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76화 (176/200)

176. 검은 비늘의 손님

요정의 쉼터 본점은 평소와 다름없이 활기가 흘러 넘쳤다.

특히 호준의 허가 아래 이루어지는 목욕탕 건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300평에서 1,000평으로, 무려 3배가 넘는 규모로 확장된 목욕탕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다.

호준은 1층에서 요리를 만드는 동안에도, 칼과 그의 동료들이 자재를 다듬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금속이 갈리고, 보석이 갈리는 소리뿐만 아니라.

“어잇차, 이 도안대로 이무기 동상을 만드는 게 어때?”

“괜찮은데? 특히 이 회오리형 미끄럼틀이 괜찮아 보이는군!”

“어른들도 탈 수 있게 넉넉하게 만들 생각이네.”

“나쁘지 않은데.”

칼과 미카엘, 그밖의 다른 이들이 나누는 대화도 들려왔다.

‘미끄럼틀도 나쁘지 않지.’

그 덕분에 호준은 직접 내려가 보지 않아도, 그들이 어떤 구조물을 만들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계속 들어본 바에 의하면, 조각가 미카엘은 요정들과 호준 등 요정의 쉼터 직원들의 외형을 목욕탕 이곳저곳에 조각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미르가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모습을 한 분수라든지.

별이가 까치발을 한 채 한 손을 들어 올리고, 그 손끝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샤워기라든지.

기존의 틀을 깬 이야기가 오고갔다.

‘믿고 맡기면 되겠어.’

전문가가 괜히 전문가가 아니었다.

통통 튀는 아이디어들을 들으니, 전문가가 알아서 잘 하겠지 싶다.

호준은 가볍게 그들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투둥 탁탁―

삭삭―

찹찹찹―

생닭의 배를 가르고.

황금쌀과 약재를 듬뿍 넣고 다리를 꼬아 밑작업 완료!

삼계탕 만드는 작업을 30분 정도 하고 나서.

그는 남은 재료를 쓱 살펴보았다.

“어디 보자.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어느새 삼계탕은 700개 넘게 팔 준비가 되어 있었다.

700개 정도면 적어도 2시간은 넉넉할 것 같은 분량이었다.

아마 밀어닥치는 손님들을 감당할 수 있겠지.

성인 3명에서 4명이 먹어도 충분한 큰 닭이다 보니, 먹는 시간도 길어질 듯했다.

‘닭죽도 만들어 주니까, 먹는 시간은 더 늘어나겠군.’

추가 요청이 있을 경우에 다진 야채와 밥을 넣어 닭죽도 만들 생각이었다.

진하게 우러나온 육수에 닭죽을 끓이면 최고의 후식이 되고도 남았다.

“호준 님,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별이가 가게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벌써 5분밖에 안 남았네요. 여기 시키신 황금쌀 더 가져왔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호준은 건네받은 황금쌀을 옆에 내려두었다.

별이가 앞치마를 두르며 말을 걸어왔다.

“밖에 줄 장난 아니에요….”

“어제보다 많은 거 같아?”

“네. 어제보다 확실히 많아 보여요.”

“그럼 계속 만들어야겠네.”

오매불망 요리를 기다리고 있을 손님들을 위해, 그는 요리하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아, 배고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냄새 쥑이네.”

문을 넘어 들려오는 웅성거리는 소리는 갈수록 커져만 갔다.

* * *

요정의 쉼터가 개업하자 손님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들어오세요!”

“오오!”

“아싸~”

대기한 손님이 많다 보니, 수많은 테이블이 꽈악 찼다.

삼계탕은 느긋하게 먹는 음식이다 보니, 먹고 빠지는 속도가 현저히 느렸고.

덕분에 대기하는 손님들 줄은 천천히 줄어들었다.

“음. 이전보다 줄이 빨리 안 빠지네.”

“삼계탕이라 더 그런 거 같아. 저기 봐봐. 밥도 주잖아.”

“닭죽도 해준다는 얘기가 있더라고.”

“아아. 닭죽 완전 좋은데?”

줄을 선 사람들은 초조한 얼굴로 자신의 순번이 되기를 기다렸다.

오늘 급하게 달려온, 가게경영 카테고리에서 모인 사람들도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급하게 달려온 덕분에 맨 앞줄에 서 있었는데, 다들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역시. 직접 보는 거랑 방송은 다르네.”

갈색머리의 바루트가 말하자, 다른 이들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에서 보는 것보다 열기가 더 많이 느껴져.”

“손님도 진짜 많군. 표정들도 다 밝아 보이고.”

바루트도, 그와 같이 온 이들도 그냥 음식을 먹으러 온 손님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각자 유토피아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생업을 이어가는 경영자이기도 했다.

경영자로서의 시각으로 바라본 호준의 가게는, 바루트가 생각하기에는 100점 만점이라 할 만했다.

‘과연. 괜히 성공한 게 아니었어.’

가격 싸고, 경치 좋고.

직원 친절하고, 방송으로 홍보도 되고.

이런 상황에서 실패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은 모두 다 때려 박은 거 아닌가.

바루트의 생각은 그의 주위 경영자들의 의견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격이 싸다고 전부가 아니군. 향도 그렇고. 맛도 괜찮을 거 같아.”

“그렇지. 맛이 없으면 아무리 싸도 다시는 안 오니까.”

“게다가 직원들도 친절하고, 생글생글 웃으니 기분도 좋고.”

“어…? 저기 보게!”

한 남자가 어딘가를 가리키자 모두가 그쪽을 바라봤다.

“허어.”

“어머!”

“귀엽… 군!”

바루트가 피식 웃으며 바라본 그곳에는, 송이가 있었다.

“묘옹!”

꽃을 한 무더기 등에 진 송이는, 줄을 선 손님들에게 꽃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송이가 주는 꽃을 받는 손님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었다.

“송이야. 고맙다!”

“에구 귀여워~ 언니랑 사진 한번 찍을래?”

“묘옹!”

송이는 흔쾌히 인증샷 요청에 응했다.

꼭 안아도 얌전히 가만히 있는 송이 덕분에, 줄을 기다리던 손님들의 지루함도 조금 가시는 분위기였다.

몇 분 안 되어, 경영자들의 순번이 왔다.

“자, 요기서부터 저기 손님분들까지 가게로 들어와 주세요!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별이가 능숙하게 손님들을 테이블로 안내하고는, 주문과 서빙까지 초고속으로 마쳤다.

“주문하신 요리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빠르네.’

주문하자마자 공중으로 요리를 배달하는 별이를 보며 감탄하는 것도 잠시.

바루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삼계탕을 바라보았다.

그가 알던 삼계탕과는 조금 많이 달랐다.

‘양이 장난 아니네.’

닭의 크기가 커도 너무 컸다.

성인 4명이 먹어도 충분할 양이었다.

주위에서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와. 삼계탕이 원래 이렇게 냄새가 좋았나?”

“내 말이. 내가 원래 어릴 때 삼계탕 먹고 체해서 별로 안 좋아하는데. 내가 봐도 먹음직스럽군.”

“이게 100골드라니. 거의 자선사업이나 마찬가지야.”

식사를 하면 할수록 바루트는 이해가 갔다.

삼계탕은 너무나 부드럽고 맛있었다.

닭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아내렸다.

밥과 김치도 갖다 먹어도 되는 푸짐함에다가.

“닭죽 끓여드릴까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후식으로 나오는 닭죽까지.

보글보글 끓는 닭죽을 보니 맛이 기대가 되었다.

바루트는 닭죽까지 말끔히 먹고 나서 수저를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한번 오면, 안 올 수가 없겠군.”

때로는, 같은 일을 하는 경영자 입장이기에.

더 잘나가는 사람을 보면 시기와 질투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바루트는 달랐다.

‘배울 점이 많은데.’

호준에게 시기와 질투를 하기에는 너무 차원이 달랐다.

너무 한참 앞서나가는 상대여서 질투는커녕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방식을.

그가 시도했던 것들을.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 부러움을 기반으로 긍정적인 변화로 이끌어내야 함을 바루트는 잘 알고 있었다.

‘기본에 충실해야겠어. 내 가게에 오는 손님들을 만족시킬 만한 게 뭔지를.’

저 멀리서 손님들에게 맛이 어떤지 묻는 호준의 모습을 보며, 바루트는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서서히 호준이 가까이 다가오자 바루트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 * *

호준은 인산인해를 이룬 가게에서 손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요청 게시판을 만들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무슨 요리를 먹고 싶은지 쓸 수 있는 게시판인 거죠.”

“매콤한 요리도 먹고 싶어요. 청양고추 팍팍 들어간 라면이라든지.”

“제 어머니께서 호박죽을 좋아하시는데, 호박죽을 먹을 수 있을까요?”

“저는 팥죽이 그렇게 먹고 싶네요.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팥죽이 그립습니다.”

요리를 넉넉히 준비해둔 덕에 호준은 손님들에게 많은 이야기와 제안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자세히 그 내용을 메모해 두고, 최대한 빨리 준비해보겠다고 약속했다.

가게를 반쯤 돌았을 무렵.

호준은 그 다음 테이블로 갔다가 색다른 제안을 들었다.

“저, 목욕탕을 구경해볼 수 있나요?”

“저희는 유토피아 커뮤니티에서 모여서 왔는데, 각자 가게를 하나씩 운영하고 있습니다. 호준 님 가게에서 뭔가 배울 게 있을까 해서 왔습죠.”

“목욕탕을 실제로 볼 수 있을까 해서 왔는데, 괜찮으시다면 구경해볼 수 있을까요?”

“음… 아직 공사 중이라 정신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호준의 물음에 바루트를 포함한 경영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그럼요. 실물을 꼭 보고 싶었습니다.”

흔쾌히 괜찮다는 반응에, 호준은 그들을 이끌고 지하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호준의 바로 뒤를 걷는 바루트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정말 사진 그대로 보석으로 만든 것이려나?’

호준이 올린 사진이 논란이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보석으로 된 목욕탕이라는 점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유토피아에서 보석은 가격이 너무 비싸고, 사치품으로 취급받았기 때문.

‘작은 보석 하나만 붙어도 가격이 몇천 골드씩 뛰는데. 보석으로 만든 목욕탕이면 어지간한 가격으론 어림도 없지.’

바루트는 정말로 보석으로 목욕탕을 만드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 정도의 투자가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실제로 얼마나 화려한지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보석 목욕탕은 여기가 처음일 거야.’

유토피아 최초의 보석 목욕탕은 어떤 모습일까.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부여잡은 바루트의 앞에 있던 호준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여깁니다. 아직 미완성이랍니다.”

바루트는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서는 호준의 너머로, 볼 수 있었다.

“……!”

레인보우 보석으로 만들어진 2m짜리 호준의 동상.

그 너머로 보이는 보석 벽돌로 만들고 있는 목욕탕은 규모가 한눈에 보아도 너무 커 보였다.

휑하니 넓은 공터가 설마 다 목욕탕 부지라는 건가?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대략 1,000평 정도라더군요. 수량에 맞춰서 결정했습니다.”

“허어… 어, 어마어마하군요.”

재테크 목적으로 만드는 목욕탕은 1,000평 정도까지 하지 않았다.

워낙 규모별로 단가가 많이 들어서, 규모가 클수록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

그러나 호준은 통크게 천 평을 뚝 짓는다고 하니, 바루트는 새삼 호준의 클라스가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벽돌을 쌓아서 목욕탕을 짓는 것이지요. 중간중간 조각상도 설치할 예정인데, 전적으로 미켈란과 칼, 그리고 같이 도움을 주는 분들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전문가의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겨야겠지요.”

대장장이 칼이 보석 덩어리를 벽돌로 가공해서 쌓고 있었다.

이미 만들어둔 벽돌의 갯수가 적어도 수천 개는 되어 보였다.

“과연. 괜히 난리가 아니었군요.”

“이 정도 목욕탕이라면 성공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저 혹시… 여기 사진을 찍어서 올려도 괜찮겠습니까? 아직 오픈 전이라 별로일는지.”

바루트 주위에서 감탄을 내뱉던 다른 이들이, 호준에게 사진을 정중히 요청했고.

“물론입니다.”

호준은 그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들로 인해 실제 목욕탕 인증샷이 퍼져나가고.

보석 목욕탕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바루트 일행의 뒤를 이어 음식을 다 먹은 손님들이 목욕탕을 구경하고 인증샷도 찍고 갔다.

순조롭게 가게가 돌아가던 그 순간.

쿵쿵쿵쿵―

“요정의 쉼터가 이쪽이란 말이지!”

누군가 숲을 달려가고 있었다.

검은 비늘이 다닥다닥 붙은 꼬리를 흔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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