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함정에 걸리다
유토피아에서는 하루에도 수백만 개의 의뢰가 나타나고, 없어지기를 반복한다.
그 수많은 의뢰들 중, 대부분은 1인이 도전하는 방식이다.
1인이 도전하고, 혼자 보상을 차지하고.
하지만 어디에나 그렇듯 예외는 있는 법.
이번 의뢰처럼, 대규모 참가자를 선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예외적인 의뢰의 무대가 될, 불타는 산.
그곳에 56명의 참가자가 도착했다.
“와.”
“정말 크네.”
“이건 불타는 게 아니라… 그냥 화산이잖아?”
“이거 그냥 들어가도 되는 거야? 활화산이잖아.”
“뭐… 인제 와서 안 들어갈 수도 없지. 힘들면 얼음 마법사 힘을 빌리고!”
“정령사도 있다니까, 진정하자고.”
“후우! 덥네 더워! 후끈 달아오르는구만.”
눈앞의 화산은 사람들의 기세를 찍어누를 만큼 거대했다.
호준은 고개를 들어 높이 들려 산을 올려다봤다.
수직으로 뻗은 검은 산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거대한 화산을 보고 넋을 놓던 그때, 메시지가 떴다.
【의뢰에 참가하신 걸 환영합니다!】
【참가자 전원, 불타는 산에 입장합니다!】
【지금부터 불타는 산은 의뢰 참가자만이 입장할 수 있습니다】
【……맵 탐색중……】
【산속에서 의뢰 불참자 발견!】
【불참자를 제거합니다】
【……처리중……】
불참자 제거 메시지가 뜨자마자, 저 멀리 산등성이에서 점이 생성됐다.
“으아아~”
“뭐, 뭐야!”
그 점의 정체는, 의뢰에 참가하지 않으면서 산에 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허공에 풍선처럼 둥실둥실 떠오르더니.
“아악! 날아간다!”
“어억! 우웩!”
마치 홈런볼이 날아가듯, 그들은 슝 소리를 내며 멀리 날아갔다.
빠른 속도로 숲속에 내던져진 이들을 보며, 참가자들은 여유롭게 웃었다.
“푸흡. 좀 웃기네.”
“큭. 콧구멍에 바람 좀 들겠군.”
사람들이 왁자지껄 웃기 바쁜 동안, 호준은 차분히 산을 관망했다.
‘길이 한 개네.’
단 하나의 길이 산을 휘감아 올라갔다.
길이 하나라는 것은, 곧 이 55명의 사람들.
3개의 파티와 순서대로 걸어가야 한다는 뜻.
호준이 산을 훑을 무렵,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불참자 13명 퇴출 완료!】
【참가자 56명 입장 완료되었습니다!】
【지금부터 3시간 동안 자의로 로그아웃이 불가합니다!】
【지금부터 3시간 동안 본 맵을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합니다!】
【* 사망 시 즉시 로그아웃됩니다. (페널티 적용됨)】
【본 맵에서는 플라잉 능력 사용이 불가합니다】
【의뢰를 해결하는 법은 간단합니다!】
【황금독수리상을 손에 쥐십시오】
【황금독수리를 쥔 자와, 그가 속한 파티원도 동일하게 성공 판정을 받습니다】
【힌트】
【100개의 눈을 가진 사이클론을 조사하면,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55명의 참가자분 전원의 건투를 빕니다!】
【출발하십시오!】
스타트 신호가 떴다.
“어서 가자고.”
“가자!”
“우리가 먼저 선점한다!”
“앞서가자고!”
모두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쏜살같이 달려갔다.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달리기 경쟁이 치열했다.
다들 길이 하나이니 앞서가면 유리하다 여긴 거겠지.
사람들이 제대로 장비도 챙기지 않고 종종거리며 달려갔으나.
호준은 가만히 있었다.
그의 발등에서 불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냐앙!”
다크니스가 호준의 발목을 살짝 물며 커다란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다크니스가 왜 먼저 가지 않냐며 뭐라 합니다!】
【다크니스가 미르를 타고 앞장서자고 합니다】
미르를 타고 간다면, 확실히 빨리 앞서나가기는 하겠지만.
호준은 빨리 간다고 유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황금상이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황금상이 꼭대기에 있다는 보장도 없다.
정확한 방향도 모른 채로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건 시간 낭비, 체력 낭비 아닌가.
어차피 플라잉을 하지 못한다면, 신중하게 가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이대로 화산에 갈 수도 없고.
“출발하기 전에 해야 할 게 있어.”
호준은 녀석의 턱밑을 간지럽히고는 팔뚝 위에 올렸다.
손만 닿아도 나오는 골골송을 들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 나는 못 갈거같다사악! 길이 무너질거다사악!
“이무, 너는 여기서 쉬고 있어. 먹을 거 두고 갈 테니까. 편히 쉬도록.”
― 역시 호준이 최고다사악!
그렇게 이무는 출발점에 남겨두고.
“냐앙~”
“끼루!”
“츄츄!”
요정들에게는 미리 준비해 온 약을 듬뿍 먹였다.
【츄츄가 화상 보호 포션을 복용했습니다!】
【1시간 동안 화상으로 입는 데미지 30%가 감소합니다!】
【츄츄가 더위 방지 포션을 복용했습니다!】
【1시간 동안 더운 공기로 인해 심장박동수가 올라가거나 기력이 소모되지 않습니다】
………
진수에게서 받은 보충제를 듬뿍 먹인 뒤.
“가자!”
미르를 타고 길을 떠났다.
미르는 비호같이 날아 앞선 사람들을 따라잡았다.
‘많이 덥네.’
화산으로 다가갈수록 공기가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불 내성이 있다고 해서, 더위를 못 느끼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더위를 느끼기만 할 뿐 더위로 인한 부작용은 없었다.
너무 더워서 눈이 감긴다거나 체력이 떨어진다거나 축 늘어지거나 하지 않는 것.
“후우. 덥네.”
호준은 옷깃을 걷어 젖히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산꼭대기에서 마그마가 크게 튀어올랐다.
* * *
호준은 산을 오르며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런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좋은 청각 덕분에, 멀리서 이야기하는 것도 다 들렸다.
꽤 흥미로운 정보는, 이번 비틀로 마을 의뢰서는 이례적으로 참가자 모집시간이 짧았다는 것이었다.
보상이 워낙 좋기 때문에 모집시간을 짧게 했던 모양이다.
겨우 1시간이라는 참가자 모집시간에도 불구하고 56명이 모인 것은, 그만큼 보상이 훌륭해서겠지.
일확천금에 대한 희망이 있어서일까.
다들 흥분한 분위기였다.
“비틀로 마을만큼 장사하기 좋은 데가 또 있으려고.”
“매장 설치만 해도 꿀이지.”
“우리 파티가 이기기만 해도 인생 편다! 아자!”
비틀로 마을에 매장을 설치할 수 있다는 사실로 모두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틀로 마을은 이름만 마을이지 도시 버금갔다.
하루 방문자수가 최대 10만에 이르는 마을.
‘비틀로 마을이라면 들어본 적 있지.’
요나스 마을에서 북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나오는 이 마을은, 입소문이 꽤 나 있는 모양이다.
‘장인의 마을이라.’
비틀로 마을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마을에 거주하는 장인이 많기 때문이었다.
장인의 영역도 다양했는데.
대장장이부터 건축가, 목수, 조선공(造船工), 조각가 등 웬만한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은 다 모여 산단다.
게다가 비틀로 마을은 해안가에 위치해서 외국과 교류도 맺는다고 했다.
비틀로산 배도 꽤나 유명하다고.
어쨌든.
호준도 들으면 들을수록 이번 의뢰가 마음에 쏙 들었다.
‘좋은 기회야. 3호점을 낼 만하겠어.’
앞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처럼 이번은 좋은 기회였다.
이번 의뢰에 성공하면 비틀로 마을 촌장과의 관계도 좋아질 테고.
자연스럽게 장사하기도 편해지겠지.
호준은 차분히 사람들을 관찰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맨 앞쪽에 위치한 1파티는 선두를 빼앗길까 봐 허겁지겁 달리기 바빴고.
2파티도 그 뒤를 빠르게 쫓아 올라갔다.
맨 마지막 파티, 세바스찬의 파티 또한 마찬가지였다.
호준은 맨 뒤에서, 미르를 타고 산을 올라갔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더욱 더워졌다.
“후. 더워.”
“물 좀 마시면서 가지.”
“그러자고.”
1파티, 제일 선두로 달리던 남자가 푸념하자 동료가 물을 건넸다.
남자는 물병을 받아 들어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벌컥 벌컥―
“헥―”
그는 물을 마시면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하도 뒤에서 쫓아오다 보니 달리기를 멈출 수는 없던 것.
남자의 옷깃이 흘러내린 물로 젖어갔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익어버릴 것 같아.’
토마토처럼 달아오른 남자가 물병을 기울이는데.
너무 급하게 먹어서일까.
사레가 들렸다.
“켁 크억― 케켁― 켁!”
사레가 들리니 머리가 핑 돌았다.
남자는 거센 기침을 하며 팔을 휘적거리다가 나뭇가지를 잡았다.
돌벽에 튀어나온 나뭇가지를 잡고 선 남자는 가슴을 탕탕 내리치며 깊이 숨을 내쉬었다.
그가 멍하니 고개를 든 순간.
【당신은 함정 발동 장치를 건드렸습니다】
【함정이 발동합니다】
청천벽력같은 메시지와 함께.
땅이 꺼지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르르―
“어어!”
“뭐, 뭐야!”
“기, 길이 내려앉는다!”
“위험해!”
“길이 무너지고 있어!”
삽시간에 길이 무너졌다.
남자가 서 있던 길을 기점으로, 도미노처럼 모든 길이 무너졌다.
“으아아!”
참가자 전원이 그대로 지하로 추락했다.
불과 10초 만에, 길도 사라지고 참가자도 모두 사라졌다.
* * *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함정.
그로 인해 유일한 길이 무너지고, 모두가 어두운 지하로 추락했다.
빛조차 없는, 물방울 소리만 간간이 나는 동굴.
그곳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으으. 이게 뭐야! 우우아― 켁!”
어둠 속을 걷다 바닥의 물을 밟고 미끄러지고, 뒤통수가 뾰족한 돌에 부딪혀 사망한 참가자1.
함정을 발동한 남자는 추락 과정에서 운이 좋지 않아 뾰족돌이 잔뜩 박힌 곳에 추락해 사망했다.
물론 모두 죽은 것은 아니었다.
【현재 참가자 수】: 39명
운 좋은 대부분은 살아남았다.
부상을 입은 자도 많았지만 어쨌든 살았으니 희망은 있는 법.
불 마법사들은 불을 지폈고 힐러들은 치료를 시작했다.
그렇게 생존자들은 살길을 모색했다.
“야, 제트! 여기로 와! 다들 모여있어.”
“오오! 많이 살아있네.”
“힐러도 살아있으니까 치료받으라고.”
살아남은 이들이 파티별로 옹기종기 모이자, 메시지가 떴다.
【현재 참가자 39명은 현재 금지된 구역에 진입했습니다】
【금지된 구역은 침입자가 침입할 경우, 락이 걸립니다】
【앞으로 본 구역은 LOCK이 걸립니다】
【참가자 전원은 1시간 동안 지하 1구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쉬이잉―
LOCK이라는 말처럼, 생존자 전원을 아우르는 불투명한 벽이 생성됐다.
누구도 벽을 뛰어넘을 수 없었고,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몸이 튕겨나갔다.
어쩔 수 없이 호준을 포함한 전원은 금지된 구역 안에 갇혔다.
“아, 뭐야. 갇힌 거야?”
“그런 모양인데.”
“휴, 어쩔 수 없지.”
금지된 구역은, 겨우 초등학생 운동장 반 정도 되는 크기였다.
39명이 머무르기에는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공간.
1시간 동안 벗어날 수 없다는 말에,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1시간은 버린 거라고 치고, 나머지 시간에 잘하면 되지.”
어차피 3시간 안에 의뢰를 해결하면 되니까.
1시간을 버린다고 생각하기로 한 것.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달라졌다.
“아아. 더워. 미치겠다.”
“여기 대체 몇 도야?”
“진짜…. 얼음을 얼굴에 대도 10초 안에 다 녹아버려.”
“미치겠다. 너무 더운 거 아냐?”
“숨도 못 쉬겠어!”
지하라서 시원할 줄 알았는데 이게 웬 말인가.
지하는 지상보다 훨씬, 아주 많이 뜨거웠다.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비 오듯 흐르다 못해 옷이 샤워한 것처럼 젖어버렸다.
열로 뇌가 녹아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
꿀꺽꿀꺽―
“아, 살려면 먹어야 돼.”
“휴우!”
더위 때문에 체력도 쭉쭉 떨어져서 참가자들은 포션 먹기 바빴다.
얼음마녀 역시, 헛헛한 웃음만 지으며 에너지 포션을 들이켰다.
그녀는 얼음을 만들어 더위를 막아보려 했다.
보통은, 가능한 일이었다.
‘이건 너무 심하잖아. 너무 빨리 녹아버려.’
하지만 이번 상황은 예외였다.
아무리 단단한 얼음집을 만들어도 30초 만에 녹아버리는 것.
얼음 만드는 것 자체가 마력 낭비였다.
그저 견뎌내야 했다.
“아아… 죽겠네.”
생전 불평불만이 없던 그녀조차, 푸념을 늘어놓을 정도의 더위.
그 더위를 겪으며 사람들은 축 늘어진 빨래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얼음마녀 역시 멍하니 바닥에 늘어져 눈만 깜박거리며 있는데.
저 멀리 어렴풋이 뭔가가 보였다.
‘응…?’
땀에 젖은 눈으로 얼음마녀는 호준을 바라봤다.
호준은 검으로 얼음벽을 착착 쌓아 한쪽이 뚫린 정사각형을 만들더니.
일행을 데리고 그 안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녹을 텐데.’
얼음마녀는 그저 멍하니 호준의 얼음집이 녹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집이 안 부서지지? 왜 녹지 않는 거야?’
호준의 집은 그녀가 만든 집과는 달랐다.
너무나 튼튼하게 잘 남아있었다.
대체 왜…?
얼음마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시간을 체크했다.
30초, 40초. 1분. 1분 30초.
3분이 지나도록 집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얼음마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빤히 바라봤다.
그때.
호준이 뭔가를 꺼내 들었고 얼음마녀는 헛웃음을 들이켰다.
와그작와그작―
호준은 용과 고양이, 쥐와 함께 뭔가를 먹고 있었다.
그것은.
새하얀 얼음과 듬뿍 올라간 팥.
7가지 색색 과일이 가득 올라간 팥빙수였다.
연유를 쭈욱 뿌리고 삭삭 수저로 비벼서 입에 넣는데.
꼴깍―
꼴깍―
사방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 진짜 맛있겠다…!”
“저. 팥빙수 파시면 하나만 좀 먹을 수 있을까요?”
땀에 젖은 남자가 호준에게 묻자,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개당 300골드입니다.”
“저 3개 주세요!”
“저, 저두요!”
“빨리 줄 서자 줄 서!”
“오오 팥빙수!”
팥빙수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이 호준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얼음마녀도 재빨리 줄을 서서 팥빙수를 타내는 데 성공했다.
우적우적―
“아아. 시원해!”
땀에 젖은 채로 먹는 팥빙수의 맛은.
왠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더워 죽을 때 먹는 팥빙수라 그런지, 입에서 살살 녹고 더위가 가시는 느낌.
얼음마녀는 누구보다 빨리 팥빙수를 먹고, 다시 줄을 섰다.
“인생 뭐 있냐. 맛있는 게 최고지.”
“이거 먹으니까 살 것 같다.”
호준의 팥빙수는, 모두에게 천국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