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36화 (36/186)

< 4. 올라가는 길 >

[달보드레, 최종화 34% 달성, 올해 주중 드라마 최고 시청률!]

달보드레에서 남은 건 시청률과 더불어 예진의 연기자로서의 가능성 재평가였다. 체력적으로 지친 모습도 있기에 간혹 좋지 않은 연기도 나왔지만, 평균적으로는 좋은 연기를 해냈기에 대중의 평가도 좋아졌다. 더불어 올해 연기 대상 가능성 이야기가 나와서 예진의 입이 귀에 걸렸다. 물론 가능성은 극히 낮은 이야기지만, 말이 나온 것만으로도 그녀의 행복도는 올라갔다.

"다행입니다.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그래. 내가 그만큼 고생했지."

예진은 거만하게 턱을 올리며 말했다. 예진과 너무 잘 어울리는 거만함이라서 수한은 옅은 미소만 지었다. 그때 옆에서 귀에 익은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는 여전하시네요."

수한은 옆에서 바로 치고 들어오는 시은을 보며 마음이 다 조마조마해졌다. 어쩌다 보니 함께 인터뷰하게 되어서 가온 엔터테인먼트 내에 있는 세미나실에서 모이게 되었다. 아직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로운 분위기가 흘렀다.

"그럼 나도 여전하고, 너도 여전하지."

예진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눈을 반짝였다. 수한은 처음에는 저 말이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었다가 묘하게 굳은 시은의 얼굴을 보고 깨달았다.

'저 사람이 진짜······.'

유성준과의 연애를 간접적으로 돌려서 표현한 거였다. 수한은 아무리 생각해도 예진을 알 수가 없었다. 수한은 옆에서 팔을 붙잡는 재원에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이러면 나중에는 어떻게 할지 걱정되었다.

"그러게요. 언니도 언니한테 맞는 사람을 얼른 찾아야 할 텐데. 이번 연기 보니까 많이 좋아지시긴 했는데 보완할 곳이 많더라고요. 특히 멜로 부문에서."

성민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시은은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수한은 이게 바로 배우 간의 기 싸움이라는 걸 깨닫고 두 사람을 붙인 성민을 원망하였다.

"그래. 시답지 않은 남자 만나지 말고 얼른 괜찮은 사람을 만나야 할 텐데."

수한은 예진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한 것을 보고 의아해하다가 옆에서 중얼거리는 재원의 말을 듣고 웃음이 터질 뻔했다.

"예진이 말발이 많이 늘었다."

예전에는 이 정도도 받아치지 못했단 말인가? 두 배우가 풍기는 살벌한 분위기에 수한이 분위기를 정리하려고 할 때쯤 세미나실 문이 열렸다. 동현이 인터뷰 요청한 기자를 데리고 왔다. 기자가 들어오기가 무섭게 두 배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수한은 순식간에 바뀐 따뜻한 분위기에 소름이 돋았다. 서로 친한 척하는 연기가 특히나 기가 막혀서 수한은 두 사람이 배우라는 걸 실감하였다. 인터뷰는 처음 시작했던 분위기 그대로 갔다.

"두 분이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면서요?"

"네. 작품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예진 언니가 참여할 거라고 해서 용기를 냈어요."

"제가 강아지를 많이 좋아하거든요. 혼자로는 자신이 없어서 시은이한테 도움을 청했죠."

수한도 여러 배우를 키워낸 사람이지만, 저 두 사람을 보면 세상에 별 배우가 다 있다 싶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로 절친한 사이로 오해할 정도다.

"마지막으로 팬분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훈훈한 분위기로 인터뷰를 마쳤다. 특히나 마지막이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인터뷰에 임했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기사 잘 부탁해요."

"그럼요. 두 분이 출연하실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도 넣어드릴게요."

기자가 먼저 떠나기가 무섭게 다정하게 서로를 보던 눈빛이 살벌하게 바뀌었다. 저 모습만 본다면 이중인격이 따로 없었다.

"수한아. 오늘은 네가 시은이 좀 데려다줘라."

"네. 알겠습니다."

어째서인지 예진이 노려보는 것 같아서 수한이 예진을 향해 웃어주니 흥 소리를 내며 예진이 먼저 나가버렸다. 수한이 어리둥절해 하며 재원을 보자 재원은 이미 예진을 따라가기에 바빴다.

"오빠. 가요."

"네."

집에 데려다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서 오늘은 단둘이서 차에 올라타게 되었다. 수한의 안정적인 운전 솜씨에 시은이 먼저 말을 걸었다.

"오빠만큼 운전 잘하는 사람은 못 본 것 같아요."

"다른 선배님들도 운전은 잘하시던데요."

"그렇긴 한데 오빠만큼은 못하는 것 같아요."

수한의 운전 경력이 10년 이상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혼자 운전한 것도 아니고, 연예인들을 싣고 다닌 게 10년 이상이다.

"예진 언니가 오빠를 많이 좋아하네요."

"예진 씨가요?"

"네. 오빠는 제 매니저였는데 어째 언니 매니저인 것 같아요."

정작 수한은 소원의 매니저로 들어갈 사람이라 수한은 어색하게 웃었다.

"근데 예진 언니 귀엽지 않아요?"

"네?"

"하나 건드리면 파르르 떨면서 반응하는 게 재미있잖아요. 오늘은 저한테 안 지려고 애쓰던데 귀여워서 혼났네."

수한은 소원도 그렇고, 시은까지 도통 취향을 모르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다. 그러고 보면 예진에 좋은 댓글을 다는 사람 중에 성별이 여자인 사람이 꽤 많았다. 수한은 성민의 천적 이야기가 어쩌면 이런 방향이라면 맞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은 씨는 그럼 예진 씨와 예능 하는 거 괜찮습니까?"

"네. 동물 두 마리를 키우는 기분으로 임하려고요. 고양이와 강아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예능 촬영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은은 들떠있었다. 수한은 고양이와 예진의 상관관계를 떠올리고는 무언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

"우리가 돌볼 강아지가 얘예요?"

우리 안에 갇혀서 불쌍하게 사람들을 올려다보는 강아지가 보였다. 한눈에 봐도 아파 보여서 오래 살 것 같지 않았다. 수한은 자신 못지않게 강아지를 안타까워하는 두 사람을 보았다. 시은과 예진이었다.

방송에서는 처음 보는 것처럼 연기해야 하지만, 보통은 촬영 전에 출연자들끼리 먼저 인사하며 합을 맞춰보았다. 보는 사람이 많은지라 예진은 시은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친한 척하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수한과 눈이 마주치자 눈에 힘을 주는데 촬영하기 싫다는 예진의 투정이 보여서 수한은 잘하고 있다며 엄지를 척 들었다.

예진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피식 웃다가 강아지와 눈이 마주치자 안절부절못했다.

'둘 다 강아지를 좋아하긴 하는구나.'

두 사람은 강아지를 조금 더 보다가 촬영 시작하겠다는 스태프의 말에 오프닝 장소로 이동하였다.

"저 강아지 상태는 괜찮은 겁니까?"

"물론이죠. 겉모습만 저렇지 어느 정도 치료가 된 상태입니다. 저건 오기 전에 놀다 와서 저런 거예요."

그 말대로 상처 때문에 지저분해 보일 뿐 강아지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수한은 제게 열심히 꼬리를 치는 강아지를 보며 방긋 웃었다. 수한은 촬영을 위해 옮겨지는 강아지를 따라갔다.

"여기는 잠깐 강아지 사연 들려줄 거예요."

잠깐 시간이 주어지고 얼마 안 가 카메라 앞에 강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한은 강아지가 두 사람 앞으로 신나게 달려가는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과 강아지의 조합은 굉장히 잘 어울렸다.

다만 한 가지 의외였던 건 예진이었다.

'분명 실장님이 보는 것만 좋아한다고 했는데."

강아지가 다가오면 어쩔 줄 몰라하며 좋아하는 게 평소 까칠한 이미지와 매우 달랐다. 그에 비해서 시은은 강아지가 끙끙 소리를 내며 아픈 척을 해도 인정사정이 없었다.

"언니. 아파서 이런 거 아니라니까."

"그럼 안 아픈데 왜 이런 소리를 내?"

서로 친하다는 컨셉으로 찍었기에 자연스레 서로 말을 놓았다. 물론 예진은 시은이 말 놓는 걸 탐탁지 않아 했다.

강아지 한 마리를 목욕하는데도 두 사람의 상반된 성격이 재미있어서 촬영하던 PD의 표정이 유난히 밝았다. 특히나 신이 난 건 이태욱 PD였다. 예진과 시은의 합은 정말로 잘 맞았다.

수한은 어느새 함께 웃는 두 사람을 보다가 감동한 얼굴의 재원을 발견했다. 하여튼 간에 이 회사 사람은 하나같이 순했다. 아니다. 수한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 쓰게 웃었다. 남일과 명훈이었다.

"김수한!"

수한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서둘러 수건을 든 채로 달려갔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목욕한 건 강아지인데 옷이 쫄딱 젖은 건 두 사람이었다. 안에 겹겹이 입은 시은과 다르게 예진은 얇은 셔츠 하나만 입어서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들게 했다. 그래서 수한은 가지고 온 수건을 예진에게 건네주었다.

"얘 먼저 줘도 되는데?"

말은 그렇게 해도 기분 좋은 게 다 보였다. 예진도 옆에 있는 거울을 통해 제 모습을 알았는지 건네받은 수건을 어깨에 둘렀다.

"오빠. 저는요?"

"시은아. 여기!"

옆에서 섭섭한 표정을 짓는 시은에게 동현이 수건을 건네주면서 수한은 한숨 돌렸다.

"그럼 옷 갈아입고 다시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옷을 여러 벌 준비하였다. 수한은 추워하는 두 사람에 재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 잠깐만 바깥에 다녀오겠습니다."

"왜?"

"혹시 몰라서 감기약이라도 사 오려고요."

"어? 어. 그래. 건강 관리 잘해야지."

수한은 얼른 다녀오겠다는 말을 하며 바깥으로 나왔다. 이왕 약국에 가는 김에 평소에 쓸만한 약을 사둬야겠다. 수한은 빠르게 걸어가다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에 걸음을 멈췄다. 남일이었다. 수한이 급하게 몸을 돌리며 얼굴을 가리자 대화 소리가 들렸다.

"그럼요. PD님이 하는 건데 당연히 내보내야죠. 조만간 자리 마련하겠습니다. 그때 자세히 이야기하시죠."

무슨 이야기 하나 했더니 별다른 내용은 아니었다. 수한은 중소 기획사 대표도 직접 발로 뛰는구나 싶어 신기해하다가 문득 방송국 내에 걸린 포스터 하나를 보게 되었다.

[스타로드: 당신도 탑스타가 될 수 있다]

'이건 SSS급 슈퍼스타와 같이 있던 프로그램이잖아?'

공중파 방송인 건 알았어도 이 방송국에서 하는 줄은 몰랐다. 망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에 주의 깊게 보지 않은 탓이었다. 그런데 왜 이 타이밍에 이 포스터가 보인 걸까? 늘 안 좋은 예감은 잘 들어맞았다. 수한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일이 방송국에 나타난 게 마음에 걸렸다.

'아무래도 무언가 조치를 해야겠는데.'

물론 행동을 하기 전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 수한은 곧바로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훈 씨. 저 김수한입니다. 시간 되시면 오늘 저녁에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제가 집 근처로 가겠습니다."

수한은 지훈의 허락을 받은 뒤 전화를 끊고 우선 걸어갔다. 그러면서도 지훈에게 먼저 사과할 준비를 했다. 지훈의 허락을 받고 한다고 해도 훗날 지훈에게 큰 원망을 들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 4. 올라가는 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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