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선택
어디서나 1등은 주목받는다.
누구나 1등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금 호준이 참가하는 요리 콘테스트도 그러했다.
매년 열리는 하늘국 요리 콘테스트 우승은, 용족 요리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목표였다.
콘테스트의 유구한 역사 아래 수많은 이들이 인정하는 명예로운 대회였으니까.
최종 후보로 호명되는 것이 영광이라 불릴 정도로 쉽지 않은 대회이기도 했다.
그런 대회에서, 수많은 용족들을 제치고 호준이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수많은 참가자를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한 호준.
그가 주목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야. 유례가 없는 일이야.”
“그러게 말일세. 내 살다 살다 이리 귀한 음식을 콘테스트장에서 먹을 줄은 또 몰랐네.”
“아쉽군. 인간 요리사라면 인간계에서 살 게 아닌가. 또 요리를 먹어보면 좋을 텐데.”
“먹고 싶으면 한번 내려가면 그만 아닌가. 위치를 알아둬서 나쁠 건 없지.”
들썩거리는 관중들의 분위기를 모르는 바는 아니건만.
호준은 조금 차분한 얼굴로 테이블을 짚고 서 있었다.
‘드디어 끝났군.’
이제 걱정할 것은 없었다.
그의 테이블에는 다른 용족들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접시들이 있었으니까.
우승은 확정되었다.
그 사실이 그에게 차분함을 안겨주었다.
‘성공했어.’
호준은 겉으로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흔들흔들 춤을 추고 싶을 만큼 기뻤다.
그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기뻐하고 있을 무렵, 카이사르 왕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시끌벅적하던 분위기가 사뭇 조용해졌다.
카이사르 왕은 창을 높이 치켜들고는 모두가 들릴 만큼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대회의 우승자를 발표하겠다. 용신이 우승자에게 축복을 내려주시리라!”
왕이 창으로 바닥을 내리찍자, 하늘에 먹구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시야가 어두워졌다.
“오오!”
“시작이군.”
“아름다워!”
호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저게 뭐지?’
검은 먹구름에 선명한 새하얀 점들이 여러 개 나타났던 것.
처음에는 열 개 정도였던 하얀 점은 계속 숫자가 늘어났다.
마치 배터리가 100%로 충전되듯,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수백 개의 점들이 생성되더니 일시에 그 점들이 새하얀 선이 되었다.
촤자자자작―
수천 개의 번개가 누군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사람은.
‘왜 이쪽으로 오지?’
호준, 그 자신이었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번개들을 보며 호준은 몸이 흠칫 굳어버렸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그 광경을 보고 태연하기란 힘들었다.
한껏 긴장한 얼굴로 번개를 맞이했거늘, 번개가 몸에 닿자 그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어라? 별로 안 뜨겁네.’
몸을 감싼 번개의 감촉은 마치 따뜻한 전기매트 같았다.
뜨뜻한 것이 나쁘지 않달까.
호준은 긴장을 낮추고 몸에서 힘을 뺐다.
그러자 그의 발바닥까지 감싼 번개가 그를 높이 들어 올리더니, 어디론가로 향했다.
공중을 날아가며 호준은 넋을 놓고 무언가를 보았다.
주위의 번개 덩어리들이 터져나가는 장관을.
수천수만 개의 새하얀 빛 알갱이들이 터져나가는 광경은 넋을 잃고 볼 만했다.
‘바로 눈앞에서 불꽃놀이를 보면 이런 기분이려나.’
그것은 그동안 보아온 불꽃놀이와는 완전히 다른, 색다른 눈요기였다.
그가 멍하니 번개를 감상하는 사이, 어느새 카이사르 왕의 코앞에 옮겨져 있었다.
카이사르 왕은 바닥에 다리를 내딛는 호준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축하하네. 자네의 요리는 아주 훌륭했어.”
“과찬이십니다.”
호준이 왕의 손을 맞잡자 그의 몸을 감싼 번개 덩어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거대하게 터져나갔다.
콰과과과과광!
정신이 번쩍 들 만큼, 빛나는 광경.
번개가 하늘국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호준과 손을 맞잡은 카이사르 왕이 자신의 외침을 번개에 실어 보냈다.
“이번 대회 우승자는, 호준이다. 그는 나 카이사르 왕과 하늘국이 인정한 최고의 인간 요리사이니라!”
그의 전언은 번개를 타고 하늘국 전체로 퍼져나갔고.
수백만 용족들이 ‘호준’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 * *
호준의 우승 과정을 쭉 지켜본 시청자들은 한껏 흥분에 들떠 있었다.
그들을 들뜨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호준의 성공, 그의 대회 우승도 그러하지만.
그의 압도적인 전투 실력.
그리고 그 실력을 수많은 용족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이 뭔가 보는 이로 하여금 뿌듯하게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호준을 지켜봐 온 시청자들은 호준의 성장을 응원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용족들의 요리란 원래 투박한 편인데, 호준 님 요리는 뭔가 세심함이 느껴지더군요. 깃털을 넉넉히 장식한 것도 저희 용족들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뭔가 통이 크다고 해야 할까요. 너무 잘하신 선택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허허. 제가 먹은 요리 중에 제일 맛있었습니다. 알크메네 고기에 그런 색다른 맛이 있을 줄이야. 요리 실력이 이렇게 출중하신 분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다른 요리들도 많이 하고 있으니 드시고 싶으시면 가게로 한번 오십시오.”
“오호. 그래요! 어디에 있는 가게입니까. 내 꼭 한번 가고 싶습니다!”
카이사르 왕이 물러서자 호준의 주위에는 용족들이 가득 찼다.
대부분 귀족 이상의 용족들이었는데 그들의 칭찬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가식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찬사였기에 호준은 차분히 대응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호준을 응원하기 위해 시청하는 수많은 이들은 그 모습에 더욱 뿌듯해했다.
└ 【무한의증식】: 이야… 매번 보지만 놀랍네. 완전 구름떼처럼 모여들어서 칭찬함. 레알… 보는 내가 뿌듯하다 ㅎㅎ
└ 【미루미루】: 역시 호준 님은 장난 아님. 갓호준 인정!
└ 【레벨업이여오라】: ㅇㅇ, 내 말이. 아까 번개 터지는 거 봄. 스케일 장난 아님. 저걸 직접 봤으면 오금이 저릴 듯.
└ 【용족의숨겨진아들】: 번개 퍼지는 짤은 이번 달 오프닝 짤로 하면 딱일 듯. 레알 레전드 찍으심.
시청자들은 번개짤의 아름다움에 일제히 감탄을 토했고.
몇몇은 냉철히 상황을 분석했다.
└ 【아이러브별이】: 내 생각에는 이제 줄 빨리 서야 할 듯.
한 시청자는 빨리 줄 서야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 【갓호준바라기】: 응? 왜요?
└ 【용족의숨겨진아들】: 아까 들으니까, 하늘국 전체로 호준 님 이름이 퍼져나간 거래. 그럼 하늘국 용족들은 다 아는 거 아닌가.
└ 【아이러브별이】: 그것도 그렇고. 지금 호준 님이 용족들하고 말하다 보면, 가게 찾아가겠다는 용족들이 생길 거 아님? 그럼 새롭게 줄 서는 용족들도 생기겠지. 기존 손님들도 많은데 용족들까지 끼면… ㅎㄷㄷ. 빨리 안 가면 음식 조기매진될 듯.
└ 【요리사지망생132】: 아아― 그러네. 그럼 이제 오픈 4시간 전에는 가야 하나?
└ 【아이러브별이】: 글쎄. 넉넉히 6시간 전에는 가는 게 안전할 듯!
└ 【갓호준바라기】: 어, 인정. 아예 날 잡아야겠넹. 저기 가면 용족도 볼 수 있겠다 ㅋㅋㅋ
시청자들이 한창 호준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사이.
방송 화면 속 호준은 카이사르 왕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둘은 텔레포트로 이동해 새하얀 신전 건물에 막 들어선 참이었다.
그리스풍의 신전 건물은 오래된 건물인지 기둥마다 이끼가 가득했다.
용족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다소 허름한 건물에 시청자들은 고개를 갸웃하는 분위기였다.
└ 【오리알낙동강】: 근데 지금 어디 가는 거임?
└ 【아이러브별이】: 글쎄. 왜 이렇게 낡았지? 이끼 장난 아님.
└ 【별이바라기】: 1위를 하면 상을 주겠지. 지금 상 받으러 가는 거 아닌가?
└ 【아이러브별이】: 아아. 그렇구나.
또각또각.
신전을 걸어가는 호준의 뒷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호준은 채팅창을 가볍게 살펴보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카이사르 왕은 낡고 검은 먼지가 가득한 벽에 우뚝 서더니, 손바닥을 벽에 갖다 댔다.
“일어나라.”
그의 말이 신전에 울려 퍼지자 벽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벽이 사라진 순간.
“아…!”
호준은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탄성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눈부셔.’
눈이 부신 황금빛이 그의 눈을 덮쳤으니까.
어두컴컴한 곳에 익숙했던 눈이 갑자기 눈부신 황금빛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탓이다.
호준은 눈을 몇 번이나 깜박이며 겨우 다시 앞을 볼 수 있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확인한 광경은.
‘어마어마하군.’
황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광경이었다.
황금으로 된 도자기, 거대한 신상, 황금으로 짠 듯한 갑옷.
가전 기구부터 침대, 책상, 의자까지.
황금으로 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런 물건들이 고개를 들어도 보이지 않는 꼭대기까지 쌓여있었다.
황금산의 크기는 뒷산 크기보다도 커 보였다.
산은 정확히 그가 들어섰던 신전의 크기를 한참 넘었다.
“너무 많은 황금에 놀란 모양이군.”
카이사르 왕이 여유로운 웃음을 띠며 가까이 다가왔다.
호준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넌지시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큰 산을 숨기셨습니까.”
“마법으로는 못 할 것이 없지. 내게는 왕족에게만 내려오는 비법이 있다네. 이 창고를 만드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나와 이름이 똑같은 카이사르 선왕께서 고안하신 방법이지.”
“그렇군요. 신기합니다.”
호준은 순수하게 신기했다.
신전의 크기를 뛰어넘는 산을 신전에 가둘 수 있다는 마법도.
이 거대한 황금을 모을 만큼의 능력을 지닌 그 선대왕도.
황금산은 본 것만으로도 고대 유적을 본 것과 같은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호준이 황금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카이사르 왕은 뿌듯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자네는 보통 인간과는 다르군. 보통 인간이라면 황금을 탐내기 마련인데. 자네의 눈빛에서는 그런 감정이 읽히지 않아.”
“그저 놀랍습니다. 이 정도… 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솔직한 점도 마음에 드는군. 이쪽으로 오게.”
호준은 카이사르 왕의 길 안내를 따라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도 벽도 천장도 황금으로 가득한 공간에 발을 내딛자 물건들을 보다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미녀의 얼굴을 빼다 박은 듯한 조각상.
형형색색의 보석을 수천 개는 박은 듯한 30인용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탁자.
심지어 황금으로 만든 오두막도 있었다.
10인은 넉넉히 자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오두막이었다.
“이곳에서는 오직 한 개의 물건만 가지고 나갈 수 있네. 이는 모든 콘테스트 우승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이지. 자네에게도 기회를 주겠네. 오직 하나. 하나를 고르도록 하게.”
그의 말에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신기하고 아름다우며 귀중한 물건들이 많았지만, 호준은 이미 마음을 정해두었다.
‘나타샤가 원한, 그리고 렌리가 말한 그것. 그것이면 충분해.’
목표한 바가 있기에 호준은 차분히 창고를 누볐다.
그가 창고를 누비는 것을 보던 시청자들도 한껏 긴장해 있었다.
└ 【오리알낙동강】: 와… 뭐 고를까.
└ 【아이러브별이】: 내 생각에는 저 신상 고를 듯. 가장 크잖아!! 팔면 억수로 돈 벌겠다. 개부럽!
└ 【별이바라기】: 신상보다는 저 조각상 어떰?
└ 【아이러브별이】: 내 생각에는 저 오두막 좋을 듯. 나무 오두막보다 간지나고 저기서 장사하면 손님도 많이 올 거고?
채팅창에는 수많은 의견들이 난무했다.
물론, 호준은 그런 채팅창을 볼 여력이 없었다.
‘어디 있지.’
목표한 것을 찾아야 했으니까.
창고를 한참을 뒤적거리던 그가, 마침내 목표한 바를 찾은 것은 그로부터 30분이 지난 후였다.
“정했습니다.”
호준은 겨우겨우 발견한 낡은 나무상자를 들고 카이사르 왕을 찾아갔다.
“이것으로 하겠습니다.”
카이사르 왕은 호준이 내미는 것을 보자마자 눈썹이 휘어졌다.
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이것으로 하겠는가. 후회할지도 모르네. 이곳의 조각상은 되팔면 수십만 골드는 받고 남을 텐데.”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호준이 당당한 어조로 답하자 카이사르 왕이 눈을 가늘게 뜨며 호준을 바라봤다.
‘저 상자를 선택하는 자가 나오다니.’
카이사르 왕은 호준을 빤히 응시했다.
수천 년 전 비극을 일으킨 보물을 들고 있는 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