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츄츄의 활약
어두운 굴에 떨어지고 검은 호수를 건너고.
그렇게 계속 앞으로 나아간 끝에 호준은 드디어 발견했다.
이번 의뢰의 목표이자, 황금독수리상을 훔친 장본인.
‘저놈이군.’
100개의 눈을 가진 사이클론을 그는 차분히 내려다봤다.
사이클론은 100개의 눈을 실제로 가지고 있었다.
뒤통수, 엉덩이, 허벅지, 다리 등에 눈이 붙어있었다.
녀석의 형태는 동그란 털 뭉치에 팔다리가 붙은 모습이고 덩치는 뒷산만 했다.
‘태평하게 잠을 자네.’
그르렁― 크윽! 그르렁― 크윽!
사이클론은 코를 골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황금 조각상은 녀석의 가랑이 사이에 콕 박혀있었다.
‘염력으로 꺼내기 힘들 것 같은데.’
조각상을 염력으로 꺼내오려던 계획은 실현이 어려워 보였다.
조각상이 두터운 사이클론의 허벅지에 꽉 끼어있던 탓이다.
한번 테스트해 보니, 역시나.
염력으로는 어려웠다.
‘사이클론이 움직일 때 빼내야 하나.’
호준은 차분히 구멍을 바라보며 관찰했다.
그때.
파다닥―
푸더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재빨리 시선을 돌리자 그는 발견할 수 있었다.
‘박쥐?’
보라색 새끼박쥐를.
주먹만한 새끼박쥐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날아오고 있었다.
박쥐의 목적지는 호준이 엎드려 발을 보는 그 구멍인 듯했다.
“끼응 끼응!”
박쥐가 끙끙거리며 다가왔다.
수 미터만 더 날아오르면 구멍을 통과할 수 있을 듯도 하고.
호준이 새끼 박쥐의 날개짓을 바라보는 그때.
피유우욱―
“……!”
정체 모를 액체가 박쥐를 뒤덮었다.
그를 바라보던 호준조차도 깜짝 놀랐다.
‘엄청 빠르군.’
액체 공격은 매우 빨랐다.
박쥐가 미처 피할 새도 없는,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공격.
“꾸아아악―!”
새끼박쥐가 절규하며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녀석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비틀어대더니.
피유욱―
또 다른 액체 공격을 맞았다.
‘눈으로 공격하는군.’
사이클론의 눈이 윙크하듯 세게 감기면, 액체가 발사됐다.
이번 공격은 박쥐에게 치명타였다.
“끄아아악―”
박쥐가 추락했다.
뒷목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처절하게 울며.
‘이런….’
호준은 혀를 쯧 찼다.
새끼박쥐는 말 그대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액체를 맞은 왼쪽 날개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살이 녹고 앙상한 뼈만 남았으니.
그런 날개로 날아오를 수 있을 리가.
새끼 박쥐는 빙그르르 돌며 추락했고.
“끄르르르…….”
마지막 신음을 끝으로 더이상 울지 못했다.
‘위험해.’
박쥐에서도 봤듯이.
저 눈이 내뱉는 액체는 상당히 위험해 보였다.
속도도 빠르지만, 저런 눈이 한둘이 아니라는 게 더 위험했다.
‘사방에서 저 액체를 뿌리면 위험하겠어.’
전신에 붙어있는 눈들은 의뢰정보에서 말했듯이 100개는 될 듯한데.
그중에서 3분의 2 정도의 눈이 떠진 상태였다.
그 정도 눈의 갯수라면, 시야에 안 보이는 사각지대에서 공격이 들어올 수 있었다.
박쥐가 죽는 것을 보고 나니 별로 마음이 놓이지도 않고.
‘흠. 날 수 없으니 직접 움직이는 건 위험해.’
또 하나의 문제는 이번 맵에서는 플라잉 능력이 제한되었다는 것.
분명히 플라잉을 쓸 수 없다고 사전에 고지했다.
즉, 미르가 날개를 펼 수도 없고, 플라잉 열매를 먹고 일시적으로 날 수도 없었다.
즉, 날아다니며 공격을 피할 수 없는 것.
‘황금조각상만 손에 넣으면 되는데.’
이번 의뢰의 목표는 황금조각상.
조각상만 얻으면 이번 의뢰는 성공이었다.
저 두툼한 허벅지에 끼인 조각상만 꺼내면 될 일인데 저 눈들이 방해였다.
‘어쩌지.’
“미끼가 있으면 딱 좋을텐데.”
사이클론의 관심을 끌어줄 미끼가 있다면, 미끼에게 관심이 가 있을 때 조각상을 뺏을 수 있을지도?
호준이 그리 생각하며 입술을 안으로 마는데.
“츄츄츄―!”
“으응?”
주머니에서 고개를 내민 츄츄가 호준의 손가락을 물었다.
“츄츄, 심심했구나?”
“츄츄―”
호준은 손가락을 핥는 츄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츄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길게 울었다.
“츄우!”
【츄츄가 미끼라는 단어에 반응합니다!】
【츄츄가 뭔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츄츄? 뭔 소리야, 만들 수 있다니?”
호준은 츄츄의 머리를 쓰다듬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츄츄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자세히 물었다.
“무슨 소리야. 뭘 만든다는 건데?”
“츄우!”
【츄츄가 왠지 미끼라는 말을 들으니까 엉덩이가 간지럽다고 말합니다】
【츄츄가 힘을 쓰는 방법을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합니다】
“한번 만들어 봐.”
뭔지 모르겠지만 호준은 츄츄가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츄츄는 뒷발로 서더니 제 앞발로 엉덩이털을 한 가닥 뽑았다.
털을 꾹 움켜쥐고는 입김을 후 불자.
“허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퐁―
【츄츄가 엉덩이털로 분신을 만듭니다!】
【분신 1호가 탄생했습니다!】
츄츄 옆에 츄츄랑 똑같이 생긴 녀석이 하나 더 생겼다.
분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츄츄와 같은데, 유일하게 몸통에 숫자가 적혀있다는 점이 달랐다.
분신 1호의 등에는 1이라는 숫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분신 1호라서 1이 적힌 모양이다.
“츄우츄우―!”
【츄츄의 분신 1호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분신 1호는 호준에게 납작 엎드려 절했다.
“분신이라….”
호준은 조금 황당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츄츄의 능력을 알아내기 위해 계속 데리고 다녔다지만, 이런 식으로 알아낼 줄이야.
분신이라면 좋은 점이 많겠지만.
지금 딱 필요한 역할이기도 했다.
“1호면, 2호나 3호도 있다는 소린가?”
분신이 몇 명까지 가능할까.
츄츄가 대답하듯 길게 울음을 내뱉었다.
“츄츄―!”
【츄츄가 엉덩이털이 다 뽑힐 때까지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 뒤, 츄츄는 열과 성을 다해 분신을 만들었다.
츄츄가 분신 100호까지 만들었을 때, 호준은 그만하도록 했다.
츄츄― 츄츄―
100마리의 날렵한 쥐.
그 정도면 미끼로 충분한 숫자였다.
* * *
“끄르르~”
오늘도 사이클론의 일상은 평화로웠다.
평소처럼 검은 호수에서 물놀이도 했고.
호수 밑바닥에 붙은 이끼를 배부르게 먹었다.
배도 부르고, 신나게 놀고.
막판에 뜨끈뜨끈한 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보다 편한 삶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끄르~”
그에 더해 사이클론은 얼마 전에 새로 얻은 황금인형도 꼭 안고 있었다.
반짝이는 황금인형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어두운 지하를 밝히는 황금인형을 보며 사이클론은 기분좋게 신음하고는.
몸을 부침개 뒤집듯 반대쪽으로 뒤집었다.
쿠웅―
사이클론은 먼지구름이 일어났으나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반짝이는 인형을 어루만지는데 바빴다.
“끄르끄르~”
사이클론은 기분좋은 듯 그르렁거렸다.
지금은 잠에서 깰랑말랑한 순간.
‘조금 더 자자.’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사이클론은 눈을 10개 더 감았다.
그렇게 잠을 청하려 하는데.
찍찍찍찍―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귓가를 맴도는 저 찍찍거리는 소리.
큰 소리는 아니건만 왠지 계속 신경 쓰여서 잠이 깼다.
‘이대로 놔두면 잠을 잘 못 잘 것 같군.’
사이클론은 눈을 하나 더 뜨고 그 소리를 내는 원흉을 바라보았다.
찍찍찍찍찍―
‘작은 쥐새끼? 겁도 없이 감히.’
사이클론은 바로 눈물을 발사했다.
찌직.
쥐는 깔끔하게 녹아내렸다.
깔끔한 마무리도 지었고, 이제는 자 볼까.
사이클론은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자 했다.
잠시 쥐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이제는 조용해졌으니 괜찮았다.
“끄응―”
사이클론이 다시 잠에 빠져들려는 찰나.
찍찍찍찍―
또다시 쥐가 나타났다.
‘아오―’
사이클론은 짜증이 난 채로 다시 눈을 떠서 보이는 족족, 눈물을 쏴 죽여버렸다.
찍― 찍―
두 마리의 쥐가 사라졌다.
다시 동굴은 조용해졌다.
사이클론은 짜증을 억누르고 다시 잠에 빠져들어갔다.
찍찍찍―
다시 쥐가 나타나 잠들려던 사이클론을 깨웠다.
잠이 6번 깨자, 사이클론은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이번에는 아예 완전히 눈을 뜨고는, 쥐란 쥐는 다 박멸해버릴 기세였다.
‘대체 어디서 쥐가 들어오는 거야?’
사이클론은 쥐를 잡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찍찍찍찍―
사이클론은 동굴 한구석에서 쥐들이 단체로 우는 걸 발견했다.
족히 수십 마리는 되어보였다.
‘다 죽었어.’
사이클론은 뿌득 이를 갈며 쥐를 향해 달려갔다.
애지중지하던 황금인형은 잠자리에 내려둔 채였다.
쿠우웅―
사이클론이 주먹으로 쥐 무리를 내리치는 그때.
탁―
호준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이클론이 내버려둔 황금조각상을 손에 쥔 채로.
눈부신 황금빛이 호준의 전신을 휘감았다.
* * *
한편.
지하를 탐색하는 생존자들은 끊임없이 전투 중이었다.
“아우, 더워.”
“무슨 지네가 이렇게 많아!”
“저쪽은 굼벵이도 장난 아니게 많다고 하더군.”
“벌레 천지야. 천지!”
그들의 앞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병정개미, 흡혈지네, 말랑굼벵이 등.
툭툭 튀어나오는 곤충을 처치하느라 모두가 진땀을 뺐다.
처음 전투를 시작할 무렵.
사람들은 이 정도 몬스터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는 껌이지.”
“머리, 가슴, 배! 3등분으로 만들어주마!”
“으. 거미 완전 싫어. 넌 이제 죽었어 짜샤.”
“으아아! 죽어!”
한데 뭉쳐서 싸웠기에 사기도 높았다.
그러나 그 사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아. 개미 새끼들 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거야!”
“거미가 점점 커지는 거 같은데 내 착각이 아니지?”
“아까부터 크기도 커지고 더 센 것 같아.”
“하아… 쉬고 싶다.”
“힘들어.”
약해 보일지언정 곤충들은 물량이 장난 아니었다.
물량빨로 밀어붙이는 곤충을 상대하니, 숫자가 적은 사람들은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뿐 아니라 뜨끈뜨끈한 지형도 사람들이 지치게 하는데 한몫했다.
“가만히 있어도 불가만데. 미치겠다. 허억.”
“아. 더워.”
“미치겠다. 너무… 헤엑….”
의뢰에 참가한 순간부터 제한시간이 끝날 때까지 로그아웃도 불가능한 터라.
그들은 죽기 살기로 싸워야 했다.
“죽지만 말자고.”
“버티자 버텨!”
더위에 지치고 전투에 지친 사람들.
그들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크악… 내 팔!”
“으아아!”
아차 하는 순간 팔이 잘리고, 다리가 날아갔다.
몇몇이 다치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쪽 힐러!”
“여기도 필요해!”
“어서!”
“어디 도망갈 데 없어?”
“여기서 어떻게 도망을 가!”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곤충을 피해 도망갈 곳은 없었다.
드높은 천장으로 날아오를 수도 없고.
지하로 땅 파고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후우.”
“으아!”
“죽어!”
진퇴양난에 놓인 사람들이 아득바득 싸우던 그때.
모두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들렸다.
【의뢰 참가자 호준 님이 황금독수리상을 획득했습니다!】
【의뢰 성공!】
【모든 참가자의 활동이 자동으로 종료됩니다!】
“어어…?”
“이게 뭐야?”
사람들의 주위에 동그란 방어막이 생겨났다.
방어막은 곤충의 공격을 완전히 튕겨냈다.
메시지를 읽은 사람들이 입을 크게 벌렸다.
메시지는 호준이 의뢰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즉, 호준 덕분에 이 지독한 전투가 끝났다는 뜻.
“사, 살았다.”
“끝났어!”
“우우우와!”
“끝났다!”
“갓호준님 최고!”
“진짜 죽다 살았네!”
상황을 인지한 사람들이 무기를 들며 환호성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