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찹쌀떡
“으으, 요새 쌀쌀하네요. 기침도 조금 나는 것 같고.”
신입 유정아의 말에 이 대리가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겨울인가 봐.”
“겨울 같지 않게 따뜻하더니 좀 겨울다워지는 모양입니다.”
호준이 대리의 말을 받았다.
셋은 점심 식사를 위해 사내식당에 온 참이었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밥.
오동통하고 노오란 계란말이.
입맛 다시게 하는 고등어조림과 매콤한 청국장 찌개까지.
호준은 메뉴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 청국장에 밥을 말면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청국장은 매콤한 국물이 참 매력적이었다.
‘내 입맛에 딱이네.’
호준은 조각난 청양고추를 씹어먹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생각은 역시나.
‘랭킹이라.’
유토피아에 관한 것이었다.
이번에 새롭된 업데이트.
그것은 바로 랭킹이었다.
‘공식 랭킹은 이번이 처음이지.’
그동안은 직업별로 우위를 가리는 공식적인 랭킹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불쑥, 랭킹을 만들어 버린 것.
때마침 유정아가 그에 대해 말을 꺼냈다.
“맞다. 이 대리님, 그 얘기 들었어요?”
“응? 뭐가?”
“유토피아에서 공식 랭킹이 생겼대요! 1위부터 1,000위까지 가려낸다나.”
“오 진짜? 음 그런데 남친이 상위랭커라는 말을 종종 하던데 그 랭킹이랑 다른 건가봐요?”
이 대리의 질문에 유정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아. 그건 공식 랭킹은 아니고.미국 사설사이트에서 정한 거래요. 그나마 그 사이트가 가장 공신력이 있었는데, 이제는 유토피아 본사에서 딱 정해주는 거죠”
“으음. 그렇군.”
유정아가 똑 부러지게 설명하자 이 대리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랭킹 도입은, 곧 기존의 질서를 뒤흔드는 일이었다.
사설 사이트에서의 랭커가 아니라, 공식 랭커가 되는 순간.
랭커로서의 인생은 꽃이 필 테니까.
랭커의 기준은 간단했다.
‘얼마나 승리를 많이 하냐.’
랜덤으로 1대 1 대결을 펼쳐서 연승한 숫자가 많은 이가 상위랭커로 올라갔다.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시스템이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모두 참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
랭커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1만 명을 선발해서 1대 1로 싸우는데. 1만 명에 선발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얘기가 있더라구요.”
“하긴. 플레이어 수가 6억이 넘는데 그중에 1만 명이면 너무 적은 거 아냐?”
“랭킹에 너무 목매지 말라는 의미로 그렇게 정했다는데. 뭐. 게임사 마음대로죠.”
“하긴.”
이 대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호준은 잠자코 깍두기를 입에 집어 넣었다.
와그작 와그작―
청양고추 가루가 듬뿍 들어간 김치는 꽤나 매콤했다.
김치찌개로 끓이면 얼큰하겠는데.
깍두기 하나를 더 집어먹을 즈음.
유정아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유 과장님은 걱정 없으실 것 같아요. 오히려 상대가 불쌍하겠는데요?”
뭐라 답할까 입을 달싹이던 순간, 이 대리가 맞장구를 쳤다.
“에이, 정아 씨. 유 과장님 만나면 상대는 그냥 KO지. 여차하면 이무기한테 저놈 짜부로 만들어라! 이러면 끝 아냐?”
“맞아요 맞아. 미르가 불 쏴버리면 끝이고 말이죠.”
“별이가 바람 마법으로 휭휭 날려버리거나. 그러고 보니까 진짜, 과장님 이러다가 1위 하면 어떡해요?”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걸 보니.
이럴 때 보면 둘이 궁합이 참 잘 맞았다.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는 둘에게 호준은 입을 열었다.
“뭐, 봐주는 일은 없습니다. 오는 기회는 잘 써먹야죠.”
이 대리는 젓가락으로 고등어 조림을 찍으며 말했다.
“맞는 말이에요 과장님. 저도 과장님 영상을 쭉 봤는데 전투를 할 때 보면 마치….”
쫘아악―
이 대리는 젓가락으로 고등어의 뱃살을 젓가락으로 쫙 가르며 말했다.
“확실히 끝장을 내시더라구요. 질질 끄는 걸 못 봤어. 단숨에 승기를 확 휘어잡는 스타일.”
“그러니까요. 아, 맞다. 그리고 국가별로 인기 투표도 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
띠리리링 띠리리링―
핸드폰 벨소리가 대화를 뚝 끊었다.
호준은 둘에게 눈짓을 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네. 과장 유호준입니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내용을 듣자 호준의 반듯한 눈썹이 사선으로 기울어졌다.
‘이게 뭔 소리지?’
귓가로 들려오는 이야기는 믿기 힘들었다.
“여보세요. 듣고 계신가요~”
호준이 말이 없자 상대는 다시 한번 강조하듯 말했다.
“플레이어 호준 님 맞으시죠.”
“아, 네. 맞습니다.”
또랑또랑한 여성의 목소리는 말하고 있었다.
“유토피아 본사에서 알려드립니다. 호준 님이 아시아 지역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셔서 캡슐을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바는 간단했다.
대륙별로 1명씩 선발하는 인기투표에서 호준 그 자신이, 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는.
믿기 힘든 소식을.
“듣고 계신지요?”
호준은 간신히 입을 뗐다.
“아. 네. 그런 투표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깜짝 이벤트로 3시간 동안 진행된 거라 모르실 만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호준 님이 아시아 지역 1위로 뽑히셔서 호준 님 가족에게 무료로 캡슐을 제공합니다. 직접 제작을 하시려면 본사로 오셔야 하는데요. 가족분은 리무진으로 직접 픽업해드리는 서비스도 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여자에게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며 호준은 눈을 깜박였다.
얼떨떨하기는 했지만 기분 좋은 얼떨떨함이었다.
‘살다살다 별 일이 다 있네.’
설명을 들으며 그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차츰차츰 깨달았다.
지금 해야 하는 1순위가 뭐인지.
호준은 전화기를 살짝 귀에서 떼내고는 이 대리에게 말했다.
“과장님 무슨 일이에요?”
토끼눈을 뜬 이대리에게 호준은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이 대리. 오늘은 연차 좀 써야겠다.”
난데없는 리무진에 어벙벙해 하실 부모님의 얼굴이 아른아른했다.
* * *
“아이구. 이게 다 뭐라니.”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손을 모으고 서있는 거냐?”
“저게 본사 방침인가봐요.”
“거참. 추워 죽겠는데 얼른 들어가자. 다들 고생스럽게 하지 말고.”
지난번처럼 직원 수십 명이 칼바람을 맞으며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딸뻘인 직원들에게 못내 미안한지 안절부절못하셨다.
“얼른 들어가요. 어머니.”
“그 그래. 그러자.”
“네 덕에 살다살다 이런 곳에 다 와보는구나. 허허. 세상 참 좋아졌어.”
하이테크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유토피아 본사 사무실.
시골에 익숙하신 부모님의 눈에는 신기해보이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주름진 아버지의 눈가에는 미소가 서렸다.
“아버지 살아계실 적에 많이많이 해드리는 게 제 소원이에요.”
“허허. 늙으면 일찍 죽어야 네가 고생 안 하지.”
“에이. 100살 넘어서까지 사셔야죠. 두 분 다 제가 잘 모실 거예요.”
“말도 이쁘게 하는구나. 허허.”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부모님을 이끌고 간 곳에는 테스트할 수 있는 캡슐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이전과 다른 점은, 테스트 캡슐이 좀 더 늘어났다는 것 정도.
호준은 멀리서 두 분이 캡슐을 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캡슐 제작을 마친 뒤, 부모님과 한정식집에서 식사까지 마쳤다.
“네 덕에 호강하는구나. 너무 고생한다 싶으면 무리하지 말고 좀 쉬기도 하고 그러렴.”
“아버지 말씀 잘 새겨둬. 네가 고생하는 건 아닌가 엄마는 맨날 걱정된단다. 그 전자판가 뭐시기가 안 좋다는데. 몸에 해롭고 그런 건 아니지?”
헤어지는 순간에도 부모님은 걱정이 많으셨다.
부모님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아직 부모님이 되어보지 못해서 그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괜찮아요. 저는. 걱정 마세요.”
걱정해주는 마음이 고맙고, 보답을 드릴 수 있는 만큼 드리고 싶었다.
때로는 너무 걱정이 많아서 불편할 때도 있지만.
걱정한다는 건 그만큼 마음을 쓴다는 반증 아닐까.
“그래. 김치 보내줄 테니까. 냉장고에 잘 넣어놓고 먹고. 옷 따뜻하게 잘 입어야 한다. 주말에 춥대!”
“네. 기차 출발하겠다. 얼른 타세요.”
“그래. 들어가라!”
호준은 떠나는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두 분을 마지막까지 배웅했다.
휘잉 불어오는 바람이 약해졌을 즈음.
그는 역사 계단을 저벅저벅 올라갔다.
‘흠. 부모님이 플레이를 잘 하시려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골에서 사시는 부모님에게 유토피아는 너무 강렬한 자극일지도 모른다고.
두 분은 변화를 싫어하는 축에 속했다.
그렇지만.
꼭 나쁘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반대로 너무 잘 맞아서 맨날 들어가실 수도 있지.’
뭐가 됐든.
두 분이 좋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효도했네.”
두 분이 웃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니까.
* * *
나름 바빴던 현생을 마무리하고 호준은 게임에 접속했다.
오늘은 체크할 일이 참으로 많았다.
“허허. 어떻습니까.”
“음….”
호준은 완성된 목욕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동시에 500명을 수용하고도 남을 거대한 욕탕.
보석을 조각해 만든 욕탕은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금싸라기를 갈아 만든 듯한 물결은 호화로움을 한 방울 더 추가했다.
“갑부들을 위한 목욕탕이지요. 컨셉을 그리 잡고 만들었습니다.”
“진짜네요. 저 분수는… 이무기네요?”
“저쪽에는 이무기 분수. 별이 분수. 그리고 미르 분수도 만들었습니다. 벽 조각에는 요정들을 조각했죠. 요정의 쉼터의 핵심 멤버들이죠.”
“화려함의 극치네요.”
호준은 결과가 마음에 쏙 들었다.
마치 랜드마크처럼, 요정의 쉼터 목욕탕은 쉼터의 랜드마크가 되어 줄 것 같았으니까.
무엇보다도.
‘끝내주네.’
본인 마음에 들면 그만 아닌가.
당장 수영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칼은 뿌듯한 얼굴로 호준에게 말을 이어갔다.
“알크메네의 깃털을 주신 덕분에 더 화려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조각에 색조를 표현했으니까요.”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칼 님과 같이 고생해주신 여러분들에게도 감사합니다.”
호준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칼에게 악수를 청했다.
칼은 악수를 하며 콧수염을 쓱 매만졌다.
“허허 별말씀을요. 20대 초반 때 이후로 이렇게 열중해서 한 적은 오랜만입죠. 결과물이 잘 빠져서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고 말고요. 저 답례로… 별이야.”
“네! 감사합니다, 장인님들!”
미리 대기하던 별이가 호준의 눈치를 받고 나섰다.
그녀가 건네는 작은 꾸러미를 받아들은 칼과 그의 동료들에게 호준은 넌지시 말했다.
“제 마음입니다. 전에 잘 드시는 음식들을 몇 개 추려서 넉넉히 쌌습니다.”
“아아. 라면을 이렇게나 많이. 이렇게 많이 주셔서 원….”
“앞으로도 종종 놀러 오십시오. 언제든 환영입니다.”
“허허. 그러겠습니다.”
칼과 동료들에게 음식들을 잔뜩 안겨주고 배웅까지 마친 뒤.
호준은 목욕탕에 살짝 발을 담가 보았다.
“딱 좋네.”
긴장이 스르르륵 풀린다.
등에서 땀이 나면서 노곤해졌다.
언제부터 목욕을 이렇게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어릴 때는 싫어했던 것 같은데.
발을 움직이자 금빛 물결이 찰랑찰랑였다.
‘할 일이 많은데.’
눈을 감으면서 할 일이 주룩주룩 떠올랐지만.
잠깐만 쉬어도 괜찮으려나.
호준은 목까지 푹 담근 뒤 눈을 감았다.
“쉬면서 해야지. 쉬엄쉬엄.”
그렇게 잠시 눈을 감고 쉬려고 하던 찰나.
스르르륵―
물결이 움직였다.
그것도 아주 크게.
물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파다닥―
‘뭐였지? 뱀 같은 건가?’
설마 야생동물이 들어오기라도 한 것인가.
말이 안 되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수원인 지하수에서 괴생명체가 같이 빨려올 가능성도 있지 않나.
자리에서 일어난 호준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물결에 집중하던 그때.
쏘옥―
물속에서 뭔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뭐냐 넌.”
새하얀 조약돌 같은 머리.
주먹만 한 머리에 검은 눈망울이 딱.
눈이 마주치자 시츄 같은 눈동자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자이언트 알크메네 새끼가 당신을 처음 봅니다】
녀석의 첫인상은 찹쌀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