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검은 호수
누구나 몸이 불편해지면, 불편함을 해소할 만한 모든 방법을 시도하기 마련이다.
몸이 편해지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으니까.
호준이 얼음벽으로 건물을 세운 것도 바로 그때문이었다.
척척―
설산에서 얻은 빙백검으로 얼음벽을 만들고.
바닥과 벽을 설치한 뒤, 천장 뚜껑까지 얼음벽으로 덮으면 끝.
만들기 참 쉬웠다.
【어설픈 얼음집 완성!】
【딸기족의 축복 칭호 효과로 인해 건축물은 24시간 동안 절대 부서지지 않습니다】
【어설픈 얼음집이 형태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물론, 얼음집의 유지는 칭호 덕분이었다.
건축물이 24시간 동안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는 칭호 효과 덕분에 얼음집은 형태를 유지했고.
호준은 시원한 얼음집 안에 들어가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피했다.
몸이 편해지니 배가 출출해서 팥빙수를 먹었던 것뿐인데.
때아닌 호황이 찾아왔다.
“팥빙수 아직 남아있는 거죠?”
“아, 줄 진짜 기네! 빨리빨리 삽시다!”
“앞에서 다 쓸어가면 뒷사람들은 뭐 먹나요. 너무 많이 사가지 맙시다. 같이 좀 살자구요!”
뒷줄에 선 사람들의 눈빛은 불안했다.
팥빙수가 떨어져서 먹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것.
호준은 입을 열어 사람들의 불안함을 잠재웠다.
“팥빙수는 많이 남았습니다. 음, 한 명당 5개까지 살 수 있습니다.”
“휴우. 다행이다.”
“살았네.”
“중간에 끊길까 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겠어.”
호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안도했다.
빠른 속도로 줄이 줄어들어 갔다.
한증막보다 더한 더위에, 팥빙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마침내 맨 마지막 손님에게 팥빙수를 넘기자, 그는 팥빙수를 안고 꾸벅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복 받으십쇼!”
머리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남자가 바닥에 앉아 팥빙수를 우적우적 퍼먹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이야. 시원하네. 정말 감사합니다. 죽다 살았어요!”
“많이들 드세요.”
그렇게 300골드짜리 팥빙수 150개가 완판되었다.
4만 5천 골드라는 예상치 못한 소득을 올린 호준은 얼음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주위를 쓱 둘러봤다.
“아아, 살 것 같네.”
“엇. 체력 떨어지는 속도가 장난 아니에요. 이 더위는 진짜, 역대급이다 진짜.”
“진짜 쪄 죽을 거 같아.”
“찐빵처럼 익어버릴 듯.”
팥빙수를 먹는 사람들의 얼굴이 터져버릴 폭탄처럼 붉었다.
땀을 줄줄 흘리는 사람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얼음집을 하나 더 만들어 볼까.’
얼음벽을 만드는 데는 체력이 소모되는데, 아직 체력은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다는 걸 넘어서서 넉넉했다.
얼음집 하나 추가되는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까.
호준은 좋은 일 한다 생각하고 칼을 들었다.
척― 척― 척―
얼음벽을 다섯 개 만들고 얼음집으로 조립했다.
그렇게 얼음집 2호가 완성!
사람들은 팥빙수를 먹다 말고 호준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응?”
“얼음집이네?”
“그런데 진짜 금방 만든다. 원래 건축이 저렇게 쉬운 건가?”
“글쎄. 내가 듣기로는 벽이 은근 무겁다고 들었는데.”
“무겁다기에는 음… 무슨 빵조각 들 듯이 벽을 드는데.”
“그러게.”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못 들은체하며 호준은 메시지를 살폈다.
새로운 얼음벽이 추가되면서 체력 소모는 배가 되었다.
【얼음벽 유지를 위해 10분당 체력 10이 소모됩니다】
체력이 10이나 들어간다지만.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체력은 단숨에 100이 떨어져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만큼 월등히 높아져 있었으니까.
【사기증진 효과 적용 중】
【3km 내 동료직원이 있어 근력, 체력, 민첩이 2배 상승합니다!】
특히 사기증진 효과 덕분에 체력이 2배로 늘어났다.
기존 체력도 적지 않았는데, 2배로 늘어났으니.
결론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저… 혹시 비용을 내고 얼음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저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저두요!”
“줄 서자고 줄!”
한 사람이 호준에게 비용 얘기를 꺼내자,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너무 뒤에 줄을 서서 기회가 없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극도의 더위는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하기에 충분했다.
“저, 입장료는 얼마면 될까요?”
호준은 얼음마녀의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음마녀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호준의 설명이 이어졌다.
“따로 비용은 안 받습니다. 다들 빙수도 맛있게 드셨으니 안에서 쉬세요. 40명이 들어갈 정도는 될 겁니다.”
“……공짜… 라구요?”
“네.”
믿지 못하겠다는 얼음마녀의 얼굴에, 호준은 다시 한번 확답을 주었다.
“허어….”
얼음마녀는 잠시 말을 잃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통하는 유토피아.
유토피아에서 성공하고자 생업을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다들 돈이라면 뭐든 오케이하는 그런 곳이었다.
법도 질서도 없는 이곳에서 공짜란 없었다.
공짜는커녕 뒤통수 맞기 쉬운 세상인데.
사실 금방 샀던 팥빙수도 300골드에 먹기에는 사치스러울정도로 훌륭한 음식이었다.
산꼭대기에서 물 한 병에 500원 할 수 없듯이.
이곳에서는 더 비싸게 팔아도 되건만, 호준은 300골드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을 팔았다.
그리고 공짜 얼음집까지 지어줘?
‘된 사람이군.’
얼음마녀는 자기 할 말을 마치고 제집으로 돌아가는 호준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뒤에서 사람들의 감사 인사가 들려왔다.
“오오!”
“호준님, 감사합니다!”
“아싸! 시원하다 오오!”
“아아― 천국이다!”
호준은 얼음집에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요정들의 곁으로 돌아갔다.
미르는 얼음 바닥에 배를 딱 붙이고 있다가 호준을 보며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끄르르~”
울기도 귀찮은지 그르렁거린다.
호준은 하품을 하는 미르 곁에 앉았다.
다크니스와 츄츄도 미르와 착 달라붙어 자고 있었다.
더위에 축 늘어진 미르와 츄츄, 다크니스를 보니 빨리 이 의뢰를 끝내야지 싶었다.
“하암― 나도 한숨 잘까.”
호준은 기지개를 한번 켜고 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단잠에 빠져든 호준을 방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황금독수리상을 찾고자 산을 등정했건만, 이제는 모두 지하에 갇혀버렸다.
불타오르는 지하에서 구속되었던 1시간은 생각보다 훌쩍 지나갔다.
【1시간 경과!】
【LOCK이 해제되었습니다】
【지하 탐사가 가능합니다!】
“후우!”
“이제 살만하군.”
“빨리 떠나자고!”
락이 해제되었다는 메시지가 뜨자, 모두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 중에는, 시원한 얼음집을 만들어준 호준에게 인사를 하는 이들도 많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다음에 방송하실 때 꼭 보겠습니다.”
그렇게 훈훈한 인사치레가 끝나고.
사람들은 본래 목적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각상을 찾기 위해 흩어져 사방팔방 흩어지는 사람들.
그중에는 은밀히 움직이는 이들도 있었다.
‘쉿. 조용히.’
‘우리는 호준이 가는 데로 따라 간다!’
‘오케이!’
그들의 속셈은 호준의 뒤를 밟으려는 것.
레드 게이트 탐방 경험이 많은 호준이라면, 뭔가 단서를 잡을 테고.
그가 먼저 발견하면, 그 뒤를 따라가 황금조각상에 먼저 손을 댈 생각인 것이다.
다소 어설픈 계획이긴 하지만, 완전히 어설픈 것도 아니었다.
‘황금조각상에 손만 대면 미션 클리어니까.’
이번 의뢰는, 파티원 1명이 성공하기만 해도 그 파티는 성공한 것이었다.
파티원 한 명이 성공하면, 파티에 속한 전원이 보상을 얻는 방식이니까.
8명이 똘똘 뭉쳐 호준을 따라가기로 합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뒤통수가 뚫릴듯한 시선을 모른체하며.
“가자.”
“끼르!”
호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르에 올라탄 호준은 횃불을 들고 앞길을 비추었고.
미르가 길을 따라 어기적어기적 기어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
후다닥―
뒤에 따라붙은 추적자들이 따라붙을 만한 속도였다.
호준은 뒤에 따라붙은 곁다리들을 신경쓰지 않았다.
‘뭐. 그것보다 더 신경 쓸 게 많지.’
뛰어난 청각 덕분에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이미 다 들은 터.
만약 방해한다면 가만히 두지 않을 생각이기에, 별 걱정이 없었다.
그들보다 집중해야 할 것이 따로 있었으니.
“냐아!”
【다크니스가 저쪽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오늘의 길잡이 다크니스였다.
다크니스가 앙칼지게 울면 그 시선의 방향을 체크해, 그쪽으로 움직였다.
10분쯤 가자 다크니스의 울음이 더욱 커졌다.
“냐아!”
【다크니스가 점점 이상한 냄새가 강해진다고 말합니다!】
호준은 다크니스가 콧잔등으로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동할 것을 명했고.
30분쯤 이동하자 그들은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호수… 라.”
난데없이 드넓은 호수가 펼쳐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호수.
워낙 진한 검정색이라 물속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망원경을 들고 몰래 뒤따르던 사람들도 검은 호수를 보고 놀랐다.
“저긴 대체 뭐지?”
“저 호수 안에 괴물이 사는 거 아냐?”
“수중전이라도 펼치는 건가?”
“아니. 그보다 황금조각상은 아직 코빼기도 안 보인다고.”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사람들의 관심은 검은 호수와, 호수를 바라보는 호준에게로 향했다.
과연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호준은 사람들의 관심을 무시하고 길잡이 다크니스를 바라봤다.
어둠의 요정이자 길잡이 다크니스는 호준을 바라보며 크게 울었다.
“냐아― !”
【다크니스가 호수 너머에서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다크니스가 벽을 타고 지나갈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벽이라.’
벽은 확실히 벽을 타기에 딱 좋은 구조였다.
굵은 암석들이 툭툭 많이도 튀어나와 있었다.
발톱 힘이 남다른 미르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끼루루―!”
【미르가 얼마든지 벽을 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미르도 자신감이 넘쳤다.
“그래. 부탁하마.”
호준은 미르의 동그란 머리를 꽉 부둥켜안고 매달렸고.
다크니스와 츄츄도 호준의 상의 안으로 쏙 들어갔다.
준비를 마치자 미르가 바닥을 박차며 높이 점프했다.
파악―
사람들은 헉 소리를 내며 놀랐다.
미르의 움직임은 느기적느기적 걷던 조금 전과는 180도 달랐다.
호준이 일부러 미르의 본래 속도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착―
용수철처럼 튀어오른 미르가 벽에 찰싹 달라붙더니 벽에 매달려 이동하기 시작했다.
호수를 건너는 미르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으으― 호수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아.”
누군가는 호수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다며 엄두를 못 냈고.
“으악― 미끄러! 이끼가 장난 아니잖아?”
이끼가 많은 돌벽을 보며 시도조차 못했다.
그렇게 뒤따르던 사람들을 제치고.
호준은 착실히 전진했다.
* * *
다크니스의 말대로 호수를 건너갔다.
그 결과.
“맙소사.”
호준은 참상을 마주했다.
“무덤이군.”
호수 너머에는 움푹 파인 구덩이가 여기저기 있었는데, 그 안에는 동물 사체가 가득했다.
죽은 거대박쥐들이 구덩이마다 잔뜩 죽어 있었다.
박쥐의 덩치가 무척 컸는데, 양 날개를 다 편 녀석의 크기는 독수리만 했다.
대체 왜 죽은 것일까.
호준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 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흠. 몸이 망가졌어.”
박쥐의 사체는 상태가 참으로 이상했다.
만약 괴물의 이빨이나 발톱에 의해 죽었다면 박쥐의 날개가 꺾이거나 다리가 잘리거나.
그런 형태가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 박쥐들은 몸이 저절로 녹고 있었다.
마치 오염된 것처럼.
아니, 병에 걸린 거라고 해야 하나.
취이익―
사체에서 수증기처럼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와서 마치 안개처럼 착 깔렸다.
연기 덕분에 무덤은 더욱 스산해보였다.
녹아버리는 박쥐 사체들을 보며 호준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뭔지 모르지만, 조심해야겠군.’
호준은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박쥐가 녹아버린 것이 누군가의 공격 때문이라면.
그 공격은 이쪽으로 향할 수도 있을 터.
“냐아~”
【다크니스가 저쪽에서 수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합니다!】
다크니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호준은, 최대한 조용히 걸어갔다.
한 스무 발자국즈음 걸었을까.
츄릅―
다크니스가 호준의 귓불을 물며 앞발로 바위를 가리켰다.
곧, 바위 뒤편에서 작은 구덩이를 발견했다.
‘………!’
구덩이에서 심상치 않은 황금빛이 흘러나왔다.
‘황금빛?’
호준은 조심히 구덩이 안을 살펴봤다.
곧,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