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10화 (10/186)

< 1. 새 시작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런 데서 만나게 될 줄 몰랐네요."

소원이 먼저 인사를 한 이상 수한도 이제 아는 척하기로 했다. 소원은 살짝 미소를 짓기는 했으나, 여전히 표정은 어두웠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걸 내가 물어봐도 되나?'

수한은 멋쩍게 목덜미를 긁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소원에게 집중했다. 소원은 말하면서도 뭐가 그리 섭섭한지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저번에 좋다고 한 곡 있잖아요. 그거 후배들한테 넘어갔어요."

그러나 눈물은 흘리지 않으려는지 열심히 눈을 치켜 올리는 게 보였다. 수한은 혹시 몰라 챙겨 다니는 손수건을 꺼내 소원에게 건네주었다. 언젠가 손수건이 필요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 거였군.'

분명 좋은 곡이었다. 수치상으로도 그렇고, 실제로 흥한 노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좋은 곡을 후배들에게 넘겼다는 건 확실히 불안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기획사에서 후배 그룹을 적극적으로 밀어준다는 뜻이니까.'

"기대하신다고 해서 꼭 부르고 싶었는데······."

"아닙니다. 다른 좋은 곡이 또 있을 거예요."

수한은 두 번째 보는 것치고 조금 과한 반응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날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했다. 팬이라고 했다. 만약 그걸 기억하고 이러는 거라면 이해는 되었다.

"그렇겠죠?"

"물론이죠. 다만 그 기회를 잡으려면 평소에 연습을 열심히 해두는 것밖에 없죠."

성장 가능성 수치가 있으니 열심히 하면 될 것이다. 수한은 팬이라는 말 하나에 크게 반응해준 소원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었다. 아무래도 소원을 보고 있으면 스윗걸즈가 떠오르니까.

'이러다가 모든 걸그룹을 응원하게 생겼네.'

하지만 실제로도 걸그룹을 안쓰러워하기는 했다. 걸그룹은 더울 때는 입히고, 추울 때는 벗겨지는 직업군이니까. 게다가 몸매 관리도 만만치 않게 해야 해서 날씬하다 못해 말라서 건강이 걱정되는 애들투성이였다. 아무래도 카메라 화면에 잡히는 모습은 실제보다 부하게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연예인이라는 피곤한 직업이다.'

신흥 재벌이라고 불릴 정도로 돈을 많이 벌기도 하지만, 그 돈에 비례해서 과도한 관심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이기도 했다. 수한은 자신이 건네준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눈물을 닦아내는 소원을 지켜보다가 과자 하나를 집었다.

"이건 팬으로서 제가 사드리겠습니다."

"아니, 과자는 먹으면 안 되는데······."

말과 다르게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먹는 대신 운동을 많이 해야겠지만, 결국 소원은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수한은 시은에게 줄 이온 음료까지 함께 결제한 뒤 소원과 헤어졌다. 물론 헤어질 때의 소원은 눈물을 더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직업이 아이돌이라는 걸 인식했는지 밝은 얼굴로 힘내보겠다고 말하였다. 수한은 샵으로 돌아가면서도 연예계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것이라고 들어온 것도 마지막까지 내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네.'

기회가 왔을 때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잡아낼 수 있는 게 중요했다. 수한은 자신의 연예인이 원한다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매니저였다. 수한은 소원처럼 허망하게 자신의 연예인이 원하는 것을 빼앗기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를 생각하면 가온 엔터테인먼트를 시작으로 삼은 게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수한이 하는 말을 들어주는 곳이니까.

**

"시은이 관찰 예능 나간 거 평 좋더라."

"네. 댓글 확인하고 있습니다."

얌전한 것 같으면서도 시원시원해서 좋다는 평이었다. 이래서 관찰 예능에 나가는 연예인들은 부담감이 덜했다. 게다가 시은이 주어진 상황대로 잘 대처한 것도 있었다. 수한은 자기 일처럼 어깨가 쑥 올라갔다. 이 맛에 매니저 일을 한다. 물론 수한이 한 일은 차로 데려다준 것뿐이지만 말이다.

'일단 수습 딱지를 떼야 뭐라도 해볼 텐데.'

"수한아. 오늘은 예진이다."

"아! 네!"

안 그래도 대본을 본 예진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에 수한은 즐겁게 재원을 따라나섰다. 그러나 막상 마주한 예진은 대본만 지긋이 째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무슨 스케줄인지 듣지 못했다. 수한이 의문을 담아 재원을 보는 동안 예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이 대본 추천했다며?"

"네? 네."

"무슨 생각으로 추천한 거야?"

"그냥 들어본 대본 중에서 가장 재미있어서요."

"그래. 재미있는 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예진이 연기를 잘 못 해도 여자주인공 역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주제 파악을 잘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번 일로 연기 등급이 오르긴 했지만, 수한이 생각하기에는 예진의 C등급이 B등급 직전이었기 때문에 성장한 게 아닐까 짐작하였다.

"너무 부담스러우면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선택은 예진의 몫이었다. 수한의 대답이 정답이 아닌지 옆에 있던 재원이 노려보는 게 보였다. 수한은 대체 어쩌자는 건지 몰라 얌전히 예진의 반응만 기다렸다.

"재원 오빠."

"어! 예진아!"

"오빠가 보기에는 내가 어떤 이미지야?"

"뭐?"

"대중들이 보기에 말이야."

"청순하고 예쁜 여배우?"

수한도 예진을 직접 보기 전에는 그런 이미지였기 때문에 공감하였다. 물론 입을 열자마자 그 이미지가 바로 깨졌지만 말이다. 수한은 그때 일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다가 노려보는 예진의 시선에 미소를 싹 지웠다.

"왜 그렇게 웃어?"

"네? 안 웃었는데요."

"분명 웃었는데?"

"아닙니다."

예전이라면 예진의 말 한마디에 눈치 보고 그랬겠지만, 대본 연습을 함께 하면서 어느 정도 편안한 분위기가 생겼다. 예진도 더는 뭐라 하지 않고 다시 신중하게 대본을 들여다봤다. 성민의 말대로 잘못하면 독이 될 거라는 사실을 예진도 인지하였다.

"내가 잘할 것 같아?"

"엄청 노력하셔야 합니다."

"노력하면 될 것 같아?"

옆에서 재원이 고개를 흔드는 것과 상관없이 수한은 예진의 열정을 알기에 자신 있게 답했다.

"네. 됩니다. 다만 이걸로 연기력을 인정받기는 힘들 겁니다."

"평범하게 묻어가는 건 돼도 내가 중심을 잡기는 힘들 거라는 거구나."

예진은 힘없이 소파에 몸을 기댔다. 너무 냉정하게 말해서 상처받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수한은 그런 점에서는 냉정한 편이었다. 함께 연기 연습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기에 예진은 도리어 마음이 편했다.

"그럼 평범하게 묻어가 보자."

"뭐?"

재원이 당황한 게 보였다.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하는 수한과 다르게 재원은 예진이 이 작품을 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야 잘 만들어놓은 필모그래피에 흠집이 생길 수 있으니까. 이미 발연기를 해서 네티즌들의 짤방감으로 쓰이는 배우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예진이 그 무리에 합류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최선을 다할 거야."

"그래야죠."

수한은 두고 보자는 눈빛을 보내는 재원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었다. 자신의 배우가 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매니저로서 그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최선이다. 무엇보다 수한은 예진의 연기에 대한 열정을 믿었다.

"너 제정신이야?"

예상대로 재원은 주차장으로 나오자마자 크게 화를 내었다. 예진의 결정이지만, 수한이 부채질을 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여서 수한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응답하였다.

"내가 이러려고 널 데려온 줄 알아? 말리라고 데려온 거였어. 이 작품으로 예진이 이미지 망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 책임은 누가 질 건데?"

수한은 왜 그런 열정이 있는데 예진이 같은 연기를 한다고 욕먹었는지 사실은 이해가 잘 안 되었다. 그러나 재원의 태도로 대충 짐작이 되었다. 예진은 연기는 못 할지 어도 그동안 소화할 수 있는 역할만 맡아 그럴듯한 필모그래피를 만들었다. 아마 그것은 수한이 5년 후 연예계에 뛰었을 때도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예진은 그동안 모험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예진의 모험이었다.

이 작품이 예진에게 좋은 기억을 준다면 앞으로도 모험해볼 것이고, 주지 않는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수한이 담담하게 재원을 보자 재원은 주먹을 꽉 쥐더니 흥분한 상태로 밴에 올라탔다. 이 와중에도 재원은 차를 회사에 반납하는 걸 잊지 않았다.

**

"너 또 사고 쳤다며?"

재원의 푸념이 성민의 귀에도 들어갔는지 성민은 꽤 즐거워 보였다. 성민은 재원과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너무 같은 역할만 해도 지겹잖아. 예진이 결정 이해해. 명색이 배우인데 그래야지. 게다가 잘하면 이미지 변신도 가능하고. 난 솔직히 후반부에 흑화하는 모습 말이야. 예진이 본래 성격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처음에 막장 드라마라고 걱정했던 사람이 성민이 맞나 싶었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예진에 대한 험담까지 함께 해서 수한은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이거 예진이한테 말하면 안 된다?"

"말 안 합니다."

"그래. 내가 재원이는 못 믿어도 너는 믿어."

처음 매니저 일을 했더라면 믿을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수한은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 걸 잘 알았다. 솔직히 담당 매니저도 아닌 사람이 이런 식으로 참견하는 걸 다른 매니저가 좋아할 리가 없었다. 수한은 성민이 계속해서 이 일을 입에 담는 게 경고라는 걸 알아들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그래. 모르면 그럴 수 있지. 어차피 내일이면 수습 딱지 떼니까 앞으로는 조심해. 사실 의도한 걸 제대로 말 안 해주고 데려간 재원이 잘못도 있지."

수한에게 말했던 것처럼 예진이 그 작품 선택하는 걸 막기 위해 수한을 데려간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수한이 '성예진'이라는 배우에 흥미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오늘은 메일 온 거만 잘 정리하고 가."

"네. 알겠습니다."

성민은 수한의 어깨를 툭 친 후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수한은 누구도 자신을 보지 않는 걸 확신한 후에야 쓴웃음을 지었다. 수한은 메일 정리를 하면서 시은이 출연한 드라마를 봤다. 앞으로 시은의 로드 매니저가 될 것이기 때문에 틈틈이 봐두는 게 좋았다. 시은은 과연 연기를 잘했다. 특히나 사랑에 빠지고 상처를 받을 때 연기가 너무 섬세해서 수한은 감탄하면서 봤다. 감정선이 섬세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감정을 공유하게 했다.

'이렇게 섬세하게 연기하는 사람이면 감성이 예민하겠는데?'

그러니까 사랑에 상처받고 연예계를 떠난 것이다. 수한은 이 사실을 유의해두기로 했다.

< 1. 새 시작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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