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올라가는 길 >
"나는 최명훈한테 걸지."
"난 김수한."
"아무리 그래도 공중파랑 케이블인데."
수한은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에 들려온 목소리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성민은 성공적이게 고주혁을 수한의 품에 들이게 했다. 일반 사람들이 볼 때는 저게 뭐가 의미가 있나 싶겠지만, 업계 종사자이다 보니 프로그램 하나, 하나가 소중했다.
"그래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수한이 기분 좋게 문을 열며 그 말을 하고, 들어가자 왔냐고 반갑게 인사해주는 동료 매니저들이 보였다. 어차피 이런 일로 수한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네가 케이블 시청률을 몰라서 그래. 0%대인 프로그램도 있어. 시청률에도 밑바닥이 있다는 걸 케이블이 알려줬지."
"그렇습니까?"
물론 그건 수한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프로그램도 프로그램 나름이었다. 현재는 공중파가 강세라고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케이블이 구분 없는 세상이 올 것이다. 수한이 매니저 일을 한창 하던 때가 딱 그런 시기였기에 수한은 웃으면서 어디에 걸었는지 묻게 되었다.
"실망이네요. 제게 건 사람이 실장님밖에 없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게. 왜 안 되는 싸움을 하고 그러냐."
수한은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동료들에 괜찮다며 웃었다. 그리고 구석에 앉아있는 명훈을 보았다. 남일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건지 몰라도 축 처졌던 어깨가 펴졌다. 수한과 눈이 마주쳐도 전혀 기죽지 않은 모습을 보니 이제야 싸울 맛이 난다.
"저는 둘 다 잘 됐으면 합니다."
수한은 들으라고 더 크게 말했다. 젊어서 그렇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동료들을 보며 수한은 자리에 앉았다. 오늘 스케줄은 나쁘지 않았다. 고주혁만 상대하면 되니까.
'SSS급 슈퍼스타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더라.'
처음에는 일반인 참가자들을 모아서 오디션을 보아 뽑았다. 물론 말이 일반인 참가자이지 대부분이 연예인 지망생이었다. 그 이후로는 오디션에서 뽑힌 사람들끼리 경연을 시켜서 심사 위원의 평가를 통해 위로 올라가고, 16강부터는 시청자 투표와 심사가 합쳐져 순위가 결정된다.
'오디션은 어느 정도 합의를 본 사람들이 대부분 올라가고.'
시청자들은 실력대로 올라갈 거라 생각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방송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그나마 시즌1이라서 그 정도가 덜했다. 오디션까지만 조작이고 다음부터는 진짜니까.
'그래서 고주혁 씨에게는 다행인 거지.'
수한은 마음을 단단히 먹기로 했다. 고주혁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어느 노래를 고르느냐에 따라서 시청자들의 마음이 바뀌었다. 고주혁에게 잘 맞는 노래를 선택해서 그의 매력을 보여주면 될 것이다.
"김수한."
수한은 갑작스레 불린 이름에 고개를 들었다. 수한은 던져지는 간식을 받으며 성민을 향해 웃었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부른 걸까?
"이건 좋은 소식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나쁜 소식일 수도 있어."
"무슨 소식인데 그렇게 서론이 깁니까?"
"노래 잘 부르는 참가자가 스타로드에 몰렸다고 한다."
"그렇습니까?"
그건 수한도 생각하지 못한 문제였다. 수한은 그래서 SSS급 슈퍼스타 시즌1의 1등 실력이 별로였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음원으로는 듣기 좋으나, 라이브를 잘하는 친구는 아니었다. 콘서트를 한다길래 우연히 공짜 표를 얻어 보게 되었는데 대단히 실망한 기억만 있다.
'그래서 내가 고주혁을 내보내고 싶어 하는 거지만.'
수한은 자신이 아는 것을 티 내지 않으며 도리어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저보다는 고주혁 씨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죠."
"자신 있다, 이거네?"
왜 결론이 그렇게 튀는지 모르겠다. 수한이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듯이 어깨를 들썩이자 성민이 씩 웃으면서 수한의 어깨를 치고 갔다. 나름대로 힘내라는 표현 같아서 수한은 피식 웃었다. 하여튼 간에 정이 많은 사람이다.
'제게 건 걸 후회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수한은 시간이 다 되자 연습실로 내려갔다. 연습실 안에는 새벽부터 연습한 고주혁이 땀을 흘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고주혁 씨. 목은 풀고 연습하는 겁니까?"
"네! 당연하죠. 매니저님!"
수한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다가가도 고주혁은 이미 온몸에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수한이 SSS급 슈퍼스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졌다.
"역시 저는 빠르게 올라가는 게 좋습니다."
수한이 지훈에게 듣고 싶었던 대답이 사실은 이거였다. 그러나 그 대답은 결국 고주혁에게서 나오게 되었다.
"오늘부터 저와 고주혁 씨는 다양한 장르를 도전할 겁니다."
"네. 어느 장르가 과제로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죠?"
"맞습니다."
수한의 설명만 듣고도 고주혁은 금세 프로그램 특성을 파악하였다. 최대한 PD가 좋아할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 처음에는 이 방송도 공중파라는 경쟁 상대가 있으므로 긴가민가해 하며 누굴 초점으로 맞춰야 할지 고민하게 되어있다. 두 사람은 그 긴가민가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가기로 했다.
"노래는 대부분 편곡 혹은 작곡으로 갈 겁니다."
"전문가 손을 거치는 거겠죠?"
작곡에는 자신이 없기에 고주혁의 불안정한 시선이 보였다. 그러나 수한은 걱정할 게 없었다. 오히려 이 기회가 그 사람의 이름을 알릴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이미 프로그램 측에 문의해서 긍정적인 결과를 받았으니 수한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작곡가 에이치가 함께 해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작곡가 에이치요?"
처음 듣는 이름이기에 고주혁의 불안감이 커지자 수한은 얼마 전에 메일로 보내진 노래를 틀었다. 고주혁을 보자마자 떠오른 노래라고 했다. 파괴적이면서도 거친 음악 가운데 부드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소원이었다. 가창력의 한계는 느꼈지만, 그 노래가 어떤 성격인지는 제대로 전달되었다.
고주혁은 처음 듣자마자 넋을 놓고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끝까지 자극적이었다. 끝날 때쯤 주먹에 힘을 꽉 쥐었다. 누가 들어도 이건 고주혁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허락은 했지만, 막상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보라는 수한의 과제를 받으니 소원이 불안해하였다. 수시로 통화를 하기는 하지만, 그 불안함을 전화로 달래기에는 부족해서 수한이 직접 소원의 집 근처까지 갔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노래를 들은 고주혁 씨도 감탄했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소원이 상상도 못 할 만큼 고주혁은 꼭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다른 이름으로 먼저 알려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네. 근데 그러면 그 사람은······."
"정 그러면 한소원 씨가 아닌 저를 믿으시죠."
수한의 자신 있어 하는 목소리에 소원의 얼굴에서 불안감이 사라졌다. 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기획사에서는 따로 뭐라 하는 건 없습니까?"
"이미 가온이랑 함께 할 거라는 소문이 돌아서 그런지 따로 연락 온 건 없었어요."
이대로 쭉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물론 그쪽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면 가온에서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 저는 그분을 생각하면서 곡을 여러 개 준비해두면 될까요?"
작곡하는 게 상당히 재미있는지 소원의 눈이 반짝였다. 미리 준비해두면 좋기는 했다. 나중에 고주혁이 제대로 가수 활용할 때 쓰일 수도 있는 노래니까. 수한은 예전보다 살이 차오른 소원을 보며 소원의 정신이 안정되어가고 있어 다행이라 여겼다.
"네. 그러면 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가는 게 좋겠습니다."
수한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소원이 멈칫하는 게 보였다. 수한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싶어서 그대로 섰다. 그러다가 대뜸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소원 때문에 당황했다.
"매니저님. 감사해요."
"아니요. 저는 별거 한 게 없는데요."
진심이었다. 수한이 한 거라고는 소원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한 것뿐이었다. 물론 그것도 할 예정이지 아직 마련한 것도 아니었다.
"아니에요. 저한테 여러 가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수한은 다시 한 번 인사하는 소원에게 아니라면서 달랬다. 수한은 새삼 소원이 소속사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아서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감사하다는 인사는 나중에 받겠습니다. 한소원 씨가 탑스타에 오른 후예요."
수한의 절대적인 확신에 소원은 놀란 얼굴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고주혁처럼 한소원은 그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런 가능성을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
"고주혁이라······."
남일은 명훈이 이지훈을 데려갔으니 고주혁을 내주자고 했던 성민의 말을 듣고 웃음이 나왔다. 딱 봐도 성민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었다. 수한이 제안했고, 성민이 받아준 꼴이었다.
남일은 스타로드의 승리를 확신한 상태였다. 제작비부터 시작해서 나오는 출연자들의 수준이 케이블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데도 고주혁을 굳이 거기로 내보내겠다는 거지?'
남일은 수한을 전적으로 믿는 성민이 이해가 안 갔다. 남일이 보기에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물론 그 혜택을 가온 엔터테인먼트가 받고 있지만, 성민이 너무 수한을 믿고 있어서 그에 대한 거부감도 컸다.
"대표님. 이번에 김수한이 옳으면 인정하기예요?"
매니저들끼리 하는 내기에서도 수한에게 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일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자신이 없었으면 누군가한테 사기당해서 쫄딱 망했을 사람이 바로 성민이었다. 하여튼 간에 사람을 너무 믿어서 탈이다.
'오늘이 오디션 날이었나?'
공중파에서 직접 경쟁작을 밟아주기로 마음먹은 건지 오디션도 같은 날을 잡았다. 먼저 오디션을 잡은 케이블 입장에서는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세계가 원래 돈 앞에서 냉혹한 법이니까.'
이미 방송사 측과 말을 맞춰두었기 때문에 오디션은 크게 걱정할 게 없었다. 물론 케이블 측과도 말은 해두기는 했으나, 어차피 큰 기대가 없어서 떨어뜨린다고 해도 크게 의 상할 일이 없었다.
[대표님! 잘하고 오겠습니다!]
남일은 갑자기 온 메시지에 헛웃음을 흘렸다. 명훈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대표에게 대뜸 이런 걸 보내는 거 보면 명훈도 수한만큼이나 간이 큰 놈이었다. 그러나 수한과 다르게 명훈은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명훈은 젊을 때의 그를 자꾸만 떠올리게 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으니 믿어봐야지.'
지훈의 실력이야 남일도 확인했기 때문에 명훈이 옆에서 잘 돌봐주기만 해도 되었다. 정말 숟가락을 들고 입에 물려주는 수준이라서 남일은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수한이 계속해서 다른 프로그램을 미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 4. 올라가는 길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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