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불청객
새로운 무언가를 얻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택배 기사님이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 신이 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무언가를 얻는 것이, 그것도 공짜로 얻는 것이라면 더더욱 기분 좋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 호준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이미주에게서 받은 선물.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움직이는 석상이 그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있었다.
―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주인님!
바닥에 배를 납작 갖다 대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귀를 쫑긋 세운 복종의 자세를 취한 석상.
늑대 모양의 석상을 보며 호준은 흐뭇한 얼굴을 했다.
호준 1호를 보자마자 그가 먼저 한 것은, 외관을 변경하는 것이었다.
― 주인님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지요!
석상의 말대로, 손을 가져다 대고 모양을 변경할 수 있었다.
호준은 초중고 미술시간에 배웠던 예술적인 감각을 갈아 넣어 최대한 멋진 늑대를 만들어냈다.
뾰족한 귀, 날렵한 코.
날카로운 이빨과 우락부락한 다리 근육.
풍성하고 기다란 꼬리까지.
나름 잘 빠진 몸을 한 늑대 한 마리를 만들고 나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
“내가 예술적 감각이 조금 있나 봐.”
― 주인님은 완벽하십니다!
“착한 녀석이구나.”
― 주인님을 보고 배워서입니다!
입에 기름칠을 한 듯한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호준은 이름도 바꾸었다.
녀석의 이름은 음….
잠시 고민한 끝에 그는 이름을 말했다.
“울프. 울프로 이름을 바꾼다.”
【석상의 이름을 ‘호준 1호’에서 ‘울프’로 변경했습니다!】
【이제 울프라고 부르면 반응합니다】
이름도 변경 완료!
― 울프라니. 멋집니다. 호준 1호보다 짧아서 부르기 편합니다.
“그럼. 편하고말고.”
호준이 머리를 쓰다듬자 울프가 귀를 쫑긋 세우며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꼬리를 살랑거리는 게 꼭 커다란 개를 키우는 기분도 들고.
뭐 나쁘지 않다.
분명히 울프는 석상인데도 불구하고, 꼬리가 마치 고무로 만들어진 것처럼 굉장히 유연하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신기하네 참.
호준이 꼬리를 쓰다듬자 울프가 팔을 핥으며 말했다.
└ 주인님. 제게는 다른 능력이 더 있습니다!
“그래. 말해 봐.”
울프는 호준의 목덜미에 제 머리를 문지르며 말했다.
└ 주인님! 저는 전음, 즉 머릿속으로 음성을 전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만약 저를 멀리 외근을 보내셔도 언제든 보고할 수 있죠! 아, 그렇다고 외근을 좋아한다는 건 아닙니다만.
머릿속으로 음성을 전달이 가능하다라.
“오. 대단한데?”
└ 헤헷. 제가 조금 대단한 석상입니다.
“큭. 그래.”
호준은 울프의 턱을 손끝으로 간지럽히면서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으로 음성이 전달된다는 것은, 곧 울프를 이곳저곳에 정찰 보내도 원격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울프는 심부름이나 보초 역할로 제격이겠군.’
그렇게 새 식구가 된 울프를 데리고 호준은 요정들에게 되돌아왔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울프를 소개키기고 회사 직원으로 임명, 회사 버프를 받도록 했다.
버프를 받아 한층 더 날쌘 늑대가 된 울프는 요정들과 아주 잘 어울렸다.
“와. 돌이라서 느릴 것 같은데 제법 날렵하네!”
“공중회전도 가능하겠는데?”
└ 물론입니다. 3회전도 가능하고말고요!
베티와 샤롯의 띄워주는 말에 신이 난 울프가 공중 3회전을 했다.
날렵한 몸놀림은 석상이 아니라 그냥 늑대 같기도.
“오오! 대단하다!”
└ 헤헷. 제가 조금 대단한 늑대입니다!
“뀨뀨!”
“반갑다 울프!”
― 돌이 움직이다니, 신기하군사악!
“끼루!”
울프가 요정들을 태우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걸 놔두고서 호준은 나무그늘에 누웠다.
“으음~”
산들바람을 타고 흐르는 풀내음이 코를 자극하고.
깔깔대는 웃음 소리가 귀를 맴돌고.
따뜻한 햇빛이 몸을 감쌌다.
눈을 감으니 오늘 한 일이 눈앞을 스르륵 스쳐지나갔다.
‘오늘도 참 바쁘네.’
요정왕 커밍아웃 방송도 하고.
레드 게이트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딸기족의 영웅도 되어 보고.
많은 것들을 얻고.
석상까지 선물로 받았다.
꽤나 바쁜 일정을 소화해냈다.
몸이 지치기는 했는지 눈을 감자마자 수마가 들이닥쳤다.
‘잠깐 잘까.’
별이에게 30분 뒤 깨워줄 것을 부탁하고서 호준은 잠이 들었다.
요정들과 부대끼며 힐링하는 기분은 늘 그렇듯, 만족스러웠다.
* * *
띠롱띠롱―
낮잠을 자고 일어난 호준은 이미주 PD로부터 화상통화 요청을 받았다.
【이미주로부터 통화 요청이 왔습니다】
【수락】【거절】
수락 버튼을 클릭하자마자 이미주 PD는 두런두런 상황을 보고했다.
100만 하트 이벤트는 순조롭게 진행중이었다.
“리스트 뽑는데 애를 먹기는 했지만, 요새 AI가 워낙 발달해서 관련 프로그램이 다 있더라구요. 랜덤으로 1,000명을 뽑았고. 모두에게 100 하트를 쏠 준비는 완료했습니다. 공지글도 다 작성해두었으니, 오늘 저녁 발표할 생각입니다.”
역시 일적인 부분은 완벽하다고 해야 할까.
일처리가 싹싹하다는 게 느껴졌다.
“갑자기 생각한 이벤트였는데.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네요. 부족한 하트는 말씀하시면 바로 충전하겠습니다.”
호준의 말에 이미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뇨아뇨! 제 일인걸요. 언제든 호준 님 편한 대로 하세요. 저는 멍석만 깔아주는 거니 든든히 뒤에서 지원해야죠. 아, 그리고 하트는 넉넉하더라구요. 방종하면서 호준 님이 가진 하트 체크해 보니까 100만 하트가 넘더라구요. 그러니 따로 골드를 충전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하트가 그 정도나 있었군요.”
“오늘 방송하느라 바쁘셔서 체크를 못 하셨나봐요. 100만이 훌쩍 넘었습니다! 통 크게 쏘시는 거라 반응도 다들 좋아요!”
그녀 말대로 방송하느라 바빠서 체크를 못 했는데 하트가 꽤 많이 누적된 모양이었다.
뭐. 어쨌든 따로 이벤트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니 돈은 굳었다는 소리.
“그리고 광고 건은….”
그 뒤로 일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잡담도 이어졌다.
호준은 진수의 병원을 알아봐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감사의 말을 들은 이미주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뭘요. 저도 좋은 일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은걸요. 진수 씨가 나중에 재건 수술하고 멋진 의사가 되면, 나중에 한번 찾아간다고 전해주세요.”
그렇게 오랜만의 통화를 마치기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당부를 건넸다.
“호준 님.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방송을 한 뒤로 많은 사람들이 무한의 심장에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예요. 그리고 호준 님이 가지고 계신 돈이나 재화가 많다 보니까 시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날 거에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냐는 자유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문제는, 지금 호준님이 가진 자금도 꽤 많고 아이템도 진귀한 것이 많다 보니까 탐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부디 몸조심하세요!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건드려 보거나 뺏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잘 대처하실 거라 믿습니다!”
이미주로서는 호준이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지금 호준의 딸기성 영상은 또다른 파란을 불러왔다.
딸기성에 장착된 거대한 무한의 심장.
그 심장을 바라보는 호준의 뒷모습 사진이 커뮤니티 이곳저곳을 떠돌았고.
호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그 명성을 이용해서 그를 꺾고 유명해지려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 분명했으니까.
‘유명할수록 날파리도 꼬이는 법이고.’
그리고 이미주가 보기에 호준은 사람이 너무 착해 보였다.
남을 속이거나 갈취할 성격도 아니고.
누가 순진한 점을 이용하지는 않을까 걱정된달까.
그런 걱정스러운 눈길로 이미주가 바라보았고.
호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감사합니다, 걱정해주셔서. 전 괜찮습니다.”
미소짓는 호준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미주는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호준은 레드 게이트에 마음 놓고 들어갈 만한 실력자인데 너무 걱정이 과했나 싶은 것.
‘이런. 오지랖이었나.’
이미주는 민망함에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괜한 걱정이었나 보네요. 호준 님이 잘 알아서 하실 텐데.”
“아닙니다. 걱정해주시니 오히려 감사하네요. 그만큼 신경써 주신다는 거니까요.”
“아….”
호준의 대답에 이미주는 애꿎은 주먹을 쥐었다 펴며 말했다.
“혹시 이상한 낌새를 발견하면 말씀드릴게요! 이상한 녀석들이 돈 벌게 해주겠다고 접근하면 의심하세요! 그럼 이만!”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가 종료되었다.
호준은 피식 웃고는 옷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틀린 말은 아니지.’
이미주 PD 말대로.
누군가 공격해올 일이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보장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준비해 둔 것도 있었고.
― 주인님, 돌을 다 옮겨 두었습니다! 만들기 쉽게 모양도 만들었습니다!
― 잘했다.
전음으로 대답한 호준은 가게로 향했다.
가게 뒤편.
그가 마련한 대비책이 드러났다.
그가 생각한 방법은 바로.
값비싼 특급 작물은 한데 모으고.
그 주위를 아우르는 돌벽을 쌓는 것이다.
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나무문도 달고.
― 주인님, 저도 돕겠습니다!
“그래. 얼른 하자.”
호준은 울프와 함께 급조한 돌벽을 완성했다.
그렇게 소규모 돌벽이 완성!
특급 작물만 따지면 그렇게 많지 않은 양이었기에 돌벽을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허접한 돌벽 완성!】
【칭호 효과로 인해 돌 울타리는 24시간 동안 절대 부서지지 않습니다】
어차피 24시간 부서지지 않으니, 허접한 이라는 칭호가 붙어도 든든했다.
그다음으로 할 일은.
무한의 심장을 꺼내 돌 울타리에 갖다 대는 것.
【무한의 심장을 허접한 돌벽에 설치하겠습니까?】
【지금 설치할 경우, 24시간 뒤에 심장을 건물과 분리할 수 있습니다】
“설치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심장이 주먹 크기로 줄어들어 돌벽에 흡수되었다.
무한의 심장은 1회용이 아니라 무제한 사용 가능했다.
그리고 부서지지 않는 벽에 넣어두니, 금고에 넣어두는 것과 진배없었고.
스르르륵―
심장이 벽에 흡수되자, 벽이 꿀렁꿀렁이며 출렁이더니.
벽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 마스터. 처음 뵙습니다. 무슨 명령이든 내려주십시오.
벽에게 내린 명령은 단 하나였다.
“울타리 안에 있는 작물을 지켜라.”
└ 예스. 마스터.
울타리는 주인의 명령에 화답했다.
* * *
어둠의 도시 카윤.
어둠의 도시다운 칠흑 같은 길을 따라, 한 여자가 걷고 있었다.
여자는 전신을 가리는 옷에 검은색 마스크, 검은색 모자까지 푹 눌러썼다.
마치 중동의 여인처럼 눈과 손을 제외한 어느 곳도 피부가 드러나지 않은 수상쩍은 모양새.
그러나 길의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저벅저벅―
그녀 외에도 전신을 가린 옷차림을 한 자들은 넘쳐났으니까.
어둠의 도시 카윤은 그 이름답게 요인 암살, 납치, 협박, 고문 등 악랄한 범죄형 퀘스트가 난무하는 지역.
이런 악랄한 범죄가 판을 치는 도시에서 범죄형 퀘스트를 하는 사람들이 길을 다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신분을 대놓고 드러내는 게 더 이상해 보일지도.
그녀 말고도 전신을 가린 많은 사람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
범죄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리선화, 그녀에게 참으로 잘 어울리는 거리이기도 했다.
‘빨리 해치우지 않으면 선수를 뺏긴다.’
신중한 성격의 그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카윤 거리에 떠도는 소문 때문이었다.
【대도가 요정 사냥에 나선다】
대도.
카윤의 창립 초창기부터 도적질로 이름을 날리는 유령 같은 존재.
귀신같은 솜씨로 목표한 무엇이든 도둑질에 성공하는 그가 움직인다는 소문이었던 것.
소문의 진위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리선화로서는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했다.
‘사냥감을 뺏길 수는 없지.’
비싼 작물을 뺏을 기회를 놓칠 수 없었으니까.
길에 널린 허접한 실력의 플레이어 삥이나 뜯으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보다 한탕 치는 것이 백 배는 나았다.
‘성공만 하면, 탄탄대로다. 얼른 가자.’
소문도 소문이지만.
무한의 심장에 대한 염려도 그녀가 움직이는데 한몫했다.
건물이 살아난다는 그 설명대로라면, 딸기성처럼 꿀렁꿀렁 슬라임처럼 움직일 테고.
만약 호준이 작은 성을 짓고 무한의 심장을 박아버리면 아주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던 것.
‘무한의 심장을 설치한다면, 훔치는 게 몇 배는 더 힘들어질 거야. 그전에 움직여야지.’
지금 방비가 허술할 때 털어버리는 것이 제격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던 리선화는 부지런히 발을 옮겨 텔레포트 이동 장치에 도착했다.
그녀가 장치 위에 성큼성큼 걸어올라가자 관리자가 하품을 쩍 하며 물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손님?”
“요나스 마을로 간다.”
“아. 그 맛 좋은 요리로 유명한 마을 말이군요. 요새 많이들 여행삼아 가더군요. 거기 호수가 아름답다고 하던데 정말 그럽니까?”
“잡담은 그만하고 시작하지.”
두둑한 돈주머니를 받은 관리자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요나스 마을로 출발합니다!”
눈부신 광채가 리선화의 눈앞을 가득 메웠다.
눈을 지그시 감은 그녀의 머릿속에는 훔칠 작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최대한 많이 훔치자.’
그녀는 비장한 미소를 지으며 빛과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