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클리셰
너무 색다른 것은 거부반응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유토피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여론은 그리 좋지 못했다.
【가상현실게임, 안전 여부에 관심 쏠리다】
【가상현실 접속, 건강에 끼치는 영향은?】
【중독센터장 曰, 과도한 게임중독 우려】
새로운 도전에 재를 뿌리기라도 하듯 부정적인 뉴스가 쏟아져나왔다.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우려를 표했고 유토피아가 게임중독자를 양산하는 게임이라는 뉘앙스의 기사가 쏟아져나왔다.
현직 천지일보 기자, 신천만도 그 상황을 분명히 목도했다.
‘난리도 그만한 난리가 없었지.’
신천만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유럽, 미국 등지에서 안정성 테스트를 거친 가상현실접속 기기를 트집 잡는가 하면.
어떻게든 재를 뿌리려 안간힘을 썼다.
기존 게임사들의 로비를 받은 언론들이 화력을 쏟아부었다.
유토피아를 흠집 내기 위해 말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유토피아는 예정대로 게임을 세상에 내놓았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유토피아의 압승이었지.’
유토피아의 인기야 말할 수 없이 훌륭했다.
기존 게임과는 가지고 있는 콘텐츠의 양부터 비교가 안 되었으니까.
콘텐츠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유토피아가 한국경제에 일으킨 새로운 바람이었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졌지. 다들 많이 버니까 많이 쓸 수밖에.’
저출산, 저성장, 저소득으로 시름시름 앓아가던 한국경제에, 유토피아는 새로운 불씨가 되었다.
생각보다 한국의 10대, 20대의 게임 실력은 훌륭했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될 만큼.
‘게임을 거의 목숨 걸듯이 하니까.’
한국인은 게임에 접근하는 태도부터가 달랐다.
그들은 죽기 살기로 노가다를 하고, 싸우고 달려들었으니까.
반면 일본, 중국, 유럽인들은 기웃기웃 여행도 하며 게임을 즐겼다.
이런 태도의 차이 덕분에, 한국인 플레이어는 다른 나라 플레이어보다 평균 소득이 월등히 높았고.
소득이 높아지니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한국인의 이런 특성은 해외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유토피아 내 한국인 평균 소득, 타국 대비 1.2배 이상 높아, 과연 게임 개발국다워】
【CNN 보도, 한국인에게 게임 유전자 있나 논란 정리】
【EU, 한국인 이민 적극 환영 의사 밝혀.】
이런 한국인 특유의 성공신화에 정점을 찍은 경우가 있었으니.
바로 호준의 등장이었다.
호준이 가진 타이틀은 너무나도 많았다.
【레전더리 직업 보유자】
【최초의 요정왕】
【생산직, 요리하는 농부】
【본업은 요리사】
【방송도 겸사겸사】
그는 특유의 여유 있는 태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두루 받고 있었다.
그는 남들처럼 과욕을 부리지도 않고.
오히려 손해를 보는 듯 장사를 해나갔다.
재룟값도 안 나오는 가격으로 음식을 파는, 거의 자선사업같이 장사를 할 정도니.
‘인기가 없는 게 더 이상하지.’
오늘도 기삿거리를 물어갈 심산으로 호준의 방송을 시청하던 신천만이었다.
막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그는 화면에 집중했고.
유령들에게 버섯 샤브샤브를 나눠주고서 여유가 생긴 호준이, 드디어 시청자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음, 질문이 여러 가지가 있네요. 하나하나 답해드리겠습니다.”
호준이 쌓여가는 질문들을 답할 때마다 신천만의 펜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는 호준이 말하는 키워드를 정리하며 입술을 짓씹었다.
시청자들과 대화를 시작한 지 한 5분 정도쯤 되었을까.
호준이 잠시 질문이 감소하자 넌지시 깜짝 뉴스를 발표했다.
“오늘은 목욕탕 개점 기념으로, 모든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겠습니다. 새로 선보이는 버섯 샤브샤브를 드시고 싶으신 분들은, 2시간 뒤. 가게에서 만나요! 천 명이 오시든, 이천 명이 오시든 전부 대접하겠습니다!”
호준의 결단은 그에게는 별 것 아닌 것일지는 몰라도.
금액으로 보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하루 장사할 때마다 그가 벌어들일 수익이 얼마인지 신천만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시청자들 또한 예측하고 있었다.
‘정말로 돈에 욕심이 없는 녀석이란 말야.’
신천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차를 호로록 마셨다.
찻잔 너머로 채팅창이 쉼 없이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가히 경악을 넘어서 경탄에 가까웠다.
└ 【통큰닭집】: ㅎㄷㄷ. 지금 줄 서러 달려갑니다.
└ 【매일츄츄】: 저도 지금 달려감 2222
└ 【별이바라기2】: 요새 가려고 돈 모으는 중이었는데. ㅠㅠ 감동입니다. 얼른 먹으러 갈게요!
└ 【대용량음식킬러】: 통 큰 결단, 우리끼리만 압시다. 얼른 ㄱㄱㄱ
└ 【갓호준팔로워】: 역시 갓호준 님 클래스 지리고 갑니다! 오늘도 뵈요!
‘이러니까 팬이 생길 수밖에.’
자고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베풀수록 더 훌륭해 보이는 법이다.
하물며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고 악을 쓰고 횡포를 부리는 유토피아에서는 더더욱.
호준의 베푸는 행위가 독특하고 튀었다.
더 이상 볼 필요 없다고 여긴 신천만은 방송 접속을 해제하고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켰다.
타닥 타닥 타닥―
그는 메모했던 내용을 기반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대강의 얼개를 만든 뒤, 마지막 문장까지 타이핑을 끝내고.
제목란에 커서를 둔 그는 잠시 고민한 끝에 문장을 써 내려갔다.
【갓호준의 남다른 클래스, 금일 무료 장사 개시】
【수많은 인파 예상돼, 빠른 마감 예상】
【먹고 싶다면 지금 당장 줄 서야】
【신메뉴는 버섯 샤브샤브, 특1급이라고 밝혀 화제!】
“업로드 완료!”
업로드까지 마친 신천만은 기지개를 쭉 켜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몸을 쭉쭉 늘리며 그는 프로그램을 통해 유입수를 확인했다.
‘역시 빨라.’
그의 기사는 상위 랭킹으로 치솟고 있었다.
남들보다 빠르게 갓호준의 기사를 작성한 대가였다.
* * *
버섯 샤브샤브가 유령에게 끼친 영향은 막대했다.
칼리니 여왕부터 수많은 유령이 요리에 만족했고, 그 결과 호준은 유령들에게 둘러싸여 관심의 중심이 되었다.
유령들은 처음 이곳에 들어온 인간이 신기한 듯한 눈치였다.
“후후! 근 천년 만에 먹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네.”
“입맛에 맞으셨다니 다행이군요.”
음식에 대한 감사 인사가 가장 많았고.
“푹 끓이고 버섯을 최대한 많이 넣을수록 국물 맛이 살아납니다.”
“흠. 알겠네. 잘 새겨두겠네. 질리도록 먹었던 버섯인데 이제는 맛있게 먹을 수 있겠구만! 요리법을 알려줘서 고맙네, 고마워!”
“별말씀을요.”
요리법을 전수해 앞으로 계속 먹을 수 있게 했다.
신전 깊숙한 곳에 버섯들이 자라는 산지가 있다고 했다나.
유령들은 안 먹고 살 줄 알았는데 그들도 먹을 것 먹으면서 사후세계를 즐기면서 살고 있었다.
“늙으니까 이가 시려서 죽겠는데 버섯 샤브샤브는 먹을 만하구만. 꼬치보다 덜 씹어도 되고 너무 좋아. 고맙네, 고마워!”
몇몇 나이든 유령들은 단단한 음식은 못 먹었던 터라 버섯 샤브샤브를 반겼다.
대화가 끝나갈 때쯤, 칼리니 여왕이 쭈뼛쭈뼛 그의 앞에 섰다.
그녀는 이전과는 달리 교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그 대신 넌지시 주머니 하나를 건넸다.
“이건 이 신전에서만 나는 죽음의 풀 씨앗입니다.”
“죽음의 풀이요?”
“네. 이 풀로 약을 만들면, 12시간 동안 가사상태에 빠지게 할 수 있지요.”
“가사상태라는 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거로군요.”
“네. 적에게 사용하기 좋을 겁니다. 비상시에 약으로 만들어뒀다가 적에게 뿌리세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호준은 검은색 주머니를 잘 받아 인벤토리에 챙겨 넣었다.
칼리니 여왕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악수를 청했다.
“유령들을 대표하여 감사합니다. 근 천년 간 이렇게 배부르게 포식한 적은 없었지요. 사실 불가능할 거라 여겨서 내건 것이었는데. 제가 실력을 못 알아봤습니다.”
“요리사가 요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인걸요.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어깨를 으쓱하는 호준의 태도에 칼리니 여왕의 동공은 커졌다.
역시 눈앞의 이는 조금 달랐다.
자만할 만한 실력이 있음에도 자만하지 않고.
그저 무념무상이랄까.
그래서 더 호감이 갔다.
‘목걸이의 주인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자신의 목걸이를 주어도 될 만큼.
“그럼 저는 약조대로 저주를 풀어드리겠습니다. 목걸이를 꺼내주십시오.”
호준이 목걸이를 꺼내자 칼리니 여왕이 손바닥을 위로 향하며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녀가 작게 읊조리기 시작하자 연녹색 빛 알갱이들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수십 개를 넘어, 수백 개를 넘어.
마침내 수천 개의 알갱이가 회오리를 형성했다.
휘이이잉―
빛의 회오리가 목걸이를 감싸더니, 알갱이들이 목걸이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알갱이들이 온전히 목걸이에 흡수되자 호준은 발견할 수 있었다.
‘색이 바뀌었어.’
보석의 색깔이 연녹색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호준이 목걸이를 살짝 쥐었다 폈다 하자 칼리니 여왕이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매혹적인 목소리였다.
“위대한 요리사이자 유령을 감동시킨 자여. 목걸이의 저주는 풀렸습니다. 이제 이곳을 언제든지 나갈 수 있습니다. 부디 안전히 귀가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칼리니 여왕과 악수를 하는 순간.
호준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성공이군.’
그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은 반짝였다.
눈앞에는 그를 기쁘게 하는 메시지가 한가득이었다.
【당신은 칼리니 여왕의 목걸이의 온전한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칼리니 여왕의 목걸이(특2급)의 저주가 완전히 풀렸습니다】
【이제부터 본 아이템의 정보를 전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본 아이템의 거래가 가능합니다】
【매우 진귀한 특2급 아이템을 획득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달그락―
손바닥 위에 느껴지는 목걸이의 존재감은 아주 묵직했다.
* * *
칼리니 여왕과 헤어지고 10분 뒤.
호준은 라텔 부모님의 유골을 찾아 다시 입구로 돌아왔다.
칼리니 여왕이 위치를 알려준 덕분이었다.
그 덕에 라텔과 인어족들로부터 수많은 감사 인사를 들었다.
호준이 생각보다 빨리 나온 덕분에,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버섯을 준비하는 동안 주변 여행이라도 잠시 다녀오시지요! 아직 버섯들을 준비하려면 30분은 걸릴 것 같습니다.”
버섯 1만 개를 준비하려 했던 것이 아직 준비가 덜 되었던 것.
라텔은 30분만 기다려 달라며 사정했고 호준은 그러겠다 하고 인어 마을을 넘어 이웃 마을로 향했다.
달그락달그락―
새로 얻은 목걸이가 걸을 때마다 달그락거렸다.
목걸이를 흘깃 보며 호준은 미소를 지었다.
목걸이의 효과는 심플해서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칼리니 여왕의 목걸이】
【등급】: 특2급
【착용레벨제한】: 없음
【효과】: 전 스탯 30% 상승
전 스탯 30% 상승.
가히 사기급이었다.
스탯 뻥튀기를 할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리라.
그에 한술 더 떠서 좋은 점이 있었는데.
【특징】: 본 아이템은 반드시 소유자가 동의해야만 아이템 양도가 가능하다. 그 때문에 사망 시 아이템을 뺏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본 아이템의 양도는 소유자의 의사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소유자의 동의가 없이는 절대 양도 불가.
본인이 죽더라도 뺏기지 않도록 락이 걸려있다는 점이었다.
아직 돈이 급하지는 않으니 나중에 팔기로 결정했다.
‘씨앗이나 잔뜩 사 가야지.’
호준은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작은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다.
언덕 꼭대기 검은 바위를 훌쩍 뛰어넘고, 아래쪽으로 달려 내려가려는데.
옆에서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거기. 목걸이가 꽤나 값나 보이는데. 여기는 우리 호루트 일족이 다스리는 곳이라는 거 모르나?”
호준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두더지처럼 바닥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거적때기 같은 옷을 입고 두더지처럼 구멍에서 고개를 내민 것으로 보아, 지하에 집을 짓고 사는 산적인듯했다.
아, 이거 너무 클리셰 같기는 한데.
“통행세를 내놓고 가야지. 이 새끼야. 그 목걸이면 딱 적당하겠군.”
뻔한 대사에 호준은 이마를 찌푸렸다.
귀찮은데 꼭 상대해야 하나.
호준이 겁먹은 것이라 생각한 건지 대장의 뒤에 있던 이들이 비죽거리며 촉새처럼 말했다.
“후후, 겁 먹었구만. 우리 클리프 대장님 말씀을 듣지 않으면 후회할 거다. 이 구멍을 맨주먹으로 만드신 분이라 이거지!”
“비리비리하게 생긴 게 꼭 귀족 같습니다요! 홀딱 벗겨 먹어버리죠!”
호준이 빤히 쳐다보기만 하자, 대장이라는 작자가 나섰다.
“안 되겠다. 너 열 대만 맞자.”
그 말에 호준은 웃음을 터뜨렸다.
클리셰든 뭐든 간에, 이거 꽤 괜찮네 싶었다.
‘길 물어봐야지.’
이 녀석들.
안 죽게 살짝 치면, 길잡이로 만들기 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