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58화 (158/200)

158. 이주영의 선물

게임 방송을 보는 이유는 다양하다.

화려한 전투신.

진행자의 재미난 입담.

다채로운 등장인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야기 등.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되는 방송이라면 역시.

“이런 건 처음 보는군.”

누구도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는 순간을 포착한 방송이라 할 수 있겠다.

많은 이견이 있겠지만 그래도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것을 공개하는 방송은, 시청자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 무한의 심장은 호준 님이 최초 아님?

└ ㅇㅇ. 저런 건 듣도 보도 못함.

└ 대애박.

└ 역시 갓호준다움!

유토피아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그들이 최초로 나온 아이템, 무한의 심장이라는 새로운 콘텐츠에 관심이 없을리가.

시청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최초임. 역시 레드 게이트가 좋기는 좋구나. 보상도 끝내주는데 딸기왕자식도 의리가 있어.

└ 의리이!

└ 무한의 심장. 메모. 건물에 생명을 부여한다.

└ 꿀렁꿀렁. 명령도 알아듣는 똑똑한 건물이 됨.

└ 왕…. 집 짓고서 저거 박아넣으면 알아서 내 집사같이 행동할 듯.

└ 커피 끓여. 예 주인님. 목욕물 데워. 예 주인님. 이러겠지.

└ 개꿀이다

└ 유토피아 is 뭔들.

└ 갓호준 is 뭔들.

└ 저걸로 뭐 할지 기대됨. 호준 님 뭐 하실 생각이심?

└ 성 지어서 저거 박아버립시다. 제2의 딸기성 ㄱㄱㄱ

실시간 검색어로 【무한의 심장】이 오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

호준을 검색하면 무한의 심장이라는 연관검색어도 생겨났다.

【호준의 레드 게이트 도전 대성공!】

【방송에서 최초 공개된 무한의 심장에 큰 관심 쏠려!】

【심장 하나로 죽은 건물이 산 건물이 된다?】

【딸기성 구동 장면이 방송에서 그대로 재연되다】

【호준, 제 2의 딸기성 주인이 되나.】

【월스트리트저널, 호준의 방송 경제적 가치 2조 원 넘을 것으로 예상!】

【연일 화제의 중심이 되는 호준의 새로운 기회, 무한의 심장을 집중분석하다!】

이에 관한 기사가 공장에서 찍듯이 터져나왔다.

그런 호준에 대한 기사를 보며, 인상을 찌푸린 여자가 있었다.

“흐음. 빨리 움직여야 하나.”

그녀는 중국 챠오길드의 수장, 리선화였다.

조선족 출신인 그녀는 한국에 보이스피싱 사기를 치던 사기범으로.

지금은 10년간 사기 치며 모은 목돈으로 챠오 길드를 창설해서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보이스피싱의 대모가 아니라 중국 동북부에서 이름을 날리는 길드 마스터였다.

중국에서 나름 유명한 챠오 길드를 거느렸음에도 그녀의 이마 주름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진퇴양난이군.’

리선화는 너무 늦은 얘기일지 몰라도.

보이스피싱 사기를 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물론 보이스피싱은 그녀에게 황금을 안겨주었다.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수완 덕분에, 그녀는 보이스피싱 대모로 활약했고.

덕분에 한국과 일본의 수많은 고령자들의 눈물 묻은 자금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

‘성공에 기뻐하는 것도 한순간이었지.’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녀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보이스피싱 사기 매뉴얼을 만든 똑똑한 그녀도 간과한 점이 있었으니.

‘중국 정보부가 바보가 아니란 걸 말이지.’

리선화가 범죄자금으로 유토피아에서 챠오 길드를 창설하고 승승장구하자 중국 정보부가 불온한 낌새를 알아챘다.

리선화의 자금출처를 조사한 중국 정보부가 움직이자 그녀의 불행이 시작됐다.

중국 정보부 요원들에게 잡혀간 리선화는 장장 6개월간 고문과 치욕을 당했고.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 순간.

살아남기 위해, 목숨이라도 건지기 위해 그녀는 선택했다.

‘중국의 개가 됐지.’

말 그대로 중국의 개가 됐다.

그녀의 사기 수완을 높이 산 정보부는 그녀의 벌을 유예하는 대신 세금을 바치도록 명했고.

길드를 운영하며 벌어들이는 수익의 80퍼센트를 국가에 내면서.

그녀는 등골이 휠 지경이었다.

대부분의 수익을 국가에 빼앗기니 길드 재정이 숭숭 비기 시작했고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챠오 길드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지금 그녀의 상황은 불붙은 지푸라기를 등에 이고 절벽으로 달려가는 꼴이었다.

결국 이대로 가면 전 재산을 투자해서 만든 길드도 날아가고.

길거리 바닥에서 구걸하는 거지 신세가 될 것이 눈에 선했다.

‘개같은 정부 새끼들.’

리선화는 그래서 도망칠 생각이었다.

이미 비행기 예약조차 불가능한 신분인 그녀에게 도망갈 카드는 오직 하나.

‘컨테이너를 타고 중국을 빠져나간다.’

브로커에게 돈을 지불해 어선을 타고 탈출하는 것.

불법 이민을 하기 전.

그녀는 제대로 한 방을 터뜨릴 생각이었다.

그 한 방으로 지목한 사냥감이 바로 호준이었던 것.

브로커에게 줄 돈, 그리고 이민 가서 자리 잡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호준의 방송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특급 작물을 훔쳐 가자.’

그녀의 목표는 호준의 농장에 즐비한 특급 작물이었다.

리선화가 보기에 호준만큼 괜찮은 사냥감은 없었다.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플레이어.

그렇지만 길드만큼의 인지도가 있으며 재력도 충분히 있어 보였다.

연일 방송은 대성공을 거두고 있고.

‘광고계약도 했으니 재력은 탄탄하겠지.’

보유자금이 많다는 것은 곧, 농장에도 투자를 많이 했다는 추정이 가능했다.

훌륭한 품질의 농작물이 가득한 대규모 농장.

그 넓디넓은 농장을 조금 터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이리라.

게다가 호준의 음식이 훌륭하다는 사실은 중국 플레이어 사이에도 입소문이 퍼졌을 정도다.

그 정도 요리라면 농작물의 품질도 우수할 테고.

‘훔칠만한 가치가 있지.’

농작물을 잔뜩 훔친 뒤 해외로 도피.

해외에서 유토피아에 접속해 그 농작물을 처분해 자립할 자금을 마련한다.

브로커와는 언제든 출발할 수 있게 준비하라고 얘기해뒀으니, 시기만 조율하면 되었다.

‘싹 쓸어오자.’

리선화는 닌자라는 직업 덕분에 은신술이 뛰어났다.

소리 없이 움직이며 그림자에 은신할 수 있으니 누구의 눈에 띄지 않고도 농장에 접근할 수 있었다.

훔치는 것은 그다음.

그녀가 이리 자신만만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농부의 안경】

우연히 주운 농부의 안경 때문이었다.

본래 타인 소유의 농작물은 거래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 정보도 공개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이 안경을 쓰면 예외였다.

안경을 쓰면 타인 소유 농작물 등급을 볼 수 있으니, 괜찮은 것만 쑥쑥 뽑아올 생각인 것.

‘조용히 다녀오자.’

이번 건만 하고, 지긋지긋한 중국도 벗어나고.

보이스피싱할 만한 거처를 꾸려 새로운 삶을 꾸리자.

눈을 감은 리선화는 이 암담한 중국을 떠날 꿈에 부풀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화면 속 호준은 그녀의 탐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가 딸기왕과 악수를 하며 작별인사를 하자 딸기왕은 호준과 격하게 포옹하더니 눈물을 훔쳤다.

“잘가라찍!”

“멋졌다찍!”

― 인간 제법 하더군!

― 잘 가시게!

딸기왕의 뒤에는 두더지족과 자이언트웜 부부가 손과 꼬리를 흔들어댔다.

살아남은 딸기족 50여 명도 눈물을 훔치며 호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영원히 호준 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제 자식에게도 꼭 이야기해줄 겁니다.”

“호준 님의 동상을 세울 겁니다! 다음에도 꼭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해요!”

“제 부모님의 복수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웅을 떠나보내는 분위기였다.

└ 딸기족 착하다.

└ ㅇㅇ. 은혜를 갚을 줄 아네.

└ 그래도 꽤 많이 살아남았네

└ 그러게. 왕만 혼자 덜렁 있는 건 아닌 듯.

눈물바다가 된 현장을 지켜보며 시청자들의 분위기도 가라앉았지만.

‘후후.’

리선화는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호준의 주머니에 꽂혀 있는 빨간 심장에 꽂혀 있었다.

‘저 심장도 훔칠 수만 있다면.’

사냥을 기다리는 리선화의 눈빛은 날카롭기 그지 없었다.

* * *

오늘따라 길었던 레드 게이트 라이브 방송을 마치고, 호준은 집으로 귀환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요정들과 직원들에게 휴식을 명하고 홀로 밭으로 향했다.

“까르르!”

“뀨뀨!”

“끼아앙!”

호숫가에서 신나게 노는 요정들과 베티, 샤롯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워터슬라이드와 배를 타고 노는 거겠지.

솜사탕 머신도 쉼 없이 돌아가고 있을 터다.

물을 싫어하는 다크니스는 나뭇가지 위에서 늘어져 잠을 자고 있을지도.

핑구는 물놀이를 즐기며 새처럼 물속을 날아다니고.

요정들의 패턴이 눈앞에 선했다.

‘일 마치고 얼른 가야지.’

호준은 부지런히 걸어 딸기가 잔뜩 심어져 있는 밭에 도착했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그는 삽으로 땅을 조금 파고, 안에 부활의 딸기 씨앗을 심었다.

씨앗 위에 흙을 적당히 덮어준 뒤, 물을 듬뿍 주었다.

굽힌 허리를 펴고 일어서자 메시지가 주룩주룩 떴다.

【부활의 딸기 씨앗이 성장을 시작합니다!】

【부활의 딸기는 성장속도가 느립니다】

【열매가 익을 때까지 30일 남았습니다】

“와… 기네.”

30일.

한 달이나 걸린단다.

물론 아무가 축복의 힘을 발휘하면 15일로 줄어들겠지만.

15일도 다른 씨앗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다.

역시 괜히 특1급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길다고 해서 호준은 실망하지 않았다.

‘경매에 내놓으면 대박일 거야.’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으면.

플레이어는 레벨도 다운되고 3일동안 접속 불가.

제일 끔찍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소지한 아이템 일부를 상대에게 빼앗긴다는 거지.’

비싼 돈 들여 장비를 맞췄는데 뺏긴다고 생각해보라.

눈물이 찔끔 날 만한 상황이다.

이처럼 데스 페널티는 어느 플레이어나 피하고 싶은 악몽 중의 악몽.

그러니 이 부활의 딸기 씨앗은,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데스 페널티 효과를 없애주니까.

‘수요는 높고 공급이 적으면, 가격은 당연히 비싸겠지.’

호준의 예상으로는 고레벨 플레이어일수록 수요가 높을 것으로 보였다.

레벨이 높을수록 값비싼 장비로 도배를 할 테고.

안전보험 하나 정도 들어 놓고 싶을 테니까.

‘기대되는군.’

씩 웃으며 그는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호숫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쁜 와중에 잠깐의 휴식은 달콤한 법.

오랜만에 흐드러지게 낮잠이나 자볼까.

그가 터벅터벅 길을 걷는데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만한 메시지가 왔다.

【이주영 님이 선물을 보냈습니다】

【이주영 님의 메시지 : 재미난 선물을 보냅니다~ 부디 바쁜 농번기에 제 선물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물을 개봉하시겠습니까?】

【YES】【NO】

이번에는 또 뭐려나.

재미난 선물이라. 무슨 선물일지 도통 예상이 안 된다.

호준은 무심한 듯 예스를 눌렀고.

쿠웅―!

선물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허어…? 이게…?”

호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눈앞의 석상을 바라봤다.

“나잖아?”

키 2m 정도의 아담한 석상은 사람 모양을 했는데 놀랍게도 호준, 그 자신과 얼굴이 흡사했다.

이목구비가 비슷하니 참, 기분이 묘했다.

스르륵―

더 황당한 것은 석상이 눈을 떴다는 것.

무감한 초록색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호준은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아 목 뒤를 긁적였다.

그런 호준에게 석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저는 태양석으로 움직이는 석상, 호준 1호라고 합니다. 태양의 빛을 받는 낮에 움직일 수 있습니다.

― 방금 전 이주영 님의 소유에서 호준 님 소유로 변경되었습니다.

― 새로운 주인님을 뵙게 되어 아주 기쁩니다. 무엇이든지 명대로 하겠습니다, 주인님!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석상을 보며 호준은, 저 이름부터 바꿔야겠다 생각했다.

얼굴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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