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3화 (13/186)

< 2. 신입 매니저 >

"수고하셨습니다."

대본리딩 현장 분위기는 좋았다. 지연도 수한의 경고를 들었기 때문에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종종 멀리서 수한을 노려봤다. 의도치 않게 미움받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물론 수한은 다시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태도를 달리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내 연예인이 그래도 마찬가지지.'

수한은 시은이 방긋 웃으며 일어서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워낙 배우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 시은은 직접 주차된 밴으로 와서 올라탔다.

"나 잠깐만 화장실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한 명쯤은 미리 좀 다녀오지라고 타박할 만하지만, 시은은 얼른 다녀오라고 손짓한 뒤, 차 문이 닫히자마자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아까 화장실에서 다 들었어요?"

"네. 어쩌다 보니 다 듣게 되었습니다."

연예부 기자 이야기는 시은이 들어서 좋을 게 없어서 하지 않기로 했다. 수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은은 울상을 지었다.

"저 되게 싸가지 없었죠?"

"시비를 건 건 그쪽이니까요."

"그것까지 아시네요? 오빠는 아까 상황 못 봤으면서."

"이쪽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예인들이 좋은 기획사에 들어가려는 것이다. 수한이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적어도 이제까지 가온의 행보는 제작사들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실을 보게 하지 않았다. 예진이 하차한 드라마에도 더 적합한 배우를 찾아서 소개하여 손해를 덜 보게 하였다. 물론 그쪽에서는 감정적으로는 상했겠지만, 연예계도 굳이 따지자면 돈으로 굴러가는 세계였다. 그러니 돈으로 보상을 하면 그만이라는 뜻이었다.

"사실 저도 뭐라 할 말이 없더라고요. 예진 언니가 하고 싶다는 것도 뺏었고, 회사 힘으로 주연 자리 차지한 거 맞아서요."

"스스로가 비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조금요."

"그럼 더 잘하면 됩니다."

수한도 남을 위로할 줄은 알았다. 그러나 일부러 위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은은 주연 대결의 승자이기 때문이다. 패자도 아닌 승자에게 굳이 위로는 필요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네요. 근데 오빠. 가끔 정 없다는 이야기 듣지 않아요?"

"가끔 듣습니다."

정말 아주 가끔 듣는 소리였다. 수한은 일로는 냉정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은은 수한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연기력 하나는 자신 있었다.

"진짜 잘해서 그 높은 콧대 꺾어줄 거예요."

"네. 집으로 모셔다드리면 되는 거죠?"

"네. 갑자기 시비 걸려서 그런지 피로가 몰려오네요. 근데 동현 오빠는 왜 이렇게 안 오는지 모르겠네요."

수한이 시간을 보자 확실히 생각한 것보다 오래 걸리기는 했다. 오다가 관계자한테 붙잡힌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을 때 기분 좋은 얼굴로 걸어가는 지연이 보였다.

"어?"

시은도 지연을 발견했는지 의문을 그리다가 지연의 밴에서 몰래 나오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 남자를 본 순간, 시은도 수한도 너무 놀라서 아무 말이 안 나왔다. 지연은 누가 볼까 봐 화들짝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남자와 함께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지연이 탄 밴은 출발하였다.

"유성준 저 미친놈."

"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요."

수한은 자신이 그리 경고를 했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 두 사람에 할 말을 잃었다. 특히나 조심성 없는 건 성준이었다.

"왜 그렇게 저한테 화를 냈나 했더니 이제 이해가 가네요. 저랑 사이 알고 있었나 봐요. 잠깐 흔들렸던 내가 병신이지."

시은은 짜증을 내면서도 묘하게 후련해 보였다. 마음속에 남았던 작은 미련이 완전히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보다 지연 씨랑 유성준, 스캔들 터지지는 않겠죠?"

"글쎄요."

수한은 화장실 앞에 서 있던 남기자를 떠올렸다. 그 집념을 보면 여기 어디선가 촬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한은 동현이 급하게 달려오는 걸 보고 빠르게 시동을 걸었다. 수한은 연예부 기자가 너무 싫었다.

**

[수상한 보스, 화기애애한 대본 리딩 현장]

포털 사이트를 통해 동영상이 올라왔다. 홈페이지는 아직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노출이 가장 잘 되는 포털 사이트에 올리자 각종 커뮤니티에서 영상을 퍼갔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대본만 읽는 것뿐인데도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시은 때문이었다.

- 역시 박시은 연기 존잘

ㄴ 시은 언니 연기 너무 잘해요ㅜㅜㅜㅜ

- 개인적으로 많이 기다리는 작품입니다.

ㄴㅇㅈ 벌써 재밌다

시은에게 호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댓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물론 이 중에는 수한이 쓴 댓글도 있었다. 남자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도 있긴 했지만, 시은이 돋보이게 편집을 많이 해두었다. 가온이 이런 데서도 힘을 썼다.

"오늘 시은이 스케줄 없지?"

"네. 없어요."

"그러면 네가 대신 좀 가야겠다."

이미 수습 기한 때 다른 연예인 밴들을 실컷 타고 다녔으므로 수한은 아무렇지 않게 차 키를 받았다. 그런데 누구 데리러 가라는 건지 설명이 없다.

"이지훈이라고. 얼마 전에 회사랑 계약한 가수야. 오늘 예능 나가기로 했는데 불안하니까 차로 보내려고."

수한은 기분 좋게 가기로 했다. 배우들만 상대하다가 가수 볼 생각하니 괜히 들떠졌다. 게다가 지훈의 노래라면 수한도 좋아하는 편이었다. 지훈은 부드러운 감성을 가진 발라드 가수였다. 물론 발라드만 부르는 건 아니지만, 수한은 지훈의 발라드 노래를 좋아했다. 지훈은 노래도 잘하지만, 작사, 작곡에도 재능이 있는 가수였다. 수한은 밴에 올라타자마자 차 안을 살폈다.

"깨끗하네."

딱히 청소할 것도 없었다. 워낙 공용으로 굴리는 차라서 그런지 이 차 키를 받을 때면 괜히 더 신경 쓰게 되었다. 수한은 시동을 걸고 성민이 말한 장소로 출발하였다. 도착한 장소는 예상 밖으로 평범한 공원 앞이었다. 늘 강남 쪽으로만 운전한 수한이기에 인지도에 따라 사는 곳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수한은 공원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지훈을 발견했다.

[이지훈- 스타성: S, 연기력: F, 가창력: A, 춤: B, 인지도: D, 기타: S, 성장 가능성: 79%]

'이 사람도 사기네.'

데리고 있는 연예인들을 보면 가온 엔터테인먼트는 대형 기획사가 될 수밖에 없다. 운영 방식도 운영 방식이지만, 어디서 이렇게 알짜만 데려오는 건지 수한은 새삼스레 캐스팅 담당자에 감탄했다.

'물론 이 사람은 가온에서 대성하지는 못하지만.'

수한이 속해있는 매니지먼트 사업부만 봐도 배우에게 치중되어있었다. 수한이 봐도 가수는 겸사겸사 키우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지훈은 나중에 가수를 전문으로 돌보는 기획사로 옮긴다. 작곡의 재능이 발화하는 것도 그 시기였다. 수한은 기타를 연주하며 행복을 즐기는 지훈을 살펴봤다.

키도 훤칠하고 피부도 하얗고 곱게 생긴 게 여자들이 좋아할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가창력도 A가 뜬 걸 보니 노래 잘하는 건 확실하고. 인지도가 낮은 게 흠이긴 했지만, 수한은 알았다. 지훈은 나중에 자리가 없어서 못 파는 올림픽홀 공연을 하는 가수가 된다.

"안녕하세요. 김수한이라 합니다."

"이지훈이에요."

지훈은 눈을 껌뻑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훈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수한에게 인사를 한 뒤 기타를 조심스럽게 기타 가방에 넣었다. 기타 자체가 비싼 악기이기 때문에 기타를 다루는 사람들은 기타를 소중하게 다뤘다.

"기타는 제가 보관하고 끝나면 다시 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한은 지훈이 안전띠를 맨 걸 확인한 후 운전을 시작하였다. 지훈은 이 차가 낯선지 자꾸만 고개를 돌려 안을 살펴보았다.

"나중에 지훈 씨 전용차가 따로 나올 겁니다."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계약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데요."

지나치게 자존감이 떨어져 보이는 모습이라 수한은 그가 가수로 데뷔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인이기에 이 모든 게 낯선 것이다. 그래도 가온이 제대로 된 기획사이긴 해서 인지도를 띄우기 위해서 예능 스케줄을 잡아주었다.

"가서 시키는 것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

"네. 물론입니다. 인터뷰는 잘하셨죠?"

"네······."

시은과 다르게 관찰 예능이 아닌 토크 하는 예능이라 부담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도 수한이 기억하는 지훈은 대중에게도 평판이 좋으므로 말로 실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잘할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무리한 말을 시키면 따로 회사 차원에서 이야기할 거니 정말로 걱정할 게 없었다. 이래서 좋은 기획사에 들어가는 게 중요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다른 매니저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현이었다. 동현과 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은 어색하게 웃었다.

'이래서 신입을 새로 뽑은 거군.'

지훈에게는 동현이 딱 붙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설명해주었다. 그동안 수한은 주변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중에는 수한이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촬영 현장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다.

방송가는 아무리 봐도 구조가 기이했다. 상품인 연예인은 한 번 뜨기 시작하면 신흥 재벌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이 버는데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은 박봉이었다. 그런데도 이 일을 하는 건 이 일이 좋아서였다.

매니저 일도 굳이 따지면 돈을 못 버는 쪽에 속했으니 결국 좋아서 이 일을 선택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때 멀리서 동현이 오라고 손짓하는 게 보였다.

"긴장 많이 한 것 같으니까 청심환이라도 사와."

"네. 알겠습니다."

은근 보면 매니저는 심부름도 많이 했다. 어차피 연예인을 위한 거라서 귀찮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잡일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수한은 방송국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다가 어디선가 다수의 비명이 들려와서 깜짝 놀랐다. 뭔가 싶어서 소리가 난 쪽으로 가니 여자들이 많았다. 딱 봐도 아이돌 팬들이었다.

'오늘 음악 방송 있나 보네.'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장면이었다. 게다가 사진도 얼마나 열심히 찍는지 밑에 꽤 위험해 보이는 발판까지 받치고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는 또 어찌나 큰지 대포가 떠올랐다.

'대단하다.'

한눈에 봐도 값이 나가 보이는 카메라에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수한은 한때 저 안으로 스윗걸즈와 함께 들어간 기억이 있으므로 괜히 아련해졌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들려오는 욕에 정신이 차려졌다.

"저 미친년."

누굴 말하는 건가 싶어서 고개를 돌리니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보였다. 한소원이었다. 그 뒤에 여러 명이 보였지만, 수한은 소원을 향해 여전히 욕하는 팬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심지어 누군가는 소원이 지나갈 때 맞춰서 욕을 했다. 누가 봐도 심한 모습이었으나,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웃고 있어서 수한은 다른 의미로 소름 돋았다.

< 2. 신입 매니저 > 끝

ⓒ 엔다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