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43화 (143/200)

143. 돈길만 걷자.

카심에 이어 약 팔러 갔던 진수가 가게로 돌아왔다.

늘 그래왔듯 진수가 건넨 약초들은 별이가 농장에 심었고.

호준은 진수에게 갓 만든 치즈떡볶이와 튀김을 대접했다.

“와아! 저 떡볶이 귀신인데. 잘 먹겠습니다, 형!”

“천천히 먹어라.”

“네엡! 너무 맛있어서 빨리 먹게 돼요!”

진수는 며칠 굶은 사람처럼 맛있게 떡볶이를 흡입했다.

녀석은 떡볶이 위에 녹은 모차렐라 치즈를 한 젓가락으로 훑어 입에 넣고는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전 치즈가 너무 좋아요! 치즈 들어간 건 다 좋더라구요.”

“치즈 튀김도 한번 해 줘야겠네.”

“아. 듣는 것만으로 맛있을 듯요.”

허겁지겁 먹는 진수를 보며 호준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 진수가 돌아온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호준 그 자신이 가게 인근에서 약을 팔도록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진수는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형 말대로 장사는 여기서 하는 게 좋겠더라구요. 가게 클로징 시간에는 포션을 만들고. 가게 오픈하면 약을 팔고. 많이 팔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가끔 씨앗 경매하러 외지로 다니는 것 빼고는, 여기서 파는 게 네가 속 편하지.”

“1시간쯤 뒤부터 장사한다고 하셨죠?”

“음. 얼추 그때지.”

“그럼 저는 그때까지 약을 많이 준비해 놓겠습니다!”

진수가 의지를 불태우며 떡볶이를 마저 먹고는, 제작 도구들이 설치된 외양간으로 향했다.

이제 진수가 할 일은 약을 잔뜩 만들고, 가게 오픈에 맞추어 파는 것이리라.

왔다 갔다 하는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으니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였다.

‘뭐. 잘 팔리면 둘 다 좋은 일이지.’

호준은 피식 웃고는, 다 먹은 접시를 치우기 위해 뒷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설거지 그릇을 모아놓는 통 안에 접시를 집어넣고 다시 가게로 돌아가려는데.

화면 하단부를 보며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많이도 벌었네.’

오랜만에 확인한 골드와 하트.

그 액수가 적지 않았다.

【누적 하트】: 721,492 하트

【보유 골드】: 218만 6천 319 골드

방송할수록 구독자 수가 늘어났고.

어느새 골드와 하트가 무섭게 쌓였다.

총 가치를 따져보면.

‘290만 7천 8백 17골드. 한화로 따지면, 29억 원이 조금 넘는군.’

세금 빼면 25억 정도려나.

25억.

직장인이 넘보기에는 아득한 액수다.

로또나 도박을 해도 이 정도 모으기는 힘들겠지.

시골에서 상경한, 원룸에 월세 내며 사는 20대라면 더욱 넘보기 힘든 돈.

25억이면 그의 로망을 실현하기에는 충분한 액수였다.

‘시골에 집 한 채 짓고. 부모님 집 근처에 넓은 집을 짓고. 마당에 사는 고양이들도 자주 보고.’

그러다 새끼고양이 한두 마리 입양해서 잘 키우고.

물론 일을 쉬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동안 배웠던 해외 영업 업무 경험을 살려서, 마을 특산품인 도라지나 다른 농작물로 가공품을 만들어 수출할 생각이었다.

‘계획도 다 세워뒀지.’

고향 마을은 도라지와 고구마 생산에 딱 알맞은 기후였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도라지와 고구마를 수확해 팔고, 그 돈으로 먹고살았다.

그의 아버지도 도라지를 재배하고 있었고.

다만.

중간 상인들이 많이 끼어 있어서 헐값에 팔아야 했다.

농민은 중간 상인들이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는 을의 입장이었다.

‘도시에서는 원가에서 심하면 30배까지 부풀려서 팔지.’

도라지의 가격은 원가의 20배 이상, 심하면 30배 이상으로 부풀려졌다.

이런 현상은 다른 농산물이나 해산물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런 헐값에 팔기 싫으면 스스로 활로를 개척해야만 한다.

‘국내보다는 수출이 답이지.’

그런 상황을 잘 알기에 호준은 해외 시장을 뚫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고구마는 고구마말랭이로 굳혀서 팔고.

도라지는 즙을 짜고.

수출은 외국어 능통에, 관련 법과 경험, 그리고 식품 인증절차에 관한 자격증을 고루 갖춘 그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수확한 친환경 도라지를 수출하는 소 일거리도 해 보고.

작은 사업도 하면서 가끔 친구들과 마당에서 삼겹살과 해산물도 구워 먹고, 캠핑도 하고.

‘밤에는 유토피아에서 요리도 계속하고.’

일과 여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생활.

꽤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2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앞당겨졌네.’

20년. 더 길면 30년은 걸릴 것이라고 여겼는데 유토피아 덕에 거금을 손에 쥐었다.

로망을, 늘 그려왔던 꿈을 실현하기에는 충분한 거금을.

더욱 좋은 것은, 앞으로도 유토피아를 계속하면서 로망을 이룰 준비도 하고.

그 준비자금도 벌 수 있다는 것.

‘본격적으로 귀농을 알아봐야겠다.’

호준은 작게 다짐을 하며 금액이 적힌 창을 손으로 한번 쓸었다.

애정이 담긴 손길을 서서히 거두는데

【이미주 님으로부터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미주 님으로부터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가 도착했다.

메시지는 하나가 아니었다.

연달아 계속 왔다.

【이미주 님으로부터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미주 님으로부터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메시지 수신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미주 님으로부터 총 10개의 메시지가 왔습니다】

“뭐지? 이렇게 많이….”

호준은 받은 메시지를 하나하나 열어 읽어 보았다.

첨부된 이미지 파일, 보고서, 제안서, 그리고 총정리용 요약서까지 모조리 읽었다.

모든 서류를 검토한 호준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옆에서 잡풀을 뽑느라 쪼그려 앉아있던 카심이 갸웃하며 호준을 바라보았다.

“호준 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용?”

카심의 물음에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대박이 터졌지.”

“대박이요?”

“그래. 대박.”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요약 메시지를 한번 더 보았다.

【K그룹, 1년 계약, 유토피아에서 K그룹을 대표하는 단독 모델로 광고, 월 40억 원 제안. 총 광고 수익, 480억 원 예상.】

잭팟이 터졌다.

로망을 10번 이루고도 남을만큼의 잭팟이.

* * *

또깍―

잠겼던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작업실 안으로 들어온 한 여성.

지친 기색을 한 그녀는 이미주의 사업 파트너이자 동료, 절친이자 밥을 챙겨주는 이혜정이었다.

이미주를 도와 밤샘 작업을 하고 피곤해진 혜정은 눈가에 진한 다크서클을 매단 채로 좀비처럼 걸어갔다.

그런 친구를 보며 이미주는 어깨를 으쓱했다.

“왔어?”

“엉. 호준 님한테 연락 왔어? K그룹 건.”

혜정은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이미주 옆 의자를 당겨 앉으며 물었고, 이미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며칠 밤을 새우다시피 한 이미주는 조금 지쳐 보였다.

“아니. 아직.”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미주는 초조했다.

완벽주의인 그녀는 모든 행동을 하기에 앞서 몇 번이나 생각하고 행동했다.

옆에서는 병적이라고 말할지 몰라도. 그녀는 원래 그런 성격이었다.

‘음. 왜 연락이 없지.’

원래라면 호준이 바로 대답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호준은 답이 없었다.

예상을 벗어난 반응은, 그녀를 조금 당황스럽게 했다.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해서 보냈는데 왜 연락이 오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모를 일이었다.

연락이 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속이 타는 건 이미주 쪽이었다.

‘광고 내용이 마음에 안 드나?’

완벽주의 강박증 덕에 이미주는 호준의 반응이 신경 쓰였다.

이런 작은 일로도 틀어질 수 있는 게 사람 관계 아니던가.

혹시 뭐가 마음에 안 든 걸까.

물어볼까 말까.

아니 조금 기다릴까.

이미주가 불안한 얼굴로 입술을 짓씹자 혜정이 넌지시 말했다.

“월 40억 원이면, 나쁘지는 않은데. 탑 연예인도 보통 3개월 단위로 3~40억을 받으니까.”

“이 업계에서는 탑이지. 금액도 금액이지만. K그룹은 호준 님하고도 연이 있잖아. K그룹 막내딸인 이주영하고도 안면이 있고.”

“그래. 이주영이 가서 밥도 먹고 그러더라.”

“그래서 제안한 거였어. K그룹 자체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라 의미도 괜찮고.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기술력 탄탄한 그룹이니 호준 님 이미지에도 좋고.”

“아직 메시지를 확인 안 한 걸 수도 있으니까 조금 기다려봐.”

“아니. 메시지는 확인했어. 수신 확인했다는 메시지를 받았거든.”

“아아. 그러면… 뭐라도 먹으면서 기다리자.”

“으응.”

“부리토 어때? 팬케이크랑.”

“그래. 뭐든 좋아.”

혜정이 요리를 하느라 부엌을 들쑤시는 사이, 이미주는 여전히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게임에 접속하지 않아도 메시지는 웹사이트로 확인이 가능했다.

‘이번 광고는 대박이야.’

K그룹과 광고 계약이 수락되면, 이미주 PD에게도 수익이 일부 떨어진다.

그 수익도 수익이지만, 이미주의 커리어에도 큰 획을 긋는 일이었다.

호준의 성장은 곧, PD이자 스타메이커인 그녀의 커리어에 굵은 한 줄이 될 테니까.

‘게다가 K그룹은 아무나 계약할 수 없지.’

K그룹은 보통 국가를 대표하는 운동선수 혹은 20여년 간 아무 문제가 없이 연예계 활동을 하는 베테랑들.

그런 유명한 사람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 계약을 했다.

그것도 단기 계약으로.

‘K그룹 광고를 2개월 이상 유지한 모델은 없지. 호준이 최초야. 1년짜리 계약은.’

K그룹은 애초에 단기 계약만을 한다.

이번처럼 장기계약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 조건을 내걸지 않아도 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으니까.

‘게다가 30여 개 제품군 전부 호준이 모델이 되고. 처음 있는 일이지.’

여러모로 호준이 이번에 K그룹 제안을 받은 것은, 광고계에서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한 분야도 아니고 자동차, 스마트폰, 컴퓨터, 가전제품, 침대 등 30여 개 제품의 광고모델이 되는 거니까.

게다가 유토피아 내에서 이루어지는 광고는 파급력이 어마어마했다.

20억에 이르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노출되니까.

‘이제 세계적으로 얼굴을 알리게 되겠네.’

이제 전 세계에 노출되는 K그룹 광고에 호준이 나오게 된다.

이번 광고로 호준이 일약 스타가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한 발 내딛는 거지.’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포진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의 광고 제안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K그룹이 호준의 이미지를 좋게 보았다는 것이었다.

‘떨린다.’

호준이 스타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이미주는 심장이 떨리고 두근거렸다.

스타를 만들어가는 순간, 가장 뿌듯한 순간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성장하는 순간 아니던가.

호준이 아득한 저 위의 별이 되는 순간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미주는 초조한 눈빛으로 업데이트 버튼을 누르며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몇 번을 업데이트 버튼을 눌렀을까.

띠링―

드디어.

그녀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새로운 메시지 1건 (NEW)

이미주는 눈을 반짝이며 즉시 메시지를 클릭했다.

메시지를 읽은 그녀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혜정아. 이 이거 봐!”

“응? 뭔데? 호준 님한테 연락 왔어?”

“응. 계약한대!”

“오케이. 그럼 바로 언론에 알린다.”

“나는 광고제안서 보낼게.”

이미주는 준비한 광고제안서를 메일로 보내 컨펌을 받기 시작했고.

이혜정은 SNS에 이 뜨끈뜨끈한 소식을 알렸다.

공식 SNS를 통해 퍼져나간 소식은, 빠르게 기사화되었다.

【K그룹, 유토피아 단독 모델로 호준 선정!】

【세계에서 인지도 높은 그룹 5위 K그룹, 호준을 선택하다!】

【금주의 핫한 인물 1위, 호준!】

【글로벌 K그룹의 남자 호준, 그는 누구인가】

【호준, 최초로 K그룹 제품군 전체 단독 모델로 선정】

【유례없는 파격 대우에 광고계 깜짝 놀라!】

【광고계의 떠오르는 별 호준, 그의 향후 거취에 이목이 쏠려】

스마트폰을 타고 호준의 소식은 전 세계로 여과 없이 전해졌다.

마을 사람들과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호준의 아버지.

유기준의 입꼬리는 환하게 올라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허허. 자네 아들 성공했구만.”

“크흠. 우리 아들이 이런 데 재능이 있을 줄 알았겠나?”

“대단하네. 이렇게 뉴스에도 많이 나오구. 우리 마을에 인재 났어!”

“우리 마을에서 이런 일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멋지구먼!”

“그럼. 우리 아들이 최고지.”

친구들의 칭찬에 어깨를 으쓱하며 유기준은 화면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주름진 손가락이 아들의 얼굴이 담긴 화면을 슥 쓸어내렸다.

“우리 아들. 잘생겼다.”

그의 입가에는 훈훈한 미소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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