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6화 (16/186)

< 2. 신입 매니저 >

차 안은 고요했다. 그와 반대로 바깥에서는 시끄러운 경적이 울렸다. 그 소리에 예민해져 인상을 찌푸린 예진을 수한은 애써 외면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저러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수한은 본능적으로 무슨 말도 꺼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재원이 옆에서 자꾸 신호를 주었다.

'이 사람 못 쓰겠네.'

수한을 방패막이로 삼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수한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아내며 자연스럽게 예진에게 말을 건넸다.

"아침은 드셨습니까?"

"먹었어."

한껏 예민해 보이는 상태와 다르게 예진은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다. 그 대답에 재원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오빠. 나 물어볼 게 있어."

"어? 어. 예진아. 말만 해."

누가 보면 여자에게 잡히고 사는 남자 친구처럼 대답하는 재원에 수한은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연예인 한 명이 기업 하나와 맞먹는 돈을 버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예진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연예인이기도 했고.

"악플러 고소 못 해?"

"악플러? 네가 원하면 당연히 하지."

악플러 문제는 연예인에게 있어 심각한 문제이기는 했다. 과거에는 악플로 인해 자살한 연예인까지 있으니 수한은 연예인 뒤로 스며진 좋지 않은 그림자를 본 기분이 들었다. 그와 함께 수한은 소원이 떠올랐다. 예진이 받은 악플도 만만치 않겠지만, 소원이 받은 악플은 최악 중 최악이다.

'그 애야말로 다 고소하는 게 나을 텐데.'

"하지만 예진아. 악플러 고소가 좋은 것도 있는데 나쁜 것도 있어."

"뭐? 왜?"

"조용해지는 때도 있는가 하면 더 활개를 치는 때도 있거든."

대중에게 그 연예인이 호감으로 인식되어있느냐, 비호감으로 인식되어있느냐의 차이가 컸다. 호감이면 대다수의 응원을 받는 거고, 비호감이면 더 큰 반발이 일어나 더 많은 악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아니지. 일단 모아두고 있겠다는 말이야."

이번 드라마에서 예진이 얼마만큼 연기를 잘 하느냐에 달려있다. 사실적시로 고소하는 거냐고 비웃음을 당할 가능성이 크긴 했다.

예진은 재원의 대답이 못 미더웠는지 다리를 꼬며 재원을 노려보다가 수한의 시선을 느끼고는 선글라스를 꼈다. 수한은 힘들어 죽겠다는 재원의 입 모양을 보고 속으로 조용히 웃은 뒤 목적지에 차를 세웠다. 수한이 주차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수한이 주차를 끝내고 안으로 들어가자 메이크업을 받는 예진이 보였다. 예진은 청순한 외양을 가졌지만, 센 화장도 잘 먹히는 편이었다.

'오히려 본래 성격에는 저 화장이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화보 촬영 현장은 처음이지?"

"네. 처음입니다."

물론 진짜 처음은 아니었다. 드라마를 찍기 전에 화보 촬영을 많이 했으므로 수한은 여유 있게 촬영 현장을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예진만 까칠하게 굴지 않는다면 오늘 분위기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저쪽에 간식 준비해뒀던데 배고프면 먹어도 돼."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작 권하는 재원도 먹고 있지 않았다. 수한은 여러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며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넸다. 예진의 메이크업 시간은 상당했다. 게다가 옷까지 갈아입으니 대기 시간이 상당히 길어졌다. 수한은 바른 자세로 서 있다가 주머니에서 진동하는 핸드폰에 구석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성민에게서 온 전화였다.

"전화 받았습니다."

[지금 예진이 화보 촬영 중이지?]

"네. 실장님.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너한테 좋은 소식 전해주려고.]

"네? 무슨 소식인데요?"

[나도 잘 몰랐는데 대표님이 한소원한테 관심이 있었더라고. 게다가 한소원이 잘못해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는 게 밝혀졌잖아. 그래서 네가 말대로 한소원을 우리 회사로 데려오려고.]

수한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를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가늠이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소원 씨에게 뭐라도 대답을 받은 겁니까?"

[그건 아닌데 웬만해서는 하게 될 거야.]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성민은 자신감이 넘쳤다. 수한은 아직 소원에게 연락을 받지 않았으므로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 알고 있겠습니다."

[그게 다야?]

"네?"

[아니야. 그럼 결과 나오고 나서 다시 말해줄게.]

전화가 끊어지고 수한이 현장으로 돌아오니 이미 화보 촬영은 시작되었다. 예진은 성격과 비슷하게 날카로워 보이게 화장을 한 뒤 푸른색 슈트를 입었다. 워낙 비율이 좋은지라 서 있기만 해도 시선이 갔다. 플래시가 터져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예진의 모습에 수한은 예전 일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그때는 나도 녀석들도 처음이라 자꾸 눈을 깜빡여서 고생했었지.'

원래 신인들은 다 그런다며 사진작가는 배우들을 달랬지만, 수한은 당황한 사진작가의 표정을 본 상태였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화보 촬영 전에는 플래시가 터져도 눈을 깜빡이지 않도록 열심히 훈련을 시켰다. 수한이 생각해도 웃기는 일화였다.

"예진이 멋있지?"

"네? 네. 멋있습니다."

수한은 어느새 옆으로 와 뿌듯하게 웃는 재원을 봤다. 매니저 일을 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수한은 마찬가지로 예진을 보며 웃었다. 예진은 까칠한 성격이긴 했으나, 자신이 일하는 데에는 철저했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모니터링하는 모습은 수한이 봐도 멋있긴 했다.

'사진 잘 나왔네.'

수한은 옆에서 모니터를 카메라로 찍는 재원을 지켜보다가 또다시 울리는 핸드폰에 핸드폰 화면을 봤다. 처음 보는 번호가 핸드폰 화면에 떴지만, 수한은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수한은 눈앞에 뜨는 정보에 눈앞에 있는 여자가 한소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한소원- 스타성: S, 연기력: F, 가창력: B, 춤: B, 인지도: C, 기타: S, 성장 가능성: 99%]

지난번에 봤을 때와 수치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다만 모자 아래로 보이는 얼굴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사람들에게 시달린 건지 누가 자신을 알아볼까 불안해하는 게 다 보였다. 그래서 수한은 타이르듯이 부드럽게 말했다.

"원하시면 자리를 옮기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여기서 보자고 했잖아요."

소원이 불러낸 장소는 길거리에 흔히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소원은 수한이 가져온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두려움을 달랬다. 수한은 눈앞에서 덩치가 작은 여자가 그러고 있으니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한테 하신 말씀이 맞았어요. 요즘 온갖 곳에서 전화가 와서 핸드폰을 꺼둔 상태예요."

"그럼 제게 전화 주신 번호는?"

"엄마 핸드폰이에요."

수한은 잘한 결정이라 여겼다. 그런 사람들 전화를 다 받았다가는 순식간에 휘말릴 수 있다. 게다가 소원의 상태는 지금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제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연락을 한 건가요?"

"네······."

소원의 입장에서는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수한이었다. 수한은 자신조차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런데도 소원은 수한을 선택했다. 수한은 자신이 만약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쉽게 믿을까 싶어 속상했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소원의 선택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앞으로 연예인을 계속하고 싶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이래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을 때 찾아오라고 한 거다. 이러면 도움을 청한 상대에게 무작정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원에게는 그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은 듯했다.

"소원 씨가 속한 기획사에서는 뭐라고 따로 한 말은 없나요?"

"장례식날 당일에는 원한다면 해지해주겠다고 하긴 했어요."

"지금은요?"

소원은 난처해 보이는 얼굴을 했다. 지금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수한은 아이돌 계약 기간을 떠올리고 물었다.

"계약은 7년으로 되어있나요?"

"아니요. 저희는 5년이요. 처음에 만들 때도 크게 기대가 없었거든요."

실제로 드림즈는 성공하지 못한 걸그룹이었다. 4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으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소원에게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거기를 버리고 다른 기획사로 옮길 수 있겠습니까?"

소원의 눈이 커다래졌다. 모자로 인해 잘 안 보였던 얼굴이 몸을 들썩이면서 잘 보이게 되었다. 소원은 평범하게 귀여운 듯하면서도 매력적인 이목구비를 가졌다. 그러나 마음고생을 많이 한 모양인지 볼살은 쏙 들어갔다. 연예인 활동을 다시 하려면 살을 조금 찌워야 할 것 같다.

소원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함께 해왔던 세월이 소원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 순간에는 드림즈를 버리고 후배 그룹을 키우려던 기획사의 태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 생각을 수한도 알아차렸기에 씁쓸한 미소가 나왔다.

'나도 그런 식으로 버려진 주제에 버릴 수 있냐고 묻고 있다니.'

"그럼 이렇게 합시다. 소원 씨가 잠시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기획사에서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고 결정합시다. 그리고 재계약은 고민을 조금 해보겠다고 말하세요."

수한의 말끔한 정리에 소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소원이 수한을 찾아온 건 수한이 이상하게 신뢰가 가는 사람이어서였다. 믿음을 주면 그 믿음을 저버릴 것 같지 않은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소원 씨에게 지금 필요한 건 휴식이에요. 제게 연락한 번호로 전화를 주면 받을 거니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해도 좋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들려준 노래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았죠?"

"네? 아! 그거······ 네."

어쩌면 훗날 비장의 무기로 쓰일 수 있는 소원의 재능을 아직은 수한 혼자 알고 있다.

"일단은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마세요."

"네. 알겠어요."

수한은 이야기가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원을 잠시 놔두고 택시를 불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드림즈 교통사고로 인해 소원이 대중에게 얼굴이 많이 노출되었다. 특히나 인터넷에서는 누가 악플을 더 잘 다나 대결을 할 정도였으니 수한은 그편이 소원에게 안전하다고 여겼다. 수한은 택시 번호를 괜히 한 번 더 외운 뒤 버스를 탔다. 핸드폰은 이미 난리가 난 상태였다.

[김수한! 신입이 벌써 땡땡이치면 안 된다!]

슬프게도 매니저에게 쉬는 날은 없었다. 수한은 진동으로 울리는 핸드폰 전화를 받으며 다음 이동할 장소에 대해 들었다. 다음 이동 장소는 생각으로도 피곤이 밀려오는 예진의 집이었다. 원래도 기억력이 좋은 수한이지만, 예진의 주소는 그냥 통으로 외워버렸다.

'왠지 모르겠지만, 박시은 씨보다 성예진 씨를 더 많이 보는 것 같네.'

드라마 달보드레를 가지고 온 대가를 이런 식으로 치르는 건가 싶어 수한은 재빠르게 달려오는 지하철을 탔다.

< 2. 신입 매니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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