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52화 (152/200)

152. 복숭아 호수

【당신은 킹스로드에 입장했습니다】

【30분 안에 킹스로드를 돌파하십시오】

킹스로드의 분위기는 삼엄했다.

50층 아파트만 한 거신상 10개가 킹스로드를 둘러쌌으니 삼엄할 수밖에.

‘여기로군.’

허나, 아무리 삼엄하다 한들.

킹스로드에 발을 디딘 이주영은 오히려 여유로웠다.

그녀는 씩 웃으며 길 주변을 살피고, 거신상들을 살폈다.

불빛 한 점 없는 지하였지만 그녀의 눈은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솔로몬 왕의 동굴이 나온다.’

그녀의 본래 목표는 솔로몬 왕의 동굴이었다.

킹스로드는 그 중간 과정인 셈.

솔로몬 왕의 동굴에는 값진 비보가 잠들어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외딴 섬까지 찾아왔으니 뽕을 뽑아야지.’

비싼 돈 들여서 텔레포트까지 했으니 호준에게 줄 만한 아이템은 건져야 했다.

그녀는 허리춤에 꽂힌 천룡도를 뽑아 들고 저벅저벅 길을 걸었다.

거대한 석상의 발 근처를 지나자.

그그그그그극!

석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상은 움직이는 그 자체만으로 지하 건물에 무리를 주었다.

천장에서 먼지가루가 후두둑 떨어져 먼지 안개가 생기기 시작하고.

그으으으으!

굳게 다문 석상들까지 잠에서 깨어나 그르릉댔다.

이주영이 고개를 들었을 때는 석상들이 전부 그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사냥감이 된 듯한 기분이 들 법도 하건만.

【킹스로드의 석상들이 침입에 분노합니다】

【분노에 대비하십시오】

【경고】

【석상의 분노에 대비하십시오】

‘시작이군.’

이주영은 차분하게 석상을 노려봤다.

석상의 입과 눈에서 초록색 불빛이 생겨나고 불빛의 크기가 점점 커져 갔다.

이주영은 날카롭게 그 불빛을 바라보며 천룡도를 고쳐 쥐었고.

피유우웅―

5명의 석상에서 수십 명을 집어삼킬 만한 광선이 발사된 순간.

이주영은 검을 아래에서 위로 내리그었다.

“천신의 일격!”

그녀의 검을 기점으로 나타난 새하얀 검격이 광선과 충돌했다.

검격과 광선이 충돌한 자리에 하늘을 찢는 듯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콰콰콰콰콰쾅―

승리는 이주영, 그녀의 것이었다.

검격으로 인해 광선은 아주 작은 입자가 되어 흩어졌다.

쿠오오오오―

【석상들이 분노합니다】

【석상들이 분노의 발길질을 시작합니다】

쿠쿵 쿠쿵―

쿠콰왕―

끼우우욱―

고층빌딩에 버금가는 석상들이 단체로 발을 구르자 바닥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천장에서 파편이 떨어져 킹스로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지끈― 쿠콰앙―

버스만 한 파편이 이주영의 바로 옆에 떨어졌다.

“귀찮네.”

위험한 상황이건만, 이주영은 조급하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그녀는 로프를 던져 석상의 어깨에 박고는 어깨위로 뛰어오르더니.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표는 석상의 심장이었다.

“뒤져라!”

쿠우욱―

천룡도가 석상의 심장을 꿰뚫는 순간.

크아아아!

석상이 고통으로 절규하며 날파리 쫓듯 이주영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이주영은 날렵하게 그 손을 피하며 검을 360도로 회전해 상처를 후벼팠다.

“크아아아앙!”

석상은 이제 제정신이 아닌 듯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며 중심을 못 잡았고.

이주영은 검을 심장 깊숙이 꽂고는 최후의 주문을 외웠다.

“파쇄!”

파사사사삭―

그녀의 검을 기점으로 석상의 심장이 먼지가 되었다.

끄으으으응―

석상은 불빛을 꺼트린 채로 긴 신음을 내뱉으며 쓰러졌다.

크아아앙!

크아!

동료의 죽음을 알아챈 다른 석상들이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며 광선의 색깔을 붉은색으로 바꾸었다.

【석상의 분노가 거셉니다】

【경고】

【석상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큽니다】

광선의 색이 바뀐다는 것은 더 위험해졌다는 신호였으나.

“이래야 싸울 맛이 나지.”

이주영은 오히려 즐거운 얼굴이었다.

너무 쉽게 죽으면 재미없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었다.

날다람쥐처럼 날아오른 이주영은 다른 석상을 덮쳤다.

크아아아!

크우우!

크어어어!

킹스로드에는 심장이 부서진 석상들이 차곡차곡 쌓여갔고.

“시시하네.”

이주영은 먼지 묻은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며 동굴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괜찮은 게 있으려나.”

그렇게 호준 선물 마련을 위한 계획은 착착 진행되어갔다.

* * *

잠시 방송을 종료한 호준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평소처럼 일했다.

새로 부화한 병아리와 인사도 나누고, 부화기에 새 알을 넣어 놓고.

요정들이 만들어둔 요리 개수도 확인하고 휴식을 주고.

2호점에 별문제는 없는지 체크하고.

순차적으로 일을 마치고서 그는 계약한 대로 로버트와 이주영에게 요리를 전송했다.

김치전, 해물전, 모카번, 감자튀김, 김치찌개. 이렇게 5가지를 골고루 보냈다.

로버트는 선물을 보내자마자 답신을 보냈다.

└ 뉴스를 통해 들었습니다. 레전더리셨군요. 어쩐지 요리도 전투도 보통 실력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남들보다 일찍이 호준 님과 대화하고 계약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뿐 아니라 호준 님 요리를 맛본 다른 이들도, 앞으로도 먹을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콜 해주세요!

P.S. 김치찌개 제 입맛에 딱이네요. 매콤하고 칼칼한 맛이 훌륭합니다!

메시지를 읽고 난 호준은 김치찌개를 추가로 30개 더 보내주었다.

일전에 보내준 레드 게이트 정보도 고맙기도 했고, 맛있다고 하니 덤으로 더 보내준 것.

이주영에게서도 메시지가 올 법했으나.

<현재 메시지 발신이 불가능한 지역에 있습니다>라는 시스템 메시지가 돌아왔다.

뭐, 길드 마스터니까 바쁜 걸지도.

호준은 그리 생각하며 레드 게이트로 떠날 준비를 했다.

요정들에게 쉬엄쉬엄 일하도록 말하고.

동물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이번 여정에는 미르, 다크니스, 이무, 츄츄까지 총 넷과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떠날 채비를 마치고 다같이 이무의 등에 올라타는데.

메시지가 왔다.

【이미주】: 병원 정보 알아냈어요!

그녀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미국에서 신체 재건 수술로 유명한 어썸뉴라이프 센터에 문의한 결과.

먼저 수술 가능한지 검사가 필요하다는 것.

검사 결과를 살펴보고 수술 가능 여부와 비용, 기간을 알려줄 수 있단다.

물론 이 과정에서는 비용이 드는 일이 없다고 이미주 PD가 안내해주었다.

‘다행이네.’

호준은 메시지를 다 읽고 난 뒤 안도했다.

정말 다행인 점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검사가 가능하다는 것.

그것도 더 싼 비용으로 가능하단다.

【이미주】: 미국에서 검사받으면 2천은 거뜬히 넘는다던데 국내에서는 보험 적용이 되어서 100만 원 선이라네요. 3개월 전에 보험 적용되도록 정부 정책이 변경되었대요. 진수 씨한테 좋은 소식이죠!

‘다행이네.’

미국까지 가는 비행기 표를 끊어야 했다면 검사도 부담스러웠을 텐데.

여러모로 좋은 소식이었다.

학비에 월세에 부모님의 망해가는 세탁소까지 걱정하는 진수에게는 더더욱 좋은 소식일 터.

호준은 내용을 정리해 진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씨앗을 사러 대도시로 여행을 간 녀석은 얼마 안 가 답변을 보냈다.

【진수】: 형. 저 진짜. 복 받았나 봐요. 형 덕분에 수술할 길도 찾고. 그동안 엄두도 못 냈는데 희망이 생겼어요. 지금까지 손에 닿지 않는 별처럼 아득했다면 조금 그 별에 가까워진 것 같달까요. 다 형 덕분입니다. 검사 예약도 하고. 씨앗 사가지고 돌아갈게요!

그렇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난 뒤.

호준은 이무와 함께 텔레포트를 했다.

농장에서 가장 멀리 있는 레드 게이트가 있는 지점으로.

섬광에 파묻혀가는 그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 온화했다.

* * *

“이야….”

호준은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광경을 보면 누구라도 그럴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끼루끼루~”

“츄츄츄!”

난생처음 보는 연분홍빛 호수.

시선을 사로잡는 호숫물은 마치 연한 딸기우유로 만들어진 호수 같았다.

호수의 이름 또한 재미있었는데.

【복숭아 주스 호수】

무려 복숭아 주스로 이루어진 호수란다.

손바닥으로 호숫물을 모아 꿀꺽꿀꺽 마시자 새콤달콤한 복숭아 주스의 맛이 혀를 감돌았다.

“맛있네.”

화려한 경관에다.

주스 맛도 괜찮으니 기분이 한결 업되었다.

“이 맛에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지.”

유토피아의 장소는 항상 그대로가 아니다.

주기적으로 없어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했다.

마을이나 도시는 그대로이지만, 호수 같은 풍경은 자주 사라지고 새로 생기고 했다.

그래서 이런 경관 좋은 호수도 1달 뒤면 사라지고 거대한 돌산이 들어설지도.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중요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니까.

― 호준 들어와라사악~ 여기 물맛이 아주 좋다사악~

이무가 물을 찰랑거리며 들어오라 꼬리짓한다.

이무도 다른 미르, 츄츄와 마찬가지로 호수를 마음껏 즐기는 중이었다.

“그래. 재미있어 보이네~”

호준은 이무에게 손을 휘휘 흔들고는 지도를 살폈다.

하암―

어깨에 붙은 다크니스는 하품만 쩍쩍 하며 잠자는 중이었다.

다크니스의 털을 쓰다듬으며 호준은 지도를 살폈다.

‘레드 게이트는 호수 정 중앙에 있다.’

지도상 레드 게이트 위치는 호수의 정가운데였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수면에는 레드 게이트가 없는데?

그렇다면 남은 곳은 하나.

‘수면 아래.’

위치는 확인했고.

이동할 차례였다.

호준은 다크니스의 꼬리를 조물조물 만지며 이무에게 태워달라 청했다.

“츄츄츄!”

츄츄도 물찬제비처럼 날아와 품에 안겨들었다.

호준은 수건으로 츄츄를 닦아 주머니 안에 쏙 집어넣고서 이무에게 호수 중앙으로 가도록 부탁했다.

이무는 살랑살랑 뱀수영으로 헤엄쳐 호수를 가로질렀다.

이무가 이동하는 동안, 호준은 카메라를 준비하고 작동시켰다.

“이런 게 방송각이지.”

* * *

【방송을 시작합니다】

【별이공듀 님이 입장했습니다】

【이무기이무 님이 입장했습니다】

【용기사 님이 입장했습니다】

【로버트 님이 입장했습니다】

【츄츄트레인 님이 입장했습니다】

……

매번 그래왔듯 방송 시작과 동시에 많은 시청자들이 방송에 접속했다.

호준은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 헐. 호준 님 오늘 무슨 날이에요?

└ 라방을 연달아 두 번씩이나….

└ 전 라방하고 시간 차도 얼마 없음 ㅋㅋ

└ 일 마치고 여행 오셨나 봐요?

└ 와. 분홍빛 오지네. 핑크핑크포레버!

└ 거기는 어딘가요?

“오늘은 여행 온 김에 라방 시작했습니다. 경치 끝내주죠?”

└ 여행 가고 싶은 호수네요!

└ 위치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꼭 가고 싶습니다!

└ 뭔가… 힐링되네요!

“저도 처음 와 보는 곳인데 이름은 복숭아 주스 호수입니다. 위치는 방송이 끝난 뒤 공지에 올려놓겠습니다.”

└ 친절한 갓호준 님! ㄳㄳ

└ 복숭아 주스 호수라. 이름부터 맛있어 보임.

└ 모야. 연핑크 묘하게 좋음.

└ 딸기우유 물에 섞은 것 같네.

└ 주스 맛 좋나요?

“제가 만든 것보다는 덜하지만, 먹을 만합니다.”

호준은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이무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놀러 오시면 한번 드셔보세요. 그럼 지금부터 레드 게이트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레드 게이트는 바로 여기 이 호수에 있습니다.”

호준이 그 말을 하며 호수를 가리키자 시청자들은 의문을 표했다.

└ ㅇㅇ? 어디로 간다는?

└ 레드 게이트는 안 보이는뎁쇼

└ 레드의 레 자도 안 보이는뎅

└ ?? 호수 어디에도 없는데용

시청자들이 의문을 표하는 것도 당연했다.

호수 그 어디에도 뽀얀 분홍빛 호숫물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물고기도 다른 생명체도 없었다.

시청자들의 의문에 호준은 씩 웃으며 답을 주었다.

“이무. 시작해.”

― 알았다사악!

이무가 거대한 꼬리를 높이 들었다.

그리고는 호수를 내리쳤다.

쿠와아앙―

거대한 분홍빛 해일이 일어나더니.

눈 깜짝할 새에 호숫물 절반이 사라져버렸다.

반쯤 호숫물이 사라졌음에도 아직 레드 게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한 번 더.”

― 어잇차!

호준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이무가 수면을 더 세게 내리쳤다.

푸와아악―

분홍빛 안개가 만들어지더니 마침내 호숫물이 바닥을 드러냈다.

“레드 게이트. 저기 있네요. 다들 보이시죠?”

호준은 정 중앙부.

바닥에 콕 박혀 있는 게이트를 가리켰다.

채팅창은 잠시 조용한 분위기이더니.

└ ㅎㄷㄷ… 지리네 두 방에 호수가 사라짐

└ 저 정도면 자연재해급 아닌가요

└ 살짝 친 게 저 정도라는 데서 소름.

└ 이무 님이라고 불러야겠다.

└ 이무대장이라고 부르자 ㅋㅋ

└ 끝내주네… 이무한테 맞으면 짜부될듯.

└ 순박해 보이는데 힘 장난 아님. 갭차이 좋다ㅋㅋㅋㅋ

채팅창이 불이 날듯이 타올랐다.

호준은 이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하는 동시에.

어딘가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왕을 죽여라…?’

그의 눈은, 레드 게이트 위의 정보창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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