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26화 (26/186)

< 3. 서열은 명확히 >

"수한 선배님!"

설마 명훈이 먼저 수한에게 인사할 줄은 몰랐기에 수한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그래요. 김수한 씨. 오랜만이네요."

남일은 반가워하며 수한의 인사를 받아주었지만, 성민에게 들은 게 있어서인지 수한은 그 인사가 가식처럼 느껴졌다. 물론 사회생활의 반이 가식이라고 하지만, 너무 티가 안 나서 소름이 돋았다.

'이러면 사람들이 쉽게 속겠는데······.'

수한은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할 정도로 인성이 좋은 사람도 아니어서 스스로 웃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두 사람이 친한 사이인가 보네요?"

"네.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인연이 있거든요. 지금은 제 선배님이지만요."

수한에게 그새 배운 건지 명훈은 자연스레 자신을 낮추었다. 하여튼 간에 학습 능력은 뛰어났다.

"그런 사이면 일하기 서로 편하겠네요. 게다가 회사에 먼저 들어왔다는 이유로 선배님이라 깍듯하게 대접도 해주니 김수한 씨가 좋은 사람을 친구로 뒀네요."

"네. 얼마나 많이 알려주던지 배울 게 많은 친구라니까요."

"잘 적응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이게 다 대표님 덕분입니다!"

명훈은 허리를 바짝 숙이며 충성을 다한다는 듯이 아부를 했다. 수한은 명훈이 어떤 식으로 남일에게 귀염을 받는지 이해하고는 바짝 긴장하였다. 원래 저런 식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무서운 법이니까.

"최명훈 씨가 말해둔 친구는 제가 관련 부서에 잘 말해둘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예! 감사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명훈을 보니 명훈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일이 잘 풀릴 때 나오는 모습이었다. 수한이 성민에게 눈짓을 주자 성민이 빠르게 남일에게 붙었다.

"대표님. 지난번에 말씀하신 중국 진출 말입니다."

두 사람이 가고 나자 로비에는 수한과 명훈만이 남아있었다. 수한은 조금 전에 대화 내용이 궁금했지만,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어차피 명훈은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이라 굳이 묻지 않아도 알아서 털어놓게 되어있었다.

"사무실 가는 거라면 같이 가시죠."

"그래. 아니, 그럽시다."

오늘따라 유난히 사무실 가는 길이 길게 느껴졌다. 수한은 웬일로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명훈의 모습에 고개를 살짝 돌렸다가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입술을 몇 번이나 열었다가 닫는데 누가 봐도 말하고 싶어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오늘 이지훈 씨 녹음은 잘 마쳤습니까?"

"어? 어."

수한이 그러면 됐다는 식으로 넘어가려 하니 결국 입이 간지러운 걸 참지 못했는지 명훈의 입이 열렸다.

"수한아. 거기서 내가 한 친구를 봤는데 말이야."

"친구요?"

"그래. 스태프 일을 하는 친구였는데 자세히 물어보니 가수 지망생이더라고. 혼자 구석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길래 들어봤는데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해서 말이야."

수한은 명훈이 누굴 말하는지 금세 이해했다. 수한이 만났던 고주혁이었다. 명훈은 흥분이 됐는지 어느새 존댓말은 집어치우고 반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표님께 그 사람에 관해 말한 겁니까?"

"그래. 내가 듣기로는 지훈 씨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 같았거든. 그 이야기를 하니까 대표님께서 흥미를 느끼셨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수한은 전신에 소름이 쫙 돌았다. 수한은 설마 하며 부정했던 생각이 떠오르면서 어느새 정색하고 말았다.

"그래서요?"

"네가 제안한 거에 같이 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씀드렸는데 너 왜 표정이 안 좋냐?"

원래라면 표정 관리를 잘하는 수한이지만, 지금만큼은 관리가 잘되지 않았다. 수한이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사무실 안에 들어가자 혼자 남은 명훈은 승자의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수한에게 한 방 먹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될 리는 없을걸?"

수한은 지체하지 않고 사무실로 돌아온 성민을 붙잡으며 물었다. 성민은 그럴 리가 없다면서 당연히 부정하였다.

"너한테 도움 되라고 한 말인데 오히려 내 말이 신경 쓰이게 한 것 같다. 김수한. 아까 내가 한 말 못 들은 거로 해."

"제가 너무 과하게 생각한 거겠죠?"

"당연하지. 근데 네가 봐도 그 고주혁이라는 친구 괜찮나 봐?"

성민은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흥미로워하는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성민의 확신에 찬 말에 수한은 안심하면서도 가슴 한쪽에서는 여전히 불안함을 해소하지 못했다.

"네가 걱정하는 걸 보니 나도 좀 그러네."

"죄송합니다."

성민의 조언을 얻고자 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걱정을 전해준 것 같아 미안했다. 수한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 사이에 명훈은 어딜 간 건지 자리에 없었다. 수한은 잠시 나는 시간에 소원이 보낸 노래를 다시 들었다.

[꽃잎이 떨어지는 그 아래, 서 있는 너.]

수한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이번에 소원이 작곡한 곡은 봄이 떠오르게 하는 노래였다. 그러나 처음 두 곡에 비해 임팩트는 약한 편이었다. 그 생각을 받쳐주는 것처럼 노래에 관한 정보가 눈앞에 떴다.

[처음처럼- 대중성: B, 음악성: B, 최고 순위: 140, 성장 가능성: 83%]

그나마 다행인 건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거였다. 수한은 어떻게 피드백을 해주고 싶어도 음악적 지식이 부족하여 답답했다. 차라리 이 기회에 음악적으로도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왜 이 노래가 대중적인지 음악성으로도 나쁘지 않은 건지 자세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었다.

'이 능력이 언제까지 내 곁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수한은 이를 자세히 배울 방법이 없을까 하여 검색하다가 문득 '저작권'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

수한은 좋은 생각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혹시 모를 일이니까. 수한은 원하던 것을 검색한 뒤 한 차례 여유를 가졌다. 그리고 조금 전에 생각한 것처럼 다양한 분야로 공부할 필요성 또한 느껴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울 방법을 찾아보았다.

**

"김수한, 그 친구 말이야."

성민은 밥 먹다가 뜬금없이 수한의 이름이 튀어나와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민이 입에 넣던 숟가락을 내려놓자 남일이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가수를 키워보자는 제안, 생각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서 말이야."

"전 또 뭐라고요."

성민은 밥맛 떨어지는 말을 할까 봐 살짝 조마조마했던 것을 버리고 다시 식사에 몰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수한이 불안해했던 게 생각났다. 그래서 평소라면 묻지 않았을 것을 묻게 되었다.

"저번에도 그렇고 최명훈이랑 자주 있던데 그 친구가 마음에 듭니까?"

"응. 마음에 들어. 나랑 닮은 게 많은 친구더라고."

성민은 하마터면 입에 넣었던 밥을 그대로 뿜을 뻔했다. 닮긴 뭐가 닮았단 말인가. 아니다.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사람 좋은 얼굴로 음흉한 속내를 지닌 걸 보면.

"그 친구가 누구 하날 추천했다고 했죠?"

"고주혁이라고 실제로 만났는데 재능이 많은 친구더라고. 김수한 못지않게 최명훈도 사람 보는 눈이 있더라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비교하는 남일을 보며 성민은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현재로서는 수한이 훨씬 나아서 성민은 수한의 칭찬을 하려다가 묘하게 자신을 관찰하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이거 참 웃기는 양반이네.'

수한뿐만이 아니라 성민까지 경계하고 있다.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못된 습관이 최근에는 보이지 않기에 형편이 펴져서 사람이 나아진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정말로 닮았네. 최명훈이랑.'

성민은 이러다가 김수한과 함께 가온에서 쫓겨나는 거 아닌가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밥을 오물오물 씹어 삼켰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최명훈이 재미있는 제안을 했는데 말이야."

성민은 그 제안을 듣고는 숟가락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입맛이 완전히 뚝 떨어졌다. 남일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최명훈이 뱀 같은 놈이란 게 느껴져 성민은 소름이 돋았다.

**

수한은 유난히 어두운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오는 성민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지난번에 들은 말도 있고,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잘 챙겨주는 성민이니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수한은 탕비실에서 믹스커피를 탄 후 성민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의아해하는 성민을 향해 수한이 웃으면서 말했다.

"커피는 역시 믹스커피죠."

그 말이 뭐가 그리 웃긴 건지 성민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커피는 믹스커피지. 그보다 김수한. 나 좀 잠깐 따라와 봐."

"네. 알겠습니다."

성민이 수한을 데리고 들어간 곳은 아무도 없는 텅 빈 회의실이었다. 수한은 믹스커피를 단번에 들이키는 성민을 보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게 말이야······."

수한은 처음으로 성민이 그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쓰게 웃었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최명훈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대표님께 한 모양이야. 일단 테스트를 해본다고는 하는데······."

"설마 그 제안이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린 그겁니까?"

"그래. 그거야."

이지훈의 곡을 빼앗아 고주혁에게 준다. 단순히 곡을 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작곡가 타이틀까지 빼앗는다. 수한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받아들인 남일에게 크게 실망했다. 자신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건 그렇다 쳐도 남이 작곡한 노래를 이런 식으로 빼앗는다고 하니 기가 찼다.

"원래 그런 분입니까?"

"글쎄.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실장님 입장은 어떻습니까?"

성민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반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대표인 남일에게 맞설 수도 없는 처지였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빠져버렸다. 수한은 그런 성민의 처지를 이해하였다.

"모호하시군요."

"일단 테스트 결과를 봐야겠지."

여지를 두지만, 남일이 결정을 하면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었다.

"테스트는 언제 한답니까?"

"아마도 지금 하고 있겠지."

"여기서요?"

"그렇지. 그래야 대표님께서도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성민이 힘이 있다고 해도 그건 매니지먼트 사업부에 한해서였다. 성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자 수한은 건물 구조를 떠올렸다. 지금 서둘러 가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잠깐 어디가!"

"테스트 결과가 궁금해서요."

성민이 말리기도 전에 수한은 무작정 사무실에서 나와 가온 엔터테인먼트 건물 내에 있는 녹음실을 향해 뛰어갔다. 워낙 빠른 속도로 뛰어가서 같이 가자고 외치는 성민의 목소리가 한참 뒤에서 들렸다.

수한이 녹음실 문을 열자 해냈다는 얼굴을 한 명훈과 흡족한 미소를 지은 남일이 보였다. 수한은 부스 안에서 노래를 한창 부르는 고주혁을 보며 피식 웃었다.

[고주혁- 스타성: A, 연기력: S, 가창력: A, 춤: A, 인지도: F, 기타: S, 성장 가능성: 0%]

다시 보는 고주혁의 스타성은 한 단계 아래로 추락해있었다.

< 3. 서열은 명확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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