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4화 (1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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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신입 매니저 >

'그러고 보니 이번에 신곡 냈었지.'

팬이라고 했던 게 마음에 걸려서 소원이 있는 그룹의 신곡을 듣기는 했었다. 음원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너와 함께- 대중성: C, 음악성: C, 최고 순위: 62, 성장 가능성: 10%]

이왕이면 다른 곡으로라도 잘됐으면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한은 조금 전에 들었던 욕설과 함께 소원을 떠올리고는 기분이 안 좋아졌다.

"표정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한은 청심환을 사서 지훈에게 건네주었다. 지훈은 청심환을 먹고는 그제야 안도하는 얼굴이 되었다. 어지간히 긴장했나 보다. 수한은 이 와중에 소원을 걱정하는 게 괜찮은 일인가 고민하다가 촬영 시작하겠다는 말에 뻣뻣하게 걸어가는 지훈을 봤다.

"잘하겠죠?"

"저 청심환에 누가 알코올 타지 않는 한 잘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저 선배님. 궁금한 게 있는데 말입니다."

"뭔데?"

"오면서 아이돌 팬들이 몰려있는 걸 봤는데······ 여자 아이돌이 지나가는데 욕을 하더라고요. 원래 그런 건가 싶어서요."

"아! 아니, 다 그런 건 아니고. 자기 오빠들이 얽혀있는 아이돌이 지나가면 그러는 거지."

"네?"

"자기 오빠들 연애하는 꼴은 절대 못 보겠다는 심사야."

수한은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러니까 소원이 다른 남자 아이돌과 무언가 있어서 그런 반응을 했다는 거였다. 수한은 팬들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당사자가 지나가는데 욕을 하는 게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인가? 수한이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자 동현이 수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원래 아이돌 장사가 유사 연애를 기반으로 해서 그래."

"유사 연애요?"

"그래. 배우들은 연기만 잘하면 되는데 아이돌은 그래. 팬 장사로 먹고사니까.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원래 그런 곳이니까."

수한은 은근히 소원이 마음에 걸렸다. 팬이라는 말에 기뻐했던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그래도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머릿속에서 애써 지워냈다. 무엇보다 소원은 가온 엔터테인먼트 소속이 아니니까. 수한이 도움을 주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지훈이 긴장한 걸 아는지 메인 MC들이 장난스럽게 지훈에게 말을 걸었다.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지훈의 얼굴이 펴지는 게 보였다. 청심환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였다. 수한은 그 장면을 흐뭇하게 보다가 진동으로 울리는 핸드폰에 바깥에 나가 전화를 받았다. 성민에게서 온 전화였다.

"네. 김수한입니다."

[이지훈은 어때?]

"촬영 잘하고 있습니다."

[많이 긴장하지는 않고?]

"안 그래도 청심환 사다 줬습니다."

[현장은 동현이한테 맡기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

"네. 알겠습니다."

수한은 품에 있던 차 키를 들고 가 동현에게 맡겼다. 동현의 수고했다는 말에 수한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뒤 밖으로 빠져나오다가 걸음을 멈췄다.

'뭐지?'

어디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래라면 그냥 지나칠 수한이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려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수한의 시야에 들어온 건 구석에서 우는 한 여자였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보이는 정보에 수한은 씁쓸하게 웃었다.

[한소원- 스타성: C, 연기력: F, 가창력: B, 춤: B, 인지도: C, 기타: S, 성장 가능성: 99%]

아까 그 욕을 듣고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역시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수한은 품에 있는 손수건을 들고 소원에게 다가갔다. 아예 못 봤다면 모를까 본 이상 더는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수한의 목소리에 소원이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수한은 그 얼굴을 본 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공포의 집에 나오는 귀신처럼 화장이 번지면서 무서운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그 무서운 얼굴이 금세 초조하게 변하였다.

"저 지금 몇 시죠?"

"다섯 시입니다."

"어떡해!"

급하게 가려는 소원의 앞을 수한이 재빠르게 막았다. 수한은 조용히 여자 화장실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리고 손수건을 흔들었다.

"헉!"

소원은 곧바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더 큰 소리로 놀랐다. 하긴 그 얼굴을 보고 안 놀랄 사람이 있을까 했다. 수한은 팔짱을 낀 채로 복도에 서서 소원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러자 얼마 안 가 눈시울이 붉은 상태로 얼굴을 씻은 흔적을 보이는 소원이 나왔다. 하지만 무대 메이크업을 한지라 얼굴이 쉽게 닦이진 않았다. 소원은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로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얼른 가봐야겠어요."

"방송은요?"

"이미 끝난 시간이라서요. 제가 잠깐만 혼자 있을 시간 달라고 했는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갔는지 몰랐어요."

소원은 핸드폰에 수십 통 와있는 전화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저 여기서 본 건 못 본 거로 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수한이 어서 가라는 듯이 길을 열어주자 소원이 바로 갈 것처럼 하더니 멈칫하고 수한을 봤다. 수한은 무언가 기대하는 듯한 소원의 눈빛에 미소를 지었다.

"이번 신곡 잘 들었습니다. 지난번 곡 못지않게 좋은 곡이었어요."

"정말요?"

"네. 특히 한소원 씨의 목소리가 좋았습니다. 다음 활동도 기대하겠습니다."

소원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는 것보다 웃는 게 훨씬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수한이 어서 가라고 손짓하자 소원은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핸드폰을 꺼냈다.

"저기 제가 작곡을 하는데요. 한 번 들어봐 줄 수 있어요?"

"네? 작곡이요?"

"네. 작곡이요. 혼자 해본 건데 누구 들려주기 창피해서 안 들려줬거든요."

수한은 시간을 확인하려다가 말고 소원의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핸드폰만 준 걸 봐서는 이어폰은 없는 듯했다. 수한이 이어폰을 꺼내자 소원이 민망하게 웃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재생하자 신나는 음악이 들려왔다. 듣자마자 여행이 가고 싶은 트로피컬 하우스 풍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그에 맞춰 뜨는 능력치에 웃음이 나왔다.

[여름날의 휴가- 대중성: S, 음악성: A, 최고 순위: 1, 성장 가능성: 80%]

듣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떠나고 싶은 마음에 온몸이 들썩이려는 걸 겨우 절제하였다. 수한이 고개를 까딱이며 노래를 듣자 눈앞에는 긴장으로 굳어있는 소원이 보였다.

'기타 자리에 있는 S가 이런 의미였구나.'

작곡에 재능이 있었다. 노래는 아직 가사를 붙이지 않았는지 소원의 허밍이 자리를 잡았다. 소원의 목소리와 너무 잘 어울리는 멜로디였다. 노래는 약 5분 가까이 됐으나, 지루함은 없었다. 수한이 다 듣고 나서 핸드폰을 건네주자 소원의 간절한 눈빛이 보였다.

"어서 이 노래로 나왔으면 좋겠군요. 전에 들었던 노래보다 훨씬 좋습니다."

"진짜요?"

"이번에는 절대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네. 이번에는 절대 빼앗기지 않을 거예요."

벌써 흥얼거려지는 멜로디였다. 차 키를 동현에게 주고 왔기에 수한은 대중교통으로 회사에 돌아가야 했다. 수한은 조금 전에 들은 멜로디를 흥얼거리다가 그 중독성에 소름이 돋았다.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뜨는 음악이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왜 나는 처음 듣지?'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뒤돌아 방송국을 보게 되었다. 저번 곡은 수한도 알 정도로 히트한 노래였다. 그 노래보다 좋은 노래인데 처음 듣는다니 확실히 이상했다.

'뭘까?'

느낌이 이상하게 싸했다. 수한은 신호를 건너려다가 어느새 자신을 붙잡은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까만 모자에 운동복 복장. 언제 갈아입은 건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 못 알아볼 복장이었다.

"안 가셨습니까?"

"저 빼고 먼저 5분 전에 갔대요. 다 제 잘못이죠."

소원이었다. 하긴 방송국에 너무 오래 있으면 방송국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어서 기획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차비는 있습니까?"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붙잡은 거예요."

"빌리는 거 아니고 드리겠습니다."

"정말요?"

"팬이니까요."

팬이라는 단어가 만능이 아닌데도 그 단어를 쓸 때마다 소원은 지나치게 기뻐했다. 수한은 뿌듯하게 웃다가 신호가 바뀌면서 함께 걸어갔다.

"대중교통은 이용할 줄 압니까?"

"조금 오래전에 타서 기억은 안 나는데 그래도 가보면 알 거예요."

대책이 없었다. 수한은 자신을 만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돌아갔을까 걱정하면서도 이왕 이렇게 된 거 가는 길이나 봐주기로 했다. 수한이 일회용 교통카드를 사서 주자 소원은 어리둥절해 했다.

"요즘은 이렇게 나오나 봐요?"

"핸드폰으로도 충전은 가능하지만, 오늘만 탈 거니까 이걸로 하죠."

"네. 감사합니다."

"정확히 어디서 내려야 하죠?"

"잠시만요."

소원이 핸드폰으로 회사 위치를 검색하는 동안 수한 또한 가온 엔터테인먼트로 가는 길을 찾았다. 그러다가 실시간 검색어에서 이상한 걸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교통사고]

[드림즈 교통사고]

어디서 교통사고가 크게 난 모양인지 1위부터 연달아 교통사고 관련된 키워드였다. 그러나 그냥 지나치기에는 어디서 많이 본 키워드가 있었다.

"저······."

[한소원- 스타성: S, 연기력: F, 가창력: B, 춤: B, 인지도: C, 기타: S, 성장 가능성: 99%]

소원의 스타성 등급이 바뀌었다. 그러니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수한조차 파악이 되지 않았다. 다만 앞에서 소원도 수한과 같은 것을 봤는지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다. 교통사고. 소원이 속한 걸그룹 드림즈가 탄 차가 사고가 나면서 검색어를 뒤덮었다. 그 교통사고의 생존자는 없었다.

**

"우리 운전 잘해야겠더라."

"그러게요."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세게 달렸대."

수한은 급하게 가던 소원의 뒷모습을 떠올리고는 씁쓸해졌다. 소원의 스타성이 바뀐 건 소원이 그 사고로 죽을 운명이라는 거였다. 그러나 수한과 대화하면서 돌아가는 시간이 늦어졌고, 그로 인해 소원이 생명을 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유로 소원은 끔찍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소원이라는 애 불쌍하더라."

"혼자만 살아남아서요?"

"걔 기다리다가 늦어졌다고 관련자가 입 털어서 그렇지."

교통사고가 난 건 소원의 책임이 아니지만, 그 원인 중 하나였다는 이유 하나로 소원은 온 국민에게 질타를 받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럴수록 회사에서 감싸줘야 하는데 전혀 아무 조치가 없다는 거지."

"괜찮겠죠?"

"안 괜찮아도 버텨야지. 여기 생활 안 할 거면 몰라도. 그나마 다행인 건 회사 계약 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거지."

"그래서 아무 조치 안 하는 거 아닐까요?"

"하긴 거기 돈 들여도 성과가 안 나와서 버렸다는 말도 나오더라."

수한은 남의 일이라 쉽게 떠드는 성민과 재원을 지켜보다가 대뜸 한마디를 하게 되었다.

"한소원 씨요. 계약 끝나면 우리 회사로 데려오는 게 어떨까요?"

< 2. 신입 매니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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