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주인공
오늘 장사도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장사 중간에 체력이 방전된 고블린 카심은 비밀의 정원으로 떠났고.
요정들과 이무, 베티, 샤롯, 그리고 호준만이 가게에 남았다.
호준은 성실히 일해준 베티와 샤롯에게 골드가 듬뿍 담긴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베티, 샤롯. 둘다 수고했다. 넉넉히 챙겼어.”
“땡큐! 어…?”
베티는 평소처럼 주머니를 받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와 달리 주머니가 묵직했다.
베티가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주물럭주물럭하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대애박! 보너스네! 이게 얼마야~”
“넉넉히 챙겼다. 요새 일도 바빠졌는데 잘 일해줘서 고맙다.”
“뭘 그 정도로. 아싸! 보너스다~ 우리 사이에 보너스가 있으면 더더욱 좋지. 사양 안 할게!”
“그래. 마음대로 써!”
쾌활한 베티는 보너스가 담긴 주머니를 안고 기뻐했고.
옆에 있던 샤롯도 따라 웃으며 주머니를 쥐었다 폈다 했다.
“고마워. 호준!”
“나야말로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다, 샤롯.”
샤롯의 담백한 인사를 받고 둘을 돌려보냈다.
‘슬슬 보너스도 줄 때가 됐지.’
이번에 베티와 샤롯은 급여를 3배나 높여서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돈이 별로 아깝지 않았다.
‘둘은 없어서는 안 되는 직원이니까.’
베티와 샤롯은 매사 능동적으로 일한다.
말하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하고 일솜씨가 뛰어나서 손님들에게 호평이 자자했다.
그리고.
‘급여는 푼돈이지.’
두 명 급여를 합하면 500골드도 안 되었다.
그 정도는 이제 푼돈이다.
장사 하루 이틀 할 것이 아니니, 직원은 잘 챙겨줘야지.
베티와 샤롯을 떠나보냈으니 슬슬 호준은 로그아웃 준비에 들어갔다.
별이에게는 만들어야 할 요리 목록을 일러 주었고.
소, 닭, 병아리, 돼지, 이무와 인사를 마치고.
바빠서 확인하지 못했던 메시지도 확인했다.
후원금, 진수의 약 판매로 인한 수익금, 구독자수 늘었다는 메시지 등.
뻔한 메시지 중에서 눈여겨볼 만한 메시지가 있었다.
【회사 레벨업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보유 자금을 더 높인다면, 회사 레벨업을 더 앞당길 수 있습니다】
【보유 골드】: 248만 9천 29골드
회사 레벨업이 다가왔다는 소식이었다.
첫 회사 레벨업으로 독 내성을 얻었던 것이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레벨업이라니.
‘괜찮네.’
만족스러운 소식이었다.
조금 더 골드를 모으면 새 특성을 얻을 수 있겠지.
이번에도 독 내성처럼 끝내주는 게 나오면 더 좋고.
회사 특성은 새로 회사 직원으로 들인 진수와 기존 직원들도 전부 영향을 받는다.
즉, 특성을 얻으면 다 같이 강해지는 것.
‘일이 술술 잘 풀리는군.’
부드럽게 웃으며 가게를 한번 쓱 둘러보는데.
“뀨뀨우~”
토순이가 발등 위에 몸을 부비며 애교를 부렸다.
호준은 피식 웃으며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토순이의 귀 사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골골골골―
토순이가 골골송을 부른다.
토순이를 만지작거리는데 미르와 송이도 은근슬쩍 머리를 들이밀었다.
자기들도 만져달라 이거다.
세 녀석을 쓰다듬기에는 손이 부족한데 이를 어쩐다.
호준은 어쩔 수 없이 미르와 송이를 왼손으로 번갈아 쓰다듬었다.
미르와 송이 모두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댄다.
‘나갈 때가 되면 애교가 폭발한단 말야.’
관찰한 바에 의하면 요정들은 계속 성장하고, 성장할수록 주변상황을 학습한다.
최근 들어서는.
호준이 가게 장사가 끝나면 떠난다는 사실을 학습했는지 가게 장사가 끝낼 때쯤.
이렇게 주위에서 칭얼대며 애교를 부리는 것이다.
“금방 돌아올 거야.”
“끼유!”
“묘옹~”
“끼룩~”
【송이가 늦게 오면 삐질 거라고 합니다】
【미르가 가지 말라고 애교를 부립니다】
【토순이가 냄새를 더 맡고 싶다고 골골댑니다】
토순이, 송이, 미르가 합창하듯 울어서 손가락을 세워 살짝 긁어주었다.
다들 까르르 웃는다.
“냐아~”
다크니스도 동참했다.
녀석은 정강이를 나무 타듯 올라와서 가슴팍 장식에 발톱을 달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다친다.”
호준은 다크니스를 끌어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크니스의 실크 같은 뱃살을 간지럽히며 주위에 요정들과 인사했다.
“다녀올게!”
그의 말에 요정들이 꾀꼬리같이 목소리 높여 울었다.
호준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로그아웃했다.
【로그아웃합니다!】
새하얀 빛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여러 화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오늘도 바빴네.’
레드 게이트도 클리어하고.
촌장님이 알아서 짝퉁 가게를 정리해줬고.
고블린 카심도 만나고, 비밀의 정원표 씨앗도 얻었으며.
이세주 회장과 처음 대면해 김치찌개를 대접했다.
그리고 480억 원짜리 광고 계약도 눈앞에 다가왔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예상치 못한 기회도 잡았다.
‘괜찮은 하루였어.’
성취감을 제대로 느낀 하루였다.
* * *
오전 6시 30분.
유토피아에서 빠져나온 호준은 수많은 메시지들을 정리했다.
【확인되지 않은 메시지】― 341건
‘뭔 메시지가 이렇게 많지.’
호준은 침대에 누워 메시지를 차근차근 확인했다.
큰 수익이 나는 투자상품, 혹은 투자할 만한 부동산이 있다는 메시지들은 스팸신고했다.
‘큰 수익이 나는 투자상품이면, 나한테 권유할 게 아니라 자기들이 했겠지.’
언론에 노출된 이후, 이런 돈 달라는 문자는 참 많았다.
그는 돈 달라는 문자가 오면 일언지하에 차단을 걸었다.
돈에 큰 욕심이 없었을뿐더러, 갑자기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저의가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친척들 몇몇도 이런 문자를 보낸 거지.’
그런데 돈 달라는 친척이 생기면 그건 그거대로 골치가 아팠다.
골치는 아팠지만 결국 해결을 봤다.
그는 부모님에게도 해당 사실을 따로 언급하고, 돈 달라는 요청은 야멸차게 거절했다.
급하게 사업이 휘청해서 돈이 필요한데 어떻게 안 되겠냐.
급하게 결혼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안 되겠냐.
급하게 유학을 가야 하는데 어떻게 안 되겠냐.
정말 급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급하다는 그런 요구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 주고 누군 안 준다고 또 난리 나겠지.’
한 명을 주면 왜 쟤는 되고 나는 안 되냐.
이런 얘기가 분명히 나올 테니까.
괜히 가족 간에 분란을 일으킬 마음은 없었다.
‘오늘은 안 왔네.’
다행히 부모님이 제대로 말하신 건지, 친척들로부터 불편한 문자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메시지를 확인하고서 잠시 침대에 누워 눈을 붙일까 하는데.
띠링―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이미주 PD】― 호준 님 로그아웃하셨네요~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게임을 하는지 안 하는지 이미주 PD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바로 실시간으로 게임플레이 영상이 전달되도록 설정해 놓았기 때문.
반대로 이미주 PD가 로그아웃을 알아차렸다는 것은, 그녀가 모니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대체 언제 자는 거지? 잠을 자기는 하나?”
이미주 PD의 불굴의 체력에 존경을 표하며 호준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출근 준비하려구요.
【이미주 PD】― 오늘 출근 어려우실 것 같은데요 후후
출근이 어렵다니.
무슨 일이지?
호준은 침대에서 뒤척이며 메시지를 보냈다.
―회사에 무슨 일 있나요?
【이미주 PD】― 회사 말고 호준 님에게 일이 있죠. 오늘 계약서 사인하는 행사를 오전 10시에 열고 싶다고 K그룹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빠르군요.
【이미주 PD】― 빨리 호준 님을 잡고 싶은 거겠죠. 호준 님이 다니시는 회사, 이 회장님과도 지인이라서요. 사정을 얘기했더니 흔쾌히 유급휴가 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 물론 유급휴가니까 걱정 마세요~
메시지를 읽은 호준은 눈을 크게 떴다.
이미주 PD는 매년 개최되는 한인 기업가 모임 행사에서 이 회장님과 여러 번 만났다며 부연설명했다.
어쨌든.
유급휴가가 확정되었다는 것은 그녀가 보낸 서류로도 확인이 되었다.
유급휴가서류.zip
행사장.jpg
유급휴가 관련 서류는 그가 알고 있던 절차 그대로였고,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갑자기 얻은 휴가네.’
【이미주 PD】― K필드 A홀, 오전 10시에 계약 진행됩니다!
행사장 위치는 서울 경복궁 인근에 위치한 K 필드였다.
K필드라면 집에서 거리가 꽤 되는데.
지하철 타고 가면 한참이려나.
‘얼른 씻어야겠다.’
호준이 침대에서 일어서며 보일러 온수 버튼을 누르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메시지를 확인한 호준은 피식 웃었다.
【이미주 PD】― 9시에 밴이 집 앞으로 도착할 거에요. 그거 타고 행사장 가시면 됩니다. 계약서 사인 및 기자회견 예정되어 있는데.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하세요~
아무래도 오늘은 카메라 마사지를 제대로 받을 모양이다.
* * *
K그룹 이름을 내건 K필드.
K필드는 주로 각국의 전시회 및 오페라, 뮤지컬 행사를 여는 종합예술시설이었다.
K필드는 국내 최고급 인테리어로 유명했고 주로 해외 유명 가수 초청공연을 여는 최고급 음향시설도 두루 갖추었다.
그런 K필드의 수많은 홀 중에서, 가장 화려하기로 정평이 난 홀은 A홀이었다.
A홀은 굵직한 행사가 개최되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었다.
주로 K그룹 신형 핸드폰 출시, 세계 최초 타이틀을 거머쥔 가전기구, 전자제품 출시 행사, 대통령 내외 초청 행사 등.
규모가 큰 행사가 개최되었다.
A홀의 행사가 원활히 돌아가도록 하는 이들이 바로 A홀 전시팀 직원들이었다.
A홀 전시팀 총책임자 최 부장.
그가 지금 진땀을 흘리며 전시장을 누비고 있었다.
“이 대리, 여기 무대 조명 비율이 안 맞잖아. 좌우 대칭이어야 웅장한 느낌이 든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 않나!”
“죄송합니다. 바로 조명담당에게 고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 하라고. 장 사원, 여기 바닥 우그러진 거 처리 좀 하게!”
“네 부장님!”
최 부장이 급한 것도 다 사정이 있었다.
그가 이세주 회장님의 특별 지시를 받은 것은 불과 3시간 전.
아침밥을 먹고 있다가 부리나케 달려온 그는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회장님이 오시는데 대충할 수 없지. 게다가 직접 전화로 얘기하셨는데 대충은 무슨!’
K필드 이세주 회장님이 직접 부탁했다.
최 부장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일에 매진했다.
“신 주임, 거기 커튼 먼지가 왜 이렇게 많아. 당장 먼지부터 제거하게!”
“넵. 처 청소기로 할까요?”
“당장 새 걸로 교체하게. 기자들이 앉을 의자는 다 준비했나.”
“네, 재고 충분합니다. 커튼도 새로 가져오겠습니다!”
최 부장이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때 그의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고생이 많구만.”
“어업.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최 부장은 뒤를 돌아보았다가 깜짝 놀라 꾸벅 인사했다.
이세주 회장은 손을 휘휘 저으며 괜찮다는 듯 최 부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회장님, 왜 이렇게 일찍 오셨는지. 아직 1시간 남짓 남았습니다.”
이세주 회장이 정시에 나타날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일찍 온 것은 의외의 상황이었다.
이세주 회장은 본래 딱 시간보다 3분 일찍 오기로 유명했다.
이렇게 일찍 올 줄이야.
이세주 회장은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최 부장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었다.
“늙으니까 아침잠도 없어지더군.”
“아직 정정하십니다. 말씀하신 행사는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그래그래. 늘 하던 대로 해주게. 그리고 최 부장도 알다시피 이번 손님은 꽤 중요하네. 방금 만나고 왔네만, 잡고 싶은 인재야. 자네가 잘 신경 써서 해 줬으면 좋겠구만. 우리 회사 이미지도 있으니 말이야.”
“물론입니다 회장님! 믿고 맡겨주십시오.”
이세주 회장의 부탁이 담긴 말에, 최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도 보기 힘든 회장님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거기다 이렇게 부탁까지 하다니.
몸을 불태울 각오로 임해야 마땅했다.
시간이 흐르자, 기자회견장은 3시간 들여 준비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볼만한 모양새를 갖추어갔다.
최 부장은 전시장 위에 걸린 고해상도 플래카드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K그룹 & 호준 광고 계약 / 기자회견장】
얼마나 대단하길래 회장님이 직접 와서 부탁을 할까.
‘호준이라. 저 녀석도 대단하군.’
최 부장이 말없이 감탄하며 플래카드를 바라보는데.
플래카드 인근에서 자리싸움을 하던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 호준이다!”
“어디어디?”
“저기 오는데!”
“K○○ 시청자 여러분, 저기 호준 님이 걸어오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등장한 순간,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하늘까지 치솟을 듯 뜨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