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1화 (11/186)

< 2. 신입 매니저 >

"수습 딱지 뗀 거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별 이변이 없는 한 수한이 매니저로 채용되는 건 이상할 게 없었다. 수한은 시은의 로드 매니저로 가게 되었다. 성민이 말한 대로였다. 로드 매니저로서 해야 할 일은 시은의 스케줄에 맞춰 현장에 갈 수 있도록 운전하는 거였다. 현장 매니저가 따로 있으므로 수한의 일은 거의 운전이었다.

"제 소식 들으셨어요?"

"예. 수상한 보스 하기로 하셨다면서요."

"네. 거의 확정된 사항인데 아직 발표는 안 했어요."

수한이 들은 바로는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 배우도 나쁘지 않았다. 수한이 5년 후 매니저 일에 뛰어들었을 때도 연기가 나쁘지 않다고 평가되는 배우였으니까. 그런데 변수가 있다면 여자주인공이 바뀌면서 남자주인공도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하나만 바뀌어도 많은 것이 바뀌는구나.'

그 변화를 일으킨 건 시은이었다. 열애설로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나비효과처럼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수한이 걱정하는 건 자신으로 인해 무너지는 연예인이 생기는 거였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만 탑스타 자리에 오르는 연예계라고 하지만, 막상 그 광경을 이 눈으로 보게 되면 마음이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당장 성예진만 해도 그렇다. 계속해서 신경 쓰였다.

'하지만 거기에서 약해지면 매니저를 할 이유가 없지.'

수한이 목표하는 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차리는 거였다. 가온에 온 건 신뢰도를 쌓기 위한 작업이었고. 그러므로 마음이 약해지는 건 내 연예인이 기회를 달라고 도와달라고 할 때뿐이었다.

"대본은 어느 정도 나왔다고 합니까?"

"4부까지요. 읽어봤는데 좋아요."

그런데도 불안해하는 건 4부까지만 좋다고 하는 드라마가 많기 때문이다. 광고들이 4부까지 반응을 보고 들어오기 때문에 4부까지만 최선을 다해 쓰는 작가가 많았다. 물론 그건 연출도 마찬가지였다.

"나머지 대본도 잘 나올 거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안심이 되네요."

정식으로 매니저가 되었기 때문에 시은은 편하게 수한을 오빠라고 불렀다. 물론 수한은 존댓말과 존칭을 놓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시은보다는 예진과 마음의 거리가 더 가까웠다. 참 우스운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진 언니요. 그 드라마 들어간대요?"

"네. 결정 났다고 합니다."

"저도 그거 궁금해서 대본 봤는데 전개 속도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네. 아마 방영만 된다면 시청률과 화제성 둘 다 잡을 거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예진이 그 역을 소화해낼 수 있느냐였다. 그러나 본인이 하기로 한 이상 회사 차원에서는 최선을 다해 예진에게 도움을 줘야 했다.

'오늘 스케줄은······.'

지난번 댓글에서도 살펴봤듯이 관찰 예능에 출연한 게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한 번 더 출연 요청을 받아 출연하게 되었다. 어차피 곧 있으면 드라마에 들어가니 TV에 다시 얼굴을 비추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자극적인 방송에 출연하는 게 아니니까 시은에게도 부담이 없었다.

"오늘도 옅게 해달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시은은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샵에 들렸다가 현장에 데려가면 되니 수한의 마음도 가벼웠다. 그러나 샵 안에 들어선 순간 수한은 깊은 한숨이 나올 뻔했다.

'왜 하필 이런 데서 마주친 거지?'

유성준. 수한이 얼마 보지 못한 남배우 중 하나였다. 성준도 시은을 발견했는지 밝게 웃으며 아는 척하였다. 바람 핀 주제에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저 정도는 되어야 바람도 피우는 건가? 덕분에 들떴던 시은의 컨디션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저번과 비슷하게 해주시면 됩니다."

수한이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말하는 동안 시은의 시선은 성준에게 향했다. 물론 인상은 이미 찌푸려졌다.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저 정도면 미친놈이다. 그때 시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시은은 핸드폰을 보자마자 수한을 슬쩍 봤다. 수한도 시은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시은이 건네주는 핸드폰을 받았다. 수한은 그 내용을 보고 헛웃음만 나왔다.

[우리 아직 끝난 거 아니잖아.]

'뭐 이딴 놈이 다 있지?'

시은이 수한에게 핸드폰을 넘겼다는 건 수한에게 뒷일을 맡긴다는 이야기였다. 수한은 그대로 핸드폰을 들고 성준이 메이크업 받는 자리로 갔다. 성준은 시은의 답장을 기다리는지 핸드폰을 들고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었다.

"유성준 씨. 잠시 저와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수한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성준은 수한의 손에 들린 시은의 핸드폰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유성준 씨야말로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수한의 차분한 모습에 성준은 인상을 찌푸리다가 어느새 샵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미소를 지었다.

"할 이야기 있으시다고 했죠? 저쪽 가서 이야기하시죠."

넉살 좋게 웃으면서 가는 모습에 사람들의 시선이 흩어졌다. 성준은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가자마자 흥분한 목소리를 냈다.

"지금 왜 그쪽이 시은이 핸드폰을 들고 있죠?"

"시은 씨가 줬습니다. 유성준 씨 처리해달라고요."

"이건 남녀 사이의 일입니다. 그쪽이 참견할 일이 아닙니다."

"유성준 씨는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잊고 있나 봅니다. 시은 씨는 잊고 있지 않은데 말입니다."

수한이 다른 곳을 보자 성준 또한 그 시선을 따라갔다. 그리고 은근히 이쪽을 힐끔거리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랬다. 사생활 보호라고는 없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그의 직업이었다.

"시은이한테 말해주세요. 그건 실수였다고요."

"실수는 조심하지 못했을 때 잘못하는 일입니다. 잘못인 걸 아는 상태에서 하는 일이 아니고요. 시은 씨는 이미 유성준 씨 잊었으니 더는 불편하지 않게 하길 바랍니다."

수한은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시은에게로 돌아가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보이는 얼굴에 하마터면 표정 관리를 못 할 뻔했다.

"매니저 일 한다더니 진짜였네?"

최명훈이었다. 전혀 반갑지 않아 하는 수한과 다르게 명훈은 유난히 반가워했다. 수한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그래. 일은 할 만하고?"

"네. 괜찮습니다."

"여기서 만나니 내가 더 반갑네."

매니저들 사이에서는 명훈이 막내였기 때문에 '선배'라는 호칭을 듣자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명훈은 수한의 뒤에서 나오는 성준을 발견했는지 반갑게 손을 들었다.

"성준 씨. 찾고 있었어요!"

"네. 잠깐 답답해서 바람 좀 쐬고 있었어요."

누가 연기력 수치 A 아니랄까 봐 성준은 해맑게 웃으면서 명훈의 곁으로 갔다. 아마도 저게 양다리를 걸치며 여자들을 만난 비결이 아닐까 싶었다. 수한은 유난히 살가운 두 사람의 모습에 명훈이 담당한 연예인이 성준이라는 걸 금세 파악했다.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끼리 세트로 뭉쳤다. 수한은 두 사람이 자신에게 말을 걸기 전에 먼저 시은에게 갔다. 그런데 문제는 저 두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런. 이쪽을 신경 썼어야 했는데.'

수한이 성준을 상대하는 동안 시은의 감정이 흔들리면서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성준이 괜히 그런 문자를 보낸 게 아니었다. 시은의 예민한 감성을 건드려버렸다. 덕분에 당황한 건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다.

"잠시만요."

수한이 시은을 자리에서 일으키자 시은이 얌전히 따라왔다. 시은은 수한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이런 일로 흔들린 게 자존심 상했다.

"괜찮아요.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예요."

수한은 시은이 남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가림막이 되었다. 워낙 가녀린 체구를 가진 시은이라서 수한의 몸에 쉽게 가려졌다. 수한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딴짓하는 척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시은은 감정 정리가 다 되었는지 얼마 안 가 수한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일단 메이크업 수정하고 가죠."

"네······."

눈물을 조금 흘리긴 했으므로 바로 수정하였다. 다행히 화장이 번질 정도로 운 건 아니라서 금방 정리하고 수한이 준비한 차에 올라탔다.

"저 운 거 본 사람 많겠죠?"

"아마 말이 나오긴 할 겁니다."

"오빠 냉정하시네요."

"그래도 금방 감정 수습한 건 칭찬해드리겠습니다."

수한이 이온 음료를 주자 안 그래도 목이 말랐던 시은은 받아서 마셨다. 확실히 단 게 들어가서 그런지 기분이 금세 나아졌다. 아니, 이제는 그딴 놈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 게 화가 났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죠?"

"그러니까 저런 사람 때문에 울지 마세요. 상대할 가치도 없는 놈이니까."

"네······."

"그렇다고 너무 기죽지도 말고요. 즐겁게 촬영하러 가는 거니까."

시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웃었다. 기분이 안 좋더라도 프로니까 사람들 앞에서는 웃어야 한다. 그래도 수한만 시은의 흔들리는 모습을 봐서 다행이었다. 성민이 봤다면 계속 놀렸을 테니까. 물론 동현은 어색하게 모르는 척해서 오히려 시은을 신경 쓰게 할 거다.

"맞아. 예진 언니 대본 연습 상대였다고 들었는데 저랑은 안 해줘요?"

"네?"

수한의 표정이 흐트러지자 시은이 즐겁게 웃었다. 수한은 따라 웃으면서도 방심하지 않았다. 시은은 예민한 감성을 가진 배우니까 경계를 놓아서는 안 됐다. 현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시은은 내리자마자 동현과 함께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바로 촬영 설명을 들었다.

"여기서부터 들어갈 거니까 편하게 오시면 돼요."

이미 한 번 한 적이 있으므로 시은은 어렵지 않게 촬영에 들어갔다. 수한은 몇 번을 봐도 위치에 맞게 카메라를 설치해둔 것이 신기했다. 원래라면 현장 매니저인 동현만 있어도 되지만, 오늘 시은의 상태가 불안해서 수한은 끝까지 동현의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오늘 있던 일을 조용히 동현에게 전하였다.

"망할 새끼."

수한만큼이나 아니, 수한보다 더 동현은 크게 분노했다. 당연했다. 수한보다 동현이 시은보다 함께 시간이 길었으니까.

"착한 애들한테는 꼭 그런 양아치 새끼들이 꼬이지."

수한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생긴 외모를 타고나면 주변에 안 좋은 사람들이 엮이는 건지 남자 연예인 중에는 유독 양아치 출신이 많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런 쪽을 동경하는 사람들. 수한이 보기에는 한심스러웠지만, 워낙 사는 세계가 좁아서 그런지 이 세계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접근할 것 같아?"

"경고하긴 했지만,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잘 끊어냈어."

동현이 어깨를 토닥여주며 수고했다고 말해도 수한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결국, 수한이 집에 돌아갔을 때는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시은의 관찰 예능 촬영은 다행스럽게도 감정 기복 없이 무사히 잘 끝났다.

< 2. 신입 매니저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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