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82화 (182/200)

182. 경합 시작

1년에 한 번 있는 요리 콘테스트가 벌어지는 콜타르 광장.

광장이라는 말을 듣고 조그마한 광장을 생각했건만. 이게 웬걸.

콜타르 광장은 축구 경기장의 5배는 될법한 커다란 규모를 자랑했다.

“끼루루!”

“츄츄!”

“…냐!”

텔레포트를 타고 광장에 도착한 츄츄, 미르, 다크니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옆에 있던 호준 또한 동그랗게 커진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어마어마하군.’

광장은 콘테스트를 구경하러 온 용족들로 가득했다.

“콘테스트장이 바로 코앞인 S급 좌석 팝니다! 좌석 3개를 구매하면 한 개를 공짜로 더 드리니 얼른 사가세요!”

“구경하는 데 딱 좋은 망원경을 단돈 3,000골드에 팝니다!”

“콘테스트 구경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유아 용족을 데려오셨나요? 그렇다면 이 유아용 코랄 산호죽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세요! 코랄 산호의 맛과 영양이 살아있는 죽은, 아이들을 골골골 잠자게 만들 겁니다!”

수많은 용족들이 수많은 것들을 팔기 위해 목청을 높였다.

“해마다 수많은 용족들이 콘테스트를 보기 위해 머나먼 지방에서 올라오곤 하죠. 연례행사라고 보면 됩니다.”

타무르의 설명을 들으며 광장 한가운데 우뚝 솟은 무대로 향했다.

건물 6층 꼭대기 정도는 될법한 무대는,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만큼 높았다.

입구를 지키는 가드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자 이미 무대를 가득 메운 참가자들을 볼 수 있었다.

호준은 앞서가는 타무르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그때. 옆에서 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누구야. 감히 피오나 공주님과 결혼하겠다고 했다가 쫓겨난 타무르 아닌가.”

“북부 사켄차 지방을 대표하는 치토르 님이 아니십니까.”

붉은 까치머리의 용족, 치토르가 타무르를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느끼한 눈빛 하며 불편해 보이는 표정 하며,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인물이었다.

치토르는 반지르르한 옷소매를 흔들며 건들건들 다가왔다.

“뻔뻔하게 여기가 어디라고 오는지. 피오나 공주님한테 자네가 가당키나 할 것 같은가. 자네보다는 내가 훨씬 낫지. 내 부모님은 자네 부모님처럼 객사하지도 않았고 재력도 풍부하며, 무엇보다도 북부의 주인일세. 태풍처럼 강한 힘으로 피오나를 지켜줄 수도 있지.”

“결정은 오로지 피오나 님과 왕에게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왈가왈부한다고 될 일이 아니지요.”

타무르가 예의 바르게 받아치자 치토르는 못마땅했는지 바닥을 발로 구르며 소리쳤다.

그는 주위 귀족들이 듣기를 바라는 듯 중얼거렸다.

“쯧쯧. 가진 것 없는 거지가 공주에게 안달하는 걸 보니 참으로 안타깝구만. 거지는 거지답게 살아야지.”

치토르가 악담을 퍼붓고 돌아갔으나 타무르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표정 변화 없이 발을 옮겼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게 아닌 듯했다.

마침내 일행 전부가 배정된 100번째 테이블에 도착하자 타무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괜히 저 때문에 불편하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 자리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괜히 평가에 영향이 갈 듯해 말을 아꼈습니다.”

타무르는 잠시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알크메네 고기를 도마에 올리며 말했다.

“제 부모님은 최전선에서 용맹하게 싸우다 돌아가셨습니다. 저렇게 깎아내리듯 말할 만한 것이 아니죠. 다만. 가끔 생각 없는 자들이 저렇게 지껄이곤 합니다. 제가 피오나 공주에게 선택받았다는 이유로 시기와 질투를 퍼붓는 것이지요.”

“그런 거라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열등감이 있는 자는 무슨 말을 해도 불편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법이니까요.”

담담히 생각하는 바를 말하자 타무르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호준 님과 저는 여러모로 잘 맞는 것 같군요. 이 일이 끝난 뒤에도 자주 볼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가게 손님으로 오면 얼마든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습니다. 단, 줄은 서셔야 합니다. 지인이라고 새치기는 안 되니까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슬슬 내려가 봐야겠군요. 여기, 고기는 넉넉히 준비해 뒀습니다. 부족하면 제게 따로 말씀하십시오.”

호준이 타무르가 건넨 고기를 살펴보고 있는데 팡파르가 울려퍼졌다.

무대 위, 무대 아래 사람들의 시선이 팡파르를 부는 작은 용에게로 향했다.

어린아이 크기만 한 초록색 용이 팡파르를 부여잡고 둥실둥실 떠 있었다.

녀석이 오동통한 입술을 팡파르에서 떼고는 소리쳤다.

“100명의 요리사가 모두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지금부터 피 튀기는 하늘국 대표 요리 경합, 카이사르 요리 콘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무대 위에는 오로지 요리사만 남겨 두고 퇴장해주십시오!”

드디어 경합이 시작되었다.

* * *

요리 콘테스트의 룰은 간단했다.

100명의 요리사가 3명이 남을 때까지 대결을 펼치는 것.

어떤 대결을 벌일지는 오로지 카이사르 왕에게 달려 있었다.

카이사르는 무대 정 가운데 위치한 첨탑 위에 앉아있었다.

그는 무시했다.

바로 아래에 앉은 딸 피오나가 초조한 얼굴로 호준을 보는 것을.

‘저자가 타무르가 고른 자인가. 고작 인간을 고르다니.’

인간은 용족과 출발점부터 다른, 유약한 종족이었다.

제아무리 힘을 길렀다 한들, 태생이 다른 용족을 이겨낼 수 있을 리가.

타무르가 어딘가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딸에게는 미안했지만.

팩트는 용족을 능가하는 인간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짓을 했군. 허황된 희망을 품게 하다니.’

카이사르는 딸이 입술을 짓이기는 것에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황금창을 들어올리자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첫 번째 과제를 공개하겠다.”

그가 삼지창을 바닥에 내리치자 무대 전체가 들썩거렸다.

이어지는 카이사르의 말은 무대 정중앙, 허공에 황금색 글씨로 새겨졌다.

마치 불꽃놀이로 새긴 것처럼 모두가 볼 수 있는 커다란 글씨였다.

“빨리 요리를 제공하는 것 또한 능력일지니. 아무런 요리기구를 쓰지 말고, 오로지 냄비와 칼과 도마 1개씩만을 이용해서 1,000개의 요리를 만들라. 1,000개의 요리를 먼저 만드는 자는 우승에 한 걸음 다가갈지니. 단 3명에게만 우승에 도전할 기회를 주겠다.”

냄비, 칼, 도마.

각 1개만 이용해서 1,000인분을 만들라는 주문이었다.

“허업….”

“뭐, 뭐를 하지. 자, 잠깐만. 후우.”

해당 과제를 보고 대다수 요리사들은 당황했고.

“스피드 하면 이 남부의 미카르를 빼놓을 수 없지!”

“빨리 뭐라도 만들자.”

“야채라도 볶자.”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일부 요리사들은 조급한 마음에 칼을 들었다.

100명의 참가자들은 그냥 어중간한 요리사들이 아니었다.

각 귀족들의 비호를 받고 이곳까지 올 수 있었고.

만약 3명에 들어가기만 하더라도 자신의 이름을 모든 용족들에게 알릴 수 있었다.

커리어의 성공과 두둑한 인센티브를 위해서라면 많은 요리사들은 영혼을 팔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렇게 요리사들이 눈빛을 번쩍이며 행동을 개시하고.

무언지는 몰라도 분주하게 만들어갈 무렵.

‘흠….’

호준이 있는 테이블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는 칼도 들지 않은 채로 고민 중이었다.

그가 고민하는 것은 하나였다.

‘뭘 만드는 게 가장 빠를까.’

배의 속도보다는 배가 가는 방향이 중요했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다가는 느리게 가는 것만도 못한 결과가 나올지도.

‘급하다고 아무거나 만들다가는 최종 엔트리에 못 들어갈 수도 있어.’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다스려야 했다.

제일 빠르게 요리를 만든 3명에 들어가려면, 그러려면 전략이 필요했다.

실패하지 않을 전략이.

그의 고민이 깊어질수록,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아우성이 커져갔다.

채팅창은 불이 날 지경이었다.

└ 【세상이나】: 왜 시작 안 함? 빨리해야 하는데!!!

└ 【무한의증식】: 무슨 음식을 만들지 고민하는 듯. 아 근데 1,000명분 요리면 뭐가 빠름?

└ 【레벨업이여오라】: 글쎄. 계란후라이 같은 게 빠르려나?

└ 【미루미루】: 계란후라이가 요리로 치는 거임? 삶은계란 같은 것도 기구를 이용하는 거니까 안 되고.

└ 【오리알낙동강】: 아 답답. 근데 냄비도 저기 보이는 거로 쓰면, 계란 삶는 것도 몇 개 못 삶을 듯. 이러다가 진짜 지는 거 아님?

└ 【별이바라기】: 뭐라도… 뭐… 어?

대다수 시청자들이 불안함을 토해내던 그때.

“그거야.”

호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알크메네 고기를 냄비에 가득 넣더니 물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강불로 끓이니 고기의 연분홍빛이 사라져갔다.

호준은 냄비뚜껑을 닫고는 재료를 넣는 바구니에 양배추를 쌓기 시작했다.

착착착착착-

수박만 한 양배추 20개를 쌓고는 그가 양배추 하나를 들고 도마 위에 섰다.

투닥탁 투닥탁탁-

수박만 한 양배추를 채로 써는 데는 10초로 충분했다.

└ 【무한의증식】: 이야… 매번 보지만 놀랍네.

└ 【레벨업이여오라】: 양배추 채면… 설마 샐러드?

└ 【미루미루】: 샐러드라, 고기 샐러드. 괜찮네!

└ 【오리알낙동강】: 그런데 샐러드면 1인분이 어느 정도임?

└ 【별이바라기】: 글쎄 안 만들어 봐서. 일단 닥치고 봅시다.

시청자들은 잠자코 기다렸다.

그가 어떤 요리를 할지를.

고기가 익자 호준은 고기를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투닥탁탁-

호준의 놀라운 칼질은 용족들의 경계와 놀라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야….”

“저 녀석 정체가 뭐야?”

“칼질을 어떻게 저렇게 빨리하지?”

“뭐야. 저거. 뭔 짓을 한 거야?”

칼질 속도도 놀랍지만.

용족들이 경계한 것은 호준의 요리 완성 속도였다.

투닥탁탁- 착!

호준의 손이 잠시 움직이고 나면.

샐러드가 완성되었다.

잘 썰린 양배추 채와 알크메네 고기가 마요네즈 소스에 버무려진 채로 접시에 안착!

“1인분 완성입니다!”

“1인분 완성입니다!”

호준의 곁에 선 심판 직원이 연달아 완성을 알렸다.

그 소리를 듣는 주위 요리사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호준의 요리는 마치 기계로 찍어서 나오듯 빨랐다.

일반 용족들이 볼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손은 빨랐기 때문이다.

“뭐야. 왜 저렇게 빨라.”

“누가 가속마법 건 거 아냐?”

“인간이 무슨 비책을 썼을지도 몰라. 어이, 저 녀석 검사는 잘 하고 들여보낸 건가?”

“저 녀석 아무래도 이상한데!”

일각에서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용족의 자존심이 스크래치가 난 것과는 별개로 호준의 요리 속도가 너무 빨랐던 탓이다.

그러나 호준에게는 그 어떤 경고도 내려오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항의가 들어와 확인하는 바입니다. 이 자는 마법이 걸려있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용왕 카이사르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심판으로서 확인을 마쳤습니다. 이자는 본래 실력으로 겨루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각 요리사에게 배치된 심판 역할을 하는 용족.

즉 호준에게 배치된 용족이 부정행위는 없음을 확인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다 살다 별. 저렇게 요리를 빨리 하는 인간이 있는 줄은 처음 듣는군.”

“누가 데려온 거야? 대체?”

“타무르라던데?”

“그 녀석이. 아아. 인간계로 도망갔다더니 저런 자를 데려온 겐가.”

호준이 화제가 되자 덩달아 타무르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타무르는 멀리서 호준을 신뢰가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내 감은 틀리지 않았어.’

호준은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로 요리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 * *

요리 콘테스트를 위해 모인 용족들은 관중석을 차지하고 수다를 늘어놓았다.

최종 3명을 선발하기 위한 과제가 진행 중이었지만.

대다수 용족들은 전광판을 흘깃거리며 술을 먹고 안주를 마시기 바빴다.

어차피 1,000인분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걸릴 테니, 지금은 먹고 마시자는 분위기인 것이다.

그런데 술을 한창 마시던 용족들에게 뜻밖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글쎄. 인간이 파죽지세로 만들고 있대.”

“에이, 설마. 고작 인간이 무슨 힘이 있어서 빨리 만든다는 겐가. 오버하는 거 아니고?”

“그게. 보통 인간이 아니래. 요리를 1초 만에 만든다는구만. 저쪽에 인간을 비추는 전광판이 아주 난리가 났어. 나도 맥주를 더 사러 갔다가 들은 거네.”

“진짜?”

“에라이.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나? 어서 가보자고.”

긴 시간을 끌 것 같던 경기가 빨리 끝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일부 용족들이 우르르 100번 테이블을 비추는 전광판으로 향했다.

“오오!”

“이야!”

“저건 알크메네 고기 아닌가. 맛있겠구만.”

“저 하얀 소스는 그 비싸다는 마요네즈잖나! 관중들에게 나눠줄 테니 어서 빨리 맛보고 싶군.”

“저 녀석 정체가 대체 뭐길래 저렇게 잘 만드나?”

호준이 만드는 초스피드 샐러드는, 이미 용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