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사업 확장.
때로는 예상외의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는 경우가 있다.
지금, 호준이 응접실 소파에 앉아있는 것도 그런 경우였다.
“은인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지.”
“맞는 말일세. 어이, 칼. 자네, 와인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렇지. 호준 님, 최소한의 대접은 하게 해주시죠.”
호준은 정중히 대접하기를 청하는 칼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고.
그렇게 붙잡혀 자리에 앉았다.
칼이 안주와 술을 가지러 간 사이, 칼의 친구들과 통성명을 했다.
목수 브라운은 눈이 순해보였고.
건축가 찰스는 우직한 돌부처 같아 보였다.
그리고 쾌활한 성격의 조각가 미켈란까지,
칼의 친구들은 개성이 흘러넘쳤다.
통성명을 하다가 새삼 놀란 부분이 있었는데, 소파가 따뜻하다는 점이었다.
마치, 전기장판처럼 따뜻해졌다.
신기한 마음에 손으로 만져보자 비단결처럼 부드러웠다.
장인의 마을이라서 소파도 남다른 걸까.
브라운은 호준의 소파를 보는 눈빛을 알아차리고, 먼저 말을 걸었다.
“흠… 이런 소파를 처음 보시는가 봅니다.”
브라운의 눈은 자부심으로 가득 차 반짝였다.
“엉덩이가 따뜻해지니 겨울에 좋겠군요.”
“물론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 점을 높이 사죠. 보온이 되는 소파는 쉽게 만들 수 없는 부류라 좀 비싼 게 흠이지만요. 아무데서나 만들 수 없는 물건이기도 합니다. 하하. 그건 제가 처음으로 만든 소파입니다. 10년 전 만든 것이지요.”
“10년이나 되었는데 아직 튼튼하네요. 실력이 좋으십니다.”
“허허.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떤 원리로 소파가 따뜻해지는 건가요?”
브라운은 소파를 칭찬하는 호준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어갔다.
“크흠. 소파가 따뜻한 이유는, 그 안에 넣은 태양타조 깃털 덕분입니다.”
“태양타조 깃털이라. 처음 들어봅니다만.”
“비싼 값에 거래되는 희귀품이지요. 구하기도 힘들고, 다룰 수 있는 사람도 이 마을에 저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하나 만드는데 족히 10만 골드는 듭니다.”
“그렇군요.”
“태양타조 깃털은 많으면 많을수록 온도가 높아지는 성질을 지녔는데, 그 갯수에 따라 온도를 맞춥니다. 온도가 높을수록 더 비싸지지요.”
호준은 소파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뜻해지는 소파라. 꽤 구미가 당겼다.
“이걸로 침대를 만들면 꽤 따뜻하겠군요.”
“침대는 비용이 비싸서 다들 엄두를 못 내지요. 만들면야 최고겠지만 말입니다.”
그 말에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를 바라봤다.
잿빛 소파는 보드랍고 깔끔하고 우아했다.
잿빛 침대 역시, 이런 느낌이겠지.
종종 낮잠을 잘 때, 뜨뜻한 침대에 파묻혀 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이왕 하는 김에 요정들 침대도 마련하고.
‘괜찮은 생각이네.’
그리 생각하는 사이.
탁―
“자, 맛있는 와인과 짭쪼름한 치즈가 왔습니다! 밤새도록 마셔 보자고!”
어느새 칼이 돌아왔다.
그가 가져온 쟁반 위에는 와인 다섯 병과 치즈가 가득 담긴 접시가 있었다.
“자 한잔 마셔봅시다!”
그렇게 치즈를 안주삼아 술자리가 시작됐다.
쪼르르르―
“으음….”
“역시 밤에 먹는 와인은 맛이 좋단 말야.”
“여기 한 잔 드시죠!”
호준은 칼이 건네는 와인잔을 받아들어 한 모금 마셨다.
달콤쌉싸름한 와인이 혀를 감돌았다.
‘괜찮네.’
와인이 혀끝에 넘어가는 느낌이 괜찮았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자 칼이 자리에서 돌연 일어났다.
발갛게 달아오른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흠… 적당히 먹을 것도 먹었으니 좋은 곳을 구경시켜드리고 싶은데, 안 되겠습니까?”
“좋은 곳 말입니까?”
뭐를 말하는 거지.
호준이 갸웃하자 브라운도 칼과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첨언했다.
“거기는 꼭 가봐야죠. 제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여기는 저희들만 아는 곳인데, 술 먹고 가서 쉬면 딱이죠!”
호준은 자신만만하게 벽으로 향하는 브라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쪽에는 책장밖에 없는데 대체 무슨 소리인지.
그러나 예상과 달리, 브라운은 자신만만하게 책장을 뒤적이더니 책 한 권을 잡아당겼다.
두두두두두―
그러자 갑자기 책장이 빙그르르 회전하고는, 뒤에 있던 비밀문이 드러났다.
비밀문 안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원형계단이 있었다.
브라운이 원형계단 난간을 부여잡고 호준에게 손짓했다.
“가시죠!”
“이 아래 아주 편하게 쉴 곳이 있습니다.”
“그럽시다.”
호준은 그를 따라 지하계단을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뿌연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대체 이 아래 뭐가 있는거지? 온천이라도 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두컴컴한 공간을 주춤주춤 걸어간 브라운이 벽에 스위치를 누르자, 그들이 감추고 있던 것이 드러났다.
파팟―
“허어… 이건.”
불이 켜지고.
호준은 깜짝 놀랐다.
그는 잠시 넋을 잃었다.
콸콸콸― 쪼르르르―
100평은 넘을듯한 거대한 목욕탕이었다.
이 목욕탕은 그냥 흔한 그런 목욕탕이 아니라, 무려 보석으로 지어진 목욕탕이었다.
영롱한 보석들이 환하게 빛나는 광경은, 숨이 멎을만큼 아름다웠다.
더군다나 가운데 놓인 황금사자상의 입에서 황금빛 물이 분출됐다.
황금물? 어떻게 가능한 건지 상상이 안 갔다.
황금사자 외에도 용, 봉황 등 전설의 동물들 조각이 이곳저곳에 있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며, 넋을 잃고 보게 만드는 목욕탕이었다.
“여기에서 몸을 풀면, 종일 피곤하지가 않지요. 들어가보세요!”
칼은 멍하니 서있는 호준의 어깨를 부여잡고 물로 이끌었다.
호준은 얼떨결에 황금물에 몸을 맡겼다.
‘흠. 가루였구나.’
황금빛 물은 가까이서 보니, 무수한 황금빛 가루가 섞여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이었다.
옆에서 칼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황금물이 신기하신 모양입니다.”
“신기하다마다요. 어떤 원리로 만드는 겁니까?”
“저기 저 상자 보이십니까?”
“저 갈색 상자 말입니까.”
“네. 저 상자에 100골드를 넣으면, 24시간 동안 황금물을 뿜어내지요. 일종의 변환장치를 만든 거지요. 그냥 물보다 훨씬 보기 좋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냥 물보다 화려합니다.”
골드를 갈아 만든 물이라니. 정말 황금색만큼이나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물이었다.
물론 눈요기로는 최고였다.
유토피아가 아무리 넓다지만, 이렇게 보석으로 만든 화려한 공간이 있을까.
글쎄.
아마도 이 목욕탕 장면을 커뮤니티에 올린다면, 많은 파란을 불러올지도 몰랐다.
목욕탕을 부숴서 보석을 훔쳐 가겠다는 자가 나올지도.
이런 공간을 스스럼없이 소개했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를 얻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호준은 이 사치스러운 목욕탕을 소개해준 칼에게 고마우면서도, 또 다른 생각을 했다.
‘목욕탕을 운영해 볼까?’
아름다운 건축물을 눈앞에 두니 난데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는데.
넉넉한 자금이 있으니 더 그런 생각이 든 걸지도 모르겠다.
‘가끔 나도 몸을 풀고. 요정들도 놀고. 그리고 손님들도 즐기다 가면 좋고.’
생각해보니 그리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본점을 확장해서 지하에 지으면 가능한 일이니까.
호준은 칼이 제작 가능하다고 하면, 한번 검토해보기로 했다.
그는 지체없이 물어 보았다.
“이 목욕탕을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한다면, 비용은 얼마정도 받을 생각입니까?”
“흠…… 얼추 계산하면. 150만 골드는 받아야겠지.”
역시.
예상대로 가격이 만만하지 않았다.
이런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목욕탕이 가격이 쌀 이유가 없었다.
“가격이 제법 나가는군요.”
“재료도 고급재료지만, 우리 넷이 달려드니 인건비도 추가되지요.”
호준은 그 대답에 납득했다.
그 모습을 잠자코 보던 칼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호준 님 부탁이라면 가격을 낮춰드리겠습니다. 일전의 도움도 받았고. 그리고 선한 사람을 돕고 싶은 것이 제 뜻이기도 하구요. 비용을 계산해보면….”
칼이 잠시 셈을 하는 순간, 호준은 초조하게 그를 지켜보았다.
곧, 칼이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딱 해서 50만 골드. 이 녀석들 인건비만 넣었습니다. 어떠십니까?”
“50만이요?”
무려 100만이나 떨어진 가격이었다.
호준이 놀라자, 칼이 넉살 좋은 얼굴로 웃었다.
“그렇습니다. 너희들도 괜찮지?”
“우리야. 인건비만 나오면 오케이지.”
“괜찮고말고.”
“어떠십니까. 호준님.”
어떻기는.
당연히 오케이지.
100만 골드 DC를 누가 마다할까.
인맥이 최고임을 다시 한번 느끼며, 호준은 칼이 건네는 손을 맞잡았다.
“좋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렇게 유일무이한 목욕탕 건설의 첫 발을 내딛었다.
* * *
“후우….”
칼과 그 동료들이 술을 더 마시다가 저쪽 소파에서 잠을 잤고.
호준은 목욕탕을 더 누볐다.
그는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목욕탕을 수영하다가 어느 새부터는 두둥실 떠다녔다.
그가 몸을 뒤집고 확인한 것은, 목욕탕에 관한 글이었다.
리서치를 해보니 제법 많은 글이 있었다.
‘흠. 요게 추천수가 제일 많네.’
그중에서 가장 추천수를 많이 받은 글을 읽어보았다.
【작성자】: 해피해피사우나주인장
【제목】: 목욕탕하면 절대 하지 마라. 나처럼 패가망신한다.
【내용】
목욕탕 진짜 정말 하지 마라.
수익성 ㅇ망임.
단 한번의 호기심으로 도전한 나같은 ㅇ신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남긴다.
목욕탕이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겠음.
간단히 말해 투자 비용 대비 수익이 나지 않는다.
첫째로, 건축비가 졸라 비싸다.
목욕탕은 아무나 지을 수 없는, 최상급 목수만 지을 수 있는 건물임.
건축스킬이 낮은 놈이 지으면 건물 붕괴 위험도가 높아지고, 내구도가 빨리 떨어져서 망함.
그래서 초기 투자비용이 겁나 많이 든다.
그럼 수익이 많이 나오면 되는 거 아니냐 묻는다면.
그랬다면, 내가 망했겠냐.
애초에, 목욕탕에 100골드 이상 내려는 사람들이 없어.
내가 90골드로 장사하던 녀석들도 봤는데, 처음에는 잘되다가 다 망함.
그런 식으로 운영할 바에, 전투하는 게 더 돈 잘 벌거든.
나도 100골드로 운영하다가, 수익성 너무 떨어져서 현타와서 접는다.
부디 나같은 잘못된 실수가 없기를.
└ 님, 땡큐! 타이쿤하는 느낌일것 같아서 시도해보려고 했는데. 덕분에 생각을 접었습니다.
└ 목욕탕 운영하는 거 뭔가 재미있어 보였는데, 실상은… 또르륵 ㅠ
└ 힘내세요. 그 투자비용은 그래서 못 건지신 거임?
└ (작성자): 넹……. 건물 팔았는데, 건축비보다 10만 골드 더 싸게 팔았어요.
└ 저런.
└ 저런2222.
비관적인 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의 경험담에는 성공했다는 얘기가 없었다.
죄다 실패했다, 운영이 힘들다, 수익이 안 난다는 얘기뿐.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유토피아에서 운영되는 목욕탕의 갯수도 현저하게 적었다.
‘목욕탕이 씨가 말랐군.’
분위기를 파악한 호준은 정보창을 껐다.
손바닥으로 수면을 탁탁 두드리며 그는 생각에 잠겼다.
‘희소할수록, 기회다.’
누구나 기피하는 일은,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목욕탕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욕탕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을때가 곧.
독보적인 목욕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자금은 충분해.’
어차피 50만 골드를 내더라도, 남은 자금은 충분하다.
그리고, 남들이 말한 것처럼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도록 만들 자신도 있었다.
‘내가 운영하는 건, 그냥 목욕탕이 아니다.’
지금까지 존재한 목욕탕의 평균 건축비는 30만 골드 남짓.
최고가로 40만 골드라는 곳도 들어봤다.
그에 비해 지금 그가 운영하려는 목욕탕은 무려 150만 골드짜리 건물이었다.
50만 골드로 싸게 짓는다지만, 어쨌든 150만 골드의 값어치를 하는 훌륭한 품질의 목욕탕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 비교 자체가 다르지. 보석으로 짓는 건데.’
외관부터, 모든 조각까지.
이곳의 목욕탕과 같이 완벽하게 지어진다면.
역대 최고의 목욕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디에도 이런 목욕탕은 없었다. 뭐 그런 문구를 홍보하는데 써도 부족함이 없지.’
인증샷의 명소가 될지도.
‘더불어 황금물도 흐를 테고.’
그리고 그 어디에도 없던 황금물도 흐른다.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음식점 지하에 연결해서 지으면, 시너지 효과도 있겠지.’
음식점과 목욕탕이 결합되면, 양측에 좋은 영향이 예상됐다.
목욕탕을 이용하던 손님들이 위층에 음식을 주문해 먹을 수도 있고.
반대로 음식점을 이용하던 손님들이, 목욕탕에 호기심을 가지고 들어갈 수도 있고.
이제 남은 일은, 목욕탕이 지어지기 전 제대로 홍보를 하는 일이었다.
호준은 지체없이 글을 작성해 올렸다.
【요정의 쉼터 본점, 확장 소식을 알립니다!】
【목욕탕 사진.jpg】
【지하에 소소하게 목욕탕을 만들어볼까 해요. 따끈한 물에 몸을 맡길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건설을 담당해주실 전문가분들과 찰칵! 뒤에 보이는 온천과 동일하게 제작합니다! 첫날은 무료개장이니 마음껏 놀러들 오세요!】
댓글이 거의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 와아… 사치의 끝판왕! 근데, 무료라고요? 헐….
└ 목욕탕 저 완전 좋아하는데! 꼭 갈게요!
└ 남들이 안 하는 모든 걸 도전하는 분! 멋집니다!
└ 무료무료무료 대박!
└ 와… 눈호강 지리고요. 인증샷 명소다! 저긴 빼박 인증하러 많이갈듯!
└ 그래서 오픈일이 언제라고요?
└ 저 사진에 나온 분, 그 비틀로 마을의 칼이라는 분인데. 실력 좋기로 유명함.
└ 인맥 장난 아니네. 인맥을 넘어서 돈도 많이 들 텐데 ㅎㄷㄷ….
댓글인지 채팅창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의 속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