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45화 (145/200)

145. 추억의 김치찌개

유토피아가 대세가 된 이후, 대한민국에는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노동시장의 변화였다.

헬조선, N포세대. 초등학생 꿈이 공무원, ○튜버인 나라.

고학력 인재가 넘쳐남에도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불안정한 나라.

그런 대한민국이 변했다.

‘정말 많이 변했지. 이제는 기업이 을이 되었으니.’

말도 안 되게도.

대한민국은 이제 일자리가 넘쳐나는 나라가 됐다.

‘유토피아를 한다고 퇴사자가 급증했으니까.’

대기업은 그나마 유보금이 많아서 살아남았지만, 직원을 갈아 넣어 운영하던 작은 회사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였다.

근로자들이 돈 더 많이 주고 복지 좋은 회사로 떠났으니까.

근로자가 갑인 세상에서 회사들은 핵심 근로자를 붙잡기 위해 탄탄한 복지, 빵빵한 월급은 물론이요.

학비 지원, 유류비 지원 등 세심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원 복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이런 파격적인 정책을 실시한 회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변화는 성장이 멈춰 있던 대한민국을 살려냈다.

‘사람들이 돈을 쓰니까 오히려 경기가 좋아졌지.’

기존의 사람들이 돈을 쓰기 싫어서 안 쓴 게 아니었다.

없어서 못 썼을 뿐.

그리고 부동산값이 높은 것도 한몫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숨이 턱턱 막혀서 못 썼던 과거.

그런 과거와 달리 이제 사람들의 지갑에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토피아 플레이어는 재능에 따라 돈을 벌었고.

근로자가 갑인 세상이 되면서, 직장에서 야근하면 야근수당이 나오는 적법한 근로가 실현되었다.

이렇게 소득이 늘어나자 죽었던 소비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

정부는 이 틈을 타 집값 잡기에 들어갔다.

한 명이 집을 2채 이상 보유하면 보유세를 매겼다.

그 덕에 집값이 잡히기 시작하고.

사람들 소득이 늘어나고 내수시장이 살아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다.

뭐.

대대로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많은 대한민국이기에 가능한 시나리오이긴 했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은 살아남았다.

이전보다 살만한 세상이 된 데에는, 유토피아가 그 원인이었다.

‘앞으로 유토피아 덕에 더 성장할 테지.’

이런 격변의 시대에서 살아남은 기업들, 그 기업의 리더들은 결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매 순간, 변화를 읽어내기 위해 값비싼 정보지를 구독하고.

주기적으로 모임을 통해 정보를 얻어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래야 살아남으니까.

K그룹 계열사 중에서, 가장 자본 규모가 큰 L그룹.

그 L그룹을 이끄는 이루다 사장이 지금 모임에 참석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 모임 덕분에 유토피아 위기에서도 살아남았지.’

이루다 사장 본인이 만든 모임은 VIP라는 이름으로.

이 모임의 회원들은 굴지의 기업의 리더들이었다.

그들은 매주 1번씩 식사를 같이 하며 시장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 회원들은 각종 산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로.

모임의 목표는 정보 교환이었다.

이곳에서 오가는 정보를 기반으로 이루다 사장은 기업을 개편했고.

그 덕분에 유토피아로 인한 인재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는 앞으로도 이 모임의 정보를 기반으로 더욱 성장할 생각이었다.

‘젠장. 늦었군.’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10분이나 늦었다.

이루다는 시계를 확인하며 혀를 차고는, 재빨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고풍스러운 한옥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자 정갈한 한복을 차려입은 남녀가 그를 보며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루다 사장님. 다른 분들은 모두 대기 중이십니다.”

이루다 사장은 손을 휘휘 저으며 어서 안내하라는 듯 재촉했다.

“몇 호실이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루다 사장은 앞서가는 남직원을 따라 음식점 복도로 들어섰다.

복도 위를 종종거리는 직원을 따라가자 곧 고급스러운 창호지 문이 보였다.

붉은색 무늬가 있는 창호지.

방음벽이 설치된 이 내실은 안의 소리가 전혀 새어나오지 않았다.

은밀한 밀담을 나누기에는 적절한 곳이었다.

직원이 손으로 음식점을 가리키며 허리를 굽혔다.

“여기입니다.”

“늘 시키던 메뉴로 내오도록.”

“그럼 좋은 시간 되십시오.”

직원이 문을 열고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이루다는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내디뎠다.

“허허. 이놈의 도로가 또 말썽이지 뭡니까…… 으응?”

이루다는 허허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서다가 몸이 굳었다.

대체 이게 무슨…?

모임 회원들의 나이 평균은 58세.

나이 지긋한 회원들 8명은 보통, 가볍게 차를 마시거나 다과를 즐기며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여유로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각자 어디론가 전화를 거느라 바빴다.

무슨 일이지?

대화를 들어보니 조금 이상하다.

“어. 난데. 캡슐 비싼 걸로 하나 장만해야 하니까. 그래. 오늘 스케줄 비워놓도록.”

“그래. 이세주 회장이 사용한다는 캡슐로 하나 마련하는 게 좋겠군. 나이 들수록 감도가 좋은 걸 써야 한다는 말도 있으니.”

“캡슐 모델 정보는, 그 업체 통해서 알아보자고.”

“요정의 쉼터라고 했지. 거기도 꼭 가봐야겠어.”

대화의 주제는 캡슐이요.

요정의 쉼터, 그리고 이세주 회장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기업가들은 모두 K그룹 계열사 소속이기에, 이세주 회장의 거취에는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최 사장.”

이루다 사장은 가까운 위치의 최 사장을 붙잡고 사정을 물었다.

최 사장은 핸드폰을 귓가에서 떼고 답했다.

“아, 오셨구려 이 사장. 글쎄, 이세주 회장이 유토피아에 접속했다는구려. 방금 들어온 뜨끈뜨끈한 소식이오.”

“이세주 회장이 직접 말입니까?”

“그렇소.”

“허어. 딸하고 같이 접속하기라도 했답니까?”

“그렇다는군. 얼굴 보기도 힘든 이세주 회장 아니오. 다들 그래서 이 난리네. 허허.”

이세주 회장의 딸, 이주영은 이 바닥에서 유명했다.

재벌집 딸답지 않게 인성도 좋고, 사람 좋은 데다 똑똑하고.

게다가 지금은 자본 탄탄하고 유망한 에이스 길드를 이끄는 길드 마스터이니.

누구나 며느리 삼고 싶어 할 인재였다.

그런 딸을 따라 이세주 회장이 게임이라도 시작한 것일까.

‘의외로 딸 바보인 모양이군.’

이루다는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귀를 쫑긋하고 상황을 관찰했다.

“국내에서는 얼굴 보기도 힘든데. 이번에 얼굴도장이라도 한번 찍어야겠구려. 허허.”

“이참에 아들 데려다가 유토피아에 대해 배워볼 생각입니다.”

“내 아들이 요번에 에이스 길드 들어간다던데. 그 녀석한테 자세한 건 배워보는 게 빠르겠어.”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이루다 사장은 작정한 듯 아들딸에게 전화하는 회원들을 보며 허심탄회하게 웃었다.

이세주 회장 한 명이 일으킨 변화는 그리 놀라울 것이 아니었다.

‘50, 60대에게 이세주 회장은 전설이니까.’

더군다나 이세주 회장과 연관된 기업체가 한둘인가.

기업가들도 보기 힘든 게 이세주 회장이었다.

비록 게임일지라도 그와 말 섞는 것에 혹하지 않을 리 없었다.

‘뉴스화되면 난리 나겠군.’

이 소식이 일으킬 여파는 클 것이 분명했다.

많은 중, 노년층이 이세주 회장을 따라 게임에 접속할 가능성이 높았다.

‘기회다.’

이루다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음식점 복도로 빠져나간 이루다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달각―

― 여보세요.

“장수야. 나다. 지금부터 캡슐 제조사 주식 닥치는 대로 사라. 자금 모두 쓸어 넣어.”

― 올인은 위험하지 않을까요?

첫째아들 장수의 물음에 이루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세주 회장을 따라 구입할 사람들을 생각했을 때, 절대 오버하는 것이 아니었다.

뉴스화되면 캡슐 수요가 늘어나고, 가격은 반드시 오르고.

주가는 오른다. 반드시.

“이세주 회장이 요정의 쉼터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 그럼 이세주 회장을 아는 중년, 노년층 캡슐 구매가 늘어난다 이 말이군요. 저가형 모델이라도 사려고 할 테니까요.

“바로 알아듣는구나.”

― 최대한 사겠습니다.

용건을 마치고 전화를 끊으려던 이루다는, 아들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흠. 내 나이에 유토피아를 해봐도 괜찮겠냐. 노안에는 안 맞는다는 얘기가 돌던데.”

― 이세주 회장도 아버지 또래인데 그분도 하시잖아요? 아버지도 할 수 있죠.

“그런가. 크흠.”

― 비싼 장비일수록 감도가 좋으니까 이왕 사는 거 괜찮은 기계로 사고. 한번 같이 해보시죠? 처음이라 그렇지 막상 해보면 TV 생각 안 나실 겁니다.

“그럼 내 것도 하나 준비해봐라.”

― 접수했습니다! 강습료는 따로 안 받을게요.

아들의 농을 끝으로 통화는 끝났다.

이루다는 날카로운 기운을 거두고 잠시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새로운 걸 하는 게 두렵다.

그렇지만 두려움 너머에는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루다는 비서가 꾸벅꾸벅 졸고있는 차로 다가섰다.

뒷자석 문을 여는 순간, 그는 알지 못했다.

오늘 이세주 회장의 요정의 쉼터 방문 뉴스가 터진 뒤로.

변화에 소극적이던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 유토피아로 유입됨을.

그리고 요정의 쉼터가 이세주 회장의 단골음식점으로 소문이 나 사람으로 미어터지게 될 것임을.

* * *

“크흠. 반갑네. 파괴왕 이세주일세. 자네와 계약하기로 한 그 K그룹 총수도 나일세.”

“반갑습니다, 파괴왕 이세주님. 닉네임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조금 옛날 감성이지만. 뭐 어떤가. 하하. 옛날 감성을 따르는 것도 나름 추억이 되는 법이지.”

파괴왕 이세주, 이세주 회장은 허허 웃으며 마주 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시원시원한 미소나, 호탕한 목소리.

풍채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역시 TV에서 보던 그 이세주가 맞았다.

‘참 신기하네.’

평소 뉴스에서만 보던 이세주 회장을 눈앞에서 보다니.

이주영과 부녀지간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호준은 기분이 싱숭생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호준에게 이세주가 말을 걸었다.

“갑자기 와서 놀란 게로군.”

“네. 놀랐습니다. 혹시 계약 조건 때문에 오신 건지요?”

“아닐세. 계약 건은 이미주 PD를 통해 진행하면 될 테고. 내 딸아이가 자네의 음식을 먹자고 사정하더군. 맛이 그리 좋다고 얼마나 말하던지. 궁금해서 한번 와봤네.”

“후회 안 하실 거라니까요. 그쵸 호준 님?”

이주영이 옆에서 볼에 바람을 넣으며 말하자 호준은 옅게 미소지었다.

파괴왕 이세주는 정중한 어조로 물었다.

“가게 오픈 전이긴 하네만. 자네가 괜찮다면 딸아이와 함께 먹을 식사 한 끼 부탁하고 싶네.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편한 곳에 앉으세요.”

호준은 정중한 그 물음에 흔쾌히 답하며 테이블을 가리켰다.

K그룹 회장이든 아니든, 손님은 다 똑같은 손님이다.

그리고 오픈 시간 직전이라 대기 손님들이 없어서 여유 있게 요리를 만들 수 있으리라.

“따로 드시고 싶으신 게 있으면 얘기하십시오.”

“혹시 김치찌개도 가능한가. 주영이 말로는 김치 맛이 좋다고 하니, 뜨끈뜨끈한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 먹고 싶구만.”

“김치찌개 가능하죠.”

“앗. 호준 님. 저는 김치치즈볶음밥으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김치가 들어간 건 뭐든 좋아해서요! 돼지고기 넣어주시면 더 좋구요!”

김치로 일맥상통하는 부녀였다.

“좋습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호준은 흔쾌히 요청을 접수했다.

그는 냄비와 프라이팬을 꺼내고 본격적으로 요리에 들어갔다.

먼저 프라이팬에 돼지고기를 자잘하게 볶았다.

취지지직―

돼지고기에서 흘러나온 육수와 기름이, 돼지고기를 바짝 튀기는 역할을 했다.

돼지고기가 살짝 바삭하게 볶아진 상태에서 물을 살짝 넣고.

잘게 썬 김치를 넣고 폭폭폭 끓인다.

뽀글뽀글―

【김치찌개가 완성되기까지 2분이 남았습니다.】

‘2분이면 볶음밥 만들기에 충분하지.’

먹음직스러운 김치찌개를 옆에 두고, 그는 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취지직―

프라이팬에 돼지고기를 듬뿍 올리고 돼지 자체의 기름으로 바짝 볶은 다음.

고추장과 김치를 살짝 넣고 바짝 볶고서 마지막으로 밥을 넣고 볶았다.

‘바삭하게 만들자.’

바삭함을 살리기 위해 볶음밥은 프라이팬에 얇게 폈다.

바삭함이 살아난 볶음밥이 누룽지처럼 딱딱해지기 전에 치즈를 얹고.

그대로 프라이팬을 뒤집어 접시 위에 올렸다.

모짜렐라 치즈가 듬뿍 올라간 돼지고기 김치 치즈 볶음밥 완성!

【훌륭한 돼지고기 김치 치즈 볶음밥 (특4급) 완성!】

볶음밥과 때를 맞춰, 김치찌개도 완성되었다.

【최고의 돼지고기 김치찌개 (특5급) 완성!】

호준은 무심한 얼굴로 찌개와 밥 한 공기.

그리고 볶음밥 접시를 테이블 위에 세팅했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서며 넌지시 말했다.

“맛있게 드세요~”

“아아….”

“으음…!”

이세주와 이주영은 말을 잃고, 완성된 요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런 김치찌개면 없던 식욕도 생기겠군.”

이세주는 김치찌개에서 피어오르는 향을 한번 맡고는,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숟가락을 입에 넣자 이세주는 말을 잃고.

눈을 꾹 감았다.

‘이 맛은.’

망해가던 K그룹을 이끌던 무렵.

이세주는 아내와 장모님의 전폭적인 내조를 받았다.

어머니 없이 자란 이세주는 장모님표 김치찌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거래처에 사정사정하고 기술개발로 밤을 며칠 새다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다 같이 단칸방에 앉아서 먹는 김치찌개가 얼마나 맛있던지.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먹으며 그는 떠올렸다.

단칸방에서 가족과 오순도순 김치찌개를 먹던 옛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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