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95화 (195/200)

195. 유령의 만찬

눈앞에 캄캄했다.

사방에 어둠이 가득했다.

빛 한 점 없다는 것은 바로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이 녀석. 정신을 못 차리네.’

퓩 퓩―

발광복어를 몇 번 주먹으로 내리쳤지만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날 뿐.

복어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은 어려울 듯했다.

【저주의 영향으로 발광복어가 정신을 못 차립니다】

【저주의 영향으로 발광복어가 정신을 못 차립니다】

양탄자가오리도 마찬가지로 맥을 못 추고 실 끊어진 연처럼 너울거렸다.

결국 가오리와 복어를 인벤토리에 집어넣고서 호준은 길을 떠났다.

달그락―

호준은 손바닥에 올라온 목걸이를 한번 쥐었다 폈다.

이 방에 들어온 이유는 추측하건대, 바로 이 화려한 목걸이 때문이었다.

견물생심이라더니.

물건을 탐한 대가로 갇혀버리고 말았던 것.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호준은 목걸이의 정보메시지를 살펴보았다.

【칼리니 여왕의 목걸이】

【등급】: 특2급

【착용레벨제한】: 없음

【효과】: 확인불가

【특징】: 확인불가

【기타설명】: 확인불가

【아이템에 걸린 저주를 풀어야 자유롭게 아이템 거래 및 사용 가능합니다】

확인불가사항이 많았지만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특2급이라….’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바로 등급이었다.

무려 특2급.

특1급의 바로 아랫단계라는 점이 매우 중요했다.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는 더더욱.

‘아이템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딱 좋군.’

특2급이라는 것만으로 메리트는 충분했다.

특3급 이상 아이템은 경매시장에서 찾기 정말 힘든 게 요즘 추세였으니까.

한술 더 떠서 요새는 투기열풍이 불고 있어서 플러스 알파로 이득이 됐다.

‘경매에 내면 꽤 잘 팔리겠군.’

최근들어 유토피아에는 투기 열풍이 불고 있었다.

저금리 시대에 접어든 수많은 선진국 플레이어들.

그들의 여유자금이 유토피아로 흘러들어온 것이다.

유토피아의 아이템을 사고파는 것은 부동산보다 정부 규제가 적었고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다는 점.

그 점이 바로 투기열풍의 이유였다.

투기세력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런 장신구였다.

장신구는 누구나 낄 수 있어서 수요층이 높고, 공급은 상대적으로 적었으니까.

더군다나 특2급에 착용레벨 제한도 없다.

최소한 100만 골드. 그 이상의 가치는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100만 골드도,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아직 상상에 불과했다.

‘흠, 일단 저주를 풀어야 한다 이 말이지.’

【아이템에 걸린 저주를 풀어야 자유롭게 아이템 거래 및 사용 가능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저주를 풀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호준은 차분하게 주위를 살핀 뒤, 천천히 헤엄쳐 나갔다.

꼬르르르―

귓가로 들려오는 소리는 물장구 소리와 물방울 터지는 소리뿐.

아무도 없는 바다에 온 것처럼 주위는 고요했고 모든 감각이 예민해졌다.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헤엄쳐나가던 그가 검은 바위를 넘어섰고.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

하얀 드레스를 걸친 백발의 미녀와 눈이 정면에서 마주쳤던 것.

뱀같이 가느다란 동공이 세로로 가늘어진 순간.

호준은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너무 가깝다.’

그녀와 호준의 거리는 불과 2m에 불과했다.

당장 달려든다면 피할 수는 있겠지만 이곳은 물속.

인간보다는 인어에게 훨씬 유리한 전장이었다.

한껏 경계하며 바라보고 있는 호준을 향해, 인어가 입을 열었다.

“네 이놈! 목걸이 도둑 주제에 용케도 여기까지 왔구나! 네 죄를 씻어내지 못한다면 피라냐의 먹이로 내줄 것이다. 꺄하하하!”

인어는 뭐가 그리 웃긴지 깔깔 혼자서 웃어댔고.

호준은 그녀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었다.

“목걸이의 주인이 너인가?”

“그렇다. 내가 그 칼리니 여왕이지. 이제부터 너는 목걸이의 저주를 풀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느니라.”

“아아.”

호준의 반응이 미지근하자 칼리니 여왕은 주먹을 위로 내뻗으며 말했다.

“후후. 내 말을 잘 듣는다면 특별히 하루에 1시간은 바깥에 나가게 해주지. 여기가 얼마나 어두컴컴하고 으스스한지는 차차 알려주마. 그리고. 흠흠. 나는 자비로운 여왕이니 내 시종으로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거다. 그리고….”

칼리니 여왕은 새하얀 드레스를 나풀거리면서 신이 난 듯 말을 이어갔다.

마치 오랜만에 산 사람을 만나 기쁜 것처럼 들떠 보였다.

호준은 그녀의 말을 반쯤 흘려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여기서 중요한 건, 저주를 풀어야 한다는 것.

“저주를 푸는 방법이 뭐지?”

“후훗. 너 따위는 하기 힘든 것이니라. 그래도 알아볼 테냐.”

“말이나 해 봐라.”

“흠. 그렇게 알고 싶다면야. 30분 안에 나와 내 친구들이 배부르게 먹을만한 음식을 대접하면 된다. 허나, 불가능할 것이다. 내 친구들의 숫자만 해도 자그마치 천 명이거든. 꺄하하하!”

또다시 웃음보가 터진 칼리니 여왕이었다.

그녀의 웃음이 잦아들자 호준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되물었다.

“천 명. 천 명밖에 없나?”

호준의 말에 칼리니 여왕이 손을 휘휘저으며 반론을 폈다.

“천 명밖에라니. 걸신들린 유령의 입맛을 모르고 하는 말이구나. 유령들은 족히 3인분은 거뜬히 먹고도 남는다! 그러니 30분 안에 3,000명이 먹을만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 말이지. 그리고 어지간한 음식으로는 우리 입맛을 만족시킬 수 없다. 우리는 태생부터 고귀한 왕족이니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지?”

“시작하지.”

“꺄하… 뭐?”

“지금 시작하면 되는 건가? 아, 그리고 물은 좀 없애야 요리하기가 편하다. 그 정도는 배려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칼리니 여왕은 웃던 것도 멈추고 눈을 깜박이며 쳐다봤다.

호준의 단호한 말에 어안이 벙벙했던 것.

말없이 바라보는 칼리니 여왕에게 호준은 쐐기를 박았다.

“빨리 친구들이나 부르라고요. 여왕님!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

“어어… 나는 경고했다. 분명 다들 배가 고파서 많이 먹을 거야. 3천 명이 먹을만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3천명이든 5천명이든 얼마든지 만듭니다.”

“크음… 아, 알겠다. 네 말대로 부르마.”

칼리니 여왕은 슬쩍 호준의 눈치를 보면서 지옥의 명부를 꺼내 들었다.

그녀는 가까운 사이의 유령들부터 먼 친척들까지 쭉 드래그를 하고, 전체 메시지를 보냈다.

― 밥먹으러 와. 당장

메신저를 끄고서 그녀는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호준을 바라봤다.

‘어째 조금 이상한데.’

눈앞의 남자는 아주 많이 달랐다.

그동안 저주에 빠진 타종족의 경우는 어땠던가.

인간으로서는 이 남자가 처음이지만, 묘족이라든가 기타 종족들이 보물을 탐해서 들어온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결과는 똑같았다.

먼저 그들은 통곡하며 울고불고 매달리고.

그녀는 한 10일쯤 그들을 부려먹다가 신전 바깥으로 쫓아버렸다.

너무 시끄럽고 같이 있으면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자신감이 있었다.

유령인 자신을 앞에 두고서도.

“네 이름이 뭐냐.”

“호준입니다.”

“호준… 그래.”

오히려 즐거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이 남자.

장난삼아 프라이팬을 360도로 돌리는 그를 향해 칼리니 여왕은 미소를 지었다.

‘흥, 재미있는 녀석이군.’

그녀는 픽 웃으며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녀의 손길 한 번에 물이 완전히 사라지고 호준이 요리하기 적당한 공간이 생겨났다.

요리기구를 바닥에 내려놓는 호준을 바라보며 칼리니 여왕은 새초롬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부터 30분, 30분이다. 시작해라!”

달그락 달그락―

유령을 위한 만찬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 *

죽음의 신전, 아칼란차에는 세간에 알려진 대로 선대 왕족들의 혼이 잠들어있었다.

그러나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인어족들조차 모르는 비밀이 있으니.

바로 아칼란차에는 왕족들의 혼이 되살아난다는 것.

왕족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갔다.

즉 아칼란차는 왕족들의 사후세계인 셈.

칼리니 여왕과 그녀 주위로 몰려드는 자잘한 영혼들은 어느새 수백 명으로 늘어났다.

‘바글바글하군.’

갸웃거리는 영혼들의 면면을 살펴보며 호준은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비록 갑자기 이동하기는 했지만, 방송은 다시 재개가 가능했다.

호준은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시청자들의 반응은 하나였다.

└ 【미르미르】: ㅋㅋㅋㅋ 이제 유령들까지 먹여살림.

└ 【별이바라기】: 3천 명쯤이야 껌이죠. 갓호준님인데.

└ 【금지된주술】: 내 말이. 한 만 명분은 돼야 도전하는 맛이 나는데.

└ 【고기킬러】: 오늘은 무슨 특식을 하시려나. 저 이상한 버섯으로 만드심?

└ 【츄츄분신술】: 3천 개 받고 4천 개 콜! 호준 님이 있다면 아무 걱정없습니다 ㅋㅋ

누구 하나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요리 경연대회에서 그 실력을 보였기 때문일지도.

호준은 채팅창을 볼 겨를도 없이 요리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가능하겠어. 이 냄비만 있으면.’

사실, 이곳에 들어오기 전.

라텔이 건네준 것 중에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 있었다.

【최상급 특특특대형 마법 냄비】 x 10

인어족 요리사들에게 무상으로 버섯 샤브샤브 요리법을 알려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받은 것이다.

이 냄비에 최상급, 특특특대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바로 하나.

‘동시에 50인분 요리가 가능하니까.’

그야말로 놀라운 기능이었다.

냄비 하나당 50인분이 뚝딱!

마법냄비라서 겉으로는 1인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퍼갈 수 있는 요리는 50인분까지 가능했다.

재료도 1인분만 넣으면 충분하니.

‘진짜 미친 가성비네. 1인분이 50인분으로 뻥튀기가 되니.’

그러니 자신만만할 수밖에.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요리가 완성되어갔다.

요리가 완성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호준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차분하게 집중하고 있는 호준과는 달리, 칼리니 여왕은 새삼 놀라고 있었다.

‘뭐야. 저건…?’

칼리니 여왕은 이미 완성되었다는 샤브샤브를 퍼서 주위 동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는데.

어째서 자꾸 퍼내는데도 불구하고, 샤브샤브가 줄어들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오랜 시간 이곳에서 살았던 그녀에게는 마법 냄비는 익숙하지 않은 문명의 발명품이었다.

└ 허허. 살다 살다 별거를 다 보는구려.

└ 그러게 말입니다. 옛날에는 이런 것도 없어서 맨날 버섯 꼬치만 먹었는데 말이요!

└ 요즘 아들은 이렇게 잘 먹는 모양이오!

└ 칼리니 여왕 덕분에 아주 배부르게 먹는구려!

└ 별말씀을요. 어르신들. 많이 드셔요!

선대 유령들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칼리니 여왕은 빈 그릇에 샤브샤브를 채워 넣었다.

수백년만에 만찬을 즐기는 유령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지를 않았고.

‘으음…!’

칼리니 여왕은 샤브샤브의 맛에 푹 빠져 살랑거리는 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의 기분이 좋아지자 머리 위 더듬이도 반짝반짝거렸다.

“이건 후식입니다!”

“언제 또 이걸 만든 것이냐.”

“시간이 남아서요. 이건 파이라고 하는데 맛이 좋습니다!”

“아아. 고, 고맙다.”

칼리니 여왕은 호준이 건네는 파이 트레이를 받아들어 유령들 곁으로 돌아갔다.

유령들이 그녀의 주위로 몰려들어 수군수군댔다.

└ 오오. 이것은 무엇인가!

“파이라네요. 다들 드셔보세요!”

└ 으음. 이런 맛도 있구나!

└ 육지의 맛이구려. 허허. 과일맛도 느껴지고. 참으로 실력이 좋구먼 허허허.

└ 근 천 년 만에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봅니다!

유령들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칼리니 여왕은 바위 위에 앉아 주스를 마시는 호준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생각에 잠겼다.

‘참으로 오래 살고 볼 일이구나.’

저주로 지하세계에 묶어두기에는 그는 너무나 아까운 인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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