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라면 삼매경
유토피아에서 방송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많은 이들이 방송 시장에 뛰어들었다.
방송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많다 보니 더욱 그러했다.
날이 갈수록 방송 열기는 뜨거워져 갔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종류의 방송이 탄생했다.
먹방도 그 인기의 한 축을 담당했다.
호준의 3호점에 방문한 분홍머리의 여자.
닉네임 먹깨비.
그녀도 먹방으로 먹고 사는 1인이었다.
막 테이블에 앉은 먹깨비는 밝게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러분, 오늘도 먹깨비 방송에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 제가 달려온 이곳은, 바로 그 유명한 호준 님의 3호점인데요! 뜨끈뜨끈한 라면을 파신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아직 줄이 없으니 빨리 온 축에 속합니다. 정말 운이 좋았죠!”
닉네임 먹깨비, 신은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브이를 그렸다.
그녀는 닉네임을 먹깨비로 지을 만큼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가 유토피아를 하는 이유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돈을 버는 족족 맛집 탐방을 다녔고, 숨겨진 음식점을 많이 알게 되었다.
희귀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음식점을 소개하는 그녀의 방송은 이 바닥에서는 꽤나 인기를 끌었다.
먹방계에서는 거의 시초급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오죽하면 그녀가 발견한 맛집은, 리스트가 나돌 정도일까.
그 정도로 믿을만하다고 인정받았다고 보면 되겠다.
‘흠. 유명하긴 한데. 과연 맛있으려나.’
지금 호준의 음식점을 방문한 것도,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수많은 경험을 해봤기에, 그녀는 소문이 다 옳지만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유명할수록 오히려 별로인 음식점도 종종 있지 않던가.
그렇기에 그녀는 호준의 라면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명세 때문에 조금 부풀려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라면이 맛있어 봤자지. 해산물을 넣는다고 무조건 어울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먹깨비는 기대를 누그러뜨린 채로 기다렸다.
곧 부글부글 끓는 라면이 서빙되었다.
“주문하신 해물라면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직원이 라면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꾸벅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먹깨비는 직원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라면을 감상했다.
“우와….”
이런. 이게 라면 맞아?
라면을 보자마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갖은 해물이 가득 담긴 해물 라면의 비주얼은 감탄이 절로 나오기에 충분했다.
이건 뭐… 먹기 너무 아까운데?
이미지로 본 것보다 실물이 몇 배는 더 푸짐해 보였다.
“이건… 사진보다 훨씬 푸짐하네요.”
그녀는 솔직한 감상을 늘어놓으며 새우와 오징어, 문어를 들춰 봤다.
해산물이 끝내줬다.
살결이 탱탱하고 비린내가 하나도 없고 실했다.
최상급이었다.
“우와… 문어 다리가 제 손가락보다 굵습니다! 보이시죠? 여러분!”
문어 다리와 손가락을 비교해보니, 문어 다리가 손가락의 두 배는 될 듯하다.
이런 거대한 문어다리가 여러개가 있었다.
노오란 빛을 띠는 태양오징어도 그렇고.
새우도 가득했다.
특히 새우를 바라보는 먹깨비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새우 완전 좋아하는데. 가득 있네.’
그녀는 라면을 클로즈업하며 말했다.
“먹기 아까울 정도입니다. 100골드가 아니라 1,000골드를 주고서라도 먹고 싶은 요리네요. 제가 특히 새우를 좋아하는데 한번 껍질을 까 보겠습니다.”
먹깨비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젓가락으로 새우 머리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껍질이 스르륵 벗겨지더니 오동통한 새우가 자태를 드러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살이 꽉 찼네요. 같이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먹깨비의 젓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 【먹방매니아】: ㅎㄷㄷ. 새우라면 넘 좋아.
┕ 【오늘밤은야식후후】: 진짜 해산물만 보면 남는거 하나도 없겠는데요? 100골드는 너무 무리수인듯?
┕ 【야식은치킨이진리】: 원래 오픈날에는 100골드이벤트 한다고 함, 아마 이벤트끝나면 올라가겠지? 근데 아무리 봐도 미친 가격이네. 저정도면 가성비왕 아니냐.
┕ 【웰컴투치킨】: 가성비왕 인정. 유명해질수록 세일 스케일이 다름. 결론은… 당장 먹으러 가는게 장땡!
┕ 【헝그리타이거】: 동감222 새우 완전 좋아하는데. 취향저격이다.
후르르륵―
그녀는 채팅 반응을 흘려보며 면을 흡입했다.
큼직한 새우도 입에 넣고.
우적우적―
함께 씹어 먹었다.
“…….”
그녀는 말을 잃었다.
그저 눈을 감고 입안의 맛을 느꼈다.
씹자마자 터지는 새우살의 고소함.
국물을 머금은 면발의 부드러움.
무슨 말로도 이 맛을 완벽히 설명하기 힘들었다.
‘너무… 맛있잖아.’
최대한 비슷한 예를 들자면, 생애 처음 라면을 맛볼 때의 그 충격과 지금이 비슷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 몰래 처음 라면을 먹었을 때 받았던 그 충격과 비슷한 것이다.
그 정도로 라면의 맛이 훌륭했다.
깔끔하게 다 먹은 그녀는, 시청자들에게 조언을 날렸다.
“여러분. 딴말 필요 없구요. 드셔보세요. 드셔보시고 판단하십시오. 이걸 먹고 후회할 일은 없을 겁니다.”
┕ 【헝그리타이거】: 와… 오지게 맛있나보네. 표정에서 다 드러남ㅋㅋㅋㅋㅋ
┕ 【먹짱】: 아 이거 보니까 라면 먹고 싶네.
┕ 【웰컴투치킨】: 난 라면 먹으러 감 ㅂㅂ.
┕ 【키보드전사】: 늦었네. 아까 라면나왔을때 이미 물 올렸음 ㅋㅋㅋ
┕ 【본투비야식사랑】: 행동력 보소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쾌도식마】: 얼마나 맛있길래 저러지. 레알 궁금하네. 아, 배고파.
┕ 【솔방울의눈】: 저건 연기가 아님. 진짜 맛있나보네. 팔까지 걷어붙이고 먹는거봐 ㅋㅋㅋㅋ
먹깨비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가볍게 흘려넘기며, 젓가락을 들었다.
지금은 방송보다도 라면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후루루룩 후루룩―
시원한 국물도 마시고.
김치에 싸서 먹고, 밥 말아 먹고.
라면은 정말 팔방미인이라 할 만큼, 뭐와도 잘 어울리는 요리였다.
“여기 한 그릇 추가요!”
“네!”
순식간에 한 그릇을 해치우고 한 그릇 더 먹었다.
“후루루룩… 음… 아….”
라면을 먹는 먹깨비는 계속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치 당연히 나오는 감탄사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코 박고 라면을 먹는 광경을 보는 시청자들의 관심은, 라면으로 향했다.
┕ 【키보드전사】: 평소에는 말도 좀 하는데 진짜 먹기만 한다. ㅋㅋㅋ 레알 맛있나보네. 접시에 빠질듯.
┕ 【먹짱】: 비틀로 마을, 내가 간다!!
┕ 【헝그리타이거】: 헝그리헝그리…출근했는데 이거보니까 허기짐. 점심에 라면먹어야겠다.
┕ 【먹부심】: 수업 완전 졸린데 이거보니까 잠이 깼어요 ㅋㅋㅋ 학식 라면먹어야지 ㅋㅋㅋ
탁―
그녀는 마지막으로 국물에 밥을 비벼 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릇에는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았다.
꿀꺽꿀꺽―
물 한 잔을 마시며 입가심을 하는 것으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너무나 맛있게 먹는 그녀의 모습에 시청자들의 식욕도 오를 만큼 올랐다.
먹깨비는 카메라에 빈 그릇을 보이며 말했다.
“여러분. 이 라면의 맛은. 정말… 혁명입니다. 정신줄 놓고 먹었네요! 하하!”
먹깨비는 아쉬운 듯, 멋쩍은 듯 그릇을 한번 보고는,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입맛을 다시며 말을 이어갔다.
“이 라면은 너무 위험해요.”
┕ 【키보드전사】: 위험하다구?
┕ 【먹짱】: 라면으로 사람의 심리를 조종하나?
┕ 【헝그리타이거】: 너무 맛있어서 맛의 노예가 된다거나?ㅋㅋㅋㅋ
┕ 【웰컴투치킨】: 라면 줄게 내가 시키는대로 해, 뭐 이런거? ㅋㅋㅋㅋㅋ
사람들의 추측에 먹깨비는 고개를 저었다.
먹깨비, 신은주 그녀가 느끼기에 이 라면은 무척 위험했다.
지금 그녀가 그리 느끼는 이유는 바로.
“위험한 이유는… 중독될 것같이 맛있기 때문입니다.”
웃기게도 너무 맛있어서였다.
“우리가 아는 그 라면들도 중독성이 강하죠.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에요. 호준 님의 해물 라면은 맛있다는 말로는 설명이 어렵고. 뇌세포가 기뻐 날뛰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이 가게를 나가도 라면이 자꾸 생각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알던 라면의 열 배는 더 맛있습니다. 아무래도 앞으로도 자주 오게 될 것 같네요.”
먹깨비의 발언에, 시청자들은 설득되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이 정도로 길고 구체적인 칭찬을 하지 않고.
한번 추천해요, 정도의 가벼운 제안만 했었으니까.
한 번도 한 적 없는 칭찬이자 경고이기에 더욱 믿음이 가는 것도 있었다.
┕ 【웰컴투치킨】: 저 정도면 진짜 맛있는 듯. 먹깨비님의 진심이 얼굴에 다 드러남!
┕ 【쾌도식마】: 영업당함11 비틀로 마을로 가즈아!
┕ 【솔방울의눈】: 저도 영업당함222 줄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넹
┕ 【본투비야식사랑】: 영업당함3333 다들 거기서 보자고.
“방송도 방송이지만, 여기 와서 정말 기분이 좋네요.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먹깨비, 신은주는 배를 탕탕 두드리며 의자에 살짝 몸을 기댔다.
정말 진심으로 배부르게 잘 먹었기에 기분도 날아갈 듯했다.
입술을 휴지로 닦는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신은주는 탁자에 라면 국물이 튄 것은 없는지 쓱 살펴보고는, 티슈로 튄 국물을 닦아냈다.
탁자를 닦은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밥과 김치가 놓인 테이블을 보았다.
테이블에 밥과 김치가 담긴 커다란 통이 놓여있고.
사람들이 그 앞에 줄을 서서 각자 먹을 양을 덜어갔다.
통 큰 호준의 가게답게, 밥과 김치는 공짜였다.
‘남는 게 있나 모르겠네.’
신은주는 잠시 그 생각을 하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앞서나가는 이는 뭔가 다르다지 않던가.
호준도 뭔가 다른 것 같았다.
이 정도로 훌륭한 음식을 100골드에 팔 정도로 통이 크고.
수많은 팬들이 따르는 인물이니 뭔가 생각이 있겠지.
‘그런데 호준은 없나?’
그녀는 내친김에 눈을 굴리며 호준을 찾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니 고맙다고 인사 한마디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방송에 나와 인사 한마디 해주면 더 좋을 듯싶고.
‘흠… 없네.’
그런데 아쉽게도 가게 내부에는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서빙 직원과 요리사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만 있을 뿐.
어쩌면 다른 지점으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실망한 신은주가 슬슬 일어날 채비를 했다.
그런데.
쿠우웅―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가게 건물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건물은 흔들리지 않았으나 굉음으로 인해 많은 손님들이 놀랐다.
“뭐, 뭐야?”
“바깥쪽에서 들렸는데?”
“지진인가?”
“지진이라기엔 땅이 흔들리질 않잖아?”
“대체 뭐길래 이렇게 큰 소리가….”
쿠우웅―
다시 한번 울리는 소리에,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나가보세!”
“그, 그래!”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먹깨비도 나가는 대열에 합류해 문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보고 말았다.
“허어….”
무언가를 본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이게 다 뭐….”
“세상에….”
“맙소사….”
놀란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와 손님들을 맞이한 풍경은, 가히 놀라웠다.
쿠우웅―
수직으로 선 거대한 빌딩 같은 이무기.
녀석의 입에서 해산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해산물 폭포가 내려오는 듯했다.
꾸르르르르―
소형차만 한 붉은 꽃게 20마리가 지상으로 쏟아졌다.
소형차만 한 크기의 붉은 꽃게도 이무기 앞에서는 기를 못 폈다.
꽃게들은 거품을 물고 부들부들 떨며 바닥에서 집게만 까딱였다.
팔딱팔딱―
수백의 붉은 홍새우와 노랑 홍새우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끼유우우 끼유우우―
비명을 지르는 절규홍합은, 물을 달라고 뻐끔뻐끔 입을 열었다.
수백 개의 홍합은 자기들끼리 엉킨 채로 기력을 잃어갔다.
┕ 【쾌도식마】: 와아아아… 해산물을 저렇게 가져오는구나. 다음에는 꽃게라면 만들듯! 기대된다!
┕ 【솔방울의눈】: 홍합라면도 좋을듯?
┕ 【웰컴투치킨】: 산지에서 갓 수확한 해산물이 듬뿍이 농담이 아니라 진짜네.
┕ 【본투비야식사랑】: 여긴 한번 가봐야겠다. 진짜배기네.
그 광경을 보고 놀라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당연지사였다.
먹깨비 신은주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팔딱거리는 해산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해산물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호준과 시선이 마주쳤다.
시선을 마주한 호준은 태평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꽃게라면 드실 분 있으면 손 들어주세요. 바로 만들겠습니다!”
호준의 물음에, 조용하던 손님들이 슬금슬금 손을 들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의 손님들이 손을 들었고.
막 떠날 채비를 하던 먹깨비, 그녀도 손을 들었다.
보글보글.
꽃게살이 듬뿍 담긴 라면의 향이 가게를 메웠다.
어느 오후의 평화로운 나날.
바다가 보이는 절벽을 내려다보며.
손님들은 라면의 향에 푹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