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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너무 잘함-172화 (172/200)

172. 일석사조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신태섭은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일확천금을 얻을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지금 그의 얼굴이 잿빛처럼 어두워졌다.

‘젠장.’

새롭게 뜬 메시지로 인해 그는 골치가 아팠다.

【대장장이 칼로부터 훔친 아이템을 분실했습니다!】

【대장장이 칼로부터 훔친 아이템을 분실했습니다!】

【대장장이 칼로부터 훔친 아이템을 분실했습니다!】

대체 누가 훔쳐 간 것인가.

어떻게 이 동굴을 알았으며.

어떻게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안 거지?

이 근처에는 던전도 없고.

채집할 건덕지도 없는 변방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온 것도 이상하지만. 어떻게 훔친 거지? 내가 두 눈 멀쩡히 뜨고 있었는데!’

빼앗긴 무기들은 자신으로부터 먼 거리에 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3~4m 정도?

어두워서 거리가 정확한지 알 수 없었지만, 대충 그 정도는 될 것 같았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

분명 상대가 움직일 때 소리가 났을 텐데, 그가 들은 것은 전혀 없었다.

‘왜 아무 소리도 못 들은 거지?’

신태섭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고.

인기척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다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은신을 썼군.’

은신이란 스킬은,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특혜인데,

스킬을 사용하면 자신의 몸을 주위 환경에 어우러지도록 만든다.

즉, 은신 상태에서는 아무리 그 부분을 바라봐도,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

‘그래. 은신이었어.’

은신이라고 확신한 신태섭은 피식 웃었다.

도둑의 도시, 카윤에서 생활한 그였다.

신태섭은 이미 은신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은신의 치명적인 약점은, 물리 공격을 맞으면 은신이 해제된다는 거지… 그때 공격해도 늦지 않다.’

신태섭은 살의를 불태우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리고는, 귀신같은 손놀림으로 채찍을 꺼내 휘둘렀다.

휘이이익―

채찍이 휘둘러진 높이는, 그의 허리 부근 높이.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을 높이였다.

그는 채찍을 휘두르며 빙그르르 한 바퀴를 돌았다.

채찍이 360도로 회전하며 위에서 볼 때 원형을 그렸다.

휘이이잉―

휘파람 소리와 유사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회전하는 신태섭의 입가에는 미소가 서렸다.

‘어디 있냐!’

그는 씩 웃으며 눈을 부라렸다.

채찍에 맞는다면 은신한 상대가 드러나는 것은 자명한 이치.

난쟁이가 아니라면, 허리 높이의 채찍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는 기다렸다. 적이 나타나기를.

적이 채찍을 맞고, 은신에서 풀리면 바로 염산을 부어버릴 계획이었다.

…….

그러나.

이상했다.

‘뭐야.’

사방이 너무 조용했고.

그 누구도 채찍에 맞지 않았다.

원동력을 잃은 채찍만 힘없이 바닥에 내려왔다.

“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신태섭이 당황해 눈을 깜박였다.

철썩― 철썩―

애꿎은 파도 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대체 왜. 이 채찍은 6m가 넘는데.’

근방 6m에 아무도 없는데, 물건만 사라진다?

이 상황 자체가 말이 안 됐다.

도망칠 시간은 없었을 텐데.

‘더 높이 해보자.’

신태섭은 포기하지 않았다.

채찍의 높이를 달리해 휘둘렀다.

차악― 철썩― 차악―

춤을 추듯, 그는 빙글빙글 회전하며 채찍을 사방으로 날렸다.

더 높이도 날려보고, 더 낮게도 날려보고.

그러나 부지런히 움직이던 그는,

“으아아!”

절망의 비명을 내질렀다.

“하아…대체…어디….”

신태섭은 눈을 치켜뜨고 다시 한번 채찍을 들어 올리다가, 무언가를 보고 넋을 잃었다.

‘……!’

채찍을 휘두르느라 뒤늦게 발견한 메시지.

메시지는 그에게 절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대장장이 칼로부터 훔친 아이템을 분실했습니다!】

【대장장이 칼로부터 훔친 아이템을 분실했습니다!】

…….

【대장장이 칼로부터 훔친 아이템을 분실했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

채찍을 휘두르는 사이.

무기들을 전부 도둑맞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까.

불과 몇 초.

그 짧은 시간에, 일확천금을 도둑맞았다는 뼈아픈 사실이었다.

“안돼애애!”

분노에 찬 신태섭이 채찍을 집어 던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채찍이 날아오던 곳에 있던 박쥐들이 파다닥거리며 동굴 바깥으로 날아갔다.

“젠장. 어떤 개새끼야. 씹어먹어 죽여도 시원찮을 녀석 같으니라고. 그 xxx xx을 내서 x을 지져 먹을…….”

호준은 박쥐들 틈에 끼어 입구 쪽으로 날아갔다.

신태섭이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붓는 걸 무시하며.

그는 곧 달빛이 비치는 입구에 도착했다.

펑―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그의 얼굴은, 홀가분해 보였다.

“이제 가 볼까.”

이제, 도둑맞은 물건을 돌려주러 갈 차례다.

* * *

어둑어둑한 대장간.

대장간 한편에 허름한 응접실 소파에는 남자 넷이 앉아 있었다.

그들 모두 표정이 안 좋았으나.

그중 가장 안색이 어두운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칼, 이 대장간의 주인이었다.

“휴우….”

저녁 9시.

옆에 있는 친구들과 평소라면 와인을 마셨을 시간임에도.

그의 잎에서 한숨이 떠나지 않았다.

한숨이 나올 수밖에.

지난밤 도둑맞은 무기들을 다 배상하려면, 1년 동안 번 돈도 모자라, 앞으로 수익도 다 내놓아야 할 판이었다.

‘하필 비싼 무기들만 골라서 가져갈 게 뭐람.’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도둑이 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칼의 생애 도둑맞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다 보니 칼은 지금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친구들이 있기에 그는 기운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

“힘내라 짜식. 얼굴 좀 펴고.”

브라운, 마을 최고 목수인 절친의 위로.

그 뒤로 위로가 이어졌다.

“그래. 뭐…조금 많이. 지출이 있기는 하겠지만. 어쩌겠냐.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나도 좀 보탤 테니까. 부족하면 말해라.”

“20만 골드는 얼추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부담 갖지 말고 말 혀라.”

목수 브라운, 건축가 찰스, 그리고 조각가 미켈란까지.

고향 친구들의 말에 어깨가 축 처진 채로 있던 칼이 고개를 들었다.

“휴… 일단 내가 배상할 수 있는 만큼 해 보고. 힘들면 청하겠네. 고맙네. 다들.”

칼은 흠 하고 소리를 내뱉으며 생각에 잠겼다.

문제는 배상금도 배상금이지만, 무기의뢰를 맡긴 손님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주의 태만으로 인해 손님들이 수개월 준비한 재료도 물거품이 된 것이다.

더군다나, 그 재료를 다시 원상복구 하기까지 들 비용은 예상이 불가능했고.

언제까지 다 구할지도 몰랐다.

‘경매장을 이곳저곳 돌아다녀야겠군.’

아무래도 복구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대장간의 문도 닫아야 할 테니.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칼이 이마를 덮은 머리를 쓸어넘기다가 문득 창문을 보았다.

휘영청, 달이 떠 있었다.

‘한 번 더 수색을 가 볼까.’

“저기…그 절벽에 한번 가 볼까….”

칼이 친구들에게 말을 하던 그때.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이 밤에 누구지?”

“글쎄….”

“길 물어보려는 건가?”

친구들이 중얼거리는 말을 흘려들으며, 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문을 열자, 한 남자가 보였다.

검은색 제복 차림에 깔끔한 인상을 한 남자였다.

‘흠. 실력이 보통이 아닌 자 같군.’

많은 손님들을 마주한 칼의 눈으로 보기에, 눈앞의 남자는 남다른 기운을 느꼈다.

자신감 넘치는 눈빛, 주관이 뚜렷해 보이고.

제법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칼의 물음에 호준은 방문 목적을 말했다.

“대장간의 주인, 칼에게 무기를 돌려주러 왔습니다. 어제 도둑맞았다고 하던데요.”

호준의 답에, 칼은 순간 굳어버렸다.

뭐를 돌려주러 와?

칼이 멍하게 굳은 사이, 그의 친구들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들은 호준을 둘러싸고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되물었다.

“뭐…뭐요? 무기를 돌려주러 왔단 말이요?”

“세상에. 그게 얼마짜리들인데. 어디서 이상한 소문 듣고 온 건 아니고?”

“내 귀가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렇지?”

“그게 얼마짜리 무긴데, 순순히 돌려주러 온다는 게 말이 되냐고.”

호준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상황을 이해했다.

이들은 아무래도 값비싼 무기를 돌려받는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당연한 얘기이기도 했다.

‘계속 가지고 있으면, 그 자에게 소유권이 넘어오니까. 보통 플레이어라면 돌려주지 않는 게 당연하지.’

이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면 맞는 얘기였다.

유토피아에서 길가에 지폐는 주우면 임자고, 길가에 버려진 아이템도 마찬가지.

고작 게임 캐릭터에게 호감을 얻자고 비싼 무기를 돌려주러 오는 사람이 더 이상해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게 호준의 경우에는 아니었다.

‘내 경우에는 다르지.’

이미 가진 음식점만 해도 3개.

재화는 넉넉했다.

재화보다는 우수한 대장장이, 칼과의 호감도를 높여 무기를 싼 가격에 얻는 것이 경제적이었다.

호준으로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의거하여, 이 자리에 선 것이다.

그러나, 호준의 이런 상황을 알 리 없는 칼과 그 동료들은, 많이 놀란 분위기였다.

호준이 재차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제야 상황을 받아들였다.

호준은 안내를 받아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칼과 그 친구들, 그리고 호준은 마주 앉아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니까. 저기 절벽에 음식점을 새로 지은 그분이군! 소문으로는 촌장님을 도왔다고 하던데. 맞소?”

“맞습니다. 황금으로 만든 조각상을 가져오는 의뢰를 해결했지요.”

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화려한 얼굴의 미남. 미켈란이 갑자기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오오! 그건 내가 만든 겁니다! 이 미켈란의 손에 의해 극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 조각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장인이 한땀 한땀….”

미켈란의 말이 길어지려던 찰나, 그 옆의 친구들이 그 말을 가로막았다.

“조각이 끝내준다 이거지. 그래그래. 일단. 호준 님 얘기나 들어보세.”

“미켈란, 이 녀석은 조각가인데 조각상에 대해 말을 시작하면 10분 동안 쉬지 않고 말하지 말입니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호준 님이 동굴로 산책을 갔다가 무기들을 발견했다는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도둑맞은 아이템이라고 메시지가 떠서, 칼이라는 분을 찾아왔습니다. 본래 주인에게 당연히 돌려드려야지요.”

“호오!”

“정말…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분이구려.”

“유토피아에 이런 분이 있을 줄이야.”

호준의 무덤덤한 얼굴과는 달리.

칼의 동료들은 감탄한 듯 호준을 치켜세웠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칼은,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뗐다.

칼의 눈망울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제 잘못으로 인해 많은 손님들이 상심할 뻔했는데. 호준 님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로 부족할 정도로, 너무 감사합니다!”

칼의 절절한 감사 인사 그 뒤로.

동료들의 인사도 이어졌다.

“저도 친구로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호준 님!”

“앞으로 저희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는, 호준 님 가게를 소개시켜줘야겠습니다. 허허.”

“나는 직원들 데리고 한번 먹으러 가야겠어!”

“하하. 별말씀을요.”

호준은 너그럽게 미소지으며 그들과 악수를 주고받았다.

칼과 그 동료만큼, 호준 그도 흡족했다.

‘흠… 역시 오길 잘했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던 것.

【칼에게 잃어버린 무기를 반환했습니다!】

【당신의 선행에 많은 이들이 깊이 감동했습니다!】

【특별한 당신의 선택으로 인해,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대장장이 칼과의 호감도가 최고치를 달성했습니다!】

【앞으로 칼에게 무기를 의뢰할 경우, 의뢰비용이 대폭 감소하고 특별한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칼에게 호감도를 얻는 것은 당연했고.

따따블로.

【당신의 선행을 보고 칼의 30년 지기 친구들이 감동합니다!】

【목수 브라운과의 호감도가 최고치를 달성했습니다!】

【건축가 찰스와의 호감도가 최고치를 달성했습니다!】

【조각가 미켈란의 호감도가 최고치를 달성했습니다!】

【앞으로 위 인사들에게 제작을 의뢰할 경우, 특별한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대폭 높아집니다】

그 친구들의 호감도도 덩달아 최고치를 달성했다.

하나를 얻을 줄 알았더니, 넷이 손안에 굴러들어온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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