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도둑 잡기
달그락 달그락―
후루루루룩―
후우―
하아―
요정의 쉼터 3호.
라면 전문점으로 개점한 첫날, 가게에서는 다양한 감탄사를 동시에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가지각색 해물이 들어간 라면의 매력에 푹 빠졌다.
누군가는 꽃게 다리 속 살을 쪽쪽 빨아먹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새우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먹느라 바빴다.
새우살과 꽃게살을 바른 다음에 밥을 비벼서 같이 먹는 이도 있었다.
손님들은 야무지게 라면을 다 먹고서 가게를 떠나기 전, 호준에게 인사를 했다.
“제 50년 평생 최고의 라면이었습니다.”
“너무너무 잘 먹고 갑니다. 배만 안 불렀으면 더 먹었을 겁니다. 하하.”
“다음에 또 올게요! 장사 대박 나실 겁니다!”
“아주 배터지게 먹고 갑니다. 여기는 앞으로 명물이 될 것 같네요.”
진심이 담긴 인사였다.
호준은 마찬가지로 진심을 담아 화답했다.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들 가세요!”
호준은 웃으며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늘 그렇지만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보니 뿌듯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사람들과 교감하는 맛에 요리를 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서오세요!”
“와아… 대박!”
“너무 맛있어요!”
“다행이다. 아직 넉넉히 남아 있네요?”
“와아… 면이 쫄깃해요.”
“오징어 맛 끝내주네!”
수많은 사람들이 가게를 왔다 갔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가게에 쏟아져 내렸다.
사람들과 마주치며 웃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러시아워가 끝나고 가게가 한산해졌다.
여유가 생기자, 호준은 잠시 의자에 걸터앉았다.
‘벌써 노을이 지네.’
창문 밖 노을이 붉게 피었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듯한 풍경이었다.
호준은 멍하니 노을을 바라보다가.
문득 메시지 함을 열었다.
그는 아까 보았던 메시지를 살펴보았다.
“후우….”
【10일 연속 요리의 등급이 상승한 보상으로, 달성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메인퀘스트 달성률이 85%로 상승했습니다!】
【놀라운 상승세입니다!】
【100% 달성을 위해 계속 분발해주세요!】
아주 아주 놀랍게도 85%를 달성했단다.
처음 그 수치를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
85%라는 숫자를 딱 확인하니 성취감과 안정감이 동시에 들었다.
‘이제는. 15%만 달성하면. 그래 15%만 달성하면 퀘스트 성공이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안 남았어. 힘내자.’
호준은 홀로 파이팅을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다양한 요리들을 도전하고, 손님들 반응도 잘 체크하고.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호준은 루나, 루이, 루키에게 가게를 맡기고서, 문을 열고 가게건물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내려오자 연다홍빛 하늘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그를 반겼다.
“아…시원해.”
시원한 바람은 이마를 시원하게 해주고.
붉은 하늘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바람도, 하늘도 마음에 쏙 들었다.
‘끝내주네……!’
호준은 아름다운 풍경을 찬찬히 둘러보며 숨을 내쉬었다.
바다에 자주 간 적이 없기 때문일까.
바다를 내려다보니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호준은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바다를 구경하다가, 문득 발견했다.
“저 아래 길이 있네?”
절벽 저 밑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길이 있다는 건, 저곳에 뭔가 있다는 뜻 아닌가?
“뭐가 있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길 끝에는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가 보였는데.
파도 끝에서 새하얀 거품이 일어났다.
철썩― 휘잉―
철썩― 휘잉―
거칠게 휘몰아치는 바다의 소리도 들려왔다.
왠지 가까이에서 파도를 보고 싶은 욕망이 샘솟았다.
“한번 내려가 보자.”
마음이 가는 대로 그는 발을 옮겼다.
저벅저벅―
길을 따라 내려가기로 결정한 순간.
호준은 알지 못했다.
누군가 저 어둠 속에서 하이에나처럼 숨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 * *
“음….”
호준은 종유석이 달라붙은 동굴 초입 부분에 서 있었다.
절벽으로 내려가는 길목, 그 끝에는 동굴의 입구가 있었는데.
단지 동굴에 들어가기 싫어서 발을 멈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잘 들리네.’
동굴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그의 귀를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동물의 목소리가 들리는 능력 덕분에 수다쟁이 박쥐들의 이야기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렸다.
호준은 귀를 쫑긋하고 그 내용을 엿들었다.
― 끼하하하. 오늘 진짜 재밌는 날이다~~
― 얘얘~ 그거 들었어?
― 뭐 말이야?
― 저기저기 안쪽에 사과박쥐가 그랬는데. 저 안쪽에 도둑이 숨어 있대!
― 어머어머 진짜루? 도둑? 무슨 도둑?
― 사과박쥐가 그러는데 대장장이 칼 알지?
― 아아. 어릴 때부터 보기는 했지. 그 녀석이 왜?
― 대장장이 칼한테서 무기를 잔뜩 훔쳐 왔다나 봐. 원래는 밤에 도망갈라구 했는데 칼이 절벽 주위를 지키는 바람에 도망을 못 갔대.
― 어머어머. 그렇구나. 근데 대장장이 칼은 폐쇄공포증이랑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내려오지 못하잖아. 그 녀석이 여기 들어올 일은 없을 텐데.
― 그래서 저 도둑놈이 여기서 계속 숨어 있는 거지!! 아마 밤에 어두워진 틈을 타서 몰래 도망갈 생각인가 봐.
― 어머어머. 도둑맞은 녀석이 너무 불쌍하네. 그거 의뢰받은 물건이면 다 배상해줘야 할 텐데?
― 그러니까. 완전 빚쟁이 되는 거지 뭐.
호준은 의외의 이름을 듣자 살짝 놀랐다.
‘칼? 칼은 무기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대장장이 이름인데?’
대장장이 칼은, 비틀로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대장장이였다.
박쥐들은 그가 도둑에게 무기를 도둑맞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도둑이 동굴에 숨어 있다는 것까지도.
박쥐들의 넋두리가 이어졌다.
― 이런이런. 칼이 제대로 물 먹었구만. 그 녀석, 패가망신하겠어. 의뢰받은 무기를 잊어버리면 2배로 물어주는 법이 있잖아. 어쩌냐. 쯧쯧.
― 어쩌긴… 죽기 살기로 또 돈 벌어야겠구만. 저 도둑놈 어떻게 고발할 수 없나?
― 흠. 마을에는 우리 말을 알아듣는 녀석이 없어서 불가능할 거 같아.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지.
― 그러네. 안됐네. 칼 녀석.
모든 사태를 파악한 호준은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둑이라….’
호준은 도둑이 훔쳤다는 무기는 별로 욕심이 나지 않았다.
굳이 돈 때문에 도적질을 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돈도 이미 충분했다.
다만, 그가 구미가 당기는 것은 따로 있었다.
‘무기를 원래 주인인 칼한테 갖다 주면, 호감도가 엄청 올라가겠군.’
대장장이 칼, 그에게 호감을 얻게 된다면, 무기로 얻는 이득보다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칼은 명실상부한 비틀로 마을 최고의 명장이니까.
앞으로 무기 의뢰를 맡길 때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
‘이걸 쓰기 딱 좋겠군.’
호준은 인벤토리에서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구슬 위로 정보창이 저절로 떠 올랐다.
【구미호의 구슬】
【종류】: 아티팩트
【기능】: 구미호의 힘을 받아, 10분간 다른 생물로 변신할 수 있다.
* 외관만 감쪽같이 변신합니다.
* 변신하더라도 착용아이템 효과와 현재 스탯은 현재와 똑같이 유지됩니다.
* 착용 장비는 몸 크기에 비례하여 변합니다. (즉, 몸이 작아지면, 장비도 덩달아 작아집니다.)
퐁―
잠시 뒤, 호준이 서 있던 자리에서 자욱한 연기가 일어났다.
자욱한 연기를 뚫고.
파닥파닥―
박쥐 한 마리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 * *
휘잉― 철썩!
휘잉― 철썩!
파도가 거칠게 몰아친다.
파도 소리가 동굴을 가득 메웠다.
어둠 속에서 그 소리를 듣던 남자가, 바위에 몸을 기댔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하암…언제쯤 어두워지려나.”
전신을 검은 면포로 감싼 남자.
그의 닉네임은 미카엘, 본명은 신태섭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학생으로 그의 인생은 참 버라이어티했다.
신태섭은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세탁방을 하는 유복하지 않은 부모님 밑에서 그는 오로지 머리로, 유명 아이비리그 대학에 수석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IT 기업에 취직했다.
그는 그 뒤로 꽃길을 걸었다.
월급이 많고 안정적인 탄탄한 직장에 아름다운 애인도 생기고.
앞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참…아이러니하군. 인생이란.’
그러나 인생이 언제 계획대로만 흘러가던가.
유토피아가 유행하자 그의 삶에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호기심에 유토피아를 시작했던 신태섭은, 1달 만에 게임중독자가 되어 버렸다.
마약 한 번 손 안 댔던 그였건만, 가족도 애인도 직장도 버리고 그는 유토피아에 빠져들었다.
‘갈 데까지 갔지. 후….’
마치 뇌가 망가진 것처럼, 그는 유토피아를 하지 않으면 뭔가 불안했다.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니 더욱 유토피아에 빠져들었다.
전 재산을 유토피아에 꼬라박고, 그리고서 이제는 도둑질까지 하며 먹고살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유토피아를 그만두고, 재취업하면 된다고.
안정적인 길이 무엇인지 이성적으로는 잘 알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성적으로 안다고, 그대로 행동하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다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지.’
그가 유토피아에 이미 심각하게 중독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신태섭은 이제 현실의 삶이 지루했다.
유토피아에서 보다 큰 골드를 벌어들이고, 말도 안 되는 돈을 쓰고.
비싼 무기로 도적질도 해보고, 온갖 현실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만이.
그의 도파민을 분출시키고 그의 뇌를 충족시켰다.
‘이미 망가져 버린 걸지도 몰라. 내 머리는.’
이제 잘 나가던 직장도, 어여쁜 애인도, 친밀한 가족도.
유토피아에서 주는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이제 그에게 중요한 것은,
“괜한 감상을 늘어놓을 때가 아니지. 오늘 얼마나 벌었냐 그게 중요하다 이거야.”
그는 오늘도 이성적인 생각을 짓누르고 현실을 도피했다.
이성을 놓아버리고, 눈앞의 무기들을 바라봤다.
철커덕― 철컥―
어두운 동굴 바닥에 수북이 쌓인 무기들.
족히 20개는 넘는 무기들은 보석과 마법석이 듬뿍 박혀 있었다.
보통 의뢰가 아니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후후, 요거요거. 나중에 팔면 못 해도 수십만 골드는 벌겠군. 후후…좋았어.”
신태섭은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히 칼들을 어루만졌다.
이 무기들은 모두 마을의 대장장이.
칼에게서 훔친 것이었다.
‘운이 좋았군. 후후…도망칠 수 있을 줄이야.’
신태섭은 무려 한 달 동안 마을에서 거주하며 칼이 방심하는 순간을 노렸다.
그는 오랜 시간 관찰 끝에 오후 9시쯤, 칼이 저녁을 먹고 잠시 대장간을 비운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 틈을 이용해 무기를 훔치는 데 성공했다.
“씁. 하필 그때 눈이 마주친 것만 아니면 완벽했을 텐데 말야….”
아쉽게도 완전범죄는 아니었다.
무기를 쓸어 담던 도중에 대장간으로 들어오던 칼과 눈이 딱 마주쳤던 것이다.
“그 녀석이 쫓아오는 바람에 이런 동굴까지 쫓겼지만…밤만 돼봐라. 확 튈 테니까.”
신태섭은 칼에게 쫓겼다.
칼은 화살을 쏘며 맹렬히 뒤쫓아왔다.
그러나 신태섭이 속도가 더 빨랐다.
신태섭은 절벽에 몸을 내던지고, 파도에 쓸려 이 동굴까지 왔다.
그 뒤로는 날이 어두워졌을 때 도망가고자 기다리는 중이었다.
해가 떠 있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알아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한 달간 마을에 머문 덕분에, 신태섭의 얼굴은 마을 주민들이 파다하게 알고 있었다.
결론은.
“어떻게든 밤까지만 버티면 된다 이거지.”
아직 어둠이 내려앉기까지 1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그는 지루한 나머지, 무기들을 싹 훑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착착―
“우리 보물들, 어디 보자. 후후.”
신태섭은 바닥에 무기를 하나하나 놓고 감상하기 시작했다.
착 착 착―
“흠…이건 값이 비싸겠어.”
“흠…요것도 마음에 드는군.”
신태섭은 무기 하나를 보고 바닥에 내려놓고, 그다음 무기를 살폈다.
그렇게 그가 훔친 물건들이 일렬로 가지런히 늘어섰다.
그가 모든 무기를 바닥에 늘어놓고.
하나씩 살펴보는 사이.
박쥐가 접근했다.
소리 없이 날아온 박쥐, 즉 박쥐로 변신한 호준은 무기를 날개로 터치했다.
‘……이건…!’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천신의 분노를 획득했습니다!】
【본 무기는 대장장이 칼이 분실신고한 칼입니다!】
【지금부터 72시간 뒤 아이템의 소유권을 얻게 됩니다】
【24시간 내에 대장장이 칼에게 돌려줄 경우, 신뢰와 호감도를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분실한 아이템을 돌려줄 경우, 칼에게 특별한 보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분실한 아이템을 돌려주면 보상이 주어진다.
당연한 이치였다.
‘흠…특별한 보상이라. 기대되는데.’
호준은 기대감에 입꼬리를 슬쩍 들어 올렸다.
나머지 무기도 수거할 생각으로 슬쩍 보는데, 떨리는 음성이 동굴에 울려 퍼졌다.
“뭐 뭐야…누 누구야!! 누가 내 물건 가져갔어!”
신태섭이 소리를 고래고래 내지르며 칼을 꺼내 들었다.
“나와… 나오란 말이야. 비겁하게 은신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여유로운 호준과 달리, 신태섭은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눈빛이 또랑또랑한 박쥐 한 마리가, 무기를 가져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