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90화 (190/200)

190. 부화시키는 법

투닥탁탁―

투다다다닥―

인어들의 왕, 라텔은 최선을 다해 목욕탕 건립을 도왔다.

그녀 역시 노역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건축에는 일가견이 있던 터였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왕은 고고하게 의자에 앉아 다스기만 할 것 같지만.

라텔이 생각하는 왕은 그런 왕이 아니었다.

“이쪽에 대리석이 부족해! 얼른 추가해!”

“넵! 라텔님~”

“이쪽이다 대리석 어서 갖고 와!”

“엇차!”

“어잇차!”

“얼른 끈내버리자고!”

단지 수장이라는 것만으로 모두의 위에서 다른 인어를 내려다볼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모두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뿔뿔이 흩어졌던 인어족들을 규합하고, 모두가 안전하게 살 만한 나라를 만들고.

이를 위하여 라텔은 호루라기를 아주 값지게 사용했다.

“휴우.”

돌의자에 앉은 라텔은 숨을 돌리며 이마의 흐르는 땀을 닦았다.

후끈한 목욕탕에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를 바라보며 그녀는 잠시 전 일을 떠올렸다.

호준의 도움으로 수많은 인어족들을 한 곳으로 모으고, 그들에게 세뇌를 시키던 것을.

라텔은 분주하게 앞을 오가는 인어족들의 얼굴을 살폈다.

다들 환한 얼굴로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누구하나 근심 걱정을 보이는 이들이 없었다.

‘다행이다.’

기억 조작이 잘 먹혀들어갔다는 증거였다.

그녀는 호루라기와 자신의 힘을 함께 이용해 이들의 기억을 새롭게 만들었다.

방랑하는 동안 겪었던 수난과 고통을 잊고,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기억 조작으로도 죽은 존재를 되살려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전쟁과 가난, 떠도는 삶으로 인한 피폐한 마음을 치료할 수는 있었다.

‘다 호준 덕분이지.’

이 모든 것을 단숨에 해치울 수 있던 것은 오롯이 호준 덕분이었다.

정작 호준은 별일 아니라며 생색을 내지 않으려 했지만.

그에게는 인어족 전체가 값을 매길 수 없는 은혜를 졌다.

‘잊지 않는다.’

그때문에 라텔은 호준이 도움을 준 사실을 인어족들의 기억에도 새겨넣었다.

그는 이제 인어족 규합의 최고 공로자이자 인어족이 반드시 도와야하는 은인으로 기억될 것이었다.

지금 있는 인어족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는다 해도.

대대로 그의 이름이 구전되겠지.

‘인어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라텔은 눈을 감고 짧게 기도를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느러미를 꼿꼿이 세우고 걸어가던 그녀는 문득 시원한 공기가 그리워졌다.

물론 타고난 마력으로 시원한 공기를 만들 수도 있지만.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의 향을 맡보고 싶달까.

“잠깐 나갔다 오마.”

“네. 라텔님. 다녀오십시오!”

“얼른 끝내놓겠습니다요!”

라텔은 살짝 언질을 하고 위층으로 향했다.

원형계단을 따라 뚜벅뚜벅 올라가는 길.

“음…?”

맛있는 냄새가 그녀의 후각을 자극했다.

아, 이건.

그냥 맛있는 냄새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설명이었다.

‘왜 이렇게 침이 고이지?’

먹음직스러운 요리 냄새가 났다.

식욕이 많지 않던 그녀가 느끼기에도 맛깔나는 냄새였다.

‘아, 요리를 하나보군. 콘테스트에서 우승도 했다지?’

라텔도 비록 콘테스트장에 가지는 못했지만 호준의 우승소식을 알고 있었다.

상자에 갇혀있는 동안, 사람들의 이야기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

흥분에 겨운 사람들의 대화 주제는 단연, 요정의 쉼터였다.

―최초로 인간이 대회에서 우승했다는군!

―내 살다살다 인간이 우승하는 걸 볼 줄이야.

―다들 인간계에 내려가본다고 약속을 잡고 있다네. 우리 ‘1000살 청년회’에서도 한번 가야하지 않겠나.

―암. 가고 말고. 맛집 탐방에 청년회가 빠지면 섭섭하지.

아주 난리도 난리가 아니었다.

가게에 머무르는 손님들이 계속 호준의 얘기를 하는 것.

라텔은 거의 세뇌되듯이 계속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어느새 계단의 맨 꼭대기까지 다다르자 그녀는 마지막 난간을 즈려밟았다.

‘흠. 튀김요리인가?’

저 멀리.

호준이 튀김기앞에 서서 재료를 넣었다 빼고 있었다.

고소하고 바삭한 튀김.

상상만으로 침이 고였다.

잠깐 바람만 쐬려던 것이, 자연스레 호준의 바로 옆으로 갔다.

“왔나?”

“응. 목욕탕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다들 고생이 많네.”

“뭘….”

라텔은 호준에게 이야기했다.

목욕탕 건립이 끝나면 떠날 예정이라고.

호준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태연했다.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 네가 왕이니.”

“어디로 가는지는 안 물어봐?”

“어디로 가는데.”

“심해! 심해에서 우리 인어족을 능가할만한 종족은 없지. 다들 수압때문에 짜부가 돼서 아무나 못 들어오거든!”

“하긴. 인어는 물에서 사는 게 맞지.”

호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라텔도 어깨를 으쓱했다.

인어에게 물이 없는 삶이란, 단팥없는 찐빵처럼 공허한 것이었으니까.

탁탁―

호준이 갓 튀긴 알크메네 고기튀김을 접시에 올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라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을 이었다.

“근데. 샤롯은 여기서 계속 일하고 싶어하는 눈치야. 네 생각은 어때?”

“이쪽이야 환영이지.”

“오랜만에 봐서 정말 좋았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 아. 그리고 너, 선조들의 무덤에 출입권이 생긴 건 알지?”

호준은 라텔의 물음에 잠시 아까 봤던 메시지를 떠올렸다.

【인어왕의 무덤, 아칼란차를 자유롭게 탐사할 수 있습니다】

아칼란차.

여기를 말하는 건가.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아칼란차를 말하는 건가?”

“그래. 아칼란차. 나라면 오늘 장사가 끝나고 거길 가볼거야.”

“아칼란차가 뭐기에 그렇게 까지 해야하지?”

“흐음. 그건.”

라텔은 잠시 고민했다.

호준은 아무리 우방이라고 하나 외부인이었다.

그에게 모든 걸 다 말해도 될까.

잠시 고민한 끝에 라텔은 결심했다.

‘이미 줘놓고서, 알려주지 않는 건 안될 말이지.’

호준은 그저 상징적인 구원자가 아니라 정말 도움을 준 이였다.

그렇기에 라텔은 꾹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이 얘기는 네가 꼭 들어야 할 것 같아.”

라텔은 의자에 앉아 자신의 이상을 이야기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인어족의 미래는 단순했다.

마법의 힘이 담긴 유물로 나라를 재건하고 평화롭고 풍요롭게 사는 것.

그를 위해서 심해로 가는 것이었다.

대대로 인어족들은 마법의 힘에 의지해 심해에서 세력을 유지해왔다고 했다.

그 힘의 근원이 바로 인어왕의 무덤에서 시작되었다.

“인어왕의 무덤은 선조의 지혜가 담긴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인데. 아무나 못 들어가. 나 정도. 그리고 인간인 너도 들어갈 수 있지.”

“왜 아무나 못 들어가지?”

호준의 물음에 라텔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사실 왕이 된 나도 조금 힘들어. 그쪽은 수심이 너무 깊은데다가 숨쉬기에도 힘들고, 어둡고. 음침하고.”

“너무 깊어서 다들 못 들어가는 건가?”

“아니. 그건 아니고. 인어왕의 무덤에는 거대한 해수들이 우글대. 어지간하게 힘이 세지 않은이상 들어갈 수조차 없지.”

“얼마나 크길래 그러지?”

“아까 저쪽에 산이 있던데.”

“붉은 산 말인가.”

“응. 그 산 정도 되는 해수들이 수십마리가 있다고 보면 돼. 알려진 것만 수십마리이고. 그들이 다 무덤을 지키고 있지.”

“끔찍하군.”

“그래. 끔찍하지. 허가되지 않은 자가 들어가면 해수들이 한꺼번에 날뛰어. 찢어져 죽기에 딱 좋달까. 하지만 네게는 날뛰지 않을 거야.”

“내가 왕의 무덤에 들어갈 권한을 얻었으니까?”

라텔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호준은 말길을 빨리 알아들었다.

“그래. 네게는 출입할 권한이 있으니까. 만약 무덤에 가고 싶다면 나중에 찾아와. 어디로 가는 건지 길을 알려줄테니.”

라텔은 그리 말하며 넌지시 악수를 청했다.

호준은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그래. 고맙다. 다만, 지금은 갈 생각이 없어. 요즘은 일이 조금 바빠서.”

호준의 무미건조한 것에 가까운 반응에 라텔이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인간이라면, 아니 이 정도의 이야기를 들은 자라면.

분명히 그 무덤에 있을 보물에 관심을 가지지 않나?

그녀가 만나왔던 존재들 대부분은 욕심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호준이 어떻게 나올지 살짝 궁금했었는데.

“거기에 뭐가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

살짝 떠 보아도 호준의 반응은.

“궁금하긴 한데. 지금 바빠서. 요리도 해야하고.”

“아아.”

역시 그대로였다.

라텔은 요리에 집중하는 호준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넌 정말 특이한 녀석이야.”

호준이 알크메네고기를 썰으며 답했다.

“그런 말을 종종 듣곤 하지. 배고플텐데 이거 먹어.”

“아, 응.”

라텔은 호준이 건네는 접시와 빙수그릇을 받아들었다.

접시에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알크메네 고기튀김이 가득 있었고.

빙수그릇에는 화려한 색을 뽐내는 과일들이 얹어진 팥빙수가 한가득이었다.

‘푸짐하네.’

왜 그렇게 냄새가 맛있게 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릇이 터져나갈 듯이 요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니 냄새가 안 날리가.

푹푹푹―

잘 섞은 빙수를 한 입 먹자 라텔의 눈빛에 별이 반짝였다.

너무 맛있다.

정말….

“너 진짜. 요리 잘하네.”

“내가 한 요리하지.”

“반박을 못하겠네…… 어라?”

라텔은 빙수를 한 수저 더 퍼먹다가 발견했다.

구석에서 동글동글한 형태 그대로 잠들어있는 이들을.

태어난지 3개월은 되었을법한 어린 인어족들이었다.

너무 작고 귀여워서 아기 인어족이라고 불릴 나이였다.

푸―푸―

아기 인어들은 바닥에 널부러져 자고 있었다.

북어처럼 배가 불룩 튀어나온채로.

저 배로 보건대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쟤네는 대체 언제부터 먹은거야?”

“30분정도 먹기만 하더군. 많이 배고팠나봐.”

“세상에. 배 좀봐. 큭큭.”

라텔은 아기 인어족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배를 한번씩 콕콕 찔렀다.

“끄응―”

“으응―”

작은 한숨을 토해내는 아기인어족들을 보니 라텔의 마음도 한결 너그러워졌다.

‘이런게 행복이지.’

배부르게 먹고 푹 쉬고.

친구와 이야기하고.

은인이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소소한 일이 때로는 행복한 일임을.

소소한 순간을 잃어버리면 알게된다고 했던가.

‘이제 나도 혼자가 아니야.’

혼자에 익숙하던 라텔에게는,

햇살이 비치는 가게에서 음식을 먹는 이 순간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소소하지만 행복한. 그런 순간이니까.

* * *

“아유. 오늘따라 손님이 많네.”

“그러게. 어딜 봐도 인어뿐이야.”

“눈호강 지림ㅋㅋㅋ”

“이쁘긴 이쁘다. 인어족들이 남녀노소 다 이쁘다더니 진짜였어.”

“레알. 태생부터 다르네. 저 잘빠진 지느러미를 봐. 예술적이다.”

“지느러미부터 비늘까지, 윤기가 좔좔 흐르네.”

가게가 오픈하자 요정의 쉼터는 심하게 붐볐다.

수많은 시청자들, 용족, 인어족의 예상대로였다.

가장 많은 종족은 인어족이었지만 용족들도 간간히 보였다.

“줄이 길군.”

“우리 차례가 오려나.”

“인어족이 왜 이렇게 많은지 원.”

처음에 호준은 용족들이 혹시나 인어족에게 난리를 피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것은 없었다.

라텔의 말에 의하면, 종전협정 자체가 용신의 이름을 내걸고 한 것이어서 함부로 싸움을 벌이지 않는다나.

용신의 저주를 받으면 대대로 자손을 가지지 못하고 용으로 변신을 못하게 되는 벌이 있단다.

그래서 용족들도 반강제로 협정내용에 따른다고.

‘덕분에 조용하군.’

덕분에 호준은 순조롭게 장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손님들에게 맛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더불어 수고한 인어족들에게도 음식을 대접하며 시간이 흘러갔다.

그가 잠깐 쉴 목적으로 외양간으로 향했을 때.

푸― 푸―

외양간 지푸라기더미에서 잠을 자는 라텔을 발견했다.

계속 잠자는 거보니 잠에 한이라도 맺힌 모양이었다.

호준은 조용히 그 옆에 놓인 부화기에 다가갔다.

이번에 새로 얻은 알.

자이언트 알크메네의 알을 놓기 위해서였다.

【자이언트 알크메네의 알】X 1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제공하면, 부화가 가능합니다.

호준은 알을 부화기 안에 집어넣고 변화를 기다렸다.

【부화가 시작됩니다!】는 메시지라던가.

【부화까지 ㅇㅇ시간 남았습니다】라는 메시지라던가.

이런 메시지가 뜨겠지 싶은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어라…?”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아닙니다!】

【부화하길 원한다면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제공하십시오!】

‘왜 안 되지?’

이상했다.

부화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만 떴다.

지금 상황에서는,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어떤 것인지 알 길이 없는데.

“흠… 타무르에게 물어볼까.”

벽에 등을 기대고 고민하고 있던 그때.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거. 내가 도울 수 있는데.”

“어… 그래? 어떻게?”

호준이 묻자 라텔이 눈을 비비적 거리던 손을 꼬리로 가져갔다.

“이렇게.”

그녀는 제 비늘을 손톱으로 긁었다.

퍼버벅―

그녀의 단단한 하체에서 비늘 10여개가 우수수 떨어져나왔다.

‘비늘?’

라텔은 이번에는 태연한 얼굴로 지느러미 끝을 잡더니 쭉 잡아 뺐다.

뽀보복―

“어어어…?”

호준은 어이없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무슨 병뚜껑처럼 지느러미가 뽑혀버린 광경에 할 말을 잃자 라텔이 피식 웃으며 나머지 지느러미 하나를 또 뽑았다.

뽀보복― 소리가 외양간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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