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27화 (27/186)

< 3. 서열은 명확히 >

"무슨 일이지?"

갑작스럽게 나타난 수한 때문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흩어졌다. 부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던 고주혁도 밖이 소란스러워 보이자 노래 부르던 것을 관두었다. 명훈은 방해를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얼마 안 가 미소를 지었다. 수한이 웃으면서 먼저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실장님께 고주혁 씨를 테스트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요."

"그래서?"

"궁금해서 왔습니다."

당당한 수한의 태도에 남일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해도 되긴 했다. 제 새끼 노래를 다른 사람에게 통째로 넘기게 생겼는데 오히려 흥분 안 하는 게 이상했다. 물론 그래서 남일은 수한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아래로 낮추었다.

'그래도 배짱 하나는 봐줄 만 하구만.'

얼마 안 가 거친 호흡을 뱉으며 들어오는 성민을 향해 남일은 대놓고 혀를 찼다. 부하 관리도 제대로 못 하다니 한심스러웠다. 남일은 관대함을 발휘해 이대로 넘어가 줄까 했지만, 그러기에는 수한이 너무 시건방졌다.

"이 실장이 너무 사람을 자유롭게 풀어주나 보네요. 자유로운 건 좋으나, 그에 대한 책임까지 가르쳤으면 좋았을 텐데."

"죄송합니다. 대표님."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들어봅시다. 김수한 씨. 이번만 봐주는 겁니다."

"네. 대표님."

"고주혁 씨. 수고스럽겠지만, 다시 합시다."

부스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고주혁은 이 기회가 어떤 기회인지 잘 알았기에 자신 있게 손을 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눈치를 보고 있던 명훈이 신호를 주자 '가을이 너라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위에 고주혁의 목소리가 더해지니 말도 안 되는 결과물이 나왔다.

[가을이 너라면- 대중성: S, 음악성: S, 최고 순위: 1, 성장 가능성: 50%]

수한은 이전보다 대중성이 올라갔다. 노래의 주인이 고주혁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처럼 노래가 귀에 스며드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수한은 자신 있어 하는 명훈과 그로 인해 너그러움을 가지게 된 남일을 지켜보다가 노래가 끝나자마자 박수를 쳤다.

"이래서 고주혁 씨에게 노래를 주고자 한 거군요."

뜻밖에 반응을 하는 수한 때문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게 수한을 봤다.

"작곡가인 지훈 씨가 알면 크게 기뻐하겠네요. 고주혁 씨의 노래로 자기 음악이 널리 알려지는 거니까요."

무언가 초점이 어긋난 듯한 수한의 말에 옆에서 안절부절못했던 성민까지 의문이 생겼다. 수한에게 자신이 말을 잘못 전했나 싶어서였다.

"저기 김수한?"

"자네 뭔가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이 노래의 작곡가는 이지훈이 아니라 고주혁 저 친구네."

"네? 어떻게요? 이 노래를 작곡한 건 이지훈 씨인데요?"

수한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반응을 하자 당혹스러운 건 남일이었다. 그래서 쳐들어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남일까지 말을 못 잇자 명훈이 나섰다.

"대표님께서는 고주혁 씨를 싱어송라이터로 기획하고자 하는 거야."

"그러면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아니, 그게 그러니까······."

"이게 고주혁 씨가 작곡한 곡이 되는 거라고."

보다 못한 성민이 결국 나서버렸다. 그 바람에 녹음실 안에서 적막이 흘렀다. 수한만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눈동자를 굴렸다.

"하지만 이 노래를 작곡한 건 이지훈 씨잖아요?"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싱어송라이터를 키우는 거니······."

"어······ 그럼 이 노래가 아니라 다른 곡으로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다른 곡이라니 왜죠?"

"그게······."

수한이 길게 말을 끌며 성민에게 눈짓을 보내자 성민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수한은 웃음을 터트리려는 걸 겨우 참으며 말했다.

"제가 이지훈 씨한테 권해서 저작권 등록을 하게 했거든요. 물론 이제까지 만든 모든 곡을요."

**

수한은 상위 셔츠를 펄렁이며 등 뒤로 난 땀을 식히려고 노력했다. 남일의 앞에서는 눈치 없는 사람처럼 열심히 연기했지만, 사실은 조마조마했다. 남일은 사람 좋은 척을 유지하고 싶었는지 잘했다고 수한을 칭찬했다. 물론 말로만. 눈빛은 굉장히 싸늘해서 수한은 어쩌면 이 회사에서 오래 일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김수한이!"

"뭡니까? 말로만 제 방패 해주신다던 이 실장님 아닙니까?"

"나도 대표님 앞에서는 일개 사원인데 어떻게 하나?"

성민은 장난스럽게 말하면서도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수한은 한숨을 내쉬며 계속해서 땀을 식혔다.

"근데 저작권은 어떻게 생각해냈어?"

"그냥 검색하다가 우연히 걸렸습니다. 근데 이러면 고주혁 씨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고주혁 씨는 작곡 능력이 전혀 없대요?"

"열심히 배우겠다고는 하는데 그게 언제쯤 성과를 볼지는 모르겠네. 계약은 할지도 모르겠는데 네 덕분에 미래는 알 수가 없어졌지."

성민의 말만 들어본다면 고주혁은 현재 작곡의 '작'자도 모르는 상태였다. 배우면 몰라도 가수는 직접 곡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대중에게 크게 평가가 되었다.

'그래서 고주혁의 스타성이 떨어진 건가?'

그래도 스타성이 A인 걸 보면 고주혁은 타고난 연예인이었다. 수한은 그 잠재력에 감탄하다가 문득 그럴듯한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본인이 작곡했다고 했던 노래들이 어쩌면 고주혁이 만든 게 아닐 수도 있겠는데?'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수한은 그래도 설마 하며 고개를 파르르 저었다. 그러나 감이 말해주었다. 어쩌면 고주혁은 타고난 도둑놈일지도 모른다고. 수한은 똑같은 도둑놈을 알아본 다른 도둑놈을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성민의 시선을 느끼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가요. 오늘 뭘 한 것도 없는데 무척 피곤하네요."

"그래. 조만간 시간 좀 내라. 내가 술 하나 사마."

"안주는 무조건 소고기예요."

"뭐? 안 돼. 삼겹살로 합의 보자."

성민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가 자리에 앉자 기가 죽은 명훈이 보였다. 본인이 제안한 게 물거품이 되어서 그런지 실망감이 대단해 보였다. 명훈은 수한과 눈이 마주치자 양심은 찔리는지 서둘러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이로써 공식적으로도 명훈과 사이가 확 갈라졌다.

**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새 차 냄새 실컷 맡아라."

수한은 새로 나온 차에 올라타기 전에 잠깐 차를 환기했다. 새 차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이 많아서 한 행동이었지만, 막상 운전하니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수한은 그래도 승차감이 좋아 만족스러웠다. 수한은 오늘 있을 지훈의 스케줄을 확인한 후 들뜬 마음을 열심히 가라앉게 했다.

'그러고 나서 따로 무슨 조치라도 할 줄 알았는데······.'

남일은 수한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훈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로 했는지 갑작스러운 지훈의 일정이 많아졌다. 수한이 공원 앞에 차를 세우자 기타를 만지고 있던 지훈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새 차를 반가워했다.

"와. 새 차 좋네요."

수한의 염려대로 지훈은 차가 좋다고 말은 했지만, 냄새 때문에 괴로워했다. 냄새 때문에 일어난 멀미는 지독했다. 안 그래도 하얀 지훈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하면서 수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긴장되네요."

"옆에 청심환 사뒀으니까 드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요."

그러나 수한은 백미러를 통해 이미 지훈이 청심환 위치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한은 새삼 올림픽 홀에서 공연했던 지훈이 신기해지면서 안정적이게 주차를 했다. 지훈이 차에서 내리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지난번에 녹음실에서 봤던 김승택 현장 매니저였다. 수한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자 승택은 고개만 까딱거리더니 지훈을 데리고 스튜디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저분도 참 친해지기 힘든 스타일이네.'

수한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자 지훈은 곧바로 메이크업을 받았다. 능숙하게 메이크업을 받던 예진과 다르게 미간까지 찌푸리며 눈을 감고 있어 신인 티가 제대로 났다. 물론 수한은 예진보다는 지훈 같은 연예인을 키워낸 사람이기에 옆에서 열심히 조언했다. 긴장한 지훈의 귀에 그 말이 들려올 리가 없지만 말이다.

"저 어때요?"

수한은 어깨가 축 처진 상태로 올려다보는 지훈을 향해 멋있다고 연신 칭찬해주었다. 그러나 지훈은 여전히 어깨가 쭉 펴지지 않았다. 그의 시야에 담긴 현장 스태프들이 그에겐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처음 가수가 됐을 때는 이 정도로 많은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아직도 지훈은 지금 이 상황이 꿈처럼 느껴졌다.

"지훈 씨. 너무 긴장되면 저만 보세요."

"네?"

수한이 일부러 웃긴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마주하자 지훈도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렸는지 피식 웃었다.

"그게 뭐예요. 개그에 소질이 없으시네요. 매니저님."

"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웃긴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사람 참 섭섭하게 하시네요. 지훈 씨."

수한이 장난스럽게 지훈의 어깨를 툭 치자 지훈도 몸을 가볍게 풀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촬영 시작하겠다는 말에 수한이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외치자 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카메라 앞에 섰다.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지훈은 조금 전에 긴장한 모습을 지우고, 자신 있게 자세를 취했다. 그 바람에 놀란 건 수한이었다.

'아니, 사람이 저렇게 바뀔 수 있나?'

"전형적인 무대체질이라 그래."

수한은 뜬금없이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지난번에 봤을 때만 해도 존댓말을 쓰던 그가 뜬금없이 반말을 쓰니 안 놀라는 게 이상했다.

"이지훈 씨를 잘 아십니까?"

"초창기 담당 매니저였지."

그러나 가온에서 가수를 밀어주지 않으니 스케줄도 제대로 나지 않아서 승택은 다른 연예인의 매니저가 되었다. 그 당시가 생각났는지 승택은 씁쓸하게 웃었다.

"실장님한테 네 이야기 많이 들었다."

"그랬습니까?"

수한은 성민의 가벼운 입을 떠올리며 그가 괜히 이상한 소리를 했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성민이 사람은 좋은데 그 장난기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한의 우려와 다르게 승택은 무뚝뚝한 얼굴로 툭 한마디 말만 내뱉고 사진 작가에게 갔다.

"잘했다."

수한은 뜬금없는 칭찬에 어리둥절해 하다가 피식 웃었다. 성민에게도 못 받은 칭찬을 승택에게 받게 되었다. 수한은 보이지 않게 연결된 사람들 사이의 선을 떠올리다가 집에 가는 길에 로또나 사기로 했다.

'혹시 모르잖아. 갑자기 로또 1등이라도 당첨될지?'

그렇게 된다면 수한은 당장에라도 이 회사를 때려치우기로 했다. 매니저로서 연예인을 키우는 건 좋지만, 사내 정치 싸움은 싫었다. 수한은 생각만으로도 사람을 질리게 하는 남일과 명훈을 떠올리며 신중하게 로또 번호를 골랐다.

< 3. 서열은 명확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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