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78화 (178/200)

178. 하늘국으로 떠나다

호준은 가게에서 타무르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주제는 타무르의 부탁에 관한 것이었고.

타무르의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해마다 하늘국에서는 요리 콘테스트가 열린다네. 그 콘테스트를 주관하는 분은 장인 어르신이지. 용족의 왕인 동시에 미식가셔서 매년 꼭 열리는 행사일세. 그분은 어지간한 음식이 아니면 입도 안 대는 까탈스러운 분이네만…크흠. 이야기가 샜군.”

“그 콘테스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저를 추천한 타무르 님도 자연스럽게 호명이 된다 이거로군요.”

“그렇네. 앞서 말했듯이 대대로 콘테스트 우승자와 그 우승자를 후원한 자에게는, 명예와 영광이 주어지네. 비록 장인어른이 지난번에는 나를 홀대했지만, 자네가 우승한다면 필시 달리 보실 거야. 그럼. 그렇고말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는 타무르를 보며 호준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타무르의 설명에 의하면, 요리 콘테스트가 시작하는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24시간 뒤.

24시간은 요리 재료를 준비하고 농장을 떠날 준비를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보상도 괜찮고.’

호준은 방금 전 타무르가 강조하던 부분을 떠올렸다.

― 인간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겠지만. 콘테스트 우승자에게는 특별히 용족의 비보를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다네. 용족의 보물창고에 잠들은 수많은 비보. 그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이 말이지. 자네에겐 그럴 만한 실력이 있을 것 같아 나도 제안하는 걸세.

용족의 비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중요했다.

이는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철저한 준비였다.

호준은 타무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12시간 뒤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 놓겠습니다. 재료도 장비도 이쪽에서 준비하지요.”

타무르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고맙네. 이 도움은 절대 잊지 않을 걸세.”

악수를 나눈 뒤 타무르는 포털을 만들어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타무르와의 대화는 마무리되고.

【당신은 타무르의 부탁을 수락했습니다!】

【24시간 내로 콘테스트에 우승해야만 성공 판정을 받습니다!】

【남은 시간】: 23시간 58분 13초

새로운 도전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

* * *

타무르와의 대화가 끝나고서.

호준은 요정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로그아웃했다.

유토피아를 시작한 지 벌써 12일 차.

그가 맞이한 아침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머리를 감고 아침밥을 먹고 출근하고, 오전에는 급한 업무를 처리했다.

점심을 먹고 쉴 무렵.

그는 잠시 여유가 생겼다.

“후우.”

호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앉아 핸드폰을 켰다.

늘 했던 그대로 그는 유토피아 뉴스 카테고리를 보기 시작했다.

상위권 랭킹 기사를 보며 그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기사가 제법 많이 떴네… SNS로 퍼져 나갔구나.’

【요정의 쉼터 목욕탕 사전 유출!】

【호준의 보석으로 도배된 목욕탕, 제작비만 200만골드 추정!】

【호준의 목욕탕, 금수저 목욕탕이라는 별명 붙어】

【금수저나 갈 수 있을 만큼 호화롭다는 소문】

【목격자 曰,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를 정도로 화려했다!】

【다수의 목격자, 무료 개장 시 꼭 가 봐야 할 목욕탕으로 손꼽아】

【화제의 목욕탕, 요정 목욕탕 오픈은 대체 언제인가】

이전에 목욕탕 인증샷을 찍은 사람들의 사진이 기사에 콕 박혔다.

초고속인터넷 시대에 이런 빠른 파급력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랭킹 1위를 달리는 기사 역시 목욕탕에 대한 글이란 점은, 새삼 놀라웠다.

‘댓글도 제법 많이 있네.’

호준은 댓글을 보며 피식 웃었다.

└ 【요정의쉼터팬132호】: 목욕탕 오픈 첫날은 무료 개장이니 많이들 오세요~ 요정의 쉼터 팬으로서 이번 목욕탕 오픈을 응원합니다! 무료 개장은 호준 님이 직접 언급한 겁니다. 확실해요~

└ 【유토피아기사지망생1】: 흠. 시간 나면 가야겠음 ㅎㅎ

└ 【돈많이벌자】: 착한 가격 칭찬함!

└ 【힐러최고령자】: 유토피아 고인물로서 무료 개장 적극 환영합니다! 목욕탕은 없어져서는 안 되는 콘텐츠였는데 너무 잘됐네요. 개인적으로 사우나도 목욕탕도 넘나 좋아함. 한번 가보고 괜찮으면 또 갈게요!

└ 【호로로록】: 목욕탕에서 무슨 음식 팔려나. 팥빙수 같은 거 잘 어울릴 듯.

긍정적인 댓글 대부분은 기대된다, 어서 오픈했으면 좋겠다 등 응원류가 많았다.

물론 부정적인 댓글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 【날며훔치는자】: 보석 한 덩어리 가져가도 아무도 모를 듯 ㅋㅋㅋ 저 정도 규모면 누가 훔쳐 가도 알 게 뭐야?

└ 【시루시루콩시루】: 내 말이. 일일이 감시할 것도 아니고. 보니까 위층에 음식점이라는데 음식점 운영하느라 바빠서 목욕탕 감시는 무리일 듯.

└ 【단팥빵크림빵냠냠】: 도둑길드에서 벼르고 있을 듯. 농담이 아니라 저렇게 대놓고 돈 많다고 광고하면, 누가 탐이 안 나겠어?

└ 【생크림붕어빵】: ㅇㅈ, 자고로 유토피아에서는 없어 보여야 장땡임. 삥 뜯기지 않으려면.

부정적인 댓글 중에는, 보석을 훔쳐 가고 싶다는 내용이 제법 많았다.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값비싼 보석이 눈앞에 있으니 탐이 나기는 하겠지.

‘어림없지.’

부러운 마음을 이해는 한다만, 호락호락 당할 생각은 없었다.

생각난 김에 호준은 A4용지를 꺼내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쓱싹쓱싹 뭔가를 그리며 점심시간을 다 썼다.

바쁘게 일하고 퇴근을 한 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게임에 접속했다.

【유토피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늘 봐왔던 그 메시지.

“냐아앙~”

“오셨어요!”

“뀨뀨!”

“끼루루루!”

늘 반겨주는 요정들을 보며 그의 즐거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 * *

호준은 농장을 한 바퀴 돌며 밀린 일거리를 해결하고, 미소와 강남소를 데리고 농장 이곳저곳을 누볐다.

갓 짜낸 바나나우유를 마시며 소를 타고 다니는 호준을 지켜보는 또 다른 눈이 있었다.

홀짝―

“전혀 떨리지 않나 보네. 역시 강심장이라니까.”

하늘국으로 가는 일정을 앞두고 태평한 호준을 보며 감탄하는 인물.

그녀는 호준이 영상공유를 하도록 설정한 유일한 사람, 이미주 PD였다.

이미주는 평소처럼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화면을 뚫어져라 보았다.

‘흐음, 하늘국이라.’

방금 전, 영상통화로 호준이 전해온 소식은 놀라웠다.

타무르라는 용족을 돕는 미션을 하게 되었고.

그를 위해서 하늘국으로 간다는 것.

‘용족의 왕을 만난다 이거지.’

대체 어디까지 놀래켜 주려는 것일까.

이미주는 호준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새삼 놀랍고 신기하고 즐거웠다.

더군다나 이번에 가게 된 하늘국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하늘국은 최상위권 랭커조차도 쉽게 들어갈 수 없으니까.

용족만이 사는 성지는 결계가 쳐져 있는데, 용족의 핏줄이 아닌 한 그 결계를 뚫을 수 없다.

‘그래서 하늘국에 대한 정보는 거의 풀린 적이 없지. 갔다는 사람들도 말만 있을 뿐. 증거 영상을 가져온 적은 없고.’

영상 녹화 시스템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국을 찍은 영상은 전무했다.

즉, 이번에 호준이 영상을 찍어 올린다면 그것이 최초가 되는 것이고.

조회 수뿐만 아니라 화제성도 따 놓은 당상이라는 의미였다.

‘목욕탕 만든다는 글 이후로도 후원금이 많이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더 늘어나겠네. 아니, 시청자 수도 확실히 늘어날 거야.’

가뜩이나 대장장이 칼과 그 화려한 동료들을 유입해 목욕탕을 짓는 건으로, 대중을 화들짝 놀래켰는데.

하늘국 건까지 더하면, 연이어 호재가 터지는 격이었다.

‘어째. 운이 정말 좋은 것 같단 말야. 뭐. 나도 운이 좋은 거지만. 이런 사람을 한 번에 알아봤으니.’

호준이 활약한 덕분에, 이미주 PD의 수입 또한 덩달아 늘어나고 있으니.

그녀로서도 나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미 그녀는 미국과 유럽의 이름난 회사로부터 호준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들어왔다.

호준과 잘 연결만 해 주면, 사례금을 넉넉히 찔러주겠다는 매력적인 제안도 있었고.

물론 이미주는 그런 제안을 일절 거절했다.

‘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바보가 아니니까.’

이미주 피디가 보기에 호준은 지금 한창 성장하는 청춘과 같았다.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 알 수 없는.

물만 잘 주고 가꾸면,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그녀는 믿었다.

‘하늘국은. 하늘국은 음….’

그렇기에 훗날 그의 커리어에서 굵직한 한 줄이 될 하늘국을 잘 홍보해야 했다.

딸깍 ― 딸깍 ―

‘어떻게 홍보할까.’

이미주는 3색 펜의 똑딱이를 눌렀다 뗐다 하며 심사숙고했다.

눈을 지그시 감은 그녀의 미간에 짙은 주름이 드리웠다.

잠시 생각을 거듭하던 이미주는, 곧 눈을 떴다.

“역시 티저가 좋겠어.”

이미주는 생각한 즉시 편집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얼마 뒤.

한 영상이 요정의 쉼터 공식 사이트에 게재되었다.

【여러분, 저는 이제 하늘로 떠납니다!】

영상에는 타무르와 호준이 악수를 하고.

호준이 포탈로 뛰어드는 타무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

그다음, 호준의 발걸음이 클로즈업으로 찍혔다.

마지막 클로징에는 메시지 한 줄이 나왔다.

【1시간 뒤, 하늘국에서 라이브 방송 시작합니다!】

└ 하늘국이래.

└ ???? 하늘국은 고레벨도 못 가는데 어떻게???

└ 내 말이. 지난번에 용족이 손님으로 갔다던데. 그 사람이 소개해 준 듯.

└ 그런 경우도 있나? 와… 조회 수 씹어먹겠다.

└ ㅇㅇ. 하늘국 최초임. 지금 해외에도 뉴스 뜸. 최초의 하늘국 영상이라고.

└ ㅎㄷㄷ 대박 터졌네. 나도 이참에 요리사나 해볼까.

눈 깜짝할 새에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늘국 라이브 방송이 신호탄이 터졌다.

* * *

이미주 PD가 한창 사람들의 관심에 불을 지피고 있을 무렵.

호준은 망치를 들고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뚝 뚝 뚝 뚝―

탁탁―

“후우. 됐다.”

그가 만든 것은 바로

【어설픈 나무울타리 완성!】

【칭호 효과로 인해 본 건축물은 24시간 동안 절대 부서지지 않습니다】

어설픈 나무 울타리.

이름처럼 어설픈 나무 울타리였다.

하지만 절대 부서지지 않는 효과 덕분에 이만큼 든든한 것도 없었다.

“이걸 넣으면 더 믿을만하지.”

호준은 품 안에서 무한의 심장을 꺼내 울타리에 갖다 댔다.

심장이 울타리 속으로 쏙 들어가고 곧 메시지가 떴다.

【무한의 심장을 어설픈 나무 울타리에 설치하겠습니까?】

【무한의 심장은 장착 후 24시간 뒤에 재배치할 수 있습니다】

“그래. 설치한다.”

【무한의 심장이 나무 울타리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 마스터. 울타리에서 다시 인사드립니다. 무슨 명령이든 내려주십시오.

호준은 울타리를 손으로 쓱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건물에 함부로 출입하려는 자는, 제거해라. 별이의 동의를 얻으면 들어가도 상관없고.”

└ 예스. 마스터. 명을 따르겠습니다!

나무 울타리가 호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길게 늘어났다.

위로 쭉 늘어난 나무 울타리는 얼기설기 얽혀 입구 부분만 구멍을 뚫어놓은 형태가 되었다.

호준이 흐뭇하게 나무 울타리였던 그 조형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훌륭한 재주로구만. 역시 보통내기 인사가 아니었어.”

“타무르 님. 일찍 오셨군요.”

“급한 일이 있어 일찍 왔네. 그나저나 갈 준비는 되었는가.”

“물론입니다. 여기 이 친구들도 같이 갈 겁니다.”

호준과 그의 옆에 선 미르, 다크니스, 츄츄를 둘러본 타무르가 말을 이었다.

“흠. 느긋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네만 급한 일이 있다네. 다들 날 따라오게나!”

타무르는 곧 자신이 만든 포탈로 뛰어들었고, 호준도 요정들을 안고 같이 뛰어들었다.

위이이잉―

포탈 속은 온갖 총천연색이 가득했는데, 호준은 마치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듯 날아갔다.

마침내 동그란 출구로 빠져나오자 그는 폭신폭신한 구름 위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여기가 하늘국인가.’

호준은 요정들이 안전한지 체크하고서 구름을 조금 떼 내 보았다.

“흐음. 생크림 향이 나는데?”

호기심에 구름을 한 입 베어 물자 음…!

놀랍게도 구름이 생크림 맛이 났다.

입에서 살살 녹는 구름이라니.

호준이 의아한 눈으로 반쯤 녹은 구름을 삼키자 타무르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이쪽일세.”

호준은 타무르가 있는 곳으로 요정들을 데리고 걸어갔다.

주위를 두리번두리번하며 걸어가던 그때.

“쿠와아아아앙!!”

어디선가 분노를 가득 담은 포효가 들려오더니 돌연, 시야가 어두워졌다.

고개를 든 호준은 눈을 비비적거리며 빤히 위를 올려다봤다.

‘저건…!’

“감히. 네 이놈!”

태산을 삼키고도 남을 거대한 적룡이 아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태워죽일 듯한 눈빛을 하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