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를 너무 잘함-142화 (142/200)

142. 재회

모카번 1,000개 만들기 퀘스트는 예상보다 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커피 가루 완성입니다! 여기 두고 갈게요~”

“그래!”

잠에서 깨어난 요정들이 작업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별이는 커피콩을 수확해 커피 가루를 만들어 재료를 보급했고.

그 재료로 호준은 반죽 만들기에 착수했다.

오븐이 비는 족족 새로운 반죽을 넣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알뜰하게 잘 썼다.

“끼유!”

오븐에 반죽을 넣으면, 이제는 토순이가 나설 차례다.

토순이가 헬리콥터 프로펠러처럼 귀를 뱅글뱅글 돌리며 요정력을 쓴다.

“끼유우웃!”

【요리의 요정 토순이의 힘으로 요리가 즉각 완성됩니다!】

【특5급 모카번 완성!】

【특5급 모카번 완성!】

【특5급 모카번 완성!】

【특5급 모카번 완성!】

………

【특5급 모카번 완성!】

순식간에 모카번 20개 완성!

“참. 간단하네.”

호준은 토순이의 이마를 스윽 쓰다듬고 완성된 모카번을 오븐에서 빼냈다.

텅 빈 오븐 안에 새로운 세팅 반죽을 안에 집어넣고.

토순이 버프는 연달아 사용하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약간의 텀을 두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별이와 토순이의 도움을 받아 모카번 만들기에 푹 빠졌다.

휘르륵 착 착―

휘륵 착―

반죽 만들기도 빨랐다.

처음 요리를 만들면 손에 익지 않아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복하는 횟수가 수십 번으로 늘어나면?

‘머리가 생각하기 전에 손이 움직이지.’

찹찹찹―

반죽 만들고. 버터를 짜고. 쿠키반죽 끼얹고.

기계적으로 계속하니 요리 속도는 끝도 모르고 높아져만 갔다.

이제 그의 손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휘륵 착 착―

타각―

“휴. 끝이다.”

마지막 반죽을 오븐에 집어넣고, 토순이에게 눈짓했다.

토순이는 듬직한 미소를 짓고는 프로펠러, 아니 귀를 빙글빙글 돌렸다.

“끼유우!”

토순이의 외침과 함께 기분 좋은 메시지들이 주룩주룩 나왔다.

【요리의 요정 토순이의 힘으로 요리가 즉각 완성됩니다!】

【특5급 모카번 완성!】

【특5급 모카번 완성!】

【특5급 모카번 완성!】

………

【퀘스트 성공!】

【당신은 1시간 내에 요리 1,000개를 만드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요리삼매경 칭호 획득!】

【1시간 동안 요리 1,000개 이상을 만들 경우 획득!】

【요리 속도 30% 향상!】

드디어 퀘스트를 성공!

【퀘스트 보상】

【장인이 만든 커피머신 3개 획득!】

쿵 쿵 쿵―

기다리던 보상도 떡 하니 모습을 드러냈다.

세련된 디자인의 블랙 색상 커피머신.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무려 셋이나 되니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든든해졌다.

호준은 적당한 위치에 커피머신을 놓고 흐뭇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바라보았다.

“이제 카페도 운영할 수 있겠네.”

그 옆에서 토순이가 긴 울음소리를 내며 울었다.

“끼유우!”

호준은 새끼 고양이를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토순이 머리를 쓰다듬고 커피머신을 슬쩍 보았다.

이제 이 녀석으로 뭘 만들어볼까.

‘그게 좋겠다.’

따뜻한 우유에 설탕과 커피 원액을 넣고 생크림을 듬뿍 올린 카페라테.

한 잔 마셔볼까.

이마에 맺혔던 땀을 닦으며 그는 커피머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 * *

홀짝홀짝―

학교 혹은 회사에서 가지는 점심시간이 그러하듯.

스케줄 중간중간 끼어있는 잠깐의 휴식은 참으로 달콤하다.

지금 호준은 그 잠깐의 휴식을 즐기는 중이었다.

【생크림 카페라테】

그는 갓 뽑은 생크림 카페라테를 마시며 은은히 미소지었다.

호준은 가게에 혼자 있었다.

베티와 샤롯은 부족한 식기를 사러 간다고 별이와 함께 시장으로 나갔고.

요정들은 바깥에서 노느라 바쁘다.

냐아~

아. 그릇장 위에 다크니스도 있었다.

녀석은 평소처럼 하품을 쩍쩍 하고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을 잤다.

골골거리는 다크니스의 소리를 들으며 호준은 김을 간간이 뿜는 커피머신을 바라보았다.

취익― 또르르르

갓 뽑은 카페라테 잔들이 커피머신 하단부에 놓여있었다.

그 잔들에 각각 생크림이 듬뿍 올라가 있다.

호준은 새 카페라테 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홀짝―

우유와 설탕, 생크림 토핑. 그리고 커피.

그 각각이 입안에서 어우러지며 훌륭한 맛을 냈다.

커피 맛이 딱히 무슨 맛이 정답이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평소 입맛이 까다로운 편은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까다로운 편이 아닌 그도, 커피 맛이 훌륭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커피 중에 최고네.”

커피를 많이 좋아하지 않는 그도 맛있다고 느낄 정도로 커피 맛은 훌륭했으니까.

장인이 만든 머신으로 만든 커피는, 맛도 훌륭했지만 취향에 맞게 조정이 가능했다.

우유, 설탕 등 재료의 비율도 조정 가능했다.

즉, 더 달게 먹고 싶으면 설탕의 비율을 높이면 되고.

연유를 넣으면 커피맛이 더 풍미가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음에 들어.”

현실에서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무척이나 복잡했다.

원두를 갈고 무슨 압축하는 기계 같은 데 들어가기도 하고.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최고급 품질의 커피를 버튼 하나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감미로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넘치는 재료를 넣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끝.

2분만 기다리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원하는 커피가 나왔다.

기계 하나당 3잔씩 나오니 만드는 양도 제법 될 듯했다.

‘오늘부터 커피 메뉴도 조금 간추려서 내놔야겠네.’

호준은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메뉴판을 수정하기로 마음먹으며 커피잔을 내려놓고 모카번을 집어 들었다.

바스슥―

커피와 모카번의 궁합은 최고였다.

고소한 원두 냄새가 나는 가게 안에서, 커피와 모카번을 마시는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래서 다들 커피를 즐겨 마시는 걸지도.

“흐음.”

그는 기분 좋게 모카번 하나를 해치우고는 어딘가를 바라았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가게 문보다 더 작은 문이었다.

무릎까지 올 정도의 작은 문.

그 문은 바로 비밀의 정원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고블린 카심과의 약속대로 문을 설치한 것이다.

‘카심이 여기 들어오면 문제 될 일은 없겠지.’

바깥에서 돌아다니면 몬스터로 오해받을까 봐 일부러 실내에 문을 만들어뒀다.

이곳이라면 혹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막아줄 수 있을테니까.

설치한 지 10분이 지난 문은, 아직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카심이 혼자 산 세월이 얼마인데. 아직 어렵겠지.’

문을 설치하기는 했지만, 호준은 카심이 바로 나올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변화를 시도하려면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되니까.

수백 년간 숲에서만 살아온 카심이 숲을 나온다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었다.

숲에 갇혀있던 세계를 더 넓혀간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어쨌든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니 카심이 나오는 데까지는 어쩌면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고, 호준은 그리 생각했다.

‘본인 스스로 그 벽을 깨고 나오는 수밖에.’

그리고 카심이 나오는 것은 누군가 강제로 하는 게 아닌, 본인 스스로 결심이 서야 했다.

그러니 문을 만들어줬으니 남은 것은 지켜볼 수밖에.

‘언젠가 나오면 잘해주자.’

호준은 말라깽이 카심을 잠시 떠올리고는 마저 남은 커피를 들이마셨다.

스푼으로 남은 생크림을 푹 떠서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하며 녹여 먹었다.

달달하니 좋네.

그가 흐뭇한 얼굴로 생크림을 녹여 먹고 있는데.

삐그덕―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벌써 손님인가?

호준은 고개를 돌려 가게 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가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설마?’

호준은 재빨리 구석에 있는 작은 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을 확인하자 그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동그란 머리가 튀어나왔다.

카심의 작은 머리가 기웃기웃거리더니 호준을 보자 슬며시 나왔다.

녀석은 호준의 무릎 쪽으로 다가와 무릎을 구부리며 인사했다.

“호준 님, 안녕하세요! 여기가 그 요정의 쉼터인가요?”

“그래. 여기가 그 쉼터다. 잘 왔어 카심. 이거 새로 만든 건데 한번 먹어볼래?”

“으음! 뭔지는 모르겠지만 냄새가 너무 달콤하고 좋습니다!”

“이리 와 앉아봐!”

카심은 호준이 손짓하는 의자에 뛰어올라왔다.

의자가 너무 커서 카심의 다리가 바닥에 닿지 못하고 달랑달랑 흔들렸다.

호준은 동그란 눈으로 순박하게 웃는 카심에게 씩 웃고는, 모카번 하나를 접시에 놓고 칼로 썰어주었다.

슥 삭 슥 삭

모카번이 10조각으로 잘릴 동안, 접시는 뜨끈뜨끈한 버터로 바다를 이루었다.

버터에서 피어오르는 고소한 향에 커피향이 휘감겼다.

츄릅!

카심은 모카번을 들여다보며 침을 삼켰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오늘은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의 연속이야!’

지난 수백 년의 시간보다 오늘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이 더 많았다.

그 급격한 변화의 중심에는 갑자기 나타난 호준이 있었다.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

고블린 카심이 보는 호준은 그런 존재였다.

‘나와봐. 바깥에서는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을 테니까.’

호준의 말에 카심은 흔들렸다.

바깥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고, 먹을 수 있다는.

친절한 그의 권유로 카심은 용기를 내 바깥세상에 나왔고.

“먹어봐! 자!”

“네 넵!”

이렇게 맛 좋은 음식까지 대접받고 있었다.

카심은 외롭고 심심했던 지난 날들보다 지금 이 순간이 100배 더 좋았다.

‘호준 님은 멋있어!’

그리고 내심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카심은 호준이 고맙고 또 고마웠다.

카심이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자 호준은 씩 웃었다.

얘가 포크 사용법을 몰라서 이러는구나.

호준은 모카번 조각을 포크로 집어 내밀었다.

“그때는 급해서 그냥 음식만 줬는데. 이건 포크라는 거다. 이렇게 찍어 먹는 거야. 아 해봐!”

“아아! 으음―!”

“어때 맛있지?”

“우움. 너무 맛있어요! 자꾸 먹고 싶어요!”

“천천히 먹어. 많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건 커피라는 음료인데 같이 먹으면 잘 어울리지.”

“향이 부드럽습니다.”

카심이 커피 향을 맡으며 한결 긴장이 풀어진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호준도 따라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모카번이랑 커피는 네가 준 씨앗을 재배해서 만든 거란다. 그러니 이렇게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도 네 덕인 거지. 고맙다. 카심.”

호준의 말을 들은 카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감사하다고 말해야 할 이는 이쪽인데 도리어 고맙다고 말해줬다.

카심은 호준의 모습이 한결 더 크게 느껴졌다.

마음도 넓고 몸도 크고. 멋진 사람.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해도 돼. 눈치 보지 말고.”

카심이 굳은 채로 올려다보자 호준은 긴장한 것이라 여기고 모카번을 더 썰어주었다.

카심은 그런 호준의 무릎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저도 은혜를 꼭 갚을게요!”

“뭘. 은혜까지. 씨앗이나 잘 모아주면 돼. 그리고 좀 통통해지면 좋겠다. 지금은 너무 말랐어.”

“네. 통통! 통통해질게요!”

“훗. 그래!”

카심은 통통과 씨앗을 마음에 꼭 담은 채로 모카번을 먹었다.

모카번을 씹을 때마다 카심의 마음이 흐들흐들하게 녹아내렸다.

긴장도 스르륵 녹아내렸다.

“모카번 진짜 맛있습니다!”

“당연하지. 내가 만든 건데.”

“매일 이것만 먹어도 될 것 같아요!”

“많이 있으니까 먹고 싶은 만큼 먹어!”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호준은 잘 먹는 카심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는 카심이 더 통통해졌으면 싶었다.

지금처럼 치면 톡 부러질 것 같은 게 아니라.

잠시 카심이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휘유우웅―

가게 문이 벌컥 열리고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덜컹덜컹―

테이블과 의자가 흔들리자 카심이 접시를 잡은 채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호, 호준 님, 저기 요요요요요용이― 캑―”

날개를 갈무리하는 미르를 보자 카심이 헛기침을 해댔다.

호준은 옆에서 등을 두드려줬다.

“저 녀석은 미르다. 내가 말했지? 용 두 마리가 있다고.”

“아아. 미르 님과 송이 님 말씀이군요!”

“그래. 저기 저 하얀 용이 송이다!”

미르의 등에 붙어있던 송이가 네 발로 달려왔다.

송이의 관심은 호준이 아니라 그 옆의 고블린을 향해 있었다.

송이는 새로운 존재가 나타나면 그 주위를 천천히 맴돌며 탐색하다가 다가간다.

그게 송이의 버릇인데 가끔 호감을 가지면 바로 달라붙고는 했다.

바로 지금처럼.

“엇. 소, 송이 님인가요?”

“그래. 네가 좋은 모양이네!”

“헷. 송이 님, 저도 좋습니다!”

카심은 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는 송이를 보며 살살 등을 어루만지며 웃어댔다.

호준은 넌지시 송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송이야. 카심은 고블린이라 약하다. 황금보다 약해. 알겠지?”

“묘옹!”

【송이가 힘 조절을 하겠다며 끄덕끄덕합니다】

“네? 제가 황금보다 약하다니. 무슨 사정이라도 있나요?”

카심의 물음에 호준은 순순히 답해줬다.

송이는 작은 덩치임에도 발가락 힘이 장난 아니게 셌다.

발가락으로 움켜쥐면 멀쩡한 황금도 가루로 만들었다.

그 힘을 발견한 건 최근 들어서였는데.

어쨌든.

송이가 발가락으로 꾹 누르면 멀쩡한 황금 조각상에 발가락 자국이 푹 파고 들어갈 정도였다.

그래서 카심에게 힘을 쓰면 위험하니 사전에 주의를 준 것.

호준의 말을 들은 카심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마, 맙소사. 이렇게 작은데.”

“작으니까 다들 방심하는 거지. 그러다가 황금처럼 구멍이 뻥 뚫리면…!”

“으으흐흐으읏!”

송이를 쓰다듬던 카심의 손이 오들오들 떨렸다.

“묘옹!”

그때, 송이가 카심의 목줄기를 발가락으로 휘감고 매달렸다.

이제 카심의 얼굴은 거의 눈처럼 하얘졌다.

“소, 송이 님. 저는 종이처럼 약합니다. 조, 조심히… 부탁드립니다.”

“묘옹!”

【송이가 카심이 마음에 드는 눈치입니다】

【송이가 발가락 힘을 잘 조절하겠다고 말합니다】

송이가 끄덕끄덕하자 사색이 된 카심이 고개를 들어 호준에게 물었다.

“호준 님, 송이 님이 뭐라고 그럽니까.”

“힘 조절해 보겠대. 잘 대해줘.”

“아하하― 아핫. 흐익! 그, 그럼요. 잘…!”

송이가 목을 핥는데도 카심은 그 엉덩이를 받쳐 안으며 어색하게 서 있었다.

왠지 울상이 된 듯한 카심을 보며 호준은 악동같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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