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2화 (12/186)

< 2. 신입 매니저 >

[성예진, 이전에 청순함은 잊어라. 달보드레 합류]

예진이 달보드레 드라마에 합류한 소식이 들려오면서 수한은 네티즌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수한의 일이라기보다는 걱정이 되어서 하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네티즌 반응이 생각한 것보다 더 좋지 않았다.

- 기대작이었는데 여기에 성예진을 끼얹네ㅉㅉ

ㄴ그래도 성예진 얼굴은 볼 만할 듯

ㄴ혼자 발연기하면 존나 웃기겠네ㅋㅋㅋ

ㄴ얼굴만 열일하면 뭐함ㅋㅋㅋㅋㅋ

예진이 아니어도 연기자가 본다면 기분이 크게 상할 만한 댓글들이었다. 수한은 인상을 찌푸리다가 옆에서 들려온 말에 깜짝 놀랐다.

"이 정도면 무난하네."

"네?"

"더 심한 악플도 달리는 세상인걸."

이 정도면 무난하다는 사실이 수한을 씁쓸하게 했다. 수한은 보던 인터넷 사이트를 끄고 나갈 준비를 하였다. 사실 수한이 이렇게 딴짓할 시간은 없었다. 오늘이 시은의 대본 리딩 날이었기 때문이다.

"가서 다른 연예인한테 한눈팔지 말고."

"조심하겠습니다."

수한이 잠깐 여자 아이돌에게 한눈팔았다고 저걸로 몇 번을 우려먹었다. 덕분에 수한은 오늘은 시은 외에는 다른 연예인은 절대로 보지 않기로 했다. 오늘의 시은은 수수하게 하얀 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다. 물론 시은 자체가 날개였기 때문에 평범하게 옷을 입어도 눈에 확 띄었다. 시은은 나름대로 긴장했는지 차에 타서도 대본을 손에 놓지 않았다.

"연습은 많이 했습니까?"

"했는데 가서 실수할까 봐 긴장되네요."

주연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그랬다. 아직은 주연으로 완전하게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라서 불안하였다. 사실 시은이 수상한 보스의 여자주인공이 된 것도 가온이 힘써서였다. 주연해본 것도 일일 드라마 경험이 다여서 기획사의 힘이 아니었으면 힘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수상한 보스 제작사 입장에서는 여자주인공으로 예진을 더 원했다. 두 사람의 인지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한의 연기 대결 제안이 먹힌 거였다. 예진의 입장에서는 시은을 밀어주는 게 이해 못 할 결정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온은 예진이 달보드레를 선택한 순간부터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실수하더라도 촬영이 아니니 마음 편하게 먹으셔도 됩니다."

"네."

전혀 안심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 시은은 말없이 대본만 봤다. 그 집중력에 수한도 최대한 부드럽게 현장까지 운전하였다.

"오느라 고생했다."

"아닙니다."

수한은 동현과 인사를 한 뒤 동현의 안내에 따라 올라가는 시은을 보았다. 수한은 이어서 뒤에 오는 차를 위해 서둘러 주차를 하다가 시은이 가던 길을 멈추고 인사하는 걸 지켜봤다.

'안지연.'

[안지연- 스타성: A, 연기력: A, 가창력: C, 춤: B, 인지도: B, 기타: A, 성장 가능성: 34%]

지금은 아니어도 나중에 주연이 될 여배우였다. 수한은 인사성이 바른 시은을 보며 주차를 하다가 묘하게 굳은 시은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런 시은의 옆을 지연이 차갑게 지나갔다.

'뭐지?'

옆에서 동현은 황당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수한이 다가가자 시은의 억지 미소가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렇죠?"

"여기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긴 하지. 그래도 실제로 당해보니까 되게 별로네."

조금 있다가 이야기해주겠다는 동현의 눈짓에 수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지연은 시은을 기다릴 생각도 없었는지 이미 올라가고 없었다. 원래 사소한 일로 기분 상하는 게 사람이었다.

'견제군.'

너무 뜬금없는 곳에서 터진 문제라 황당했다. 그래도 시은은 일부러 더 미소를 지었다.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서였다. 5층에 도착하자 먼저 와있던 스태프들이 시은을 반겼다.

"안녕하세요."

막상 대본 리딩 현장에 오니까 시은의 얼굴이 활짝 폈다. 이 자리까지 왔으니 주연 자리는 시은의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대본 리딩은 커다란 회의실 안에서 기다란 탁자를 두고 했다. 시은은 자신의 역할과 이름이 붙어있는 이름표를 보고 자리에 앉았다. 누가 주인공 아니랄까 봐 가운데였다. 그리고 지연은 시은에게서 조금 떨어진 자리였다.

'주·조연. 역할은 서브 여주.'

인지도만 보더라도 지연이 더 높았으므로 왜 저러는지 이해가 되었다. 수한은 이번 드라마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시은이 걱정되었다. 그런 수한과 다르게 시은은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역시 프로였다.

"안녕하세요."

한 사람씩 배우들이 안으로 들어가고 수한은 바깥에서 대기하다가 유난히 평범해 보이는 30대 중반 여성을 발견했다. 본능적으로 그 여성이 작가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푹 숙였다. 물론 능력치가 뜨지 않은 것도 한몫하였다.

"네. 안녕하세요."

시은만큼이나 긴장한 건지 여성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수한은 수상한 보스 작가의 정보를 떠올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번 작품이 입봉작이었다.

'그래서 시은 씨가 이 드라마에 들어올 수 있던 거였지.'

기획사가 달리 힘을 크게 쓸 수 있던 게 아니었다. 애초에 입봉작에 들어오겠다고 한 예진의 선택이 모험이었다. 달보드레처럼 파격적인 선택은 아니어도 예진은 모험을 꾸준히 해왔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진은 괜찮은 배우였다.

'갈수록 평가가 달라지네.'

어차피 대기 시간이 길어질 것 같으니 수한은 다른 연예인 매니저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런 사소한 인연들이 나중에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니 친분을 쌓아두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니저 일은 되도록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 하는 게 편하였다. 수한은 필요할 땐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에 열애설 잘 막아내셨더라고요."

"예?"

"솔직히 연예인 관리 중에 가장 힘든 게 연애이지 않아요?"

수한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만만해 보이는 인상인가 의심도 해보았다. 일 끝난 뒤 술자리도 아니고, 이런 데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안 좋았다. 그러나 말을 걸어온 매니저는 수한의 말을 듣지도 않고 제 할 말만 했다.

"제가 걸그룹 매니저를 잠깐 했었는데 말을 말아요. 아주 남자에 환장했다니까. 하루는 말이에요."

그러나 이런 말에 낚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장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이었다. 더불어 수한처럼 매니저 일을 한 지 얼마 안 된 신입 매니저들. 수한은 이 자리에 합류하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이 모인 틈에 그 매니저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수한이 동현의 옆으로 가자 동현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잘 빠져나왔어. 저런 게 소문을 만드는 법이니까."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적어도 수한이 본 매니저 중에는 저런 사람이 없었다. 입을 털어도 술자리에서나 입을 털었다. 물론 수한은 그것도 좋지 않게 봤다. 연예인의 뒤를 따라다니는 파파라치가 있는 만큼 매니저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에 대기하는 연예기자도 있었다.

"저러다가 얼마 못 가 잘리겠지. 안 잘리면 주변 사람이 잘릴 거고. 원래 눈치 없는 사람이 가장 오래 그 자리에 있다고 하잖아."

"네. 그렇죠."

시은에 관해서 이상한 소문만 퍼뜨리지 않는다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연예계는 서로 밟고 올라가 정상을 차지하는 세계였다. 수한은 동현의 그러한 무관심을 이해하고는 안을 살폈다. 시은이 도움을 청하면 얼마든지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시은은 얼마나 열심히 연습한 건지 대본을 읽는 것뿐인데도 감정선과 더불어 발음이 끝내줬다. 예진과는 다른 방향으로 천상 연기자였다.

'멋있다.'

시은이 긴장한 것에 비해 훨씬 연기를 잘하는 특별한 것 없는 대본 리딩 현장이었다. 아니, 그럴 줄 알았다.

"잠깐 쉬는 시간 가질게요."

너무 오래 집중했기에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동현은 시은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보고 시은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시은은 동현과 대화를 하더니 고개를 저은 후 아예 밖으로 나왔다. 수한은 시은이 걸어가는 방향을 보고 화장실이라는 걸 알았다.

'하긴 물을 많이 마셨으니까.'

수한은 서서 대기하다가 지연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발견했다. 가는 방향을 보니 지연도 화장실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수한은 한 남기자가 눈을 빛내는 걸 봤다.

'뭐지?'

남기자가 지연에 이어서 화장실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왠지 느낌이 싸했다. 수한은 그래서 본능적으로 화장실 방향으로 걸었다. 그리고 입구 앞에서 멈춰 선 남기자를 발견했다. 남기자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아니, 문제는 핸드폰을 들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음성녹음을 하는지 붉은 게 반짝이는 게 문제였지. 수한은 바로 남기자 앞에 섰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네?"

남기자가 멈칫하는 사이에 수한은 남기자의 핸드폰을 빼앗아 녹음 정지 버튼을 눌렀다. 남기자의 안색이 순식간에 하얘졌지만, 수한은 망설임 없이 파일을 삭제하였다. 그 과정 중에 화장실에서는 제법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겠네. 누구는 기획사가 힘 있어서 주연도 맡고, 스캔들도 막고."

느낌이 안 좋다고 했더니 지연이 시은에게 시비를 거는 중이었다. 수한은 남기자에게 핸드폰을 돌려준 뒤 어서 가라고 눈짓했다. 남기자는 더 있어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수한의 위협적인 눈빛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버렸다. 수한은 그대로 화장실 벽에 기대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게요. 이참에 지연 씨도 가온에 오시는 거 어때요?"

"뭐라고요?"

"그러면 지연 씨도 단숨에 주연 자리에 앉을 거 아니에요."

수한의 예상과 다르게 시은은 세게 나왔다. 시은이 반격할 거라고 생각을 못 했는지 지연이 어버버 거리는 동안 시은은 화장실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리고 수한과 눈이 마주치고는 깜짝 놀랐다. 그런 시은을 향해 수한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먼저 가 계시면 따라가겠습니다."

"네."

시은이 고개를 숙이고 수한을 지나치자 얼마 안 가 분에 죽겠다는 얼굴을 한 지연이 나왔다. 솔직히 말해 수한은 지연의 입장을 이해했다. 가온이 밀어붙여서 시은이 주연이 된 게 맞았기 때문이다. 지연 또한 수한과 마주치자 깜짝 놀랐다. 그러나 반응은 시은과 또 달랐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어서 기다렸습니다."

"저를요?"

"네. 조금 전까지 이 자리에 누가 서 있었는지 아십니까?"

"누가 서 있었는데요?"

"연예부 기자요."

수한의 말에 지연은 눈이 커진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니, 그러다 못해 화장실 안까지 들어가 안에 사람이 없나 살폈다. 다행히 여자 화장실 안에는 조금 전 두 사람이 다였다. 지연도 연예부 기자가 이 상황에 끼면 안 좋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다행히 녹음하던 거 제가 빼앗아서 삭제했습니다."

"감사해요. 그래서 저한테 그 말 하려고 남은 건가요?"

"아니요. 그저 조심하시라고 경고하는 겁니다."

안에 두 사람이 다였으면 딱히 더 안을 살펴볼 필요가 없었다. 수한은 고개를 숙인 후 지연을 뒤로 남기고, 먼저 걸어갔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있을 촬영 현장이 걱정되었다.

< 2. 신입 매니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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