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신입 매니저 >
주변이 조용해졌다. 수한은 자신이 말하고도 실수했음을 알았다. 이제 막 로드 매니저 명함을 달게 된 수한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무리한 이야기였다. 수한도 그런 분위기 정도는 읽을 줄 알기에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농담이었습니다."
"역시 그렇지? 그런 농담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게다가 가온이 데리고 있는 배우가 얼마나 많은데."
가온 엔터테인먼트의 규모에 비해서 많은 연예인이 소속되어있기는 했다. 수한은 성민의 말을 이해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괜히 소원에게 미안해졌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절대 좋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연예인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겠느냐를 생각해야겠지."
"실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이런 경우는 대체로 포기하지. 원래 잘 나가는 걸그룹도 아니었잖아."
냉정한 말이었다. 그러나 어느 곳이든 감정으로 일하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는 있겠지."
"네?"
"어쨌거나 최후의 생존자잖아. 화제성은 있다 이거지."
연예계는 생각보다 더 잔인한 곳이었다. 수한은 그 현실을 깨닫고 새삼 충격을 받았다. 그랬다. 수한이 그래서 명훈에게 버림을 받았다.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가리고 싶지 않았던 명훈이라서 수한을 버렸다. 수한은 그 이유로 버림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런 매니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근데 이럴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해. 나쁜 마음 먹는 사람들은 이럴 때 접근하는 법이거든."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하긴 너는 모르겠구나. 원래 사기를 가장 많이 당하는 직업이 연예인이거든. 사기꾼들이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잖아."
수한은 팬이라는 말에 유난히 기뻐했던 소원을 기억했다. 확실히 소원에게서는 누군가의 유혹에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단단함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신경 쓰이면 조금 있다가 장례식장 갈 때 같이 가든가."
"장례식장이요?"
"아무래도 큰 사건이잖아. 가서 예의는 차리고 와야지."
"네. 그럼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대표님은 따로 가신다고 하니 그럼 우리 둘이 조용히 다녀오자고."
성민은 한쪽 눈을 찡긋거린 후 재원에게 갔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진이 들어가는 드라마에 대한 말이었다. 성민이 말한 대로 소속 연예인에 관련해서도 바쁜 일이 많았기에 더는 이 일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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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은 예상대로 시끌벅적했다.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는 집어치운 지 오래였다. 수한은 플래시가 연신 터지는 내부를 보면서 씁쓸했다.
"원래 이렇게까지 그러지는 않은데 일이 일이다 보니 저런가 봐."
성민은 태연하게 말하면서도 이 상황이 짜증 나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나마 안쪽까지 들어오지는 않아서 수한은 국화를 두고 절을 했다. 바깥과 대비되게 안은 매우 차분하고 조용했다. 그 가운데 수한은 열심히 음식을 나르는 사람을 발견했다.
'한소원.'
조문객들을 열심히 웃으면서 상대하는데 웃어도 웃는 것 같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깔린 슬픔이 모두에게 전해졌다. 수한이 성민과 함께 자리에 앉자 소원 또한 두 사람을 발견했는지 반가워하는 얼굴이었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수한은 소원의 얼굴에 순간 복잡한 감정이 담긴 것을 발견하고 소원의 생각을 짐작해내었다. 따지고 보면 수한 때문에 목숨을 건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 사실이 고마우면서도 드림즈 멤버들의 죽음의 이유로 소원이 몰렸기 때문에 수한을 원망할 만도 했다. 그러나 소원은 찰나에 그 감정을 드러냈을 뿐 직접 말을 하거나 그 이상 티를 내지 않았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성민은 냉정하게 말했던 것과 다르게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듯이 소원에게 힘내라고 위로의 말을 전해주었다.
"저보다는 멤버들 가족분들이 걱정이죠."
소원의 말에 순간 성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지금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닌데 이러는 걸 보면 이 세계에 안 맞게 너무 순해 빠진 성격이다. 성민은 수한을 슬쩍 쳐다봤다. 너무 대놓고 걱정하는 얼굴이라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소원이 다른 손님을 맞이하러 가는 동안 성민이 웃음기를 숨기고 슬쩍 물어봤다.
"재원이한테 들었는데 너 드림즈 팬이라며. "
"네."
"너도 힘들겠네."
"소원 씨보다 힘들겠습니까?"
"그렇지."
시끄러운 바깥과 차분한 안. 모순적인 상황이지만, 죽은 사람들이 연예인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대중의 관심으로 돈을 벌지만, 그 때문에 사생활이라고는 없는 직업. 누군가는 어쨌든 간에 돈을 많이 버니까 좋은 게 아니냐고 말하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잘생기게 태어나도 연예인은 안 할 거야."
"네?"
"아니면 얼른 돈 많이 벌고 일 안 해도 먹고살 만하면 그때 연예인 그만둘 거야."
"로또 1등 되면 뭐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수한은 이 와중에도 이런 농담을 하는 성민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농담을 소원에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소원은 여전히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제 가자."
"네."
"아니다. 너는 조금 있다가 와라."
"네?"
성민이 검지로 가리키는 곳에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사람이 없는 복도로 가는 소원이 보였다.
"위로 좀 하고 와. 팬이니까 다른 사람들보다는 낫겠지."
그래도 되나 싶었지만, 수한도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에 성민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수한이 소원이 있는 복도로 가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저번에 봤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슬픔이 전해져왔다. 수한이 천천히 걸어가자 발소리를 들었는지 울음소리가 순식간에 그쳤다. 그러고는 웃는 얼굴의 소원이 얼마 안 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세요?"
"괜찮은가 싶어서요."
"저야 당연히······."
"안 괜찮겠죠."
수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커다란 눈망울에 순식간에 눈물이 맺혔다. 그간 쌓아온 감정이 많았을 테니 눈물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제가 살아남은 게 크게 잘못인 것 같아요. 멤버들이랑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이 이 말, 저 말 하는 걸 듣고 본 모양이다. 수한은 자신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수한이 그녀의 팬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유난히 작아 보이는 체구에도 수한은 다가가서 끌어 안아줄 수 없었다. 아직은 소원이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다만 소원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저는 소원 씨가 살아남아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늦어지는 바람에······."
"아니요. 그건 소원 씨 잘못이 아닙니다. 소원 씨가 빨리 갔다고 해서 일어난 사고가 안 일어날 거라는 보장도 없고요."
수한은 소원에게 작곡의 재능이 있음에도 꽃 피우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재능이 꽃피우기도 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한은 확신했다. 이건 절대 소원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본래 일어났어야 할 일이었고, 소원은 기적처럼 그 죽음에서 벗어난 것뿐이다.
"그러니 소원 씨가 이 일로 자기 자신을 책망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소원은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들어도 극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가 소원을 공격하고 있으니까. 아니, 소원을 안쓰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래 악의가 더 세고 강력한 법이다. 그나마 소원이 숨이라도 쉬고 있는 건 멤버들의 가족이 소원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원은 속으로는 자신을 책망하는 건 아닌지 불안하였다. 그래서 수한에게 제 속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소원 씨."
"네?"
"제가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은 여기까지이고 다음의 말은 소원 씨가 염려되어서 하는 말입니다."
"네."
"이럴 때일수록 달콤한 말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소원은 수한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수한은 잘 알았다. 원래 위기에 순간에 다가오는 달콤함이 더욱더 위험한 법이었다. 이런 말 또한 아마 귀에 안 닿을지 모르겠으나, 수한은 말해주고 싶었다.
"아마 저처럼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저를 포함해서 더 경계하시길 바랍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일 때쯤 만약 연예인 생활을 계속하고 싶으면 그때 제게 연락해주십시오. 제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
"드라마 들어간다고 화보 촬영이 잔뜩 잡힌 거 있지?"
시은의 일정이 없으므로 수한이 예진의 로드 매니저로 하루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 어차피 수한의 경력이 쌓이지 않는 한 한 연예인의 일만 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면 오늘 신경이 날카롭겠네요."
대체로 여자 연예인의 경우 화보 촬영을 한다고 하면 급격하게 살을 빼느라 먹을 것 제대로 먹지 못해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수한은 안 그래도 까탈스러운 예진이 더 날카롭게 변할 거라 생각하니 살짝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그런 수한의 염려와 다르게 재원은 웃으면서 말했다.
"뭐. 예진이야 입이 짧은 편이라 화보를 찍든 뭘 하든 쉽게 기분이 오락가락하지는 않아."
수한이 뭐 잘못 먹었냐는 듯이 재원을 보자 눈 밑에 드리워진 눈그늘이 보였다. 정신이 나간 건가 했더니 건강에 이상이 있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한소원 다른 소식 있어?"
"네?"
"팬이니까 당연히 아는 줄 알고 물어본 건데 몰라?"
"저 장례식장 다녀온 이후로 계속 일만 했는데요."
"그러네. 원래 매니저 일이 그래. 그럼 내가 알아봐 줄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소원이 먼저 수한에게 연락하지 않는 한 알아봤자 좋을 게 없었다. 좋은 소식이면 모르겠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수한이 냉정하게 거절하자 재원이 더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팬을 그만뒀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지? 솔직히 기자들이 자극적으로 쓰려고 물어뜯으려고 그러는 거지 한소원 불쌍한 건 다 아는 사실이라고. 게다가 교통사고 원인이 차에 이상이 있던 거니까."
드림즈 교통사고 소식이 가라앉을 때쯤 나온 결과였다. 그래서 더 이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소원이 먹지 않아도 될 욕을 먹은 셈이니까. 그러나 소원을 욕했던 사람 중에 반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원래 대중이란 그랬다. 욕할 때는 스포츠처럼 신나게 욕하다가도 그게 사실이 아니라 하면 그냥 그 일을 없던 일로 취급했다. 그래서 무슨 사건이든 첫 기사의 뉘앙스가 중요했다.
"저 근데 선배님."
"응? 왜?"
"저기 서 있는 거 예진 씨 아닙니까?"
"그, 그러게."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말했던 재원의 예상과 다르게 예진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분위기를 내며 주차장 앞에 서 있었다. 누구 하나 그 앞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죽일 기세여서 수한은 그 앞에 차를 세우기도 전에 침을 꼴깍 삼켰다.
< 2. 신입 매니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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