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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탑스타-18화 (18/186)

< 2. 신입 매니저 >

가온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최대한 소원을 배려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하기로 했다. 수한은 소원을 무사히 데려다준 뒤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로 가서 앉았다. 긴장은 소원이 더했을 텐데도 수한은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들어가서 시원한 맥주 캔 하나를 마시며 축구를 보고 싶었다.

"고생했어."

성민이 수한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다가왔다. 수한은 어깨가 살짝 아팠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성민을 올려다봤다.

"시은이가 아쉬워하겠네."

"설마요.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서운하지."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현장에서 자주 보겠죠."

"그렇지. 우리 회사가 대형 기획사였으면 하나만 담당하게 내버려 뒀을 텐데 그게 안 되는 실정이니."

그런데도 매니저들이 일을 쉽게 그만두지 않는 건 동료가 좋아서였다. 원래 직장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함께 일하는 동료였다. 그런 의미에서 수한은 첫 회사로 가온 엔터테인먼트를 선택한 걸 후회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대표님이 네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는 하던데."

"지금 중국에 가 계시죠?"

"그러니까 말이야. 차이나 머니가 꽤 짭짤한 모양이야. 실제로 중국 가서 성공한 배우들도 있고. 한류가 실제 존재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며 고집을 부리는데 기가 막힌 양반이야. 그 와중에도 한소원은 데려오고 싶다고 하고. 아마 중국에서 돌아오면 얼굴 한번 보자며 널 부를 거야."

수한은 어색하게 웃었다. 회사 대표를 두고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니. 성민이 대표와 얼마나 친근한 사이인지 알 수 있었다.

'중국이라······.'

나중에 사드로 인해서 한한령이 내려질 거라는 걸 이 당시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벌 수 있을 때 벌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적절한 시기에 발을 빼면 되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로또 번호나 외워둘 걸 그랬네.'

그렇다면 자금 걱정 없이 당장 회사를 차릴 수도 있기는 했다. 초기 투자금으로 금세 바닥이 나긴 하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명훈이 돈을 밝히는 만큼 돈 관리를 잘하기는 했다. 인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지만 말이다.

"어쨌든 오늘 수고했다. 오늘은 다른 데 안 돌릴 테니까 사무실에만 있어."

"네. 알겠습니다."

물론 그래 봤자 일을 안 하는 건 아니었다. 수한의 일은 주로 댓글 관리였다. 이런 건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서 시켜도 될 일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가온 엔터테인먼트가 아직 중소기업인 데다가 수한이 아직 신입인지라 되도록이면 쉬운 일을 시켰다.

'신입한테 무리한 걸 시키지 않으니 좋은 회사지.'

수한은 좋은 댓글을 달면서도 악플이 보이면 열심히 신고 혹은 비공감 버튼을 눌렀다. 악플은 보기만 해도 영혼이 더럽혀지는 느낌이라 수한은 악플 다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도 현대인의 병인가?'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생판 남에게 악의적으로 퍼붓고 있으니 말이다. 수한은 기사를 둘러보다가 옆에 뜨는 실시간 검색어에 깜짝 놀랐다. 낯익은 이름들이 나열되어있었다.

[유성준]

[유성준 안지연]

[유성준 안지연 열애]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대본리딩 현장에서도 대놓고 만나더니 기어코 연예부 기자에게 걸렸다. 기사를 보니 아직 소속사에서 확인 중이라고 하였다. 수한은 열애설을 인정하고 싶다고 말했던 시은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인정하지는 않겠지?'

수한이 보기에도 안지연은 질투가 많아 보이기는 했다. 시은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그랬다. 그렇다고 해도 여자 연예인에게는 열애설은 치명타이므로 수한은 쉽게 인정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수한의 예상은 기가 막히게 빗나갔다.

["예쁘게 잘 만나고 있다" 안지연 소속사 측 열애설 인정]

사랑에 눈이 먼 여자는 제 미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지연의 곁에는 시은처럼 옆에서 말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

수상한 보스, 2차 대본리딩 날. 수한은 자연스레 운전대를 잡았다. 소원과는 예능에 나가지 않기로 맞춰두었다. 이유는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않아서였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나가면 기껏 모은 화제성을 허망하게 날려 보낼 수 있으니까.'

물론 실제로도 잘 챙겨 먹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소원이 병원에 입원해버리자 소원의 소속사에서도 어떻게 하지 못했다. 다만 기사를 내서 소원이 욕먹게 내버려 두었다.

'진짜 쓰레기네.'

드림즈가 뜨지 못한 데에는 소속사의 이러한 태도도 있지 않았을까. 수한은 소원의 상황을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지만, 우선은 소원이 가온 엔터테인먼트로 들어와야 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래도 가온 엔터테인먼트 측에서도 소원의 상황에 맞게 좋은 기사를 많이 내보내어 어느 정도 비난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오빠. 한소원 씨한테 가게 된다면서요?"

어느새 차에 올라탄 시은이 대놓고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성민의 말대로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옮기는 거라 섭섭한 모양이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많이 볼 것 같습니다."

"오빠를 탐내는 사람이 되게 많네요."

그래 봤자 세 명이 다였다. 지훈은 지난번 예능 스케줄 이후로 다시 보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가온에서 가수를 키우면 좋을 텐데.'

성민의 이야기만 들어본다면 소원을 가온 엔터테인먼트에 들인 이유가 거의 동정심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수한은 전혀 생각이 달랐다. 수한의 계획에 관해서는 대표가 중국에서 돌아오면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말할 생각이었다. 수한은 그 순간이 오지도 않았는데 괜히 긴장되었다.

"이번에는 인정했으니 저번처럼 접근하지 않겠죠?"

"따로 연락은 안 왔죠?"

"네. 번호 차단도 이미 해서 안 올 거예요."

시은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수한은 상처를 받았기에 저리 애써 웃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굳이 아는 척하지 않고, 시은의 걱정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그보다 안지연 씨는 괜찮겠죠?"

수한은 대답 대신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괜찮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람둥이를 연인으로 두면 어떤 기분일지 수한은 전혀 알지 못했다. 어쩌면 열애설을 인정한 건 유성준의 마음을 제대로 잡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수한은 열애설을 인정한 것이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름지기 남자라면 한 여자만 바라봐야지.'

그러나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일에만 매달려 연애 한 번 못해본 게 수한이었다. 수한은 아주 잠깐 유성준이 부러웠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러기를 바라야죠. 샵에 도착했습니다."

지난번에 왔던 곳이다. 수한은 동현과 함께 올라가는 시은을 확인하고 나서도 불안하여 괜히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다행히 유성준의 머리카락 한 가닥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보이는 낯익은 얼굴에 수한은 하마터면 인상을 대놓고 구길 뻔했다.

[최명훈- 스타성: C, 연기력: A, 가창력: D, 춤: D, 인지도: F, 기타: A, 성장 가능성: 60%]

최명훈이 멀리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도 담배 연기는 수한이 있는 자리까지 날아왔다. 수한은 가볍게 기침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최명훈이 저기에 있다는 건 샵 안에 유성준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였다. 수한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명훈 또한 수한을 발견했다.

"어이! 김수한!"

워낙 크게 수한의 이름을 부른지라 못 들은 척하기가 어려웠다. 수한이 몸을 돌리자 명훈이 반갑다는 듯이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한 번쯤 다시 마주칠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야 만났네."

명훈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수한의 어깨를 툭 쳤다. 수한은 심기가 불편했으나, 내색하지 않으며 물었다.

"오늘도 유성준 씨와 함께 온 겁니까?"

"그래. 무슨 일인지 오늘 샵에 가야겠다며 고집을 부리더라고. 애인이라도 만나러 가나 봐. 부럽네."

아직 명훈은 유성준의 복잡한 여자관계를 모르는 듯했다. 그러고 보면 명훈도 이 세계에서는 수한과 위치가 같았다. 즉, 신입 매니저였다. 그보다 확인할 게 있다.

"그럼 저 안에는 유성준 씨 혼자입니까?"

"어. 그런데?"

수한은 안 좋은 예감이 들어 뒤에서 어디 가느냐고 소리 지르는 명훈을 무시하고 샵 안으로 들어갔다. 수한은 안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동현에게 가서 물었다.

"박시은 씨는요?"

"시은이? 저기서 메이크업 받고 있······ 었는데?"

동현이 가리킨 자리에는 빈 의자만 있었다. 수한은 안에 있는 직원들을 봤다. 그들은 한결같이 비상계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수한이 지체하지 않고 비상계단으로 가자 동현이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문 앞을 막아섰다.

"그래서 대체 나보고 어쩌자는 거야?"

"그 기사는 오해야. 난 싫다고 했는데 혼자 좋아서 쫓아다닌 거라니까."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리면서 시은은 멈칫했지만, 성준은 제 말만 계속하였다.

"난 너와 다시 시작하고 싶어. 시은아."

"제가 이러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수한이 나서자 성준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네가 뭔데 참견이냐는 얼굴이었다. 수한은 시은의 앞을 막아선 뒤 시은이 성준의 방해 없이 나갈 수 있게 길을 만들어주었다. 시은은 눈치를 보다가 수한이 막아준 사이에 몸을 돌렸다. 성준이 열심히 시은의 이름을 불렀지만, 시은은 무시하고 나갔다. 수한은 시은이 나간 걸 확인한 뒤 위협적인 목소리를 냈다.

"제가 시은 씨한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요."

"당신이 뭔데 난리야."

수한은 달려가려는 성준을 가볍게 막아섰다. 연예인이라 몸 관리 좀 할 줄 알았는데 근력 하나 없는 게 순식간에 수한에게 제압되었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한 게 효과를 발휘했다.

"이런다고 내가 시은이를 포기할 것 같아?"

수한은 여자도 많은 주제에 한 사람만 바라보는 순정남인 척하는 유성준의 꼴이 아주 우스웠다. 그래서 잡은 손에 힘을 주자 유성준이 소리를 질렀다.

"으악! 너! 너! 내가 가만히 놔둘 것 같아?"

"네. 가만히 안 놔둘 것 같습니다."

수한은 이 정도면 적절하게 시간을 끌었다고 생각하여 성준을 놔주었다. 성준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수한을 노려봤지만, 수한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내가 너 가만 안 둘 거야."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는 소속사 측면으로 대응하겠습니다."

수한은 그 말만 하고 비상계단에서 빠져나왔다. 뒤에서 쿵쾅거리며 야단법석을 피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수한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과연 네가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본인이 연예인이라는 자각이 있다면 절대 움직일 수 없다. 수한이 샵에서 나오자 운전석에는 이미 동현이 타고 있었다. 걱정하는 시은을 보니 적절한 시기에 들어간 것 같아 안심되었다. 그러나 성준의 행동을 보니 더한 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수한은 자리에 앉자마자 대학로 식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지연 씨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도둑은 원래 범인 현장에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되도록이면 이 방법을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성준을 통해 시은의 연예인 인생이 끝났다는 걸 알고 있으니 수한은 이 방법을 기꺼이 쓰기로 했다.

< 2. 신입 매니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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