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67화 (167/200)

167. 비틀로 마을

오후 6시 30분.

쌀쌀한 겨울바람이 부는 길.

길을 걷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호준은 역사를 빠져나오자마자 마스크를 쓰고 택시를 잡아탔다.

TV에 나온 뒤로, 대중교통보다 택시가 편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그는 택시에 타자마자 목적지를 말했다.

“인천 산곡동이요.”

“네!”

택시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기사 아저씨는 슬쩍 곁눈질을 하더니, 운전대를 왼쪽으로 감으며 물었다.

“젊은 청년이 어디 아픈가 보구려. 마스크까지 끼고.”

“감기에 걸려서요.”

“허허. 겨울 감기가 고되지. 등 기대면 조금 따뜻할걸세. 겨울만 되면 의자에 열이 들어오도록 해놓거든.”

“감사합니다.”

택시기사 아저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준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기사 아저씨의 말대로였다.

엉덩이와 등에 닿는 의자가 뜨끈뜨끈했다.

‘아― 좋네.’

입가에 힘이 풀리며 몸이 편안해졌다.

호준은 의자에 몸을 착 붙이고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늘 그랬듯, 오늘의 뉴스를 살피기 시작했다.

가십 기사는 패스하고 유토피아 관련 기사를 골라 읽었다.

【호준, 비틀로 마을 진출!】

【비틀로 촌장이 내건 의뢰를 혼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3호점은 차세대 도시로 승격될 예정인 비틀로 마을로!】

【호준의 성장세는 대체 어디까지인가.】

하루 만에, 의뢰에 관한 뉴스가 퍼져있었다.

‘소식 참 빠르네.’

호준은 기사와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 댓글란을 훑어보며 피식 웃었다.

└ 【프로맛집탐방】: 비틀로 마을이면, 앞으로 매출은 걱정 없겠네

└ 【유토피아빠】: 비틀로 마을이 아니라 어디라도 매출 걱정은 없을 듯, 맛이 좋으니까.

└ 【세기의먹방러】: 음식이 맛있으면 어디라도 가지!

└ 【인생뭐있냐】: 극공감,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 【뭐든궁금러】: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이 정도로 화제인지? 맨날 뉴스 나올 정도?

└ 【인생의낙은먹는낙】: 님. 말이 안 나옴. 꼭 가보셈.

└ 【행복은내마음속에】: 그 정도? 레알?

└ 【인생의낙은먹는낙】: 레알루 가면 절대 후회 안 함. 한번 가면 또 가게 될걸?

└ 【하늘아래배고프다】: 후회안함222. 애인이랑 가면 점수땀.

└ 【별이에네르기파】: 빨리 줄 서야함. 적어도 2시간 전에 가야 안전!

└ 【태양초사랑해】 : 진짜 인기 많구나. 함 가봐야지.

└ 【인생의낙은먹는낙】: 애인은 없지만 함 가본다.

댓글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시기하는 글도 몇몇 있지만 대다수는 맛있다는 이야기였다.

‘음식을 맛있어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사람은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절대 모른다고 하는데, 호준도 그 말에 동의했다.

누군가에게 맛난 요리를 선사하는 것이 꽤나 기쁜 일이라는 것은, 그도 해보기 전까지는 절대 알지 못했으니까.

그도 유토피아에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해보기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유토피아 덕분일까.

지금은 새 요리 만드는 재미가 쏠쏠했다.

부르릉―

신호등 신호로 정차했던 택시가 다시 움직였다.

몸이 뒤로 살짝 기울었다.

호준은 옆으로 몸을 살짝 비틀며 다른 기사는 없는지 살펴보았다.

쭉쭉 내리던 리스트 중에,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눈물의 팥빙수 영상 화제!】

【호준, 더위에 지친 이들을 구하다?】

‘눈물의 팥빙수라니 대체 뭔 얘기지?’

팥빙수를 판 적은 있는데, 눈물까지 흘리면서 먹을 정돈가?

기사를 클릭하자 큼지막한 사진 몇 장이 주루룩 떴다.

“아….”

사진은 영상 캡쳐사진이었다.

사진만 볼때, 과연 눈물의 팥빙수라 할 만했다.

땀인지 눈물인지로 얼굴이 흥건히 젖은 남자가 팥빙수를 퍼먹고 있었다.

그의 등 뒤로 용광로처럼 뜨끈뜨끈했던 붉은 벽이 비쳤다.

‘팥빙수 먹는 영상을 찍어서 올렸구나.’

사연은 간단했다.

괜찮은 의뢰가 떴다고 의뢰에 참가한 아로잉.

그는 구사일생으로 함정에서 살아남았으나, 지하에서 죽을 팔자였단다.

더위로 인해 에너지는 떨어져 가는데, 먹을 포션은 없고.

주위에서도 도와주지 않아 죽어가던 찰나.

팥빙수를 먹고 기력을 회복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 진짜, 호준 님 덕분에 살아났어요. 팥빙수 덕분에 HP가 많이 올라갔습니다! 저는 진짜. 호준이라는 두 글자를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아로잉의 대사는 절실했다.

그는 맨 마지막에 빙수를 사간 그 남자였다.

‘도움이 됐다니 뭐 좋은 일이지.’

호준은 사진을 잠깐 본 뒤, 아래 댓글란도 보았다.

└ 【유토피아1레벨】: 역시 인성이 남다름.

└ 【세상의중심1호】: 저기 같이 있었는데, 팥빙수도 300골드에 파심. 원래 최소 600골드 정도는 파는 게 유토피아 인심인데. 호준 님은 그런 세상의 인심과는 뚝 떨어져 있음.

└ 【완전체】: 헐, 산꼭대기에선 물도 비싸게 파는 법인데. 과일이 5가지가 넘게 올라갔는데 300골드? 미쳤네.

└ 【세상의중심1호】: 그리고 덥지 말라고 얼음방도 지어줬음. 그것도 공.짜.로.

└ 【완전체】: 미치고 파도치고 솔도 치겠네. 이래서 다 호준호준 하는구나.

└ 【세상의중심1호】: 다들 전투하느라 죽어가는데 호준님덕에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음, 생명의 은인이라 다들 고맙다고 인사하러 간 분위기ㅋㅋㅋ

└ 【완전체】: 보통은 해코지하려고 다가가는데, 인사하려고 다가갔대 ㅋㅋㅋ 진짜 다르긴 다르네. 뭔가 비현실적임.

└ 【눈마법천재마녀】: 비현실적으로 베푸는 성격이더군. 나도 실제로 보면서 놀라웠음. 얼음마법도 수준급에, 실력도 상당한데. 도적질이나 비매너짓 전혀 안함. 오히려 나눠줌.

└ 【별이에네르기파】: 역시 인성갑 갓호준임. 사랑해요! 요쉼포레버!

└ 【레벨업천재】: 요쉼포레버2222

└ 【착하게맛있는거먹고살자】: 호준님 다음 신작요리 기대됨. 무슨 요리려나!

실시간으로 댓글이 계속 올라올 정도로 댓글란은 분위기가 뜨거웠다.

의뢰 참가자 몇몇이 등판하여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있었다.

왠지 칭찬을 계속 보기 민망해서 호준은 핸드폰을 잠금화면으로 바꾸고 고개를 들었다.

‘돕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 도움으로 뉴스가 날 정도면, 그만큼 각박한 사회라는 방증일까.

괜시리 드는 생각을 지우고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때마침 택시기사 아저씨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유토피아에서 신나게 놀 시간이 다가왔다는 신호였다.

* * *

【유토피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눈앞이 하얀빛에서 다채색으로 바뀌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익숙한 숲 한복판에 누워있었다.

호준은 기지개를 쭉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음~”

싱그러운 풀냄새를 한껏 들이마시는데.

“하암― 오셨어요! 호준 님.”

한참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위를 쳐다보자 별이의 나풀거리는 신상 벚꽃잎 치마가 보였다.

달콤한 벚꽃 향을 풍기며 별이가 포르르 날아와 어깨 위에 앉았다.

“그래, 별이야. 별일 없었지?”

“음, 말씀하신 대로 요리를 듬뿍 만들었어요. 팥빙수는 550개, 김치전과 해물전은 각각 300장씩. 치킨은 맛별로 200개, 피자는 치즈듬뿍피자만 200개….”

한참 요리리스트를 듣고 나서야 별이의 입이 다물어졌다.

“많이 만들었네.”

“뭐. 이 정도야 껌이죠.”

점점 요정들의 요리 만드는 양은 늘어갔다.

그만큼 요리에 익숙해진 것이다.

처음에는 400개에서, 지금은 2,000개 넘는 요리까지 가능하니.

‘너무 일만 시키는 게 아닌가 미안하네.’

물론 억지로 시키지는 않았다.

요리의 양은 요정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한 일이었으니까.

호준은 별이의 날개를 쓰다듬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수고했어. 무리하지 말고. 먹을 거 마음껏 먹으면서 해.”

“물론이죠. 요리하다 먹다가 요리하다 먹다가 그래요.”

“후훗. 잘했다. 농장에도 별문제 없지?”

“네. 쥐새끼 하나 얼씬 거리지 않더라구요. 아, 아까 고블린 카심이 왔다 갔는데요!”

“카심?”

호준은 카심의 이름을 듣고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카심 녀석은 어제도 문을 열어두었는데 오지 않았다.

바빠서 그러려나 했지만, 혹시 다친 건 아닐까 싶어 오늘 한번 가보려 했는데.

다행히 괜찮은 모양이었다.

“어제는 안 보이더니. 뭐 하느라 안 왔대?”

호준의 물음에 별이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푸흡. 글쎄. 과식을 해서 잠을 늑신 잤다나 봐요. 배가 터지도록 먹고 잤는데, 무려 30시간이나 잤다지 뭐에요? 잠을 너무 많이 자서 얼굴이 터질 것처럼 퉁퉁 부었더라구요.”

“아주 푹 잤네.”

“그러게 말이에요. 어쨌든, 이게 카심이 두고 간 씨앗이에요!”

씨앗이라.

궁금해하는 호준의 눈빛에 별이가 손을 잡아 그를 이끌었다.

“무슨 씨앗인데?”

“샛노란 씨앗이더라구요! 저기 있어요!”

별이가 움푹 파인 구덩이를 가리켰다.

호준은 구덩이에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호박이네…!”

【특5급 늙은 호박 씨앗】 X 10

【부드럽고 단 맛이 일품이다】

호박 씨앗 10개를 주워들며 호준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의 신메뉴를 막 생각한 참이었다.

‘3호점 오픈 기념으로는, 호박죽이 좋겠다.’

달달하고 뜨끈한 호박죽을 상상하는 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 * *

장인의 마을, 비틀로 마을에는 무기 제작을 위해 방문한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었다.

유동인구가 많을수록, 외부의 소문은 더 빠르게 퍼지는 법.

잠시 마을에 머무는 사람들 몇몇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았다.

그들은 최근 들어온 핫한 소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네 그 얘기 들었어? 비틀로 마을에 호준이 진출한다는군.”

“그럼 3호점이 생기는 건가?”

“그렇지. 3호점 설치할 권리를 얻었다니까, 조만간 장사를 시작하지 않겠나.”

“크흠. 좋은 소식이구만. 여기 음식이 시원찮은 거는 누구나 알지 않나. 장인의 마을이라 입맛이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밍밍하고 간도 제대로 안 되어 있고. 뭣보다 고기가 별로 없어서 배가 하나도 안 찬다고.”

“가격 대비 맛이 별로지.”

“맞는 말일세.”

기존 음식에 불만이 많던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호준의 진출을 찬성했고.

잠자코 듣던 긴 머리의 여자가 한마디 덧붙였다.

“흠, 요정의 쉼터 요리는 어디서도 잘 팔린다더군. 잘하면 한 번에 왕창 사서 짭짤하게 돈을 벌 수도 있을 거야.”

“그 말도 맞는 말이지.”

“쨌든. 얼른 장사나 시작했으면 좋겠구만. 매일 오트밀죽을 먹는 것도 질렸어.”

“으으. 동감이네.”

그들의 푸념이 장작불 타는 소리와 분주하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소리에 묻혔다.

마을 아치 아래로 새로운 마을을 구경하며 두리번거리는 방문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비틀로 마을은 평소처럼 활기가 넘쳐 흘렀다.

그런 마을의 한복판, 광장에서 빛이 일어났다.

번쩍―

빛이 점멸하듯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쿵―

거대한 이무기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이무기를 보고 누군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호, 호준?”

이미 언론으로 많이 알려져서 이무기는 호준의 상징이 된 터였다.

이무기를 보고 놀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호준은 태연히 이무기의 등에서 내려왔다.

촌장의 집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호준을 누군가 붙잡았다.

“저, 호준 님 아니신가요?”

호준은 옷자락을 붙잡는 노란 머리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맞습니다. 제가 호준입니다만.”

“우와. 실물을 보게 되네요! 반갑습니다! 저 인증샷 좀 찍을 수 있을까요? 제 아들이 호준님 팬인데 봤다고 하면 안 믿을 것 같네요. 하하.”

“괜찮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호준이 흔쾌히 수긍했고 둘은 잠시 인증샷을 찍었다.

호준이 인증샷을 찍는 사이 몰려든 사람들은 호준과 이무기를 둘러쌌다.

호준뿐 아니라, 이무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와…! 이무기 대박 크다. 탐난다 탐나.”

“으으. 살결이 차가워.”

“되게 얌전하네!”

“자꾸 보니까 귀엽기도 하고.”

“듬직하니 믿음직스럽네.”

칭찬을 알아들은 이무기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호준은 그런 이무기의 등을 쓰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사람이 점점 모이는데. 이대로는 촌장의 집을 찾기가 어려울텐데.’

슬슬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동하겠다 말할까 생각하는데.

“크흠. 잠시 길을 비켜주시게!”

저 멀리서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노인의 주위로 사병이 적어도 100명은 되어 보였다.

“아. 어르신. 오셨군요.”

“크흠. 길을 비켜드립시다.”

사람들은 알아서 노인을 알아보고 길을 비켜주었다.

“고맙네.”

사람들이 만든 길을 따라 걸어오는 노인의 정체는, 일전에 보았던 비틀로 마을의 촌장이었다.

촌장은 호준의 바로 앞에 서더니, 90도로 깎듯이 인사했다.

“자네가 이번 의뢰를 해결해 주었다지. 가문의 비보를 잃을 뻔했거늘, 정말 천만다행일세. 모두 자네 덕분이네. 내 자네에게 특별히 주고 싶은 것이 있네만 시간 괜찮은가?”

선물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부할 리가.

호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어떤 선물을 받을지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음, 무기나 방어구 정도려나. 무기로 유명하니까, 새 무기겠지.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촌장을 따라가던 호준은 예상하지 못했다.

잠시 뒤 그 예상을 한참 뛰어넘을 선물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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