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79화 (179/200)

179. 하늘국 시장

때로는 한 사람이 일으키는 변화가 어마어마하다.

요즘 유토피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화제로 떠오르는 인물.

호준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에게 쏟아지는 관심 덕분에 유토피아에는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레드 게이트 도전자 갈수록 늘어, 일각에서는 호준의 방송 때문이라고 분석】

【안타깝게도 호준을 제외한 레드 게이트 성공 사례는 극히 드물어】

【함부로 레드 게이트에 도전하면 낭패 보기 십상】

【철저한 대비책 마련해야】

먼저 그의 레드 게이트 방송 덕분에 많은 이들이 레드 게이트에 도전했다.

레드 게이트가 담력을 테스트하는 장이 된 것이다.

실제로 레드 게이트 정복 등과 같은 어그로성 제목을 끄는 방송이 많아졌다.

호준처럼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지만.

레드 게이트가 인기를 끄는 것은 유토피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직업 선택에도 그의 영향력이 미쳤다.

【유토피아에 떠오르는 직업 농부?】

【농사와 요리를 병행하는 플레이어 대거 등장】

【인기 방송인 호준의 영향으로 보여】

【농부 인기가 꾸준히 이어질지는 미지수】

인기가 없던 농부가 떠오르는 직업으로 탈바꿈했다.

이는 호준의 성공에 대한 이미지가 대중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이었다.

농사와 요리를 병행하면 수익이 늘어난다는 점도 부각되면서 많은 이들이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이런 변화의 기반에는 그를 따르는 수많은 구독자들이 있었다.

어느덧 요정의 쉼터 방송 구독자수는 150만 명을 넘겼고.

이는 방송 시스템이 도입된 지 얼마 안 된 것을 놓고 볼 때, 매우 놀라운 성장세였다.

그의 빠른 성장세에 PD계 마이다스의 손, 이미주 PD가 불을 지폈다.

그녀가 내건 하늘국 티저 영상은 업로드와 동시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호준, 금단의 나라 하늘국에서 라이브 방송 예정!】

【금일 라이브 방송 시작! 팬들 라이브 방송 기다리며 한껏 들떠!】

【호준, 최초의 하늘국 라이브 방송 도전!】

【한국 플레이어 최초로 하늘국 진출 하나】

하늘국 라이브 방송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팬들은 기다렸다.

하늘국 방송이 얼른 시작되기를.

요정의 쉼터 채팅란에는 라이브 방송을 기다리는 팬들이 모여 수근댔다.

└ 아. 언제 시작하려나.

└ 라이브 방송이니까 하늘국 가자마자 ㄱㄱ 아님?

└ 그럴듯. 존버하자.

└ 방금 치킨 시켜놓음. 얼른 시작했으면.

└ 무슨 일로 가는 건지 궁금하네.

└ 용족은 좀 도도하다던데 진짜 그런가 모르겠네.

‘흠. 좀 걸리려나. 씻고 올까.’

요정의 쉼터 초창기부터 팬으로 활동하던 아이디 미루미루의 주인.

이미루 또한 눈을 반짝이며 방송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녀는 하품을 쩍 하며 키보드를 만지작거렸다.

잠깐 씻고 다시 올까, 아니면 기다릴까.

고민하던 그녀는 채팅창을 빤히 바라봤다.

아직 별로 관심 가는 내용은 없었다.

슬슬 씻고 오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가던 그때.

화면 오른쪽 하단에 메시지가 떴다.

【알림】: 요정의 쉼터 라이브 방송이 시작됩니다

【바로 보러가기】

“와! 티저 올린 지 얼마 안 됐는데. 대박 빨라.”

이미루는 들썩이던 엉덩이를 의자에 착 붙이고는 보러가기를 클릭했다.

큼지막한 방송창이 모니터를 가득 메웠는데 화면은 온통 검은색이었다.

“음. 아직인가?”

설마 방송 준비 중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데 오른편 채팅창에 관리자 메시지가 떴다.

메시지를 보며 이미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주(관리자)】 : 본 방송은 관전모드로 진행됨을 알려드립니다. 사정상 실시간 대화가 어려울 수 있으니 양해 부탁합니다. 라이브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관리자 메시지가 떠오른 지 2초쯤 지났을까.

화면이 뒤바뀌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이미루는 눈이 평소의 두배 크기로 커졌다.

“이게 뭐야…?”

웬 빨간 것이 화면을 가득 메운 것이 아닌가?

빨간색 공 같기도 하고.

워낙 멀리 있다 보니 대체 뭔지 분간이 안 되었다.

└ 이게 뭐임?

└ 판자때기인듯?

└ 아몰랑.

└ 뭔가요?

└ 궁금궁금.

채팅창에도 궁금하다는 의견이 빗발쳤다.

많은 질문에도 불구하고 호준은 대답할 여유가 없는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가 구름카메라를 멀리 이동시키자 질문이 확 줄어들었다.

구름카메라가 잡은 거대한 빨간 것의 정체를 확인하자 이미루는 입을 크게 벌렸다.

“맙소사. 용족의 본체구나!”

압도적으로 큰, 너무나 거대한 적룡이었다.

가히 축구 경기장의 몇 배에 달하는 크기.

그 아득한 크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보는 이미루가 느끼는 공포감 또한 컸다.

거대한 적룡은 호준과 그 옆에 있는 검은 머리 용족을 보며 분노를 표하고 있었다.

“와. 이거 진짜 대박이네.”

이미루는 씻으러 가려던 것도 완전히 잊고 화면에 몰입했다.

방송 알림을 듣고 찾아온 수많은 이들도 그녀와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호준의 방송에 빠져들고 있었다.

* * *

“네가 감히 나를 배신해! 네가 누이에게 수치심을 줬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적룡의 목소리는 커도 너무 컸다.

아마 저 거대한 몸뚱이만큼 목소리도 큰 것이겠지.

‘아우. 골이 울리네.’

호준은 귀를 가리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보통은 거대한 적룡의 크기에 압도당할 만도 하건만, 그는 차분했다.

‘나 때문에 화난 게 아니야.’

그는 알아챘다.

적룡이 화난 상대는 바로 지금 옆에 서 있는 타무르라는 사실을.

실제로 타무르는 팔을 들어 용을 진정시키려 했다.

“흐음. 진정하게, 파이젤. 자네가 모르는 것이 있으니. 일단 변신부터 풀게나!”

그의 모습에서 마치 잔뜩 뿔이 난 어린아이를 달래려는 어머니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태연한 타무르의 표정과 달리 적룡, 파이젤이라 불린 녀석은 여전히 뿔이 나 있었다.

콧김에서는 붉은 연기가 쒹쒹 뿜어져 나왔다.

그 연기를 그대로 맞은 호준은 머리가 좌우로 펄럭이며 사우나에 온 것처럼 따뜻해졌다.

그 상태에서 귓가로 파이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거짓말 나부랭이를 늘어놓느냐! 너를 천년지기라고 생각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 감히 내 누이를 농락하고 인간계로 도망을 쳐!”

“도망은 누가 쳤다는 건가. 피오나하고는 이미 상의를 마쳤네. 우리 둘이….”

“누님은 사족을 못 쓰는 고기도 안 먹고 풀떼기만 먹고 있…. 아니 그게 정말인가. 누나를 버리고 간 게 아니라?”

타무르의 말을 알아들은 파이젤의 잔뜩 부풀어올랐던 볼이 쉬르륵 사그라들고.

눈빛에는 이성이 돌아왔는지 초점이 살아났다.

타무르는 파이젤의 발톱을 툭툭 두드리며 쐐기를 박았다.

“누님을 누가 버린단 말인가. 여기 이분과 장인어른을 설득하려고 잠시 인간계에 다녀온 걸세. 오해하지 말게. 친우여.”

“그, 그랬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성을 되찾은 파이젤이 현신을 풀었다.

그는 타무르와 같은 인간형으로 돌아왔는데 붉은 장발 머리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파이젤은 자신을 타무르와 천년을 같이 살아온 친구이자 예비 처남으로 소개했다.

즉, 정리하자면 타무르는 절친의 누나와 혼약을 치르려는 상황이었다.

호준은 파이젤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들이고, 셋이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전략에 대해 논의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콘테스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심사위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

“심사위원은 총 10명이네. 이들은 대대로 용족을 대표하는 원로들이지.”

“원로들은 나이도 많을뿐더러 고지식하기가 이를 데가 없지. 흠. 어쨌든. 내 생각에는 보편적인 입맛에 맞는 식재료를 준비하면 더 도움이 될 것 같네.”

“보편적인 식재료라면…?”

“역시 용족의 기본식은 육류지. 육류 중에서도 알크메네 고기를 일품으로 치고.”

“알크메네는 하늘국에서만 자라는 새네. 부드럽고 담백하면서도 기름기가 적당해서 최상급 요리에는 빠지지 않고 들어가지.”

“그런 재료라면 꼭 요리에 넣는 게 좋겠습니다.”

호준의 말에 타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일세. 알크메네 고기는 내가 따로 구하도록 하지.”

그렇게 알크메네 고기는 타무르가 구해서 나중에 콘테스트장에서 만나기로 결정했다.

타무르가 떠나가고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는 호준에게 파이젤이 흔쾌히 안내를 맡겠다고 나섰다.

“흠, 여기서 가까운 마을에서 마침 장이 열릴 겁니다. 금화로도 살 수 있는 물건이 많을 텐데. 가볼 생각이 있으면 한번 구경 가시죠!”

“좋습니다. 갑시다.”

하늘국 시장 구경이라.

시장에 과연 어떤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을지 기대되었다.

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번거롭게 걸을 필요가 없이 파이젤의 포탈을 따라 갔다.

포탈을 빠져나와 바라본 시장은.

“흐음… 크네!”

요나스 마을 시장은 떠오르지 않을 만큼 큰 시장이었다.

가판대에 올라온 각양각색의 신비로운 과일들을 보며 호준의 눈빛이 반짝였다.

* * *

하늘족 시장 구경은 참으로 즐거웠다.

눈이 즐겁다고 해야 할까.

하늘국에서만 나는 희귀 과일들을 산 것도 만족스러웠고.

씨앗들도 골고루 살 수 있었다.

새로 구입한 씨앗들의 종류만 해도 무려 10가지나 되었고.

그중에서는 어떤 열매가 나올지 예상이 가지 않는 씨앗도 하나 있었다.

“하늘하늘 열매라…! 궁금하네.”

호준은 방금 산 하늘하늘 열매를 쥐었다 폈다 했다.

열매의 푸른빛은 하늘을 연상케 하는 색이었는데, 형광 하늘색이라는 것만 특이할 뿐 다른 열매와 다른 점을 찾기 어려웠다.

어쨌든 이름은 하늘하늘 열매이니 뭔가 있겠지.

하늘하늘 열매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호준은 얼마를 썼는지 대충 계산해보았다.

대략 20만 골드는 쓴 것 같았다.

‘뭐. 그래도 잘 샀어.’

제법 돈을 썼지만 아깝지 않은 소비였다.

이 씨앗들은 여기에서만 살 수 있는 씨앗들이니.

채팅창을 슬쩍 보니 많은 이들이 시청 중이었다.

└ 와. 용족들이 은근 미녀가 많네.

└ 몸매 죽임. 여자도 남자도. 눈호강 지린다.

└ 키도 다 크네. 다리 길이 비율 좀 봐.

└ 용족들이 차갑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 듯. 선입견인 듯.

└ ㅇㅇ. 상인들은 그냥 사람들하고 별로 다르지 않음.

└ 열매들도 색깔이 다 형광색이네. 지상의 것들하곤 다름.

벌써 동시 시청자수는 3만 명으로 늘어있었다.

일일이 질문에 대답해주면 진행이 안 되었기에 호준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호준 님, 이쪽입니다.”

앞서 가던 파이젤이 손을 흔들었다.

그는 조금 다혈질이기는 해도 나름 자기 사람에게는 잘 하는 성격이었다.

배신자라는 오해가 풀리자 파이젤은 그 누구보다도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순박한 미소를 짓는 얼굴에서는 아까의 분노 어린 적룡의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파이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시장을 뒤흔드는 비명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꺄아악!

뒤로 고개를 돌리자 호준은 볼 수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분홍 비늘을 가진 인어를.

연분홍 머리를 한 그녀는 샬롯과 같은 인어족의 외관을 띄었다.

철썩―

바닥을 뒹구는 그녀에게 채찍이 떨어졌다.

“크윽… 자, 잘못했습니다.”

인어족이 바닥에 납작 엎드리자 서릿발 같은 음성이 내려왔다.

“건방지게 내 앞을 걸어가? 정신을 못 차렸군.”

철썩―

철썩―

용족 여자가 엎드린 자세의 인어족을 마구 채찍으로 때렸다.

호준은 심히 그 광경을 보는 것이 거북했다.

인어족은 채찍을 맞으면서 엉금엉금 기어 주인으로 보이는 용족 여인의 뒤편으로 갔다.

용족 여인은 자신의 뒤로 간 것이 만족스러운지 채찍을 거두어들였다.

“이건 얼마요?”

“아… 하나에 1,000골드입니다. 손님.”

“이거 하나 주세요!”

태연하게 다시 쇼핑을 이어가는 용족 여인.

그녀와 달리 인어족은 쥐죽은 듯이 가만히 있다 고개를 슬쩍 들었다.

때마침 호준과 눈이 딱 마주쳤다.

호준이 표정을 굳히자 인어족은 다시 고개를 수그렸다.

‘너무 닮았어.’

호준은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바닥에 엎드린 인어족은 샬롯과 너무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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