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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너무 잘함-187화 (187/200)

187. 새로운 기회

“선택은 그대의 몫이니. 여기 있네.”

카이사르 왕은 흔쾌히 호준에게 상자를 건넸다.

빛이 바랜 나무상자는 그렇게 호준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호준은 수북히 쌓인 먼지를 한번 털어내고서 상자를 바라보았다.

별 모양의 새하얀 그림이 그려져 있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상자.

‘이것을 왜 그토록 원했을까.’

렌리의 말에 의하면, 대귀족 나타샤는 이 상자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했다.

대륙을 정벌하는 것도.

왕위를 갈아치우는 것도.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기에 상자는 지극히도 평범해 보였다.

카이사르 왕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어쩌면 착각일지도.

“열어보지 않는 겐가.”

그가 가만히 상자만 들여다보자 옆에서 카이사르 왕이 재촉했다.

호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자를 열어 보았다.

상자를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반짝이지도 독특하지도 않은 무언가.

상자 속에는 검은색 호루라기와 하얀색 호루라기가 하나씩 들어 있었다.

운동회 때 볼 법한 평범한 호루라기였다.

“호루라기…?”

호준은 살짝 당황했다.

귀한 보석이나 신기해 보일법한 아이템을 상상했는데.

난데없이 호루라기라니.

조금 생뚱맞지 않은가.

살짝 당황한 그의 눈으로 메시지가 보였다.

‘아….’

메시지를 읽은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왜 대귀족씩이나 되는 자가 이것을 그리 원했는지.

전재산을 쏟아붓고 시간을 들이면서 공을 들였는지를.

이 두 개의 호루라기는 전 재산을 쏟아부을 가치가 있었다.

먼저 하얀색 호루라기의 이름은, 구국의 메아리였다.

이 아이템의 기능은 수많은 이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

【구국의 메아리】

【기능】: 본인과 동일한 종족 전원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다.

【설명】: 한 종족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하는 아이템이다. 호루라기를 불면 아이템 사용자와 동일한 종족을 한자리에 모이게 할 수 있다. 전쟁 중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단, 아이템 쿨타임이 36,500일로 매우 긴 만큼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해당 종족 전원이 모이므로 넓은 공간에서 아이템을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흠. 이 검은 호루라기랑 한 세트로군.’

구국의 메아리는 혼자만 단독으로 쓰이는 아이템이 아니었다.

단지 모은다고 끝이 아니라 이 검은 호루라기를 불음으로써 그 기능이 완성되었다.

옆에 놓인 검은 호루라기의 이름은 사이렌의 유혹.

이거야말로 정말, 위험한 아이템이었다.

【사이렌의 유혹】

【기능】: 주위 5km 반경 내에 위치한 모든 존재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

【설명】: 모두의 마음을 훔치고 싶다면 이 아이템이 제격이다. ‘사이렌의 유혹’에는 죽음의 노래로 수많은 선원을 죽음으로 내몬 사이렌의 영혼이 잠들어있다.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놀던 사이렌처럼 주위 존재들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 구국의 영웅을 희대의 반역자로 만들 수도 있고, 한 나라의 왕을 천하디천한 천민으로 기억하게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는 것 또한 가능하다. 부와 명예, 사랑을 원한다면 이 호루라기를 불어라. 당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얻는, 모두의 마음을 훔치는 도둑이 될지니.

‘마음을 훔친다라.’

꽤나 매력적인 문구였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란 특히 어려운 일이니.

‘실제로 이런 아이템이 있다면 재미있겠군.’

호루라기 한 번으로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누구나 들뜰 수 있건만 호준은 도리어 차분했다.

그가 차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애초에 사용 제한이 걸려있어 그는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사용 불가능했다.

【사용 가능 종족】: 인어족, 용족 외 18개 종족.

【현재 호준 님은 인간이기 때문에 본 아이템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본 아이템은 판매 가능하며 경매 가능합니다】

‘아쉽지만. 판매와 경매가 가능하니 손해는 아니군.’

유토피아에는 인간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경매에 올리면 팔릴 가능성이 컸다.

‘이 정도면 프리미엄이 붙고도 남지. 희귀하니까.’

그것도 아주 비싼 값에 팔리겠지.

호준은 호루라기가 담긴 상자의 뚜껑을 닫고는 인벤토리에 넣었다.

카이사르 왕은 그 모습을 나직이 바라보았다.

‘앞으로 저 물건이 어디로 갈 것인가.’

이성적으로 판단하자면 카이사르 왕으로서는 호준에게 상자를 주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호루라기들은 전략적 무기로 사용되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그가 믿고 따르는 용신의 이름을 내걸고 대가를 주기로 했기에.

신의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이기에 카이사르 왕은 군말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신의 뜻이로군.’

호준이 저 상자를 선택한 것 또한, 어쩔 수 없다고.

카이사르 왕은 그렇게 납득했다.

이제는 호준에게 온전히 맡길 차례였다.

“조심히 잘 쓰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그래. 이제 슬슬 돌아가도록 하지.”

카이사르 왕은 호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김을 내뱉었다.

그의 입김이 닿은 허공에는 두 사람이 통과하기에 충분한 포탈이 생성됐다.

포탈 너머로 비치는 수많은 용족들, 그들의 운명 또한 호준에게 달려있음을 카이사르 왕은 모르지 않았다.

‘용신의 뜻이다.’

카이사르 왕은 호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포탈로 뛰어들었다.

포탈로 빨려 들어가던 순간, 카이사르 왕은 알지 못했다.

호준으로 인해, 나타샤의 반역이 시도도 못하고 끝났다는 것을.

단지 저 호루라기로 인해 세력 구도가 뒤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 * *

이번 대회의 우승자, 호준이 보상을 타기 위해 카이사르 왕과 자리를 뜬 사이.

평소라면 무대가 텅 비어야 하거늘.

이번에는 평소와 달랐다.

호준의 지인으로 알려진 요정들 미르, 다크니스, 츄츄 주위로 용족들이 모여들면서 무대가 붐볐다.

이들은 언어로 하는 대화는 불가능했지만 고개를 끄덕거리고 저음으로써 대강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허허. 자네가 그 호준이라는 요리사의 조수라고?”

“끼루루!!(끄덕끄덕)”

“대단하구만. 조수라면 요리도 꽤나 하겠구만.”

“끼루루!(끄덕)”

“용족과 판박이로 닮아서 더 호감이 가는군. 후후. 배가 오동통한데 뭘 많이 먹은 건가?”

“끼룩!(절레절레)”

“아아. 원래 이렇게 통통하게 나온 거로군. 내 손자놈이 생각나는구만. 허허.”

미르는 주로 할아버지 할머니 용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용족과 흡사한 외모에, 살가운 성격이 인기에 한몫을 했다.

반면, 다크니스와 츄츄는 여자 용족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아유… 귀여워라. 넌 어쩜 이렇게 순하니?”

“그러게.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 같어.”

“손만 갖다대도 골골대네. 어쩜, 너무 귀엽다!”

“아… 햄스터가 이렇게 귀여운 거였구나.”

“그러게.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동물들은 다 도망가는데. 얘는 완전 순해.”

“손만 대면 좋아서 인절미처럼 퍼지네. 요물이야 요물.”

“얘 이름이 츄츄래, 츄츄. 타무르가 그러는데 그 음식점에 가면 이녀석들이 서빙하는 걸 볼 수 있다네!”

“이 작은 손으로 서빙을 할 수 있나? 근데 울음소리도 너무 귀엽다. 츄츄츄. 무슨 인형 같아.”

본래 동물들은 용족을 보면 도망가기 바빴고, 잡혀도 질색했다.

그러나 다크니스와 츄츄는 어떠한가.

얌전히 용족들의 손길에 몸을 내주는데다 골골대며 따르기까지 했다.

평소 작은 동물들을 좋아하고 기르고 싶어 하던 욕구가 있던 여자 용족들은 다크니스와 츄츄를 보고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미녀 용족들에게 둘러싸여 떡 주무르듯 마사지를 받던 츄츄를 발견한 호준이 피식 웃었다.

“이제 가자. 집으로!”

“츄츄―!”

“냐앙!”

“끼루루!”

츄츄가 꼼질거리며 호준의 발등 위로 올라오고, 다크니스와 미르도 다가왔다.

어깨에는 다크니스가, 옆구리에는 미르가, 발등에는 츄츄가 자리를 잡았다.

용족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이 이어졌다.

타무르는 그런 호준을 보며 피식 웃고는 다른 용족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와주신 호준 님께도 감사하며, 이렇게 관심 가져주신 용족분들께도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음식점 정보는 각 마을 게시판에 따로 기재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호준 님 음식점은 꽤나 유명한 곳이라서 미리 대기를 하셔야 한다는 점 참고해주세요! 그럼, 이제 가실까요.”

호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타무르는 능숙하게 포탈을 만들어냈다.

동그란 포탈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호준은 볼 수 있었다.

【24시간 내로 콘테스트에 우승 성공!】

【우승 타이틀을 거머쥐어 하늘국에서 당신의 명성이 +100 상승했습니다!】

【특별한 보상으로 하늘국의 비보 획득!】

미리 알고 있던 보상인 하늘국 보물창고에서 가져온 비보를 얻었다는 소식.

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하늘국에서 당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용족들이 대폭 증가할 것입니다】

【앞으로 당신의 얼굴을 알아보고 호의를 베푸는 용족들이 늘어납니다!】

【앞으로 하늘국에서 20% 할인된 가격으로 물품을 살 수 있습니다】

명성을 얻은 덕에 용족들과 더욱 가까워졌으며,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다는 혜택.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있었으니.

【하늘국에서 당신의 명성이 높아져 하늘국으로 갈 수 있는 통행증이 발급되었습니다!】

【하늘국 통행증 1개 획득!】

【당신은 정식 통행증을 보유했기 때문에, 앞으로 텔레포트 장비로 하늘국을 오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무를 통해서 하늘국으로 이동 가능합니다!】

‘명성이 높아지면 이런 혜택이 있구나.’

기존의 통행제한이 풀려 하늘국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하늘국으로 한 번은 갈 수 있어도, 계속 갈 수 있는 경우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수확이었다.

그러나 아직 기뻐하기는 일렀다.

‘아직 라텔에게 받을 게 남아있지.’

여관에 맡겨두었던 궤짝.

그 안에 잠들어있는 라텔에게 받을 보상이 남아있었다.

호준은 지그시 미소를 지으며 포탈로 빨려들어갔다.

‘역시 오길 잘 했어.’

하늘국 원정은 대성공이었다.

* * *

“고맙습니다 정말. 몇 번 하는 말이지만, 진심입니다.”

“그 말만 벌써 열 번은 들었지 말입니다. 더 이상 인사 안 하셔도 잘 압니다.”

“워낙 고마워서… 호준 님이 아니었으면 결혼은 꿈도 못 꿨을 겁니다. 결혼식 때 와주십사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 아내 될 이도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합니다.”

“물론이죠. 미리 일정을 알려주시면 가겠습니다. 요정들을 데리고 가도 괜찮지요?”

“당연한 말씀을요. 따로 연락을 그럼 하겠습니다.”

다시 농장으로 돌아온 뒤.

타무르는 감사 인사를 한참이나 했다.

호준이 말리자 그제서야 발걸음을 떼었다.

이제 남은 일은 라텔과의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호준은 라텔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솔직한 성격이 매력이었다.

“이렇게 초록색 천지인 건 처음 봐.”

“여긴 숲이라 그런 거고, 저쪽 호숫가로 가면 푸른 하늘이 비쳐서 꽤 아름답다.”

“거기도 가보고 싶다. 아, 일단은 이것부터.”

라텔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좀.”

“…?”

호준이 손을 갖다 대자 라텔이 호준의 손등에 입술을 맞췄다.

물기 어린 시원한 입술이 손등 위로 느껴졌다.

라텔은 입술을 여전히 손등에 가까이 한 채로 말했다.

“고맙다. 인간. 네 덕에 기억도 찾고 되돌아올 수 있었어. 부디 그대에게 해신의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한다.”

라텔이 입꼬리를 올리자 입술에서 푸른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푸른 연기는 호준의 전신을 휘감았다.

호준은 마치 시원한 물로 냉수 목욕을 한 것처럼 정신이 바짝 들었다.

‘역시….’

호준은 연기가 사그라들자 메시지들을 볼 수 있었다.

【퀘스트 성공!】

【영원한 우방 칭호 획득!】

【인어족 전원(10만 231명)의 호감도가 +50 올라갑니다】

【인어왕의 무덤, 아칼란차를 자유롭게 탐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어족은 당신을 절대로 공격하지 않습니다(호감도가 0으로 내려갈 경우 공격 가능)】

…….

호준은 늘 그래 왔듯 차분하게 메시지를 읽었다.

푸른 연기로 인한 시원한 감각 덕분에 빠르게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차분히 메시지를 읽어내려가던 그가 잠시, 숨을 흡 들이마셨다.

“어…?”

그를 당황하게 하는 문구가 있었다.

인어족들의 우두머리, 인어왕에 관한 내용이었다.

【인어왕은 당신과 동맹을 맺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현재 인어왕은 라텔입니다】

【현재 인어왕이 당신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왕족이라더니. 이 녀석이 차기 인어왕이라고?’

호준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라텔을 바라보았다.

라텔은 다크니스를 옆구리에 낀 채로 하품을 하며 누워 있었다.

“하암. 한숨 자고 가도 되지?”

“얼마든지.”

느긋한 얼굴의 라텔과 달리 호준의 눈동자는 왠지 모르게 반짝였다.

메시지가 말하는 동맹의 효과는 놀라웠다.

【동맹은 전쟁 시 서로 한 몸이 되어 싸웁니다】

【인어왕과 동맹을 맺을 경우, 10만여 명의 인어족에게 건설, 서빙, 제조 등의 잡일을 부탁할 수 있습니다!】

【동맹을 맺을 경우 서로 적은 비용만을 받고 일을 도울 수 있습니다!】

하나를 얻으니, 또 다른 무언가를 얻을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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