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 탑스타-3화 (3/186)

< 1. 새 시작 >

"일은 할 만해?"

"네."

수한은 제 근처에 와서 어슬렁거리는 명훈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한은 핸드폰을 들어 거울처럼 핸드폰 까만 화면에 제 얼굴을 비추었다. 까만 화면 위로 잘생긴 얼굴이 보였으나, 수한이 알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호구 같이 생겼나?'

"여기도 얼마 안 가 못 올 거라 생각하니 아쉽네."

명훈은 기지개를 켜며 아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비밀로 해달라고 하더니 누가 관심종자 아니랄까 봐 명훈 스스로 아는 형이 일자리를 추천해줘서 간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수한은 그런 명훈을 탐탁지 않게 봤지만, 명훈은 이상할 정도로 수한을 좋아했다.

'징그러운 놈.'

이랬던 사람이 나중에 뒤통수를 세게 칠 거라 생각하니 열 받았다. 수한은 잔정에 약한 편이라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명훈을 볼 때면 약간은 흔들렸지만, 그때마다 함께 행사를 뛰러 간 스윗걸스를 떠올렸다. 그들을 생각하니까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명훈이 뒤통수를 치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은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수한은 부들거리는 속을 달래며 손에 든 빗자루를 세게 쥐었다.

"그러고 보니 극 내리고 송별회 해준다고 하는 데 올 거지?"

"네. 그래야죠."

수한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청소를 마저 했다. 드디어 수한이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왔다. 수한은 스태프 일을 하면서도 1종 보통 면허를 땄다. 매니저를 하려면 로드 매니저부터 시작할 테니 운전은 필수였다. 당연히 매니저 일을 하면서 운전을 많이 한 수한이라서 한 번에 합격하였다.

"내가 저번에도 말했지만······."

"네. 기억합니다.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내가 너를 얼마나 이뻐하는데!"

안정적이게 자리를 잡으면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수한은 그런 요청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선배님이 뭐래?"

수한이 무대 소품을 정리하는 동안 동선을 맞춰보던 우리가 다가왔다. 분장한 상태라 그런지 평소 얼굴보다 이목구비가 진해졌다.

"다른 일 구할 생각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하셨습니다."

"진짜 극단 분위기 흐려지게 뭐 하는 거야."

명훈은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으면서도 몇 명에게는 미움을 받았다. 우리는 후자였다. 수한이 들어오기 전에 싸운 전적도 있다고 하니 수한은 우리의 반응을 이해했다.

"원래 떠나는 사람은 조용히 떠나는 거야."

명훈과 비교하면 배경이 탄탄한 우리라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어쩌면 명훈이 쫓겨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면 속이 시원해야 하지만, 수한은 그러지 못했다. 수한 또한 그런 식으로 이 바닥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남은 사람끼리 잘하자."

"네. 선배님!"

우리의 말대로 떠날 사람은 조용히 떠나는 게 좋았다. 수한은 이전과 다르게 떠나는 모양새가 달라진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수한이 어떻게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이제까지 그래왔던 환경이 쉽게 바뀔 리가 없었다. 수한에게 단단한 배경이 없는 한 파벌을 없애고 다 같이 즐기자는 말은 메아리 없는 단순한 외침이었다.

'오늘도 끝나고 공원에 있어야겠군.'

다른 사람의 능력치를 볼 수 있는 이 능력은 은근히 사람 구경하는 재미를 주었다.

'아직 능력치가 뛰어난 사람을 보지 못했지만.'

공원에서 공연하는 사람 중에 스타성 C까지를 봤으나, 매니저 직함도 달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것을 본다고 한들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선 매니저가 되어서 경력을 쌓는 게 중요했다. 수한이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연극은 시작되었다. 몇 번을 반복했던 연기인지라 우리는 이제 능숙하게 연기를 했다. 수한은 뿌듯하게 관객석을 보다가 멈칫했다.

'어?'

[유성준- 스타성: B, 연기력: A, 가창력: B, 춤: F, 인지도: B, 기타: B, 성장 가능성: 51%]

이제까지 본 능력치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모자를 깊게 써서 얼굴을 안 보이나, 이 능력치는 모자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뚫어버렸다. 성준은 라이징 스타였다. 이제 막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였다. 수한은 옆에 있는 여자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은 성준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비밀 연애를 저런 식으로 하다니.'

옆에 여자에게선 능력치가 안 뜨는 걸 보니 연예인은 아닌 듯했다. 참 조심성 없다. 팬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물론 아이돌처럼 팬덤이 크게 형성되지는 않았겠지만, 어느 정도 조심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고 보니 거기서 크게 뜨지는 못한 것 같네.'

수한의 기억에 의하면 성준은 라이징 스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같이 작품 한 여배우와 열애설이 터졌기 때문이다. 흐릿하지만, 여배우 쪽이 훨씬 인지도가 높았던 거로 기억한다. 그러나 떨어지는 건 함께였다. 유성준은 얼마 안 가 그 여배우와 헤어졌지만, 그 이후로 차기작에서 건강을 이유로 중간에 하차해서 방송가에서 평이 나빠졌다.

'그보다 그 여배우가 누구였는지가 기억이 안 나네.'

이 시기에는 오롯이 연극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잠깐만, 그렇다면 지금은 바람을 피우는 중이라는 거 아닌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열애설 터진 시기가 이때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여자 문제가 꽤 복잡했다는 것 같던데.'

나중에 방송계로 들어갔을 때로 들은 이야기라 그 또한 흘려들었다. 수한은 팔짱을 끼며 무대를 보다가 어서 움직이라는 신호에 조용하면서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 순간, 찰칵 소리가 들려서 객석 안을 봤지만, 카메라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수한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확인한 핸드폰 문자에 미소를 지었다.

[가온 엔터테인먼트입니다. 1차 서류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면접 일정을 아래와 같이 안내해드립니다.]

**

왜 지인 추천으로 갔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신입 매니저를 구하는 곳은 많았다. 수한은 그중에 미래에서도 살아남은 기획사들을 살펴봤다. 처음부터 큰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매니저 일을 하려면 경력이 필요하고, 그 경력이 쌓을만한 곳을 찾아서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해서 고르고 고른 기획사가 가온 엔터테인먼트였다. 가온은 현재 중소 기획사이지만, 나중에 대형 기획사로 변하게 된다. 수한은 그 성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었다. 가서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어떤 계기로 지원을 하게 되셨나요?"

면접장 분위기는 확실히 추천으로 들어갈 때와는 달랐다. 수한은 많은 일을 겪었기에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으나, 역시나 이런 자리는 늘 긴장되었다. 그러나 그 긴장을 감추는 건 쉬운 일이었다. 수한은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TV를 보면 연예인들은 한없이 빛이 나죠. 그래서 연예인을 스타라고 부르고요. 그러나 그 스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이 동원되죠. 그 빛을 나게 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제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제 손으로 갈고 닦은 보석이 빛나는 걸 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습니다."

수한이 다시 매니저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데에는 이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열정이 얼굴에 드러났기 때문에 질문을 던진 인사과 팀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일이 너무 힘든지라 열정만 가지고 하기에는 힘들지만, 어차피 그런 사람들을 골라내라고 수습 기한이 있는 거였다.

"만약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느 쪽에서 일하고 싶으세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배우를 맡게 된다면 경험이 있으니 괜찮았고, 가수를 맡게 된다면 새로운 경험이니 나쁘지 않았다. 스윗걸스로는 얼마 활동을 못 했기 때문이다. 수한은 스윗걸스를 떠올리니 미안한 마음부터 들었다. 자신이 조금만 더 현명하게 굴었더라면 그런 식으로 끝을 맺지 않았을 텐데. 마음 같아서는 그들을 찾아내어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나이는 현재 초등학생이 됐을까 말까였다.

어쨌거나 수한은 면접을 보면서도 알았다. 저렇게 묻기는 했지만, 어차피 수한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인원이 부족한 자리에 넣을 테니까.

"좋아요. 면접 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결과는 이번 주 내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한은 면접실에서 나오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꽉 쪼였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자 어느 정도 목이 편해졌다. 그래도 면접이니까 이런 정장도 입었지, 본격적으로 매니저 일을 하게 되면 편한 옷을 입을 수 있다.

'일단 로드 매니저부터 시작인가?'

가온에서 떨어뜨릴 가능성도 있으나, 이상하게 감이 좋았다. 수한은 기분 좋게 나가다가 먼발치에서 보이는 여자의 얼굴에 걸음을 멈추었다. 거리가 상당히 있음에도 날씬한 몸 선에 예쁘장한 얼굴이 보였다. 수한은 새삼 처음 로드 매니저가 되었을 때 일이 생각났다.

'그때만 해도 연예인들 볼 때마다 신기해서 눈이 계속 돌아갔지.'

누구를 봐도 잘생기고, 예쁘니 신기했다. 심지어 방송에서 볼 때 안 예뻤던 연예인도 예쁘니 수한은 카메라발 안 받는 연예인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한의 잘생김 정도는 어디를 가서 명함을 내밀 수준이 아니었다. 방송가에서 보면 평균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건 연예인 기준이지 매니저 기준은 아니었다. 수한의 잘생긴 외모 덕분에 수한은 이쪽 계열 인맥을 생각보다 쉽게 얻게 되었다.

'여자 매니저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으니까.'

매니저 하면 남자 매니저만 생각했는데 여자 매니저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게다가 직급도 팀장에다가 실장, 이사인지라 여자라 해서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됐다. 수한은 조금 더 가까워진 거리에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거로 인사하기로 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서민아- 스타성: S, 연기력: B, 가창력: C, 춤: A, 인지도: E, 기타: S, 성장 가능성: 90%]

수한은 능력치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서민아. 지금은 아닐지라도 몇 년 후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로 크게 떠서 탑스타 계열로 갈 배우였다. 외모도 예쁜 편이긴 하지만, 연기력으로 승부는 배우이기 때문에 연기력이 높은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한이 놀란 건 다른 거였다.

'스타성과 기타가 S?'

조금 더 연예인을 봐야 알겠지만, 이 수치가 보인다는 게 엄청난 능력이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수한은 못마땅하게 자신을 보는 민아의 눈빛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수한은 고개를 바로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연예인은 처음 봐서요."

"네."

민아는 짧게 대답한 뒤 수한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반응을 보아하니 딱히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그보다 조금 전에 봤던 서민아의 능력치가 어마어마하다. 탑스타가 되려면 그 정도는 능력치는 되어야 한다는 것 같아서 수한은 쓰게 웃으며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하였다.

[김수한- 스타성: E, 연기력: B, 가창력: C, 춤: B, 인지도: F, 기타: ???, 성장 가능성: 0%]

몇 번을 봐도 변함이 없는 수치다. 수한은 엄청 그른 길이니 빠르게 포기하기로 했다. 그보다 만약 붙는다면 누굴 맡게 될지 설레었다. 사실 매니저 생활을 오래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어떤 연예인을 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연예인도 사람인지라 여러 성격이 있으니까.

'천사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마 같은 사람도 있지.'

악마 같은 사람에게 걸려서 그만둔 동료를 알기 때문에 수한은 이 능력치가 주어진 행운처럼 성격 좋은 연예인을 만나기를 바랐다.

< 1. 새 시작 > 끝

ⓒ 엔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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