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20화 (20/186)

< 2. 신입 매니저 >

편안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다시 긴장으로 물들었다. 남일은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일단 들어보죠."

"일단 이것부터 들어보시죠."

수한이 챙겨온 핸드폰을 내밀자 성민까지 호기심에 허리를 바짝 세웠다. 수한이 핸드폰을 건드리자 '여름날의 휴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 혼자'와 다르게 명확한 가사가 지어지지 않아 멜로디만 흘러나왔지만, 대충 듣기로도 귀에 쏙 박혔다. 대중성이 타고났다. 수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리듬을 타는 남일의 모습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노래가 끝나자 남일이 흥미롭다는 듯 수한을 봤다.

"우선 이 노래를 부른 건 한소원 씨겠군요."

"그렇습니다."

"설마 이 노래를 작곡한 것도?"

"한소원 씨입니다."

수한은 기가 막힌다는 듯 입을 쩍 벌린 성민을 못 본 척하느라 힘들었다.

"처음 이 실장한테 한소원 씨를 영입하자고 한 사람이 김수한 씨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한소원 씨가 작곡도 할 줄 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좋아요. 이 노래를 들려준 건 싱어송라이터로 한소원 씨를 키우자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노래로 나오는 건 무리가 있을 텐데요?"

출연하기로 한 예능을 아프다는 핑계로 빠져 소원을 향한 동정여론도 상당했다. 물론 반대로 욕도 먹었지만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 노래를 처음에 내놓는 건 아무래도 위험성이 있었다. 그래서 수한이 내놓은 게 두 번째 곡이었다.

'나 혼자'가 틀어지자 듣고 있던 두 사람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이건 무조건 뜬다. 노래를 다 듣고 나자 적막이 흘렀다. 수한은 바쁘게 돌아가는 두 사람의 머릿속 상황을 짐작하고는 침착하게 두 사람을 기다렸다. 먼저 말문을 연 건 성민이었다.

"일단 계획부터 짜야겠네요."

"그래. 굳이 급하게 낼 필요는 없으니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슬픔을 극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너무 빨라도 안 됐고, 너무 늦어도 안 됐다. 오랜만에 열정이 불타오르는 두 사람이었다. 수한은 이 기회에 지훈까지 살리기로 했다.

"그리고 이지훈 씨 말입니다."

"아! 이지훈 씨 알죠. 가수 소속이잖아요."

"이지훈 씨도 작곡에 관심이 있는 거로 압니다. 이번 기회에 이지훈 씨의 가능성도 살펴보는 게 어떻습니까?"

인재는 빨리 키우면 키울수록 좋다. 수한은 이번까지 제발 통하길 바라며 간절하게 남일을 봤다. 그 눈빛을 본 남일은 피식 웃더니 시원하게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그럼 이지훈 씨의 재능을 먼저 확인해보죠. 한소원 씨의 재능은 방금 확인해봤으니까."

"감사합니다."

수한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옆에 있던 성민이 뿌듯하게 웃었다. 원하는 것을 다 얻었으니 수한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수한이 대표실 밖으로 나가자 성민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어떻습니까? 실제로 보니 괜찮은 친구죠?"

"글쎄······."

"네?"

조금 전까지 같이 웃고 있었기에 성민은 당연히 남일이 수한을 좋게 볼 줄 알았다. 그러나 남일은 도리어 안색을 굳혔다.

"다른 건 몰라도 재능은 있는 친구야."

"그럼 된 거 아닙니까? 중국에 다녀오더니 사람이 되게 까칠해지셨네요."

"이 실장은 저 친구가 마음에 드나 봐?"

"제가 처음 매니저 일할 때를 떠올리게 해서 마음에 듭니다. 뺑뺑이 돌려도 군말하지 않고."

그런 의미에서 성민은 매니저 한 사람을 더 뽑았으면 했다. 수한의 말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사람이 더 필요하면 필요했지, 덜 필요하지는 않았다.

"근데 대표님은 저 친구가 왜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누가 다른 사람의 슬픔을 냉정하게 상품으로만 볼 수 있을까?"

"네? 그건 이 바닥에서는 굉장히 흔한 일이 아닙니까?"

"그거야 이 바닥에 오래 있던 사람들이나 그렇지. 저렇게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거든."

성민은 황당해서 할 말을 잃었다. 성민이 듣기로는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이 핑계, 저 핑계로 막는 기분이었다. 성민은 일을 잘해도 못마땅해하는 남일을 보며 수한을 더 챙겨주기로 마음먹었다.

**

"어이! 김수한이!"

수한은 최근 들어 자신에게 치대는 성민을 질린 얼굴로 보았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대표를 만나고 온 이후부터 성민이 전보다 더 친근하게 수한에게 다가왔다. 상사가 예뻐하면 당연히 좋아야 하는데 수한은 기쁘기는커녕 자신에게 달라붙는 성민이 징그럽게 느껴졌다. 그때 멀리서 성민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실장님! 실장님! 이거 보세요!"

워낙 다급하게 불러 성민은 수한을 괴롭히던 것을 관두고 다른 사람의 컴퓨터 앞으로 갔다. 화면에는 유성준의 또 다른 열애설이 올라와 있었다. 상대는 안지연이 아닌 다른 여자 연예인이었다.

수한은 멀리서 눈짓을 보내는 성민에 실시간으로 떠오르는 검색어를 봤다. 어찌나 다정하게 서로를 보고 있는지 보기만 해도 달달해 보이는 사진이 기사에 걸려있었다.

안지연이랑 사귀는 거 아니었음?

ㄴ헤어진 거 아님?

ㄴ설마 양다리는 아니겠지?

수한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다른 연예인이 걸릴 줄은 몰랐다. 지난번에는 일반인과 사진이 찍혔기에 이번에도 그럴 거라 여겼다. 이번에 걸린 여자 연예인은 유성준과 소속사가 같은 연예인으로 가수였다.

'골고루 만나고 다녔구만.'

수한은 얼마 안 가 나오는 기사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유성준, 열애설 부정 "그저 친한 사이일 뿐"]

사진만 봐도 무언가 있어 보이는 분위기인데 아니라고 부정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저 사진뿐이라면 기사는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수한은 기자는 몰라도 성민은 믿었다.

"김수한이! 커피 어때?"

"좋습니다."

수한이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성민이 커피를 핑계로 수한을 불러들였다.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자 성민은 남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걸로 끝은 당연히 아니야."

"그렇습니까?"

"그래. 저놈 때문에 시은이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데 엿 좀 먹여줘야지."

성민이 시은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기에 수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유성준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으면 하는 건 수한의 바람이기도 했다.

"커피는 어디까지 마셔도 됩니까?"

"왜? 비싼 거 마시게?"

"네. 달달한 거 좋아합니다."

"그 정도야 사줄 수 있지.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보낼 텐데."

"네. 감사······ 네?"

"예진이한테 가봐야겠어. 도저히 못 하겠대."

"이번 역도 엎겠다고 하는 겁니까?"

"아니, 예진이가 아니라 재원이가."

수한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고는 허탈한 웃음만 뱉었다. 그 발연기가 아직도 나아지지 않은 모양이다. 수한은 카페에 가자마자 가장 비싼 메뉴를 시켰다.

"너 인마. 나도 안 시켜먹은걸!"

"이 정도는 마셔야 저도 힘내지 않겠습니까?"

"에휴. 내가 신입을 잘못 키우고 있네. 잘못 키우고 있어."

"실장님은 좋은 상사이십니다."

"입에 침이나 발라라."

수한은 막 나온 커피를 쪼르륵 마시며 그 맛을 실컷 음미했다. 비싼 거라 그런지 달달하니 맛이었다. 옆에서 밥값보다 비싸다며 중얼거리는 성민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수한은 잘 마시겠다는 인사로 그를 약 올렸다.

**

"예진 씨는 뭐가 문제라 보십니까?"

"글쎄······."

예진은 소파에 다리를 꼰 채로 난감하다는 듯이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수한은 지난번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연기에 재원이 왜 도움을 요청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수한은 너덜너덜한 대본을 안 보고도 대사를 외우는 예진에게 감탄은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차라리 이러지 말고 바깥에 나가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나가서 어떻게 하게?"

"제가 이 여자 주인공과 비슷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보는 건 어떻습니까?"

수한이 수많은 고민을 하며 내린 결론이 그러했다. 뒤에서 재원이 절대 안 된다고 고개를 젓는 게 보였지만, 예진은 그 제안이 흥미로웠는지 유난히 눈을 빛냈다.

"그 사람이 누구인데? 나도 아는 사람이야?"

"한소원 씨라고 아십니까?"

소원의 이야기에 몸이 바짝 굳은 재원과 다르게 예진은 소원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모르냐고 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예진이니 수한은 이해가 되었다. 예진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관심이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박시은 씨도 같은 소속사니까 관심을 가진 거지, 아니었으면 모르고 넘어갔겠지.'

"연예인이야?"

"네. 내년에 우리 회사에 들어올 연예인입니다."

"그런 소식 난 처음 들어."

"그야 굳이 알려줄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걔가 뭐 하는 애인데? 연기자야?"

"아니요. 가수입니다."

수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진의 손에 핸드폰이 들렸다. 수한은 빠르게 움직이는 손가락에 예진이 머지않아 소원의 정보를 찾아낼 거라 여겼다. 과연 소원에 관한 기사를 본 건지 예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예진은 조금 더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못마땅한 얼굴로 수한을 봤다.

"허락은 받은 거야?"

"네. 오는 길에 허락받았습니다. 오늘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소원이 거절하면 어쩔 수 없다고 여겼으나, 소원은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알고 보니 예진의 팬이었다. 수한은 소원의 환상을 깨는 게 아닌가 싶어서 살짝 두려워졌지만, 이미 성격 나쁜 건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을 들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매력적이지 않냐는 찬양의 말에 수한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로 팬이구나.'

이 모든 면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수한은 얼마 안 가 자신을 노려보는 예진을 발견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네가 이리로 데리고 와."

"집으로 말입니까?"

"그래. 재원 오빠가 손님 맞을 준비할 거야."

"내가?"

"그럼 안 할 거야?"

예진의 뻔뻔한 태도에 재원이 어이없어했지만, 수한은 알았다. 결국, 재원이 하게 될 거라는 걸. 수한은 부디 이 시간이 예진 한 사람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길 바랐다.

< 2. 신입 매니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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