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한방 삼계탕과 희소식
유토피아에 독특한 점은 많지만, 꽤 괜찮다고 평가되는 것은 가게 경영 시스템이었다.
가게 경영이란, 플레이어가 스스로 자본을 투자하여 가게를 직접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일컬었다.
이 시스템하에서, 플레이어가 설정할 수 있는 것은 많았다.
가게의 주인이 되면 판매 물건의 가격과 품질, 재료 수급까지 세세히 설정할 수 있고.
직원을 고용해서 관리하거나, 운영시간, 운영방침 등을 결정할 수도 있다.
이런 디테일한 설정 덕분에, 가게 경영은 도입 초기부터 인기가 많았다.
그런 관심은 커뮤니티에도 이어져서 가게 운영이라는 카테고리도 생겨났다.
해당 카테고리에서는 가게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공략글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는 초보자 혹은 경력자를 위한 공략글들이 평소에 많이 올라왔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그 양상이 달랐다.
【호준, 목욕탕 도전?】
【무모한 도전인가, 위대한 도전인가?】
【역대 목욕탕 중에 살아남은 케이스는 제로】
【현재 운영 중인 목욕탕 중에 수익구조 우수한 경우는 거의 없어】
【일부 누리꾼 曰, 목욕탕 운영은 무모한 도전이 부른 실수일지도】
【실시간 검색어 1위 호준 목욕탕, 과연 성공할 것인가?】
호준의 소식이 가게 경영 커뮤니티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
목욕탕은 때아닌 화제가 되었다.
곁다리 취급당하던 목욕탕이 호준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익명의 작성자】: 목욕탕 가성비 똥망이라던데, 내가 틀렸냐?
【익명의 작성자】: 목욕탕 투자했다가 쫄딱 망할 듯.
【익명의 작성자】: 어그로 끌다가 그냥 접는 거 아님?
【익명의 작성자】: 목욕탕 중에 월수익 100 이상 나는 데 없음, 따로 설명이 필요하냐.
【익명의 작성자】: 목욕탕은 그냥 부자들이나 운영하는 거임, 취미삼아. 우리 같은 잡초들은 상관없음.
【익명의 작성자】: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다리 찢어져 뒤짐.
게시판에 상주하던 많은 이들, 게시판의 정보를 맹신하는 일부 사람들은 호준의 도전을 아니꼽게 보았다.
그들은 나름대로 지금까지 가성비 좋은 가게를 수치화했고, 가장 이익을 볼 만한 가게에 도전해왔다.
우리가 계산한 게 맞다, 우리가 계산한 대로만 되면 수익은 보장된다.
이런 아집이 그들에게는 조금씩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견고한 자부심을 호준이 무너뜨린 것이다.
【익명의 작성자】: 목욕탕은 완전 멸종된 줄 알았는데 ㅋㅋ 이렇게 뉴스에 나올 줄 누가 알았냐.
호준이 자신들의 정보와는 정반대로 움직이니, 그 사실이 편할 리는 없었다.
불편함을 넘어서 자신들이 틀린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까지 감돌았다.
그러나 계속 얘기를 이어나갈수록, 새로운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났다.
【익명의 작성자】: 이번에는 신중하게 지켜봐야 함. 아직 성패를 가를 단계는 아님. 앞선 사람들이 실패했다고 호준이 실패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
【익명의 작성자】: 갠적으로 호준 방송 계속 봤는데, 돈 욕심 별로 없기도 하고. 음식점하고 같이 운영하는 거라 손님유치용으로 만든 걸지도 모름. 그리고 목욕탕이 우리가 알던 그 허접한 목욕탕이 아니던데? 사진 봤음?
【익명의 작성자】: 사진 말고 실물로 보면 장난 아닐 듯. 그리고 호준이 의외로 사업하는 눈이 있다. 이렇게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홍보가 되고 있는 거임. 일반 뜨내기장사랑은 완전 스케일이 다름. 자본금 규모도 관심도 차원이 다르니까.
【익명의 작성자】: 목욕탕은 아무도 안 하는 거라서, 메리트가 있음. 목욕탕을 가려던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없으니까, 남는 사람이 다 그쪽으로 가겠지. 원래 남들이 안 하던 걸 해야 떼돈 버는 거야.
어느새 고집을 부리던 사람들은 목소리가 줄어들고, 새로운 목소리가 게시판을 달구었다.
이제 게시판에는 신중론을 주장하는 자와 목욕탕은 무리라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맞붙었다.
누가 맞네 틀리네 갑론을박을 하던 중, 누군가 말했다.
【익명의 작성자】: 이럴 시간에 성공요인이 뭔지 직접 보는 게 좋을 듯. 호준 가게 구경 갈 사람 없음?
쓸데없는 갑론을박은 그만하고 직접 호준의 가게를 구경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 제안에 몇몇이 응하기 시작했다.
【익명의 작성자】: 동참합니다! 기자들은 그냥 기사만 받아적을 뿐,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고 관심도 없음. 어차피 클릭 수로 돈 버니까. 기레기 기사만 보지 말고 직접 보고 판단합시다!
【익명의 작성자】: 저두요! 이전에 갔다가 줄 늦게 서서 못 먹은 1인임. 간 김에 음식도 좀 먹읍시다.
【익명의 작성자】: 저두요222, 목욕탕 건설현장도 구경할 수 있으면 고개 디밀고 보고 사진찍기 결의합시다!
【익명의 작성자】: 호준관찰단 저도 참가합니다!
하나둘 호준의 가게로 가기 위해 모여들자, 어느새 그 숫자는 50에 달했다.
언제 어디서 모일지 논의하는 그들에게, 희소식이 당도했다.
【호준, 공지사항으로 신메뉴 공개!】
【만년삼계탕, 특가 100골드에 개시】
【3시간 뒤, 가게 오픈 예정이라고 밝혀!】
【문전성시가 예상됨, 적어도 2시간 전에 줄을 설 것을 추천!】
호준이 2시간 뒤 가게오픈을 예고한 것.
이 말은 곧, 지금부터 줄을 서야 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익명의 작성자】; 얼른얼른 갑시다.
【익명의 작성자】: 위치 전체공유함, 빨리 오세요! 5분 동안 모이고, 그 뒤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출발함. 늦게 와서 징징대면 무시ㄱㄱ!
【익명의 작성자】: 넵! 날아갑시다 다들!
【익명의 작성자】: 레츠고오오!
사람들이 우르르 떠나자 게시판은 다시 한산해졌다.
줄을 서러 가는 이들은 전혀 몰랐다.
그들이 마주하게 될 목욕탕이, 그들이 상상한 그 이상이라는 것을.
그들이 본 사진을 완전히 뛰어넘을 거라는 사실을.
* * *
요정의 쉼터 본점은 보통 장사를 앞두고 분주하다.
요정들 중 농사팀과 목축팀은 일을 하러 뛰어다니는 반면.
가구 배치팀은 실내와 실외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느라 바빴다.
“후우! 완성!”
“뀨우~”
요리팀, 별이와 토순이는 불 앞에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늘부로 한 가지 더 북적거리는 이유가 생겼으니.
“흐음. 고소한 냄새가 나는데?”
“닭고기를 끓인 것 같군. 그런데 약재 냄새도 같이 섞였어.”
“아 배고프다 배고파.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것 같군.”
“토순이는 조각하기 괜찮겠는걸?”
칼과 그의 동료들이 새로이 합류했다.
“이쪽입니다.”
호준이 가게를 어물쩡거리던 그들을 손짓으로 불렀다.
칼은 호준이 서 있는 쪽으로 걸어가다가 문득 발견했다.
‘저건 돌솥?’
호준의 오른쪽 탁자 위, 돌솥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이 맛좋은 향은 필시, 저 안에 담긴 요리 때문임이 분명했다.
“아이구. 식사까지 대접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만.”
칼이 호준에게 미소지으며 말을 건네자, 호준은 손사래를 쳤다.
“식사도 대접 안 하면 안 될 말이죠. 멀리서 와서 고생하시는걸요. 편히들 드십시오! 저는 저쪽에서 일하고 있겠습니다.”
“그, 그럼…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호준이 자리를 떠나자 칼은 조심히 자리에 앉았고, 나머지 동료들도 자리에 앉았다.
“자, 다들 먹자고.”
“호오. 맛있어 보이는군!”
칼은 동료들을 따라 수저를 들다가, 뽀얀 김이 올라오는 닭을 보며 입을 벌렸다.
‘약재 냄새가 나는 걸로 봐서, 건강한 재료로 만든 모양이야.’
진한 국물의 색깔과, 뿜어져 나오는 향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 닭요리는 지금까지 먹었던 그저 그런 음식과는 다른.
품이 많이 들어간 것 같았다.
‘어디 한번… 볼까.’
칼은 포크와 나이프로 닭의 몸통을 갈랐다.
보드랍게 갈라진 닭의 몸통에는.
“호오…!”
황금쌀이 가득 찬 내부가 펼쳐졌다.
‘이리 비싼 것을 가득 넣다니.’
황금쌀이라면 그도 익히 소문으로 들어본 적 있었다.
귀족들도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한 비싼 쌀이라는 이야기를.
귀족들도 상위 귀족 아니고는 쉽게 엄두도 못 낸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그런데 이 닭고기 안에는 가득 담겨 있었다.
그 양이 얼마냐 하면 이걸 먹고 배부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의 양이었다.
‘양이 푸짐하군. 으응…? 이건 또 뭐지?’
칼은 숟가락으로 닭의 뱃속을 들춰보다가 새하얀 백자 같은 약재를 발견했다.
약재는 본래 흑색이 가장 하급이고, 밝은색이 될수록 상급에 속하는데.
닭의 뱃속에 들은 약재는 눈부신 하얀색이었다.
‘상급이로구나.’
즉, 백자같은 이 약재는 길거리에 널린 약재가 아니라 구하기 힘든 약재라는 뜻이었다.
칼이 젓가락으로 약재를 살피자,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준이 넌지시 말했다.
“그건 만년삼입니다.”
“오…! 만년삼이요?”
“네. 제 동료 중에 약을 만드는 분이 있어서요. 그분의 도움으로 좋은 약재를 얻을 수 있었죠.”
“천년삼도 구하기 힘들다고 알고 있는데 만년삼이라니. 이런 걸 그냥 받아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욕탕을 지어주실 텐데 이 정도야 약과죠. 부족하면 말씀하십시오. 양은 넉넉히 있으니까요.”
“잘 먹겠습니다.”
그렇게 칼은 짧은 대화를 마치고 식사에 돌입했다.
진한 국물을 머금은 찹쌀을 한 숟가락 퍼서, 부드러운 닭고기살을 얹고.
김치를 얹어 입에 넣고 씹는다.
우걱우걱―
‘정말 맛있네.’
맛있다는 세 글자의 단어로 표현하기 아쉬울 정도로 한방삼계탕의 맛은 훌륭했다.
처음으로 한방 삼계탕을 접한 칼과 마찬가지로.
그의 동료들도 삼계탕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하아. 국물은 따로 밥을 비벼먹어도 맛있겠군.”
“순하면서도 맛나서 나이드신 아버지가 먹기에 딱이겠어.”
“만년삼이 이리 큰 거로구나. 내 살다 살다 이런 걸 먹어보는구려 허허.”
호준이 멀리 떨어져있기에 칼과 그의 동료들은 편하게 호준에 대한 칭찬을 주고받았다.
어쩔 수 없이 다 들리는 호준으로서는 듣기 민망할 정도로 칭찬이 이어졌다.
【흠 잡을 데 없는 한방삼계탕(특4급) 완성!】
【만년삼과 닭의 조합이 훌륭합니다!】
【파와 닭의 조합이 훌륭합니다!】
【찹쌀과 닭의 조합이 훌륭합니다!】
【재료조합의 효과로 등급이 대폭 향상됩니다!】
호준은 부지런히 한방삼계탕들을 만들었다.
착 착 착―
진수가 많은 씨앗을 가져다 둔 덕분에, 만년삼의 갯수는 넉넉했다.
정확히는 1,074개나 되었으니 부족할 일은 없겠지.
호준이 닭을 가르고, 찹쌀을 듬뿍 집어넣고, 만년삼 하나를 넣고.
보글보글보글.
삼계탕을 끓이고 있을 무렵.
칼이 조심스레 다가와 말을 걸었다.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제 친구들도 너무 맛있다더군요. 한눈에 봐도 정성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었습니다. 이리 귀한 음식을 대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셨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저…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
“말씀하시죠.”
호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칼이 말했다.
“목욕탕의 규모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신지요?”
“음… 저는 일전의 지하에서 봤던 그 목욕탕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300평 정도가 되겠군요.”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300평이라.
꽤나 넓은 평수라고 여겨졌다.
목욕탕 그 자체만을 놓고 봐도 작은 면적은 아니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겠지 싶어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진행해주십시오. 300평이면 충분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저도 그리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다만….”
칼은 잠시 입을 달싹이더니 말했다.
“지하수가 예상보다 많으면 더 규모가 커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규모에 따른 비용은 저희가 감당할 테니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물론이죠. 저희는 재료가 넉넉하다 보니 괜찮습니다. 그럼 지하수를 체크한 뒤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네. 그러면 필요할 때 불러주십시오.”
“네! 저는 일하러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칼이 힘찬 발걸음으로 동료를 이끌고 지하로 내려갔다.
호준은 지하수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흘려넘기고 다시 도마 앞에 섰다.
지하수가 많을수록 목욕탕 크기를 더 확장할 수 있다는 얘기였으나 뭐, 그건 까봐야 아는 것 아닌가.
미리 기대할 필요도, 실망할 필요도 없었다.
지하수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투닥 탁탁―
보글보글―
취이익―
호준은 삼계탕 1,000개를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그가 온 정신을 집중해 요리에 빠져들어 있던 그때.
집중한 그조차도 감지할 수 있는 진동이 울려퍼졌다.
가게 오픈을 1시간 앞둔 때였다.
쿠콰콰콰쾅―
폭발음과 함께 건물 전체가 위로 붕 떴다가 내려앉았다.
“끼루루루!”
“끼우웅!”
호준은 별이와 미르에게 다른 요정들이 안전한지 살펴보라 지시를 내리고는,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계단을 따라 내려간 호준은,
“이게… 무슨…?”
당황했다.
지하는 온통 물바다였다.
마치 침몰하고 있는 나무배의 내부처럼 물이 허리 높이까지 차올라 있었다.
물바다 어디에도, 칼이나 다른 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로 다친 건가?’
호준은 일단 사람부터 살리자는 생각으로 그는 물에 뛰어들 채비를 했다.
옷깃을 걷어 젖히고 물속으로 막 점프를 하려는데.
“후우우!”
칼이 물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칼의 표정은 물놀이를 나온 어린아이처럼 밝았다.
겨우 2m도 떨어지지 않았던 호준은 그에게 소리쳤다.
“대체 이게. 다들 괜찮은 겁니까?”
호준의 물음에 칼이 씩 웃으면서 답했다.
“괜찮고 말고요. 방금 굴착기를 따라 밑으로 내려갔는데, 요 아래에 거대한 지하수맥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 양이면 1,000평짜리 목욕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호준은 기분 좋게 웃는 칼의 말을 들으며.
그 정도면 목욕탕이 아니라 수영장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