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50화 (150/200)

150. 커밍아웃

유토피아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고, 플레이어는 처음 아이디를 만들 때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랜덤으로 직업을 선택한다는 사실이었다.

플레이어는 카드를 뒤집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직업으로 살아갈지 알 수 있다.

게임 초창기에는 직업 선택권이 없는 것을 두고 비난이 많았다.

사용자가 비싼 캡슐 이용비용을 지불하고 하는 게임인데 직업도 마음대로 못 뽑냐는 의견이 대부분.

1 대 1 문의 게시판에 직업카드를 마음대로 뽑게 해달라는 요청글이 올라오면.

유토피아 본사의 반응은 오로지 하나.

― 1 대 1 문의 감사합니다.

문의하신 직업카드 뽑기의 경우.

본사의 방침에 따라 현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됨을 알려드립니다.

현재 사용자님이 가진 직업에 불만족한 경우에는 다음 방법을 권고합니다.

레벨 10 이상이 되면 아이디를 삭제하고 다시 만들 수 있습니다.

위 방법에 따라 레벨 10을 만드신 후, 아이디 삭제 후 다시 만드시기를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유토피아 고객팀 올림.

└ 더러워서 안 한다.

└ ㅂㅂ

└ 나가죽어라!

온갖 욕이 박혀도 유토피아 운영진은 해당 규칙을 변경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처음에 직업전환 아이템을 유료로 팔려고 각 재는 거다 등등.

유료 전직 아이템을 팔 생각이라는 추측을 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빗나갔다.

― 유토피아 본사는, 전직을 위한 어떤 유료 아이템도 판매할 계획이 없습니다.

유토피아 본사에서 이례적으로 공지까지 했으니까.

시간이 흐르자.

격렬히 저항하던 분위기도 차츰 사그라들었다.

이제 직업 선택권을 두고 항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 이 정도로 자유도 높은 콘텐츠는 어디에도 없음.

└ 존잼…!

└ 유토피아 덕에 먹고삽니다!

유토피아가 재미있고.

유토피아에서 먹고 즐기며 여가를 즐기는 사람이 늘었으며.

유토피아는 이제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으니까.

실제로 유토피아 본사는, 전직을 대가로 한 유료아이템을 판매한 적도 없었다.

이런 직업 뽑기 시스템 덕분에.

레전더리 직업을 뽑는 사람의 숫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지. 보통 뽑기 힘든 게 아닌데. 보통 레전더리를 뽑으려면, 레벨 10까지 키운 다음에 새로 뽑는 걸 무한 반복해야 하니까.’

돈이 차고 넘치더라도 시간이 없어서 레전더리를 뽑기 힘들었다.

캡슐룸은 오로지 동공과 지문, 귀 인식을 통해 플레이어를 인지했다.

그래서 남이 자신의 캐릭터를 대신 키워주는 것은 시스템상 불가능했다.

즉, 레전더리 카드를 뽑으려면.

부자든 거지든 간에 똑같은 과정을 밟아야 했다.

1. 레벨 10까지 키우고

2. 캐릭터 삭제하고

3. 새로 카드 뽑고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과정을 반복할 만큼 인내심이 대단하지 않았다.

게다가 인내심뿐 아니라, 시간과 돈도 투자해야 하니.

대부분은 그냥 레벨 10까지 키우다가 정든 캐릭터를 그대로 키우는 루트로 갔다.

‘그래서 레전더리는 정말 희귀해졌고.’

그러니 레전더리 직업은, ‘전설적인’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희귀한 직업이 되었고.

뽑히는 순간, 로또 10번 맞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취급되었다.

21억 명 중에서 50명이면, 로또보다도 더 어렵지 않은가.

[직업명] : 요정왕

[등급] : 레전더리

[주업무] : 요정 다스리기, 식물 돌보기, 요리하기, 동물 돌보기, 낚시, 제작

[메인 퀘스트] : 요정국 건설

[부가 퀘스트] : 주업무와 관련된 퀘스트

[특별 혜택] : 최초로 요정왕 직업 선택 시 특수 아이템을 1개 지급합니다.

[현재 요정왕 직업군 종사자] : 1명

로또 맞은 것을 보통은 숨긴다고 하지만.

‘슬슬 공개해야지.’

호준은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첫째로.

“앞으로 요정들이 훨씬 늘어날 테니까.”

요정의 집의 쿨타임은 4일, 4일마다 요정 1명이 탄생한다.

한 달이면 8명,

1년이면 90명.

점점 이 호숫가도 요정들로 바글바글해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요정국 건설도 얼마 안 남았고.’

메인 퀘스트를 완전히 달성하고 나면, 요정국을 건설할 권한과.

요정성 지도가 주어졌다.

점점 스케일이 커져가는데 언제까지 소환사라고 둘러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젠 충분히 강하다.’

이전에 소환사라고 둘러댄 것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당연한 행동이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요정왕 직업이라는 게 들통나면,

그것도 레벨이 낮고 약한 레전더리 직업이라면?

집단 린치를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레전더리가 얼마나 센가 한번 보자~ 라는 심보로 너도나도 덤비면, 만신창이가 되는 것은 이쪽이니까.

그런 조심스러운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는 공개할 정도가 됐지.”

파스스슥―

근체민이 한층 더 높아진 이무는 걸어다니는 핵폭탄이요.

별이와 미르는 말 안 해도 듬직하고.

왕뿌리를 타고 다니는 송이도, 몽실몽실 메이와 핑구, 그리고 어둠을 감지하는 냥파이터 다크니스.

그리고 토실토실 아기무 아무와 요리의 신 토순이까지.

‘모두 믿음직스럽고. 그리고 나도 강해졌지.’

주위를 지켜줄 수 있을 정도.

그 정도가 되면 요정왕이라는 직업을 공개할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왔다.

“호준 님, 여기 가져왔어요.”

“그래. 여기다 놔.”

“넵!”

호준은 별이가 가져온 꽃 모양 요정의 집을 한번 보았다.

저 집에서 플레이 2일 차, 요정의 집을 사용해 송이가 탄생했고.

6일 차에는 다크니스가 탄생했다.

그리고 10일 차인 오늘.

‘이번에는 어떤 모양이려나.’

어떤 요정이 나올까.

기대된다.

“냐아~”

“아무!”

제비뽑기를 통해 뽑힌, 아무와 다크니스가 발 언저리를 간지럽히며 재촉했다.

“그래. 들어가서 푹 쉬다 와.”

“뀨뀨~”

“끼루루!”

“묘옹!”

“메에~”

다른 요정들의 응원을 듬뿍 받으며 아무와 다크니스가 요정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와 다크니스가 집에 들어가자 잎사귀가 완전히 닫히고.

【출입이 제한됩니다】

【보호막을 생성합니다】

【알 생성을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2분 0초

집이 작동을 시작했다.

2분 뒤 꽃잎이 열리고.

꽃잎 한복판에서 아무와 다크니스가 알을 품고 자고 있었다.

연초록 빛깔 알은 표면에서 윤기가 좔좔 흘렀다.

【알이 부화되기까지 1시간 남았습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 * *

저렴한 가격의 생과일주스 전문점 쥬스조아.

쥬스조아에서 혼자 알바 중인 신다혜.

그녀가 활짝 미소 지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휴. 이제 좀 한가해졌네.”

회사원이 쏟아져 들어오는 점심시간이 지난 지금은,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신다혜는 기지개를 쭉 켜고는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가게 매장에 설치된 소파에 앉았다.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는 잠시 앉아 있어도 괜찮았다.

그녀는 리모컨을 들고 한 채널을 보기 시작했다.

― 유토피아 소식을 전하는 가장 빠른 소식통. 유토리아 채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녀가 선택한 채널은 유토피아 플레이어로 성공하고자 항상 챙겨보는 유토피아 전문채널 유토리아였다.

TV에서는 진행자가 오늘의 이슈를 소개하고 있었다.

― 오늘 화제의 소식은 역시, 이 소식이겠죠. K그룹 이세주 회장과 플레이어 호준의 광고계약, 그리고 플레이어 호준이 직접 외국으로 이민 가지 않겠다고 한 선언이 큰 화제를……. 이번 파격적인 광고계약 및 기자회견은, K그룹의 유토피아 진출을 위한 초석으로 풀이되며…… 플레이어 호준과 K그룹 간 광고 계약은 일각에서는 500억 원 이상으로 알려져…….

“대박이네. 500억이라니. 부럽다 부러워~”

신다혜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500억이면 대체 얼마려나.

그녀는 눈을 감고 자신도 언젠가, 저렇게 유명해지기를 꿈꿨다.

최근 호준의 유명세 덕분에, 많은 플레이어들이 자극을 받고 있었다.

나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유명해지지 않을까 라는 그런 마음이랄까.

신다혜도 그런 축에 속했다.

‘동물들이 나오는 방송은 역시 힐링이 된단 말야.’

신다혜는 호준의 방송을 구독하며 흥행요소를 분석했는데.

그녀가 생각하기에 호준의 방송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다양한 동물들이었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동물은, 하루 시름을 싹 잊게 해주는 뭔가가 있지 않던가.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순진무구한 동물들의 귀여운 반응은 허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그런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신다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다시 눈을 떴다.

복잡한 연구결과는 고려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호준의 영상은 심리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피곤한 하루를 잊게 해준달까.

“방송 재탕이나 할까.”

작게 중얼거리는 신다혜의 귓가로 진동음이 들렸다.

우우웅―

신다혜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어…?”

그녀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이게 뭐야?”

【요정의 쉼터 새 글】

【요정의 알 수확.AVI】

“요정이라고…?”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오는 요정…?

그녀는 궁금한 마음에 영상을 클릭하자 영상이 재생됐다.

다크니스와 아무가 장미꽃에 들어가자 꽃잎이 닫히고.

다시 꽃잎이 열리자 알을 품은 다크니스와 아무가 보였다.

축 다크니스 ♡ 아무 축

“뭐, 뭐야. 짝짓기야?”

상식적으로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집에 둘이 들어가서 셋이 되었지 않은가.

짝짓기를 떠올린 것은 당연한 수순인데.

“어째, 안 어울리는데…? 종족을 뛰어넘는 게 가능한 건가?”

작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아무와 다크니스가 짝짓기를 했다니 조금 괴리감이 있지만.

어쨌든.

“도통 모르겠네.”

그녀로서는 도통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고개를 갸웃한 신다혜가 화면을 쭉 내리자 미처 읽지 못한 한 줄이 보였다.

【난데없이 알이 나와서 많이 놀라셨죠? 뭔지 궁금하신 분들은, 20분 뒤 라이브 방송에서 봐요! 알 속의 존재도 공개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시청예약 버튼으로 시청예약하세요~】

【다음 방송 시청 예약하기(클릭)】

【이미주 PD 올림】

“아. 예고편 하나 기가 막히게 만드네.”

신다혜가 시청예약 버튼을 클릭하고 있을 무렵.

― 속보입니다! 지금 요정의 쉼터에 새로운 영상이 올라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저 알은… 자세한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요정의 알’이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오른 것은 그로부터 3분 뒤였다.

* * *

【요정의 쉼터 채널 오픈!】

【방송을 시작합니다】

【예약 신청한 농사조아 님이 입장합니다】

【예약 신청한 미르미르짱 님이 입장합니다】

【예약 신청한 다쿠다쿠다 님이 입장합니다】

【예약 신청한 별이미르조합강추 님이 입장합니다】

……

방송 시작과 동시에 많은 시청자들이 입장했다.

이미주 PD의 공지, 그리고 그 아래 사전 예약을 받은 결과였다.

호준은 심호흡을 하며, 알을 품에 안은 채로 구름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 호준님 하이루~

└ 호하22

└ 호하333

└ 알 너무 귀요미!

└ 알 팔 생각 있으시면 buyme132로 개인메시지점

└ 알을 팔겠어여! 다크니스와 아무의 결실인데!

└ 마자여 알팔이 업자사절!

└ ㅋㅋㅋㅋ알팔잌ㅋ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도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특별한 이 친구를 소개하기 이전에, 이 친구가 왜 생겨났는지 말할까 합니다. 제가 사과드릴 일이 있어 이렇게 방송을 하게 됐습니다.”

그 말을 마친 호준은 부화를 5분 남겨두고 있는 알을 쓱쓱 쓰다듬었다.

└ 모지. 분위기가 은퇴각임.

└ 호준님 무슨 사고치심?

└ 그런 얘기 없는데.

└ 사고라면 크게 쳤지. 500억 버셨다고 소문 자자.

└ ㅎㄷㄷ 500억 클라스 지리구요

└ 500억 우리집에 많은데 ㅎㅎㅎ

└ ㅋㅋㅋㅋㅋㅋ방구석500억 여기 납셨네

채팅창 분위기를 확인한 호준은, 알을 바닥에 내려놓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봤다.

개인 사정이든 어찌 됐든 간에, 시청자들 앞에서 직업을 속인 것은 사실이었으니.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이 옳았다.

“지난 며칠간 제 직업을 속였습니다. 제 개인의 안위를 위해 그리 판단했고, 지금부터는 직업을 공개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 직업이 모길래요?

└ 동물수집가?

└ 몬스터 테이머일듯

└ 동물소환사!

└ 레어직업일듯.

여러 추측 섞인 채팅을 보며, 호준은 입을 열었다.

“저는 소환사가 아닙니다. 제 직업은… 이겁니다.”

호준은 즉시 직업을 전체 공개로 설정했다.

그의 머리 위로 직업이 떴다.

【요정왕 (레전더리)】

‘혹시 욕하려나?’

좋은 직업 뽑아서 잘나간 건데 그동안 소환사라고 거짓말했다고 비난이라도 하려나.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호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잠재웠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채팅창을 봤는데.

“어…?”

반응은 의외였다.

└ 요정왕ㅇ…?

└ 뭐야 레전더리잖아?

└ 헐…!

└ 레 레전더리라굽쇼? 레전더리 한국에 몇 명 없지 않음???

└ 없쥐. ○○피아 보면, 한국에는 2명 있음. 그 2명은 다 길드 마스터로 활약하고 있고.

└ ㅎㄷㄷ. 미쳤다. 그럼 동물들이 아니라 요정들인 거네요? 무슨 요정인지 궁금. 좀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요!

└ 용도 있고 레전더리 직업에. 운빨 지리네.

└ 순수하게 감탄하고 갑니다. 호준 님처럼 싸가지 ‘있는’ 레전더리 처음 봄.

질문하는 댓글이 너무 많이 달렸다.

눈으로 일일이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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