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목욕탕 건설 시작
호로록― 호로로록―
절벽 위의 라면집, 요정의 쉼터 3호점은 곧 문을 닫을 예정이었다.
11시 55분.
문을 닫기 5분 전.
마지막 손님 셋은 말없이 라면을 먹고 있었다.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모습이었다.
“후우….”
“으음….”
젓가락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남자 셋의 입가는 벌겋게 물들었다.
그들은 덜어온 김치와 밥을 다 먹고 나서야 젓가락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버트가 입가를 휴지로 닦으며 입을 열었다.
“든든하군.”
다른 이들도 로버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음식은, 한번 먹으면 영 아쉽죠.”
“전 라면 킬런데. 여긴 진짜 맛집입니다. 동대륙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이것만큼 맛있는 데는 찾을 수가 없더라구요.”
“슬슬 일어들 나지!”
두 남자도 로버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버트는 음식값을 지불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직원의 인사를 들으며 문을 나서자, 바닷바람이 그들을 맞이했다.
보름달 덕분에 마을로 가는 길이 훤하게 보였다.
셋은 저벅저벅 길을 걸어갔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비틀로 마을이었다.
로버트의 비서, 윌이 또박또박 말을 시작했다.
“로버트 님, 오늘 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장장이 칼에게 의뢰했던 무기를 받는 게 첫 번째고. 그다음은 북쪽 에랄다 왕국으로 가는 겁니다. 에랄다 왕국의 변방인 미슬토 마을에는….”
“미지의 신전이 발견되었다고.”
“아, 네. 맞습니다.”
“아까 아는 소식통을 통해 들었네. 소문이지만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정보가 꽤나 구체적이라서요. 더 널리 퍼지기 전에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도록 하지. 미슬토 마을 지리는 입수했나?”
“여기 구해뒀습니다.”
“훌륭하군.”
“집사로서 이 정도는 당연하지요!”
로버트는 뿌듯해하는 윌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길을 다시 걸었다.
새로운 신전은 곧 새로운 보물을 의미했고.
신전에서는 보통 특급 무기가 나오는 것이 관례였다.
특급 무기가 아니라 해도, 기존에 있지 않은 무언가가 잠들어있을 가능성이 높고.
‘가볼 만해.’
충분히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었다.
그곳에서 새로운 보물을 찾는다면, 길드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리라.
이런 기회는, 정보망을 두루 갖춘 그이기에 찾아오는 기회였다.
‘후후. 새 무기를 쓰기에 제격이겠어.’
로버트는 그뿐 아니라 더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드디어, 수개월을 준비한 무기를 얻게 되는 것.
대장장이 칼에게 무기를 의뢰하기까지 그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기다리다 진이 빠지는 줄 알았다고.’
그가 원하는 흑천마도를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만 무려 45가지.
그 재료를 하나하나 다 준비하는 데만 2달이 걸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의뢰를 할 수도 없었지. 내 앞에 대기줄만 한참 있었으니.’
비틀로 마을의 최고 명장으로 손꼽히는 칼.
그에게 무기를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았다.
칼과 친하지 않은 로버트로서는 순서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게 3주를 기다리고 나서야 칼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제야 끝이 나는군.’
긴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을 오늘 드디어 얻게 되었다.
기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했다.
‘이왕이면 등급도 높고, 특성도 잘 뽑히면 좋겠는데.’
설렘에 가득 차 미소를 짓는 로버트, 그리고 그를 보필하는 두 남자가 그 곁에서 말없이 밤길을 걸었다.
쌕쌕 벌레 우는 소리로 가득한 목가적인 분위기.
그 속에서.
― 또링!
알람 소리는 유독 크게 울렸다.
‘뭐지?’
로버트는 바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의 눈썹이 위로 쓱 올라갔다.
【요정의 쉼터 채널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공지사항란을 확인하세요!】
【바로가기>>】
‘뭐지? 공지사항?’
로버트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바로가기 버튼을 누르자 창이 떴다.
로버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내용을 바라봤다.
‘이 사람들은….’
그가 보고 있는 부분은, 호준과 함께 서있는 사람들.
대장장이 칼과 그 동료들이었다.
다들 무척이나 친해 보였다.
【요정의 쉼터 본점, 확장 소식을 알립니다!】
【목욕탕 사진.jpg】
【지하에 소소하게 목욕탕을 만들어볼까 해요. 따끈한 물에 몸을 맡길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건설을 담당해주실 전문가 분들과 찰칵! 뒤에 보이는 온천과 동일하게 제작합니다! 첫날은 무료개장이니 마음껏 놀러들 오세요!】
‘언제 친해진 거지? 아니 그보다, 건축 의뢰는 잘 안 받는다고 들었는데…?’
무뚝뚝한 칼의 모습만 봤던 로버트로서는, 환하게 웃는 칼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칼과 마찬가지로, 그 옆에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남자들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호준과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놀란 것은 로버트만이 아니었다.
공지사항을 확인한 윌과 다른 남자도 놀란 얼굴이었다.
“윌 님, 그런데 칼은 손님이랑 친목 안 쌓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원래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었나요?”
“아닐세. 친해지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은 많은데. 말을 걸면 바쁘다고 피하더군. 길드 차원에서 한 명이라도 친해두면 좋겠다 싶어서 선물도 보내봤는데 다 빠꾸먹었으니. 이 정도면 말 다 했지.”
로버트가 고개를 젓자, 윌이 말을 덧붙였다.
“선물도 거절하는 녀석이 호준 님과는 친하다 이거네요. 대체 어떻게 친해진 건지.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러게 말일세.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 같기도 하고. 우리도 그 비법이 뭔지 배웠으면 좋겠구만.”
“로버트 님, 이 주위 사람들도 장난 아닙니다. 특히 미켈란 같은 경우는 성격이 개또라이로 유명해요. 얼마전에는 의뢰를 하고 싶으면 돈이 아니라 자기를 감동시켜보라면서 3분의 시간을 줬다죠. 워낙 까탈스러워서 실력은 좋은데도, 다들 넘보지를 못한답니다.”
로버트는 나직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보았다.
칼과 목수 브라운, 건축가 찰스, 조각가 미켈란까지.
이런 유명한 장인들을 데리고 목욕탕을 건축한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유토피아를 조금 한 사람이라면, 사진과 내용만 보고 알아들을 것이 분명했다.
새로 만든 목욕탕은, 기존의 목욕탕과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사실을.
“하여튼… 대단하군. 재주가 좋아.”
로버트는 철벽같은 칼과 친밀해진 호준에게 순수한 의미로 감탄했다.
그 자리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 * *
한바탕 목욕탕에서 수영도 하고 즐기고 난 끝에, 모두들 잠에 빠져들었다.
호준과 칼과 그의 친구들은 목욕탕에 비치된 소파에서 꿀잠을 잤다.
쿨쿨쿨―
모두, 목욕으로 노곤노곤해진 채로 깊은 잠을 잤다.
호준도 마찬가지였다.
“으음….”
그가 잠에서 일어났을 때, 주변에는 미켈란밖에 없었다.
“어푸어푸― 후우… 어, 일어나셨습니까?”
“아, 네. 다들 어디갔습니까?”
“아, 다들 장비를 찾으러 갔습니다. 10분 내로 돌아오겠지요.”
“그렇군요.”
호준은 곧 돌아온다는 말에 소파에 몸을 묻었다.
아직 조금 더 뒹굴거리고 싶었다.
그는 무심코 정보창을 켜서 뉴스를 찾아보았다.
‘어디 보자….’
즐겨찾기를 클릭하자 유토피아 관련 기사가 줄줄이 나타났다.
여러 기사 중에서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호준, 목욕탕 사업 시작하다?】
【호준, 목욕탕 사업 도전장 내밀어. 무리인가, 아니면 기회인가】
【호준의 금수저 목욕탕, 관심 폭발!】
【누리꾼, 호준의 목욕탕은 금수저만 갈법하다며, 금수저목욕탕이라 이름 붙여】
“벌써 별명까지 생겼네.”
잠을 잔 사이, 목욕탕 별명까지 생겨났다.
‘금수저 목욕탕이라. 언제 이런 이름이 붙었대.’
무려 금수저 목욕탕이란다.
조금 부담스러운 네이밍이었다.
‘뭐.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지도.’
이처럼 화려한 목욕탕은 기존에 없었기에 더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댓글 반응도 가지각색이었다.
└ 【천재토피아】: 이 정도 급이면 솔직히, 입장료 500골드는 받아도 할 말 없음. ㅇㅈ?
└ 【헝그리버드】: ㅇㅇㅈ. 500골드 받아도 오버는 아닌듯. 만드는데만 50만 골드는 훌쩍 들겠는데?
└ 【배구파요】: 50만 골드라…스케일 장난 아님. 개부럽
└ 【유토피아러버】: 내 말이. 근데 입장료 500골드는 너무 비싸. 나 같은 서민에게는 크윽….
└ 【희대의전사】: 그래도 가보는데 의미가 있을듯. 인증샷 명소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듬.
└ 【유토피아러버】: 동감. 사진으로 보는 게 이 정돈데, 실제 가보면 장난아닐듯.
└ 【세상에 좋은일이】: 내 말이. 이런 데는 무리해서라도 한 번쯤은 가야지. 정, 안되면 오픈 이벤트를 노려야 하고.
기대는 높아져만 가고, 입장료가 더 올라갈 것 같다며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호준의 생각은 달랐다.
‘비싸게 할 필요는 없지.’
입장료를 비싸게 받을 생각이 없었다.
첫날이야 오픈기념 무료라고 쳐도, 둘째 날부터는 한 100골드 정도면 적당하다 생각했으니까.
평소 목욕탕이 받던 그 금액이다.
‘돈보다, 훌륭한 목욕탕을 갖는다는 데 의의가 있지.’
애초에 목욕탕을 만들고 싶다 생각한 것도, 돈 벌겠다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입을 늘리는 것보다는, 보다 완벽한 목욕탕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컸으니까.98
자신이 보기에 흡족한 목욕탕이면 충분했다.
그나저나.
“아 기대되네.”
반짝거리는 새 목욕탕을 상상하니 미소가 절로 났다.
‘뭐, 알아서 잘 만들어주겠지.’
그는 기지개를 켜고는 창을 껐다.
계단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가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칼이 혼자 배낭에 장비를 넣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칼이 고개를 들었다.
“어, 일어나셨습니까?”
“네. 덕분에 푹 잤습니다.”
“후후. 잘하셨습니다. 건축에 필요한 장비들은 다 챙겼습니다. 그리고 브라운과 찰스도 곧 이곳에 도착하면 호준 님 가게로 출발할 생각입니다.”
“이렇게 빨리요?”
호준에게는 아직 건설작업을 시작하기에는 이른 시간으로 보였다.
새벽 3시밖에 되지 않아 밖은 어두웠으니까.
그러나 칼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저희는 밤눈이 좋아서, 밤에도 작업할 수 있답니다. 길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칼의 물음에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뭐.
“물론입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일행은 한자리에 모였고, 호준은 모두를 이무에 태우고 집으로 귀환했다.
뚝딱뚝딱―
늠름한 네 남자가 달려들자, 요정의 쉼터 본점이 새롭게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 * *
투닥투닥―
쿵―
쿠쿵―
콰콰쾅―
지하실을 새로 만들고 목욕탕을 건축하는 일은, 생각보다 번잡한 일이었다.
지하실을 파려면 굴착기 같은 장비가 있어야 했고.
굴착기를 잘못 만졌다가는 멀쩡한 건물도 날릴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전문가의 손길이 있다면, 까다로운 작업도 까다롭지 않았다.
‘역시 괜히 전문가가 아니구나.’
호준은 브라운이 레이저 굴착기로 바닥을 깎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지이잉―
브라운은 능숙하게 레이저 굴착기로 바닥을 절단했다.
실수 한 번 없이 그는 지하 공간을 만들어냈다.
칼과 찰스가 그 옆에서 지도를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호준은 방해되지 않는 선에 서서,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캉캉캉캉―
미켈란은 가게 바깥에서 조각을 하는 중이었다.
미켈란은 완전히 몰입한 상태로 조각에 집중했다.
장인 정신이 보일 만큼, 그의 눈빛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대단하네요. 직업의식이 느껴져요.”
옆에서 별이가 감탄하자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자. 지쳤을 때 먹을만한 음식을 만들어야겠어.”
“좋은 생각이에요!”
호준은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땅을 파고, 돌을 옮기고.
석재를 다듬고.
힘이 많이 드는 일을 한 이들에게 어떤 음식이 어울릴까.
‘음… 그래.’
머릿속에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다행히 레시피북을 찾아보니, 【요리 가능】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좋았어. 삼계탕이 좋겠다.’
따뜻한 닭 육수 국물, 보들보들한 닭고기살.
안에 가득한 찹쌀과 만년삼까지.
삼계탕은 원기를 복돋울 수 있는 음식으로 제격이었다.
더군다나 진수 덕분에 삼계탕에 넣을 약재도 가득했다.
호준은 카운터에 선 채로, 재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닭고기】
【만년삼】
【마늘】
【황금쌀】
【소금】
【감칠맛열매가루】
【대파】
…
그밖의 약재들을 최대한 꺼내고서.
삼계탕과 궁합이 맞는 약재들을 구분했다.
탁탁탁탁탁―
재료를 다듬고.
닭고기 육수를 먼저 끓였다.
새하얗게 우러나오는 육수는 기포가 터질 때마다 진한 향이 퍼져나갔다.
투닥탁 탁―
지하에서는 목욕탕이 완성되어 가고.
차차착 착―
지상에서는 삼계탕이 뽀얗게 익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