁은 노래를 다 부른 후 자신 있는 얼굴을 했다.

"합격입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잘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수한이 어떠냐는 식으로 스태프들을 보자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를 본 건 메인 PD 이재성도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롭다는 듯이 고주혁의 뒷모습을 봤다. 일단 이재성 PD의 시선을 꽂히게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고주혁은 오디션에서의 제 할 일을 끝냈다.

"합격한 분들은 며칠 뒤에 함께 2박 3일 동안 합숙하면서 팀으로 나눠서 팀 안에서 서로 경쟁하게 할 겁니다. 그러니 그때 동안 필요한 물건들을 집에서 잘 챙겨오시길 바랍니다."

수한은 고주혁을 보는 이재성 PD의 시선이 상당히 좋다는 것을 알았다. 미리 뽑기로 한 사람도 있겠지만, 고주혁은 참가자 중에서도 뛰어난 노래 실력을 보여 단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찌 보면 고주혁이 가창력만 좋으면 그냥 노래를 잘 부르는 참가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런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건 가창력이 아니라 화제성이었다. 잘생긴 얼굴로 시원하게 노래까지 잘 부르니 화제성이 없을 리가 없었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네. 매니저님."

고주혁이 똘망똘망한 눈을 하며 대답하자 수한은 오늘 잘했다는 의미로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당연히 고주혁의 기분은 최고였다.

"안녕하세요. 가온 엔터테인먼트에 김수한입니다."

다른 스태프들의 입을 통해 수한이 고주혁의 매니저라는 걸 알게 된 이재성 PD는 따로 수한을 불렀다. 수한이 먼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자 이재성 PD는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러면서도 궁금한 게 있는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가온에서 한 명 내보내겠다고 한 건 들었는데 실력이 좋은 친구를 보냈네요."

"네. 가온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잘 될 거라 믿고 있거든요."

수한의 자신 있는 목소리에 이재성 PD는 의아했다. 공중파와 맞붙기 때문에 현장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PD인 이재성보다 수한이 더 자신 있어 하니 의아해하는 게 당연했다.

"PD님이 연출하신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 눈이 좋은 편이네요."

"네. 가온 내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그래서 제가 적극적으로 고주혁 씨를 슈퍼스타에 나가자고 설득했습니다. 고주혁 씨의 스타성은 PD님께서도 알아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라고 했지만, 일부러 끝에는 공을 세우기 위해 자기 자신을 강조하였다. 그 의미를 이재성 PD도 알아채고는 웃어버렸다.

"대담하신 분인 건 알겠네요. 도박 기질도 있으신 것 같고."

"아니요. 저는 확실한 판이 아니면 서질 않아서요."

그 말에 이재성 PD의 눈이 반짝였다. 이 불리한 판에서 이런 믿음을 주는 사람은 그도 처음 봤다.

"그러고 보니 매니저님이 얼굴이 낯이 익네요."

"최근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 잠깐 얼굴을 비친 적이 있습니다."

"아! 어쩐지! 얼굴이 낯익더라니!"

유난히 반가워하는 반응에 수한은 쑥스럽게 웃으면서도 진지한 분위기를 버리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나눈 대화가 나중에 어떤 힘을 발휘할지 알았기 때문이다. 수한의 신뢰가 가득한 얼굴에 이재성 PD도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매니저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고주혁이라는 친구, 저도 눈여겨보죠. 가온의 의사는 잘 알아들었습니다."

**

[지훈 씨. 합격 소식 들었습니다. 축하드려요.]

아무리 지훈을 명훈에게 맡겼다고 해도 수한은 지훈을 신경 안 쓸 수가 없었다. 수한은 지훈의 고맙다는 답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처음에 불안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주눅 들지 않아서 다행이다.

'거기는 현장 분위기가 좋다고 했지?'

아주 훈훈하다 못해 따뜻해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특히나 메인을 맡은 PD가 따뜻한 연출을 하는 거로 유명한 사람이라 수한은 천사와 악마의 대결인가 잠시 생각했다. 현실은 천사를 가장한 악마가 케이블을 짓밟고 있는 형태지만.

"매니저님."

"네. 고주혁 씨."

합숙하는 장소까지 수한이 직접 데려다주기로 했다. 차에 타기 전부터 고주혁을 살뜰하게 챙겨서 고주혁은 간접적으로 연예인 생활을 체험하게 되었다.

"무조건 제 편이 있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네요."

"그러려고 매니저가 있는 거니까요. 빠뜨린 물품은 없습니까?"

"매니저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다 챙겼어요."

수한도 가수를 보조하는 건 어색한지라 이것, 저것 열심히 알아보고 고주혁을 챙겼다. 덕분에 고주혁의 짐은 거의 산이 되어서 그중에서 필요한 것만 빼는 일도 수한의 몫이 되었다. 수한은 합숙소 안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말하게 되었다.

"제 말 명심하셨죠?"

"제 의견을 강요하지 말 것, 분량 욕심부리지 말 것, 항상 웃을 것, 또······."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최대한 도울 것."

"네! 기억났어요!"

손뼉을 치며 반응하는 고주혁의 모습에 수한은 걱정이 많이 되었다. 물론 고주혁의 스타성이야 굳이 능력을 확인하지 않아도 미래로 알 수 있었다.

"리액션은 최대한 크게 하기."

"매니저님이 말씀하신 대로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악마의 편집을 피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안다면 누구도 고주혁에게 뭐라 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은 악마의 편집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 때라서 수한은 노래도 노래지만, 이런 소소한 것까지 준비하게 했다.

[고주혁- 스타성: A, 연기력: S, 가창력: A, 춤: A, 인지도: F, 기타: S, 성장 가능성: 60%]

저 연기력 S가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이전에는 표절해도 아닌 척하느라 사용됐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네! 그럼 합격해서 돌아오겠습니다."

한소원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16강에 진출해서부터였다. 그때까지는 고주혁의 자력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나 수한은 크게 걱정되는 게 없었다. 이미 이재성 PD에게 긍정적으로 눈도장이 찍혔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거라서 수한은 도와준다는 핑계로 다시 들어가기로 했다.

"원래는 안 되지만, 지난번에 도움받은 게 커서 허락한 겁니다."

다른 스태프들의 환심을 사서 다행이었다. 수한은 일하기 전에 비타민 음료를 나눠준 뒤 현장에서 일을 도왔다.

'실제 현장은 이렇구나.'

카메라에 담긴 모습만 보다가 생으로 사람들끼리 모여서 어색하게 인사하는 걸 보고 있으니 신기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수한이 다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런 자극적인 장면들이 연출된 건가?'

애초에 개인으로 나온 실력자들을 팀으로 묶어서 경쟁하게 하니 서로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한 사람이 붙으면 한 사람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좋을 수 있을까?

이재성 PD는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사람이었다.

수한은 고주혁이 있는 팀을 보았다. 하나같이 고주혁을 경계했다. 첫 오디션 때의 고주혁을 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수한은 유난히 그 팀으로 초점을 맞추는 카메라를 보며 고주혁이 잘 해내길 바랐다.

< 5. SSS급 슈퍼스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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