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38화 (38/186)

< 4. 올라가는 길 >

무려 60%나 상승하였다. 지난번에 봤을 때만 해도 변하지 않았던 능력치가 변한 걸 보면 고주혁의 내면에 있던 생각이 많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었다. 수한은 새삼 사람의 변화 하나, 하나가 그 사람의 능력치를 바꾼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면 둘이서 이야기하고 와요."

성민은 눈치 있게 먼저 사무실로 갔다. 수한은 진지하게 할 말이 있어 보이는 고주혁의 모습에 조용히 이야기 나눌 공간을 찾았다.

"들어오세요."

고주혁은 담담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확실히 고주혁은 지훈과 달랐다. 수한을 보는 눈빛부터가 당당함 그 자체여서 수한은 왜 고주혁이 탑스타가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수한은 최대한 웃으면서 부드럽게 분위기를 풀었다. 그러나 수한의 노력과 다르게 고주혁은 묘하게 경직되었다. 아닌 척하면서도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아직 데뷔도 못 한 연습생 신분이라는 게 이런 데서 느껴졌다.

"저를 키워주십시오."

대뜸 서론을 건너뛰고 본론으로 들어갈 줄 몰랐기에 수한은 살짝 당황했다. 아니, 그보다도 이런 말을 할 줄 몰라서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침착하게 말문을 열었다.

"고주혁 씨를 데려온 건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그래서 김수한 매니저님과의 시작도 좋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기회를 포기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한은 지난번에 위로 올라갈 거라고 확신했던 자신의 말이 고주혁의 마음을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가 고주혁 씨의 기회입니까?"

"네. 제 가치를 가장 잘 알아봐 주시는 분이니까요."

고주혁의 열렬한 눈빛에 수한은 이런 패기 있는 모습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인지 얌전한 사람보다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사람에게 더 끌려 하는 것 같다.

'내게 이런 성향이 있었나?'

수한은 요즘 얌전하게 지내는 명훈을 떠올렸다. 엄밀히 따지자면 고주혁은 명훈이 데려온 사람이기에 고개가 저어졌다. 잘못했다가는 이상하게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이 분야에 상도덕이 어디 있느냐마는······.'

그렇다고 해도 수한은 명훈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제가 당장 대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작곡을 할 줄 몰라서입니까?"

"아닙니다. 가수라고 해서 다 작곡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 방식대로 표현해서 성공한 가수가 더 많으니까요. 잠시 저에게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당하게 고주혁을 데려와도 뭐라 할 수 없는 명분이 필요했다. 수한의 여유 있는 모습에 고주혁도 흥분했던 것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도 당당한 눈빛은 여전해서 수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전에 고주혁 씨.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혹시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

남일은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를 살펴보았다. 가온 엔터테인먼트는 중소 기획사로서 방송계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는 했지만, 대표 연예인을 뽑으라고 하면 모호한 점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인지도가 있는 배우가 있긴 해도 선택한 작품들이 시청률이 높지 않아서 화제성이 오히려 떨어졌다. 그래서 생각이 많아지던 찰나에 떠오르는 스타로 시은과 예진이 올라왔다.

"이 둘의 계약 기간이 어느 정도지?"

"1년 정도 남았죠?"

성민이 커피를 사 들고 와서 앞에서 쭉 마셨다. 남일은 법인카드로 긁은 커피를 보며 어이없어서 웃음부터 나왔다.

"둘이 비슷한 시기에 계약했었나?"

"신인 때 했으니까요. 그래도 용케 오래 있었네요."

특히나 예진의 경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는데도 오래 있었다. 달보드레 이전만 해도 연기력의 한계가 있어서 떠난다고 하면 놔줄 생각이었는데 요즘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둘 다 김수한을 만나면서 화제성이 좋아졌다지?"

"네."

수한의 이야기만 나오면 싱글벙글해지는 성민을 남일은 여전히 못마땅하게 봤다.

"운이 좋았던 거지."

"단순히 운만 좋았다면 시은이한테 예능 프로그램을 추천하지는 않았겠죠."

남일이 인상을 찌푸려도 성민은 웃기만 했다. 수한에게 약속한 대로 성민은 평소 이런 식으로 수한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정작 수한은 알아주지 못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 선택은 내가 틀렸다고 보지 않는데?"

성민이 여러 번이나 설득했지만, 설득되지 않았던 'SSS급 슈퍼스타' 기획안이 남일의 손에 쥐어졌다. 그에 관해서는 수한도 깨끗하게 포기했기에 성민은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봤자 신입인데 뭘 그렇게 날을 세웁니까? 대표님답지 않게."

"그러게. 고작 신입인데 말이야.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네. 그러고 보니 다른 신입이 있지?"

지난번 일로 남일은 명훈을 완전히 버린 것처럼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버려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성민은 남일의 손에 있는 또 다른 서류에 설마 하며 봤다.

"이지훈을 최명훈에게 맡겨보지. 이러면 정말 운이었는지 확인해볼 수 있겠지."

성민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말을 또 어떻게 수한에게 전달한단 말인가? 물론 돈이 나가는 건 법인카드겠지만, 성민은 수한의 원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

수한은 '댕댕이를 부탁해'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은 것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여러 연예인이 나오지만, 그중에서도 인기가 많은 건 시은과 예진이었다. 수한은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오는 건 슬펐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좋은 반응들에 조금은 힘이 났다. 게다가 오늘은 '댕댕이를 부탁해'를 하는 날이기도 해서 수한은 프로그램을 다 보고 일을 하기로 했다.

"실시간으로 모니터하려고?"

"네. 그러려고 합니다."

그와 함께 앞에 놓인 간식에 수한은 고개를 돌렸다. 성민이었다. 요즘 따라 잘해주는 성민을 보며 수한은 남다른 낌새를 느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말하지 못하는 그런 낌새 말이다.

"저한테 뭐 하고 싶은 말씀 있습니까?"

"역시 눈치가 빠르네."

수한의 눈치가 빠르기보다는 성민이 안절부절못하며 수한의 곁을 맴돌아서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을 확인해보니 딱 '댕댕이를 부탁해' 시작할 시간이라서 수한은 실시간 방송을 켰다.

"일단 방송부터 보고 이야기하시죠."

"그래. 좋아."

오늘도 내용은 훈훈하면서도 두 사람의 케미가 돋보여서 재미있었다. 수한은 오늘도 좋은 반응이 나올 것 같아서 기분 좋게 웃다가 뜬금없는 화면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순돌이를 앞에 두고 두 사람 중에 누구에게 오나 확인해볼까요?"

수한은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물론 이태욱 PD를 통해 방송에 나올 거라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워어. 잘생겼다. 김수한이."

성민의 말대로 수한의 얼굴은 화면발을 잘 받았다. 매니저 중에서도 잘생긴 얼굴로 유명하긴 했지만, 막상 카메라 안에 담기니 평소보다 더 잘생기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수한조차 괜찮게 보여서 부끄러움과 동시에 화면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김수한이. 연예인할 거면 가온이랑 계약해라."

"연예인 할 거였으면 애초부터 매니저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연예인 매니저를 하다가 이런 식으로 방송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얻어 연예인이 되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수한은 이미 대학로 생활을 접으면서 연예인의 꿈은 포기했다. 게다가 지금도 보이는 절망적인 능력치가 수한에게 연예인 같은 건 꿈도 꾸지 말라고 하였다.

[김수한- 스타성: E, 연기력: B, 가창력: C, 춤: B, 인지도: F, 기타: ???, 성장 가능성: 0%]

다른 사람의 능력치가 바뀌면서 수한의 능력치도 바뀔 거라 기대도 했지만, 정말 눈곱만치도 바뀌지 않았다.

"그래도 네가 배우 했으면 잘되는 작품만 쏙쏙 골라서 할 거 아니야."

그건 수한도 안타까워하는 사안이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의 능력치를 볼 수 있는 걸 보면 배우를 하라고 주어진 건 아닌 것 같았다. 수한은 프로그램이 끝난 걸 확인한 뒤 실시간 반응을 확인하였다.

"어?"

[성예진]

[박시은]

[성예진 매니저]

[박시은 매니저]

수한은 잘못 본 건가 하고 눈을 깜빡였으나, 실시간 검색어에 수한을 뜻하는 단어가 여전히 함께 올라왔다. 아직 수한에게 해야 할 말을 전하지 못했기에 성민도 그 광경을 함께 지켜보고는 수한의 등을 쳤다.

"오! 김수한이! 검색어에 올랐는데?"

"그냥 나와서 오른 건가 봅니다."

"과연 그럴까?"

성민이 마우스를 움직여 검색어를 누르자 잘생겼다는 반응이 나왔다. 수한이 봐도 잘생기게 나오긴 했으나, 실시간으로 이런 반응을 보여주니 어느새 수한의 귀가 빨개졌다.

"이러다가 밖에 나가면 너 알아보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요."

능력치만 봐도 그 정도는 알 수 있게 수한은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해보았다.

[김수한- 스타성: E, 연기력: B, 가창력: C, 춤: B, 인지도: F, 기타: ???, 성장 가능성: 33%]

수한은 자신이 뭔가를 잘못 봤나 하고 눈을 비벼보았지만, 수한의 능력치가 변하였다. 수한은 황당함에 말문이 막혔다.

'뭐야. 연기자로서는 희망이 없고 다른 쪽으로 돌파하면 될 거라는 거야?'

본래라면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수한이 보기에는 희망 고문이었다. 숫자도 고주혁처럼 60%가 상승한 것도 아니고, 33%라는 애매한 숫자로 올라서 더 황당했다.

"왜 이런 식으로 검색어에 오르는 거 싫어?"

"싫기는요. 어차피 하루 이러다가 말 건데요."

수한은 찰나에 순간 배우라는 꿈이 떠올랐지만, 머릿속에서 그 욕심을 지워냈다. 당장 수한이 하고 싶은 배우가 아니라 매니저였다. 수한은 이러한 능력을 얻은 것만으로도 큰 복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저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이시는 겁니까?"

"그게 말이야. 이지훈 말이야. 스타로드에 나가는 거."

"네. 그거 괜찮다고 저번에 말씀드렸는데요."

"대표님께서 최명훈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고 하시네."

역시나 성민은 위에서 까라고 하면 까야 하는 위치였다. 수한은 중간에서 어떻게 하지 못하는 성민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래서 중간 관리직이 힘들었다.

'이래서 공을 온전히 내가 먹으려면 내 회사를 따로 차려야 해.'

"그래서 저한테 그러신 거군요."

"미안하다. 이게 운이 아니고, 네 능력이 좋다는 걸 증명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

"저한테 미안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미안해야 할 사람은 이지훈 씨니까요."

명훈이 잘 해낸다면 모를까 이미 수한은 스타로드의 미래를 아는 상태였다. 물론 스타로드에 나가겠다는 것도 지훈의 선택이지만,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였다. 안될 판에 내보내게 되었으니까.

"저 그럼 대표님께 한 가지 제안해도 되겠습니까?"

"제안?"

"네. 대표님께 직접 제 능력을 증명하겠습니다. 고주혁 씨를 통해서요."

< 4. 올라가는 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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