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영원한 비밀은 없다
【회사 레벨업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보유 자금을 더 높인다면, 회사 레벨업을 더 앞당길 수 있습니다】
【보유 골드】: 248만 9천 29 골드
이 메시지를 본 적이 얼마 전인데.
몇 시간 만에 메시지가 확 뒤바뀌었다.
운영진이 현질하기 쉽도록 만들어준 간편한 시스템 덕분에, 호준은 아주 간단하게 80억 원을 모두 골드로 전환했고.
“천만 골드라! 주스 60골드에 팔던 게 엊그제인데. 세월 참 빠르네.”
【보유 골드】: 1,049만 2천 132 골드 (NEW)
무려 천만 골드를 돌파했다.
80억이 역시 대단하긴 대단하네.
【회사 레벨업 성공!】
【회사 레벨업 성공!】
【회사 레벨업 성공!】
【회사 레벨업 성공!】
【회사 레벨 6 달성!】
보유자금이 높아지니 회사도 레벨업을 연달아 했다.
무려 연달아 네 번이나 레벨업 성공!
지지부진하던 레벨이 폭등하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호준이 흐뭇한 얼굴로 풀밭에 앉아 자리를 잡고 메시지를 확인하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 대박…! 이거 뭐예요? 레벨이 올랐다고 메시지가 나왔는데. 효과 장난 아닌데요?”
진수가 토끼눈을 뜬 채로 종종거리며 다가왔다.
녀석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손에 들린 검은 수염 약초 뿌리가 달랑달랑 흔들렸다.
급하게 달려온 모양이었다.
“현질 좀 했다.”
“무슨 현질이… 아니… 설마 계약하신 거예요?”
“그래.”
“대박. 속전속결이네요!”
진수는 약초 뿌리를 내던지고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와. 형 진짜. 축하드려요. 형은 사람이 좋아서 잘될 것 같았다니까요.”
“고맙다.”
진수의 진심 어린 축하를 받으며 호준은 풀밭에 앉았다.
진수도 그 옆에 자리를 잡자 호준은 진수와 함께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제 회사 레벨업으로 얻은 것들을 낱낱이 살펴 볼 시간이다.
“흐음…!”
【회사 최대 직원수가 상향 조정됩니다】
【이제부터 요정의 쉼터 직원으로 최대 300명까지 영입 가능합니다】
일단.
직원을 많이 고용할 수 있게 되었다.
괜찮네.
【직원의 능력치가 대폭 상향 조정됩니다】
【기존 효과】
【이동속도 20% 증가!】
【체력 최대치 20% 증가!】
【시력, 청력 기능 20% 증가!】
【모든 독 내성 보유】
이해하기 쉽도록 기존 효과도 한판 정리되어 있었다.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용을 읽어내렸다.
이어서 새로 추가된 효과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새로 추가된 효과 (NEW)】
【점프력 3배 증가 효과(유니크 등급)를 얻었습니다】
【근력 2배 증가(유니크 등급)를 얻었습니다】
【체력 2배 증가(유니크 등급)를 얻었습니다】
【민첩 2배 증가(유니크 등급)를 얻었습니다】
………
【물리/마법 방어력 1.5배 증가(유니크 등급)를 얻었습니다】
“오오. 유니크 등급이면 좋은 거 아니에요?”
“그렇지. 으음.”
진수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호준은 생각에 잠겼다.
객관적으로 진수의 말이 맞다.
점프력 3배에 근력, 체력, 민첩 각 2배씩 증가.
물리방어력 1.5배에 자잘한 효과들.
그것도 전 직원에게 적용되는 것이니 나쁘지 않은 효과다.
“와아. 형, 저 다리에 용수철 달린 것 같아요.”
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녀석은 마치 발바닥에 용수철을 단 것마냥 통통 튀어 올랐다.
족히 3m는 뛰는 것이 묘기를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뛰네.”
그러나 한껏 흥분한 진수와 달리, 호준은 차분했다.
그는 진수와 조금 생각이 달랐다.
‘뭔가 아쉬운데.’
아쉽다고.
아쉬운 감정이 조금 들었다.
80억 원을 현질했고, 물론 그 돈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골드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그 이유는 바로.
‘레전더리 하나는 건질 줄 알았는데. 보이는 건 죄다 유니크 등급이네.’
유니크 등급은 레전더리 등급보다 한 등급 낮은 수준으로 보였다.
레전더리 등급으로 지금 딱 하나 가진 ‘독 내성.’
그 뒤를 잇는 새로운 레전더리 하나는 뽑을 줄 알았건만.
조금 아쉽긴 했지만, 호준은 납득했다.
‘쉽게 뽑히면 레전더리가 아니겠지.’
레벨업한다고 죄다 레전더리 뽑으면, 너도나도 회사를 세웠겠지.
레전더리는 그만큼 뽑기 힘든 것이니, 안 뽑히더라도 이해를 해야 했다.
‘아쉽긴 아쉽네.’
애써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호준은 마저 남은 메시지를 읽어갔다.
‘유니크 등급들도 다 괜찮은데. 배가 불렀어.’
호준은 너무 기대했던 스스로를 달래며 화면창을 쭉쭉 내렸다.
이어지는 메시지들은 회사 효과들이 잘 적용되었다는 메시지들이었다.
진지하게 볼 이유는 없어 보여서 쓱쓱 스쳐 지나가듯 읽었다.
그렇게 술렁술렁 메시지를 읽어가는데.
2페이지로 넘기자마자, 호준은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어…?”
차분함을 잃지 않던 호준이 돌처럼 굳자 진수가 점프를 멈추고 다가왔다.
“형… 무슨 일이에요?”
【회사 레벨이 6으로 올라, 사기 증진 효과를 얻었습니다】
【사기 증진(레전더리 등급)】
보물은 수면 아래 깊이 잠들어 있었다.
* * *
위이잉―
컴퓨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작업실.
암막커튼 때문에 대낮임에도 어두운 내부.
모니터 앞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쪼그려 앉아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여자, 이미주는.
“후후후!”
꽤나 즐거운지 모니터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대충 묶은 만두머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조회수 빠르게 올라가고. 오케이. 이걸로 광고영상은 해결하자.”
이미주는 부스스한 앞머리를 핀으로 꽂아 넘기며 F5 버튼을 눌러 업데이트했다.
새로고침하자 나타난 화면에는 K그룹 광고영상 콘테스트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떴다.
지금 그녀는 광고계약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부터 꾸준히 만들어둔 광고영상들.
그 영상들 중의 최고를 선발하기 위한 투표글을 올린 참이었다.
10초 내외의 영상 10개.
시청자들이 직접 영상을 보고 괜찮은 영상에 투표하는 방식이었다.
투표율이 저조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괜한 걱정이었다.
호준의 구독자수가 100만을 넘어가고 연일 뉴스에 등장하는 시점에서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일이었다.
【K그룹 광고영상, 시청자들이 직접 선택한다!】
【이미주 PD의 PICK, 얼음성 전투 등 핵심 영상 집약해!】
【요정의 쉼터, K그룹 광고영상 투표글 게재】
이미 발 빠르게 뉴스를 퍼 나르는 기자들도 있었다.
그 덕분에 투표수도 늘고 댓글도 많이 달렸다.
└ 얼음성 전투가 압살. 와르르 무너지는 거 보면 영화 같음.
└ 격공11 압축해서 보니까 예고편 보는 느낌.
└ 영화를 5초만에 본 느낌. 역시 이미주 PD 실력은 알아줌.
└ 클라스 오지고요.
└ 자막 센스 봐라. 한국 오면 방송가 다 씹어먹을 듯.
└ 설산 경치 쥑이네…!
└ 병아리 영상을 보고 난 뒤로, 간장계란밥을 먹을 때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밀려오네.
└ 저두 살짝. 근데 넘 맛있어서 먹게 됨.
└ 미르 타고 날고 싶다.
└ 호준님 완전 드래곤 워리어! 폭풍간지임!
└ 나만 용 없어~
달깍―
조회수는 벌서 10만을 돌파했다.
놀라운 속도였다.
“만든 보람이 있네. 뭐, 영상이 워낙 괜찮게 나오기도 했지.”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귓가에 꽂으며 이미주가 기지개를 켰다.
뿌드듯.
어깨가 비명을 토해내는 걸 무시하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려는데.
탕―
“라면 사 왔다. 너도 먹지?”
“당연하지!”
막 시장을 봐 온 친구 혜정의 목소리에 이미주는 눈을 떴다.
쌀쌀해질 때마다 라면 먹기.
겨울맞이 의식과도 같이 늘 해오던 일이었다.
혜정이 부엌으로 가 라면을 끌이기 시작했다.
냄비 물이 펄펄 끓자 바스락거리는 봉지를 탁탁 두 번 치고, 비닐 포장을 뜯어 라면 투척.
곧 맛좋은 냄새를 풍기는 라면 냄비 그릇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고마워. 우리 요리사님!”
“넉넉하게 2개 반 끓였어.”
“역시 센스쟁이라니까!”
감사의 말이 오가고.
젓가락을 들자 둘다 말을 하지 않았다.
라면 먹기에도 바쁘니까.
후루룩 후루룩
“으음~”
“오랜만이라 그런가 더 맛있네!”
국물이 밴 꼬들꼬들한 라면을 먹고 나면, 밥을 국물에 잘 비빈다.
밥 한 숟가락에 김치 한 젓가락 올리고.
한입에 꿀꺽.
“이 맛이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혜정은 미주 앞으로 김치그릇을 슬쩍 내밀며 라면 삼매경에 빠진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나갔다 봤는데 TV에서 호준 나오더라.”
“K그룹 광고 건인가?”
“맞아. 기자회견 장면 잠깐 나오더라구. K그룹이 미국 진출을 앞두고 호준을 기용했다는 분석을 하던데.”
“맞는 말이긴 하지. 호준이 로버트와 만나면서 미국 언론에도 얼굴이 알려졌으니까.”
“호준도 대단하지만, 그런 호준을 발견한 너도 대단하다. 처음에는 그럴 줄 몰랐을 거 아냐.”
“난 사람 인성을 먼저 보고. 그다음은 느낌을 봐. 왠지. 호준은 처음 볼 때부터 느낌이 괜찮았어.”
잠시 호준을 처음 봤던 날을 떠올리며 이미주는 피식 웃었다.
그녀가 대해왔던, 가식과 아부가 점철된 수많은 사람들과 달리 당당하던 모습.
그 모습은, 유명해진 지금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잘 먹었다.”
“그래. 그릇은 내가 치울 테니까. 일 해.”
“고마워!”
“뭘.”
이미주는 빈 그릇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안을 휘적휘적 가로질러 모니터 앞에 앉아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아까보다 조회수가 오른 것을 보며 피식 웃는데.
띠링―
【호준 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메시지가 도착했다.
알람 소리를 들은 혜정이 그릇을 치우다 말고 물었다.
“무슨 알람 소리 들리던데?”
“…….”
혜정의 물음에 이미주는 답하지 않았다.
답이 없는 친구에게 혜정이 쟁반을 들고 다가왔다.
“무슨 일이길래 정신을 쏙 뺐어?”
“호준 님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잠시 유토피아에서 만나재. 대체 무슨 얘기지?”
미주의 물음에 혜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중요한 얘기라니.
도통 무슨 이야기일지 감이 오질 않았다.
혜정이 머뭇거리자 이미주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설마 계약을 끝내자는 얘기면 어쩌지? 호준 님과 나는 계약기간이 짧잖아. K그룹처럼 1년 치를 할 걸 그랬나.”
“에이 설마…. 한창 잘나가는데 왜 그러겠어? 일단 가서 무슨 얘기인지 들어봐. 직접 들어봐야 알지. 여기서 이래 봐야 무슨 소용이겠어.”
“음. 일단 가봐야겠다. 네 말이 맞아.”
이미주는 친구의 조언대로 급히 채비를 마치고, 캡슐에 들어갔다.
【유토피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유토피아 환영문구를 바라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별 일 아닐거야. 그래.’
그녀는 꿈에도 몰랐다.
잠시 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질 줄은.
* * *
“네…? 레전더리 직업이요?”
“그렇습니다. 레전더리 직업.”
“제가 들은 게 진짜 맞나요? 귀가 어떻게 됐나. 전세계에 50여 명밖에 안 되는 그 레전더리 직업이라고 들리는데요?”
“맞습니다. 그 레전더리.”
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보다 눈이 3배는 커진 듯한 이미주가 눈을 몇 번이나 비비적거렸다.
그녀는 맙소사, 이런 등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머리를 뒤적였다.
소환사라고 알고 있던 호준의 정체가, 알고 보니 레전더리 직업이었다?
전혀, 1%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겨우 정신을 추스른 이미주는.
“후우.”
심호흡을 한번 하고 호준에게 되물었다.
“그럼 지금까지 소환사라고 얘기하신 이유는 뭔가요?”
“레벨이 낮을 때는 제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안전하니까요.”
“안전…하죠.”
“이 PD님도 아시죠? 레벨이 낮은 채로 레전더리 직업임을 밝혔다가 어떤 꼴을 당할지. 말 안 해도 아실 겁니다.”
“방송용 땔감이 되기 딱 좋죠. 레전더리 직업을 뭉개버렸다. 뭐 그런 식으로….”
“초반부에는 직업을 숨기는 게 안전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인제 와서 왜 직업을 밝힐 생각을 하셨나요?”
이주영의 물음에 호준은, 잠시 말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었다.
오늘, 플레이 10일차가 되는 날.
굳이 레전더리 직업임을 밝힌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사기 증진(레전더리 등급)】
【3km 내 동료 직원이 1명이라도 있으면, 근력, 체력, 민첩이 2배 상승합니다!】
레전더리 회사 효과.
이 덕분에 전 직원이 부서지지 않는 다이아몬드처럼 강해졌다.
“오늘이 딱입니다.”
그리고 오늘, 사람들에게 직접 확인시킬 수 있었다.
【요정의 집 쿨타임이 끝났습니다!】
【요정의 집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요정을 부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이어지는 호준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은 이주영 PD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세계 최초일 거야. 요정이 알을 까고 나오는 방송은.’
호준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마치 아이돌을 바라보듯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