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57화 (157/200)

157. 딸기성의 비밀

‘꿈만 같군.’

복숭아왕은 뿌연 연기로 가득한 행사장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수많은 함성이 바로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있었거늘.

지금은 그야말로 파국이었다.

천장이 무너지고.

정체 모를 액체가 흩뿌려지더니 초록색 용이 나타나 장작에 불을 지피자.

동족들이 불타 으스러지기 시작했으니까.

‘젠장. 5분만 더 버티면 되거늘.’

왕으로 등극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5분.

그 5분을 남기고서 벌어진 사태였다.

복숭아왕은 당황했으나 판단력을 잃지 않았다.

‘살아남아야 한다.’

목숨을 건지면.

그래, 5분만 버티면 왕좌의 힘이 넘어 온다.

그렇게 되면 딸기성을 다스릴 수 있고 불도 끌 수 있으리라.

5분을 버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5분,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

그러나 못 버틸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왕을 호위하라!”

“왕을 지켜라!”

“목숨을 바쳐라!”

충성심 높은 복숭아족들이 앞장서서 왕을 호위하며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를 들은 인근의 복숭아족 100여 명이 왕을 둘러쌌다.

불을 지르는 초록 용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수를 썼다.

“어디로 대피하는 게 좋겠나.”

왕의 물음에 한둘이 연기로 인한 기침을 꾹 참으며 답했다.

“통로가 모두 막혔습니다.”

“이 인파를 뚫고 통로로 가기는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지하통로를 파서 도망치는 쪽이 수월할 겁니다.”

“맞습니다. 일단 피하십시오. 조금만 더 버티면 우리의 승리입니다!”

복숭아왕은 굳게 다문 입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긴급대피 작전이 시작됐다.

복숭아왕은 왕관도 옷 안에 감추고 병사들과 함께 삽으로 땅을 팠다.

삽을 몇 번 파 내려가자 그들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 여기 밑에 굴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급한 김에 땅을 팠더니 그 안에 지하통로가 있던 것.

통로는 복숭아족 두 명이 지나가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하늘도 무심하지 않구나.’

복숭아왕은 환하게 웃으며 길을 가리켰다.

“가자!”

“살아남읍시다!”

“힘을 냅시다!”

호위 10여 명이 앞장서서 통로에 들어섰고 왕도 그 뒤를 따라갔다.

지하통로는 어두컴컴한 것 빼고는 나름 연기도 들어오지 않도록 튼튼하게 지어진 공간이었다.

전 왕조에서 쓰던 것이려나.

복숭아왕은 자신이 독살한 딸기왕의 얼굴을 떠올리며 비죽 웃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렇게 30초쯤 걸어갔을까.

통로에 변화가 생겼다.

어둑어둑한 통로 저 너머로.

“저기 빛이 보입니다!”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타버린 동족과 아비규환이던 광경을 뒤로하고 도망쳐왔는데.

드디어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뒤에서 용이 쫓아올까 불안하고 초조해하던 왕은 누구보다 기쁜 얼굴을 하고 외쳤다.

“어서 저쪽으로 가자!”

“네!”

“우와아!”

모두 환하게 웃으며 희망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가득한 상황에서.

그 누구도 어렴풋이 비치는 빛줄기로 보이는, 발목 높이의 긴 밧줄을 보지 못했다.

“어엇!”

“으아앗”

앞서가던 복숭아족이 밧줄에 걸려 넘어졌고.

그 뒤를 따라오던 이들도 속수무책으로 넘어졌다.

일동이 쓰러진 순간.

서걱―

서걱―

서걱―

푸더덕―

“으욱!”

“크윽!”

소름끼치는 절삭음과 단말마.

빛무리 속에서 나타난 칼에 의해 부하들이 도륙되자.

“흐윽―! 누 누구냐!”

맨 뒤에 섰다는 이유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복숭아왕이 다급하게 외쳤다.

호준은 그를 보며 씩 웃었다.

‘저놈이 왕이군.’

복숭아왕의 소매 안쪽에서 작은 왕관이 달랑거렸다.

푹―

“널 죽이러 온 자.”

호준은 그 말을 끝으로 칼을 높이 들어 복숭아왕의 가슴에 꽂았다.

“크윽!”

왕은 고개를 푹 늘어뜨리며 쓰러졌고.

메시지가 이어졌다.

【복숭아왕 처치 성공!】

【딸기성 왕좌가 비었습니다】

【왕좌에 앉은 딸기왕자가 왕위를 이어받습니다】

【퀘스트 성공!】

【퀘스트 보상으로……】

비처럼 쏟아지는 메시지를 보며 호준은 환하게 웃었다.

* * *

왕을 죽이고 딸기왕자를 왕좌에 앉혀라.

다소 복잡한 미션이었고 시간이 많이 들었지만.

‘괜찮은데?’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해볼 만한 수준을 넘어서 꽤 만족스러웠다.

전투도 꽤 스케일이 컸고 그 결과.

【복숭아족 680,534명 처치 성공!】

68만이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복숭아족을 해치우는 데 성공.

요정들이 해치우는 몬스터 숫자도 카운트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 어마어마한 숫자가 가능했다.

전투 덕분에 레벨은 또 얼마나 올렸던가.

【경험치 추가 버프 적용중!】

【총획득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레벨업!】

【레벨 : 60 (10 up)】

‘10업이라니.’

레벨 10업.

말도 안 되는 수치였다.

불과 1시간도 안 되는 전투로 레벨을 10씩이나 올리다니.

레벨 10이 20이 된 것이 아니라, 50에서 60으로 올린 것이었다.

남들은 한 달 내내 던전만 돌아도 레벨 10업을 하기 힘든데.

이렇게 단번에 올리니 기분이 안 좋을 수 없었다.

‘역시 레드 게이트가 꿀이야.’

레드 게이트만의 푸짐한 경험치가, 경험치 버프로 뻥튀기된 덕분.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물론 레벨업말고도 남은 메시지가 수두룩하다.

호준은 흐뭇한 얼굴로 나머지 메시지를 확인했다.

【딸기족의 축복 칭호 획득!】

【딸기족의 축복】

【내용】: 멸족의 위기에 처한 딸기족을 구원한 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칭호입니다. 건축기술이 우수한 딸기족의 힘을 이어받아, 이제부터 부서지지 않는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칭호 효과】: 앞으로 당신이 지은 건축물은 24시간 동안 절대 타인과 몬스터에 의해 부서지지 않습니다. (마을, 도시 내 불법건축물은 적용 제외)

‘괜찮네.’

부서지지 않는 건축물은 여러모로 장점이 있었다.

24시간이라는 제한이 붙기는 했지만.

만약 어떤 세력과 전투를 한다고 치자.

칭호 효과가 제대로 적용된다면.

적들이 밖에서 무슨 난리 부르스를 하든 간에 24시간 동안 건물 안에서 버틸 수 있다는 소리였다.

‘나중에 써먹을 데가 많겠군.’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메시지를 확인했다.

【3일 동안 골드 보너스 100% 적용!】

【골드 수입이 100% 늘어납니다!】

‘와…!’

호준은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수입이 넉넉한 편. 아니 차고 넘칠 정도인데 이 상황에서 골드 보너스가 나오다니.

‘꿈인가…?’

호준은 볼을 한번 꼬집어보고는 히죽 웃었다.

아무래도 올해 재물복이 오지게 좋은 모양이다.

└ 호준 님 표정 보면 보상 끝내주는 듯

└ 아까부터 눈의 초점이 없어요

└ ㅋㅋㅋㅋㅋ 안 먹어도 배부른 표정이 저런 표정이구나

└ 입꼬리가 내려올 줄 모름

└ 역시 레드 게이트가 보상이 좋다는 게 헛소문이 아니었구만.

└ 저도 파티 맺고 싶은데 어찌 안 될까여!

└ 저두요 저두!

댓글창을 보니 꿈은 아니다.

‘역시 레드 게이트가 좋기는 좋네.’

레드 게이트 찬양론자가 된 호준은 흐뭇하게 웃었다.

3일 동안 골드 보너스로 수입이 2배나 들어온다 생각하니 정말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다.

└ 축하합니당!

└ 역시 갓호준 님!

└ 딸기왕좌 성공!

└ 레드 게이트 킬러이신듯!

└ 나도 잘하구 싶다 ㅠㅠ 부러워용!

팬들의 응원메시지를 보며 호준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시청자들의 지원과 격려에 보답하려면 괜찮은 이벤트라도.

그게 좋겠다.

마음을 먹은 호준이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여러분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퀘스트는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백만 구독자를 넘길 수 있었던 것도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그동안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작은 이벤트를 하려고 합니다.”

└ 오오. 이벤트면 뭘 주는 건가용?

└ 안 줘도 좋지만 주시면 더 좋습니다ㅎㅎㅎ

└ 오예!

└ 완전기대!

└ 갓호준님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호준은 손가락 1개를 펴며 말했다.

“지금부터 시청자 1만 명을 추첨해서 100하트씩 쏘겠습니다! 이 PD님, 보고 계시죠. 이벤트는 전적으로 이 PD님이 담당하실 겁니다. 부탁드려요! 부족한 하트는 제 골드에서 충당해주십시오.”

└ 넵! 지금 접속하신 분들 중에 1만 명 추첨하겠습니다. 당첨자 확인은 공지로 올리겠습니다~~ 공지를 확인해주세요!

이미주 PD의 확답이 있자 시청자들의 반응도 득달같이 올라왔다.

다들 흥분한 분위기.

└ 오옷! 한번 쏘는데 100만 하트라니…. 역시 스케일이 다르다

└ 이게 갓호준님의 스케일임.

└ 100만 하트면 10억인데…? ㅎㄷㄷ

└ 대박이다. 통 큰 호준님 영원히 포레버 충성충성!

└ 미르공듀는 형광봉을 흔들며 응원합니다!

└ 흔들흔들!

└ 흔들흔들2222

└ 흔들흔들33333

└ 멋지다 멋져!

└ 캬아! 시원하네! 저도 호준 님처럼 크게 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고 싶습니다!

100만 하트 이벤트 소식으로 화끈 달아오른 채팅창을 옆에 두고.

호준은 마지막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가 확인한 레드 게이트 퀘스트의 마지막 보상은 바로.

【부활의 딸기 씨앗 1개(특1급)】

【설명】: 부활의 딸기를 소지한 자가 죽으면, 1회 부활할 수 있습니다. (사망 페널티 미적용)

사망 페널티를 피할 수 있는.

유토피아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씨앗이었다.

‘대박이네.’

새로운 씨앗을 심을 생각에 그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 * *

레드 게이트는 퀘스트가 끝났다고 바로 던전에서 튕겨나가는 시스템이 아니다.

보통은 그 안에서 일정 시간 머무르다가 빠져나갔는데.

머무르는 시간은 제각각이다.

그 시간 동안은 싫으나 좋으나 일단 게이트 내에 머물러야 하는 것.

【게이트 접속 해제까지 15분 03초 남았습니다!】

지금 호준이 어지럽혀진 딸기성 1층을 거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의 옆에는 왕좌의 주인이 된 딸기왕자가 활짝 웃으며 걷고 있었다.

“호준 님과 이렇게 걷게 되니 참으로 기쁩니다.”

왕좌의 주인이 된 딸기왕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딸기성 1층의 시체를 치우고 깔끔하게 정리한 것이었다.

호준은 방금 전 왕이 성에 명령을 내리던 모습을 떠올렸다.

“왕의 부름에 응답하라.”

― 네. 주인님. 말씀하십시오.

“1층의 시체를 전부 성 바깥 구덩이에 집어넣고 매장하라!”

― 주인의 명에 복종합니다.

왕의 명령에 딸기성이 즉각 움직였다.

성벽과 성 바닥이 마치 슬라임처럼 흐물흐물 움직이는 광경은 기괴했고 신기했다.

시체 가득한 1층 바닥이 살아 움직이듯 시체를 성 바깥으로 옮겼고.

덕분에 1층이 깔끔해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말 뭐라 감사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음식이라도 대접해 드려야 하는데 금방 가신다고 하니. 너무 아쉽습니다. 이렇게 짧은 만남에도 도움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뭐. 이미 보상은 충분히 받았으니 괜찮습니다.”

호준이 손을 휘휘 저으며 답하고는 1층을 쓱 훑어보았다.

“끼루~”

“냐아~”

“츄츄!”

미르와 다크니스, 츄츄는 깨끗해진 1층을 달려 다니며 노는 중이었다.

꼬리잡기하는 걸로 저리 즐거워하는 순수한 모습을 보니 어릴 적 생각도 나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태평한 그 모습을 보고 호준이 웃고 있자 딸기왕이 말을 걸어왔다.

“호준 님. 성이 살아 움직이는 이유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시간이나 때우자 싶은 마음에 호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딸기왕을 따라간 자리에서, 호준은 볼 수 있었다.

“허어….”

꿀렁 꿀렁 꿀렁―

새빨간 딸기 심장을.

덤프트럭만 한 심장이 꿀렁꿀렁 움직였다.

【무한의 심장】

이름처럼 무제한 뛸 것 같다.

심장에서는 팔딱팔딱 뛰는 듯한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신기한 심장이군요.”

“무한의 심장은 딸기성을 지으신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발견하신 겁니다. 이 심장은 딸기성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지요. 이 심장을 장착하면 어떤 건물이던 간에 명령을 수행할 수 있게 변합니다.”

“그렇군요.”

“이 심장 덕분에 딸기성은 살아 움직입니다. 제가 딸기성 어디에서 말해도 오직 주인인 제 음성을 듣고 반응하죠. 그리고 제게 선왕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만약 딸기족을 구원하는 자가 나타난다면 꼭 보답으로 드리라고.”

딸기왕은 결연한 표정으로 벽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취이잉―

벽면이 움직이더니 숨겨진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무한의 심장이 하나 더 있었다.

“저건…?”

딸기왕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호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분으로 남아있는 무한의 심장입니다. 이 심장을 호준 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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